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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2004년의 인물, 류정한 [No.70]

글 |정세원 사진 |이맹호 2009-07-20 6,244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해를 거듭하며 규모를 키워가던 뮤지컬계는 2004년을 맞아 제작비 100억 원대의 뮤지컬 <맘마미아>와 <미녀와 야수>를 비롯해 크고 작은 뮤지컬 60여 편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하지만 경기불황으로 인해 일부 대작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했고 수많은 제작사들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 국내에 복고 열풍을 몰고 온 <맘마미아>가 기존의 20~30대 젊은 관객층을 40~50대 장년층으로 확대시키며 2004년 상반기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그해 최고의 화제작은 아무래도 ‘조승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지킬 앤 하이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소재로 한 <지킬 앤 하이드>는 우리에게는 익숙치 않은 비극적 결말의 국내 초연작인데다, 코엑스 오디토리움이라는 공연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연 종료 2주전에 미리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4억 원의 수익을 남겼다. 이후 5차례의 앙코르 공연을 거치면서 수차례 기록을 갱신한 <지킬 앤 하이드>는 한국 뮤지컬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조승우의 폭발력에 가려져 큰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지킬 앤 하이드>의 초연 무대를 장식한 류정한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젠틀함을 벗어내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이며 ‘류정한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4년의 인물로 류정한을 선정한 것은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의 연기에 대한 가능성과 믿음을 기대하게 했기 때문이다.

 

 

“2004년은 배우 인생에 있어서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것 같아요.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제가 뮤지컬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었다면 2004년의 <지킬 앤 하이드>는 접고 있던 날개를 펼쳐서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힘든 과정 속에서 얻는 기쁨과 성취감은 어느 때보다 진실하고 크게 다가오는 법. 2004년이 류정한에게 특별한 해로 기억되는 것은 단지 <지킬 앤 하이드>가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무대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었고,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 류정한은 황정민과 함께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빌리 역을 연습 중이었다. 빌리 역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2004년 리바이벌 버전으로 선보이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그에게 탭댄스를 요구했다. 개인 연습을 하던 중 허리에 무리가 갔고, 이미 허리 디스크로 수술까지 받았던 그는 더 이상의 탭 연습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몸도 마음도 불편한 상태에서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에 참가한 류정한은 자신에게 실망한 채 문을 나섰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그만큼 욕심나는 작품이었는데도 오디션을 너무 못 봤어요. 몸 상태가 안 좋긴 했지만 그보다는 심적으로 혼란스러운 때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나중에 캐스팅된 후에도 출연하지 못하겠다고 거절했어요. 두 인물을 연기하는 일이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잖아요, 적당히 해서는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때 신춘수 대표님이 제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셨어요. 종합검진부터 받아보라고, 그때까지 기다려주겠다고. 감사한 일이었죠.”


류정한에 대한 제작자의 믿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숨겨진 날개를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로부터 절대적인 믿음을 받을 때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힘을 발휘하게 된다. 류정한이 그랬다. 연습을 하는 동안 그의 몸은 거짓말처럼 건강해졌고, 이전에는 몰랐던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류정한은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고 했다. “이 작품은 저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에요.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하더라도 작품 운과 맞지 않으면 빛날 수 없잖아요.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 것도, (조)승우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좋은 에너지를 내는데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2004년 <지킬 앤 하이드>는 단정하면서도 매너 좋은 이미지의 두 배우 조승우와 류정한에게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40대의 지킬/하이드 역을 맡기는, 다소 파격적인 캐스팅을 시도했다. 발군의 연기력과 가창력을 선보인 조승우는 단숨에 한국 뮤지컬계 흥행 보증수표로 떠올랐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그에게 향했다. 하지만 당시 <지킬 앤 하이드>가 무사히 공연할 수 있었던 데는 첫 무대를 장식한 류정한의 힘이 컸다. 지킬의 서정미 넘치는 음색과 광기어린 하이드의 폭발력이 돋보이는 성량과 무대 장악력으로 라이브 오케스트라 연주를 고집하던 원제작자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그리고 지난 7년간 그를 둘러싼 음악적인 편견과 연기력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켜주기에도 충분했다.

 

“너무 긴장해서 첫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제가 첫 공연의 스타트를 열심히 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2004년 <지킬 앤 하이드>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매력과 승우, 그리고 저의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파격 캐스팅된 공연에 그칠 수도 있었겠죠. <지킬 앤 하이드>가 아니었다면 승우의 폭발적인 연기력이 돋보이기 힘들었을 것이고, 승우 덕분에 저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승우와 함께 공연하면서 류정한은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배우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리고 동료로서, 관객으로서 제대 후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다.


류정한은 그해에 관람한 <아이 러브 유>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남경주의 연기를 보며 무대 위에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은 배우가 얼마나 멋진지 깨달았고, 더블 캐스트 없이 600회 이상을 무대에 서는 모습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배우로서 자기 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했을지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잖아요. 언젠가 저도 한 번쯤은 혼자 힘으로 작품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배우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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