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정체성을 재단당하는 십 대 고교생 피터와 제이슨. 올겨울,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청춘으로 무대에 설 <베어 더 뮤지컬>의 여섯 배우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애틋한 브로맨스는 무엇인가요?윤소호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두 남자의 마지막 여정을 담은 영화예요. 각각 뇌종양과 골수암을 앓고 있는 주인공 마틴과 루디가 우연히 같은 병실에 머물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둘은 시한부 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닮은 점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죠. 그런 다른 두 사람이 살면서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를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벌어져요.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과 함께요. 특히 해변 엔딩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죠. 1998년에 개봉한 꽤 오래된 영화이지만 다시 봐도 여전히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수작이랍니다. 평범한 일상의 틀을 깨버리고 싶은 분들은 꼭 한번 보세요. 추천합니다!강찬 <브로크백 마운틴>작품을 준비할 때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를 찾아보곤 하는데, 그 과정이 숙제처럼 느껴지다가도 좋은 영화를 만날 때면 기분이 정말 좋아져요. 최근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영화가 그랬어요. 동성애는 지금도 여전히 파격적인 소재로 여겨지는데, 영화가 개봉한 2006년에는 더 따가운 시선이 존재했겠죠? 하지만 감독은 ‘동성애’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두 사람의 관계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내요. 두 주인공 제이크 질렌할과 히스 레저의 명품 연기 또한 짙은 여운을 남기죠. 사실 이전에도 몇 번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 때문에 다 보질 못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끝까지 보고 나니 덤덤한 감성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정휘 <형> 최근에 <형>이라는 우리나라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전도유망한 유도 국가 대표였다 불의의 사고로 실명하게 된 동생과 사기 전과 10범으로 감옥에 들어간 집 나간 형이 주인공인 영화죠. 두 사람은 형이 가출한 후 십 년 넘게 왕래가 없었는데, 형이 동생 보호를 빌미로 가석방 허가를 받으면서 형제의 동거가 시작돼요. 당연히 둘은 처음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죠. 형이 앞이 안 보이는 동생이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비치는 가족애를 보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쏟았답니다. 저희 작품처럼 동성 연인의 사랑을 그리는 건 아니지만, 두 형제의 진한 형제애가 정말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고상호 <신세계>제가 인상 깊게 본 ‘남남 케미’ 작품은 영화 <신세계>에요. 이야기 자체도 재밌었지만, 영화 내내 ‘꽁냥’대던 주인공 이자성과 정청의 케미가 정말 좋았거든요. 특히 첫 만남에서 짝퉁 선물 때문에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나, 자성의 비밀을 알게 된 정청이 엄청난 배신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후반부에 부상으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정청이 자성한테 옆으로 오라고 손으로 침대를 톡톡 치는 장면은, 크! 개인적으로 정청 같은 캐릭터를 정말 연기해 보고 싶더라고요. ‘브라더, 브라~더’ 하며 자성을 쫓아다니던 정청의 그 능글맞은 모습이란! 아직 <신세계>를 안 보신 분이라면, 이자성과 정청의 케미에 집중해 영화를 보셔도 재밌을 거예요!임준혁 <브레이킹 배드>‘브로맨스’ 하면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생각나지만, 딱 한 편을 골라야 한다면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본 미드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어요.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고등학교 화학 교사가 가족의 앞날을 위해 제자와 함께 마약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죠. 어떻게 보면 좀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지만, 두 주인공의 희로애락 인생사에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명작이에요. 인생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여정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거든요. 더 자세한 얘기를 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작품 얘기는 여기까지! (웃음) 심한 중독 증세를 불러오는 드라마니까 꼭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보시길 추천합니다!노윤 <로스트 인 더스트>얼마 전, 평소 제가 좋아하는 지인분에게 추천받아 본 영화가 있어요. 원제는 ‘Hell or High Water’. 우리나라에는 <로스트 인 더스트>란 제목으로 소개됐는데, 남남 로맨스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형제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이 영화가 생각났어요. 동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형과 그와 반대로 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동생, 그리고 두 사람을 쫓는 형사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범죄물이죠. 빚더미에 오른 형제가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의 소유권마저 은행에 차압당할 위기에 처하자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거든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씁쓸한 현실에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부담 없이 재미있게 보면서 생각할 거리를 안게 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한국적인 정체성을 지닌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선택은 <칠서>다. 이번 작품은 광해군 당시 일어난 계축옥사, 즉 ‘일곱 서자의 난’을 모티프로 창작됐다. 작품과 사건에 만연한 조선 시대 서얼의 서러움을 알아봤다. “소인이 대감의 정기를 타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사오니 이만한 즐거움이 없사오되, 평생 서러워하기는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하여 상하 노복이 다 천히 보고, 친척과 고구(故舊)도 손으로 가리켜 아무의 천생(賤生)이라 이르오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으오리까?” - 허균, 『홍길동전』 중차별이 쏘아 올린 공광해군 6년 1613년 5월에 일어난 계축옥사, ‘칠서의 옥’ 혹은 ‘일곱 서자의 난’은 일곱 명의 서자 출신이 역모를 꾀했다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서얼들이 조선왕조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최초의 움직임으로 그 의미가 깊다.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의 후유증 속에서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갈망이 고조됐던 시기였다. 사건에 가담한 일곱 명의 서자는 서양갑, 심우영, 박응서, 이경준, 박치의, 박치인, 김경손이다. 이들 모두 아버지가 고위 관직을 지닌 명문가였지만 불행하게도 서자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숱한 차별을 당했다. 자신들을 죽림칠현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사람들은 이들을 향해 강변칠우로 말하기도 했다.계축옥사의 시작은 문경 새재에서 발생한 살인강도 사건이었다. 서울과 부산의 왜관을 왕래하면서 장사하던 상인을 노린 이 사건은 범인이 상인을 죽이고 은화 수백 냥을 훔쳐 달아났다. 단순한 화적떼가 벌인 강도질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을 피살된 상인의 노비가 단서를 쫓고 범인을 미행하여 근거지를 알아내, 포도청에 고발함으로써 실체가 발각되고 만다. 범인들은 ‘칠서’라 불리던 서자 일곱 명이었다. 이들은 1613년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서 윤리가 필요 없는 집이라는 뜻의 무륜당을 지었다. 이곳을 근거지로 소금장수, 나무꾼 등으로 행세하며 전국에서 화적질을 일삼았다. 칠서는 강도질로 빼앗은 은을 가지고 무사들을 끌어모아 대궐을 공격하는 역모를 구상하고 있었다. 당시 조사로 밝혀진 바는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과 모의해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추대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역모의 원인은 서자라는 굴레 때문에 벼슬길이 막힌 것에 대한 원한이었다. 이들은 광해군 등극 초에 서얼의 차별을 없애달라는 상소를 올린 바 있는데 이를 거부당하자 불만을 품었다. 이어 칠서들은 신분제라는 족쇄 때문에 사회 진출에 제한을 받았던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다. 광해군과 조정은 칠서와 연관된 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인연이 닿은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고 죽어 나가는 경우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밝혀진 칠서의 한은 엄청났다. 당시 열네 살이던 심우영의 아들은 “아비가 늘 ‘이 나라에서는 쉬운 일이 없으니 네가 크면 누르하치를 불러와라’라고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만주족 군대를 데리고 와서라도 서얼 차별의 원한을 갚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계축옥사를 계기로 광해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김제남이 사사됐다. 또 영창대군은 이듬해인 1614년 2월 피살되고 만다. 광해군은 훗날 이 일의 영향으로 왕위에서 밀려난다. 뿌리 깊은 차별서얼은 양반의 자손 가운데 첩에게서 태어난 자손을 말한다. 아버지의 신분에 따라 형식적으로 양반의 신분을 따랐으나 사실상 중인으로 취급하여 사회적으로 심한 차별을 받았다. 특히나 조선 초 서얼 차별은 가혹했다. 서얼들은 문과와 무과는 물론 생원과 진시조차 응시하는 것이 제한됐을 정도였다. 부친이 적자 형제를 남기지 않고 죽었을 때도 서자들은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해 제사와 상속에서 부친의 조카들에게도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서자의 법정 상속분은 7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서자들의 억울함과 원한은 깊어졌다. 서얼들을 금고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쉽게 변하지 못했다. 임진왜란 등을 계기로 서자들이 무관직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문관직에서의 차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서얼은 고위 관료나 양반 사회로의 진출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승문원의 이문학관이나 규장각의 검서관 등 비교적 낮은 지위는 서얼이 독점했고, 이들은 사대문서나 『일성록』 등을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이 됐다. 벼슬계에 진출을 하지 못한 대신, 학문적인 방면에 큰 업적을 남긴 것도 특징이다. 어숙권의 『고사촬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한치윤의 『해동역사』 등이 대표적이다.서얼의 이야기‘일곱 서자의 난’에서 모티프를 얻어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1612년 허균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홍길동전』이다. 연산군 당시 실존했던 의적 홍길동을 소재로, 비범한 재주와 능력을 지닌 홍길동을 통해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던 적서 차별의 문제점, 지배층의 무능을 비판해 사람들에게 뜨거운 통쾌함을 전했다. 조선 세종 때 좌의정 홍상직과 시비 사이에서 서얼로 태어난 홍길동은 홍 대감의 또 다른 첩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할 위기를 겪고 도적의 소굴로 가 우두머리가 된다. 이후 홍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이라고 지어, 탐관오리, 패악하고 타락한 승려를 처단한다. 나라에서는 홍길동을 잡을 수 없자 아버지인 홍 대감을 회유하여 홍길동을 병조판서에 앉히겠다고 한다. 임금 앞에 나타난 홍길동은 벼슬자리를 사양하고 나라를 떠날 것을 알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홍길동은 양반 출신인 아버지와 형은 조선에 남겨두고, 노비인 어머니와 무리를 이끌고 율도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운다. 『홍길동전』은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됐는데, 특히 최근 방송한 드라마 <역적>은 또 다른 홍길동의 모습을 보여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이 작품의 모티프가 된 입양아 친구가 두 명 있었어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작품과 캐릭터 속에 녹여냈죠. 작가로서 입양아란 소재를 선택한 것은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어요. 관객들이 그 에너지를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한 작곡가와 협업이 잘 이루어져 대본과 음악을 굉장히 밀착시키며 작품을 만들어 나갔어요. 피아노 앞에 함께 앉아 서로 가사와 음악을 쓰며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도 했죠. 대단한 철학을 담은 작품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걸어온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가이드를 잘 해주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전수양(작가)소재 자체가 자칫 어두울 수 있는 내용이거든요. 실제로 극적으로도 업 앤 다운이 많아요. 그래서 극의 분위기가 아래로 내려갈 때는 음악으로 그것을 끌어올려 주고, 극의 분위기가 위로 올라갈 때는 음악으로 무게를 잡아주면서, 극과 교차할 수 있도록 음악을 만들기도 했죠. 또 저희 작품의 자부심은 작가와 작곡가가 마치 한 명인 것처럼 극을 만들어 나갔다는 거예요. 음악이 먼저냐, 가사가 먼저냐, 이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나갔다는 것. 그 묘미를 함께 느껴주신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 장희선(작곡가)Airport Baby 작품에서 제일 처음 쓴 곡이에요. 당시 한예종 졸업 작품과 충무아트홀 블랙앤블루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세 곡의 데모를 만들어야 했어요. 그때 만든 것이 ‘에어포트 베이비’, ‘이태원’, ‘No Heaven For Me’로, 극의 중심이 되는 곡들이었죠. 조쉬는 미국에서 자랐으니까 컨트리 음악을 즐겨 들을 것 같더라고요. 솔직하고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컨트리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작가가 가사에 조쉬의 전사가 보이게끔 이야기를 쭉 흘려주었거든요. 그래서 가사를 받는 순간 한 번에 작곡을 했어요. 조쉬는 기대와 희망을 안고 한국에 왔잖아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전진의 느낌. 그것을 이 곡에 쫙 펼쳐냈죠. (장희선) 이태원딜리아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태원 ‘딜리댈리’ 식구들은 브로드웨이 쇼툰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브로드웨이 쇼툰이거든요. 그래서 딜리아가 처음 등장할 때 홍키통크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었어요. 딜리아는 오랫동안 미군 주변에서 쇼를 하며 엔터테이너로서의 삶을 살았어요. 그 시절 윤복희, 김시스터즈 같은 엔터테이너의 모습이 있는 거죠. 때문에 옛날 1960년대 노래 느낌을 담은 거예요. 딜리아의 캐릭터와 음악이 재밌게 잘 어우러지도록 말이죠. (장희선)워짜쓰까잉조쉬의 외삼촌이 부르는 이 곡은 블루스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 작곡가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또 이 노래를 위해 특별히 전라도 말을 잘 구사하는 전라도 말 투르그를 섭외했죠. (웃음) 친구 아버지가 전라도 토박이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표준말로 가사를 쓰면 그 친구가 아버지께 여쭤봐서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주었어요. 그러면 작곡가는 완성된 가사를 아는 전라도분께 읽어달라고 해서 그걸 녹음 했어요. 녹음된 사투리 음의 높낮이에 맞춰 작곡이 이뤄지기도 했죠. 실제로 전라도 말을 들으며 음악을 만들다보니 판소리 느낌이 녹아들기도 하더라고요. (전수양)No Heaven For Me 이 곡의 가사는 작품의 모티프가 된 입양아 친구의 실제 이야기에서 비롯된 거예요. 친구가 자신을 낳아주신 친엄마를 만나게 되었는데, 엄마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 곳이 김밥천국이었다는 거예요. 친구는 친엄마가 집에서 따뜻한 밥 한 공기를 해줄 줄 알았지만, 김밥만 실컷 먹고 왔다며 재밌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너무 웃긴데 또 너무 슬프더라고요. 덕분에 ‘김밥도 천국이 있고 떡볶이도 천국이 있는데 날 위한 천국은 없네’라는 가사를 쓰게 되었죠. 그런데 막상 이렇게 구성을 맞추다 보니 2절을 만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제 뭐가 있고, 뭐가 없다는 내용의 가사를 써야 할까? 순대, 오뎅 등등 온갖 단어들을 떠올리며(웃음) 3개월 넘게 고민했죠. 그러다 문득 ‘엄마’로 내용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미국에도 엄마가 있고 한국에도 엄마가 있는데 날 위한 엄마는 없네’란 가사를 쓰게 되었답니다. (전수양)이제 와 돌아보니 ‘No Heaven For Me’의 다음 장면은, 늘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 같은 기분이었어요.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는 공연이기 때문에 바닥까지 내려간 슬픔을 다시 끌어올려야 했거든요. 지난 공연에서는 ‘이태원 공작새’란 노래를 쇼처럼 풀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곡을 더해야겠더라고요. 작곡가가 여러 곡을 쓰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박칼린 연출님이 딜리아가 이태원에서 금요일 밤에 하는 일이 드래그 퀸 쇼가 아니겠느냐고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이제 와 돌아보니’란 곡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또 한 가지 고민이 생겼어요. 드래그 퀸 쇼라는 설정상 이 곡이 가요로 등장하고, 배우가 립싱크로 불러야만 했거든요. 이 곡을 실제로 불러줄 가수를 섭외하는데 난항을 겪었는데, 연출님의 도움으로 인순이 선생님이 흔쾌히 녹음에 참여해 주셨어요. 가사와 음악이 좋아서 음반에도 싣고 싶다는 말도 해주셨죠. 녹음할 시간이 여의치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김형석 작곡가가 피아노 반주를 해주고, 최고의 엔지니어와 조율사도 함께 해주었어요.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이랄까요. 전화위복을 몸소 경험한 장면이었죠. (전수양) It's Okay이 곡은 신데렐라가 집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열한 시에 부르는 ‘일레븐어클락송’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마지막 곡 ‘Airport Baby’는 떠나가는 노래니까 그 전에 조쉬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곡이 필요했거든요. 이 노래는 기도할 때 똑같은 말을 반복하듯이 찬팅 느낌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모두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츠 오케이, 이츠 오케이’라고 노래하는 거예요.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인물들을 보듬어주면서, 희망적으로 극을 닫는 역할을 하려고 했죠. 화음 없이 모두가 똑같은 음으로 부르는 부분이 참 따뜻하고 좋아요. (장희선)*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무대 위 아역의 활약상이 커지면서 이들의 육체적·정신적 안전을 보장하는 보호 방침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아역 배우가 주연을 맡는 대표적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중심으로 아역 배우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아역의 보호자, 샤프롱‘샤프롱’의 존재는 아역 보호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샤프롱’은 과거 젊은 여성이 사교장에 나갈 때 따라가서 보살펴주던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현재 공연계에서는 아역 배우를 전담 관리하는 스태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아직 낯선 단어지만, <킹키부츠>, <원스>, <모차르트!>, <레 미제라블>, <서편제> 등 국내에서 공연한 많은 뮤지컬이 샤프롱을 배치해 왔다. 초기에는 ‘보모’로 부르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해외 공연계의 용어를 받아들여 ‘샤프롱’이라는 명칭이 정착되어 가는 추세다. 샤프롱은 보통 공연 연습이 시작됨과 동시에 투입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림자처럼 아역과 함께한다. 아역 배우의 부모는 원칙적으로 연습실과 분장실, 백스테이지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역을 보호하는 것은 오롯이 샤프롱의 몫이다. 부모는 콜타임에 맞춰 아역을 샤프롱에게 인계하며, 연습 및 공연이 끝나면 다시 샤프롱이 부모에게 아역을 인계한다. 연습과 공연 기간에 샤프롱은 그야말로 아역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 스케줄을 관리하고, 컨디션을 체크하고, 식사를 챙기는 건 물론, 배운 내용을 숙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 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인숙 샤프롱 팀장은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장면을 연습할지 미리 알려주고, 함께 대본을 맞추며 대사를 외워왔는지 확인한다. 또 지난 연습에서 받은 노트를 정확히 필기했는지 확인하고 빠트린 부분은 다시 상기시켜 준다”고 연습실에서의 업무를 설명했다. 샤프롱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백스테이지에 머물며 아역들에게 등퇴장 순서와 위치, 동선을 알려준다. 장면에 따라 필요한 의상과 소품도 꼼꼼히 챙긴다. 이 밖에도 샤프롱은 각종 공식 행사와 인터뷰 현장 등 아역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동행한다. 아역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상담자의 역할을 하는 것, 아역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 또한 모두 샤프롱의 일이다.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 인기 아역 주연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샤프롱으로 일하기 위해 지역 행정당국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2개의 추천서를 제출하고, 아동 학대 전력 조사에 통과하고, 안전 관리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이 샤프롱으로 일할 수 있다. 또한 3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 명의 샤프롱이 관리하는 아역 수가 12명을 넘어서도 안 된다. 현재 영국에서는 13세 이하 아역이 미리 지정된 법적 보호자인 샤프롱이나 부모 외의 다른 사람과 단둘이 있는 일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샤프롱의 자격 조건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개 제작사 측에서 기존에 함께 작업하며 신뢰를 쌓아온 스태프에게 샤프롱 일을 맡기는 편이다. 무대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한 만큼 공연 관련 경력이 가장 중요한 채용 조건으로 꼽힌다. <원스>에서는 현직 뮤지컬 배우가, <킹키부츠>에서는 의상 팀 스태프가 샤프롱 역할을 맡았다. <빌리 엘리어트>는 30여 명의 아역을 돌보기 위해 무려 6명의 샤프롱을 두고 있다. 모두 샤프롱 일을 맡는 건 처음이지만, 각자 의상 팀, 조연출, 티켓매니저 등으로 최소 1년 이상 공연계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배인숙 샤프롱 팀장은 소품 팀 경력은 물론 2개의 교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정소애 기획실장은 “샤프롱은 그동안 함께 일하며 알아온 상대의 인성을 고려해 채용한다. 유아 교육을 전공하거나 교사 자격증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필수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내에 샤프롱이라는 직업이 낯선 만큼 신시컴퍼니는 사전에 <빌리 엘리어트>의 아역 배우와 부모, 성인 배우, 스태프에게 샤프롱의 역할을 충분히 주지시키기 위해 애썼다. 정소애 기획실장은 “아이들이 샤프롱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특히 아이들이 샤프롱을 하인처럼 여기는 일이 없도록 꼭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하고, 자기 짐은 자기 손으로 옮기라고 가르친다. 성인 배우와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먼저 샤프롱의 권위를 존중해야 아이들도 본받는다”라며 사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아역 보호를 위한 규정아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샤프롱을 두는 것 외에도 다양한 사고 예방책이 필요하다. 아역이 타이틀롤을 맡고 무대에서 고난도 안무를 소화하는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제시하는 아동 보호 지침이 따로 있을 정도다. 가장 기본이 되는 지침은 물론 해당 국가의 법규를 준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3세 이하의 연소자가 7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연령대별로 최대 리허설 및 공연 시간, 최소 휴식 시간까지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세세한 휴식 시간까지 따지는 법규는 없다. 보통 1~2시간 연습한 뒤 15~30분 휴식을 갖는데, 이 또한 연습 진행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또 국내법상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원칙적으로 밤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야간 노동이 금지된다. 하지만 평일 공연이 8시에 시작해 11시경에 끝나기 때문에 제작사는 이에 대해 아역 배우의 부모에게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한다.어린아이가 보기에 적합지 않은 장면에 대한 지침도 나와 있다. <빌리 엘리어트>에는 욕설과 성적인 뉘앙스의 농담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은 9세 이하의 어린아이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해당 장면이 극장에서 공연될 때는 9세 이하 아역이 사용하는 대기실의 스피커 볼륨을 완전히 꺼야 한다. 현재 국내 프로덕션에도 스몰보이 역할로 9세 이하의 아역이 참여하고 있어 이러한 규정을 준수할 예정이다. 욕설, 성적인 발언, 신체 노출, 마약, 흡연, 음주 등의 행위는 설혹 대본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일지라도 공연 또는 계획된 리허설에서만 허용된다. 분장실과 백스테이지를 비롯한 그 밖의 사적인 자리에서는 금지다. 아역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멀티 캐스트와 스탠바이를 두는 것은 <빌리 엘리어트>뿐 아니라 많은 아역 출연 뮤지컬에서 지키고 있는 사항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주 8회 공연에서 한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고려해 주인공 빌리 역에 4명의 배우를 캐스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여기에 1명을 추가해 총 5명의 빌리를 선발했다. 만약 공연 도중 아역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든지 공연을 중단하거나 배우를 교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환불 요청은 받지 않는다는 점이 티켓 예매처의 공연 안내 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다. 공연 기간에는 매일 3명의 빌리가 공연장으로 출근한다. 한 배우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동안, 다른 한 배우는 혹시 모를 사고와 배우 교체 상황에 대비해 무대 뒤에서 대기한다. 나머지 한 배우는 전날 공연에 출연했던 배우로, 자신이 보완해야 할 점을 노트하면서 다음 공연을 준비한다.아역에게도 프로 배우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다른 아역을 따돌리거나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이러한 행위가 발각될 경우 퇴출까지 당할 수 있다. 신시컴퍼니는 이 밖에도 아역 배우 간의 과열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내부적인 지침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인터뷰에는 가능한 빌리 역의 다섯 배우를 다 함께 참여시키고, 팬에게 받은 선물은 연습실이나 공연장에 가져오지 못하게 해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가 없도록 한다. 또 아역 배우의 부모에게도 다른 배우나 스태프에게 음료수 하나 건네지 말 것을 사전에 당부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영광의 시간  <사의 찬미> 관객을 설득하기보단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김우진을 보여주자. 이게 김우진을 오랜만에 다시 연기하게 된 제 각오였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김우진이라는 역할이 전과 다르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이번 시즌에선 그가 말하는 ‘라이프 포스’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봤어요. 그의 모든 선택의 밑바닥에는 생명력에 대한 끝없는 고찰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연기의 디테일 면에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결 고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시간이 변하는 시점에 계속 시간을 확인한다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듯 자꾸 넥타이를 푼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공연에 대한 만족도는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한 회, 한 회가 아쉽기만 해요. 그래도 함께한 동료 배우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어서 늘 즐거웠습니다. 하하. 언젠가 다시 김우진으로 무대에 서게 된다면 무척이나 행복하겠죠.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고 싶어요. 이 자리를 빌려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면…. 윤심덕에게 미안하다는 말보단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사랑했다”가 아니라 “사랑한다”라고요. 유부남 주제에 이런 헛소리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녀를 이용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변하지 않은 건 그녀를 향한 제 사랑뿐이니까. 사내에겐, 글쎄요. 별로 할 말이 없어요. 왜냐면 그는 마치 나 김우진의 또 다른 자아 같기 때문이죠. 끝으로 당대 최고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의 주인공이자 우리나라 문학에 영향을 끼친 김우진 선생님, 당신을 연기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영광이었고 행복했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유서를 잊지 않고 무대에 오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마법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지난 1997년 세상에 나타난 마법사 ‘해리 포터’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자. 지난해 여름 탄생한 해리 포터의 최신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가 퍼뜨린 신드롬에 대해 말하기에도 지면이 부족하니 말이다. 현재 런던의 팰리스 시어터에서 상연 중인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해리 포터 이야기를 무대화한 첫 번째 작품. 이 같은 중대 미션을 위해 뭉친 원작자 J.K. 롤링과 연출가 존 티파니, 극작가 잭 손이 만들어낸 ‘해리 포터 그 19년 후의 이야기’는 개막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티켓을 구하기 힘들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금은 평범해진 마법사들의 이야기‘해리 포터’의 성장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구세대, 그리고 이제 막 그와의 모험을 마친 신세대라면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어떻게 끝을 맺는지 기억할 것이다. “지난 19년 동안 그 흉터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사했다.” 작가 J.K. 롤링은 에필로그에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를 물리친 위대한 마법 소년 해리가 그 이후 어떻게 평범한 삶에 안착하는지 조그만 힌트를 주는 것으로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데,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바로 그 19년이 흐른 시점에서 출발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로 향하는 출발지인 킹스크로스 기차역. 입학을 앞둔 한 남자아이가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로 힘차게 달려가는데, 열차 탑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해리의 둘째 아들 알버스다. 세상을 구한 영웅 해리 포터가 이젠 세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는 서른일곱 살의 ‘어른’이 된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는 서툰 아빠와 커다란 아버지의 존재가 버겁기만 한 어린 아들.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의 사건은 바로 이 갈등에서 비롯된다. 유명한 마법사의 실망스러운 아들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알버스가 아빠 해리의 과거 실수를 바로잡아 자기 능력을 증명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니 말이다. 알버스는 또 다른 외로운 소년 스코피어스와 함께 불법 시간 여행 장치를 훔쳐 모험을 떠나는데, 이는 예기치 못한 나비효과를 불러와 볼드모트가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가 다시 도래하게 한다. 결론은 물론 해피엔딩. 해리가 부인 지니와 그의 오랜 친구들 헤르미온느와 론, 그리고 드레이코와 함께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나서면서 결국엔 모든 것이 원래의 자기 자리를 찾는 것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1부와 2부로 구성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총 다섯 시간이 넘는 대작이지만 긴 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매끄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하나 불만스러운 게 있다면, 바로 해리가 우리가 아는 것과 조금 달라졌다는 점이다. 가령, 오래전 해리와 얽혀 볼드모트에게 죽음을 당한 소년 케드릭의 아빠 에이머스가 마법부에서 일하는 해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그를 찾아오는 초반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두 달 넘게 해리와 접촉을 시도해 온 에이머스가 기다림에 지쳐 해리를 직접 찾아가자 그는 곤란하다는 듯 냉랭하게 구는데, 그 순간 내가 알던 해리 포터가 맞나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또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 알버스를 대화가 아닌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어른이 됐다는 점도 실망스럽다. 학교 규칙을 어겨가면서 위험한 모험을 펼쳤던 해리가 커서는 마법을 이용해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하다니. 세상에서 가장 선한 마법사 해리가 돌처럼 차가운 사람이 됐다는 사실은, 해리 포터 팬들의 마음을 그야말로 차갑게 만드는 설정 아닐까. 해리 인생의 최대 앙숙이었던 드레이코와 믿을 수 없이 다정하게 협력하는 것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해리 포터 시리즈 마지막에 드레이코가 아무리 개과천선을 했다 해도).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알버스의 모험에 기꺼이 동행해 주는 유일한 친구 스코피어스가 드레이코의 ‘착한’ 아들이라는 것, 그리고 둘을 위험에 빠뜨리는 악당 델피가 알고 보니 볼드모트의 숨겨진 딸이라는 다소 약한 상상력이다. 마법의 순간을 자아내는 연출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가 해리 포터 시리즈에 열광한 이유는 뭘까. J.K. 롤링이 만들어낸 상상력 풍부한 마법 세계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아이가 용감히 세상에 맞서는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 아닐까. 끊임없는 혼란 속에서 발버둥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마법사 해리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에도 소년 성장담이 존재한다. 해리 포터의 아들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의 아들이어야 하는 알버스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인생의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이에 맞서야 한다는 삶의 비밀을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J.K. 롤링이 그려낸 세상이 가슴 설레는 동심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면, 세 창작자가 만든 세상은 세상살이에 얼마간 지쳐버린 어른의 상상력으로 쓴 마법 세계 같았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충분히 흥미로운 공연이다. 이 작품이 지닌 진짜 마법은 이야기를 무대에 옮긴 연극 어법에 있으니 말이다. 1부와 2부, 두 편을 좋은 자리에서 볼 경우 상당한 비용(가장 비싼 티켓의 정가가 한화로 약 38만 원이다)을 지불해야 하는 공연인 만큼 객석에서 첨단 영상 기술을 맛볼 수 있는데, 사실 그보다 더 짜릿한 경험은 간단한 트릭을 활용해 마법을 펼치는 연출을 마주하는 것이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이 망토 의상을 활용해 순식간에 마법 학교 학생들이 되어 있을 때, 알버스와 스코피어스가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여행 가방 몇 개로 달리는 마법 기차를 만들어낼 때, 알버스와 스코피어스, 델피가 시간 여행 장치를 훔치기 위해 마법약 폴리주스를 마시고 각각 론과 해리, 헤르미온느로 변할 때, 그리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어둠의 존재 디멘터가 객석 위를 날아다닐 때의 짜릿함이란. 심플한 세트를 효과적으로 빛내는 배우들의 적절한 움직임, 그리고 이를 탄탄히 뒷받침해 주는 훌륭한 음향과 조명은 마법 세계에 어울리는 연극적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낸다(연출가 존 티파니를 필두로 안무가 스티븐 호겟, 무대디자이너 크리스틴 존스, 조명디자이너 닐 오스틴, 음향디자이너 개리스 프라이 모두 전작인 연극 <렛 미 인>에서 이미 좋은 시너지를 보여준 바 있는 한 팀이라는 사실). 하지만 존 티파니 사단이 만들어낸 마법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이 훌륭한 팀의 매력적인 마법을 경험한 관객 모두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날의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도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오직 공연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공연 문법이 존재하는 한 나날이 진화하는 기술 발전 아래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상 매체의 폭격이 쏟아진다고 해도 결코 공연의 감동을 대신할 순 없을 것이라는 것. 바로 그게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비싼 값을 치르고 시간을 들여 극장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0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존 도일이 선보이는 현대적인 셰익스피어As You Like It<뜻대로 하세요>존 도일이 이끄는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는 뉴욕의 다운타운 유니언 스퀘어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올해 50년을 맞은 작은 극장이다. 1967년, 어퍼웨스트에 있는 1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출발해 1970년대에 마차 차고로 사용되던 곳을 블랙박스 시어터로 개조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좌석 배치에 따라 150~200명의 관객이 수용 가능한 소규모 극장이다.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는 예술감독의 지휘하에 시즌제로 운영되는데, 지난 2016년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존 도일은 우리나라 뮤지컬 팬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인물이다. 2006년 브로드웨이에 오른 <스위니 토드> 리바이벌 버전의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았으니 말이다. 당시 존 도일은 빈 무대에서 배우들이 직접 악기 연주를 하게 했는데,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다. 그 외에도 손드하임의 <컴퍼니>나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끈 <컬러 퍼플> 등 음악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연출가다. 존 도일은 2003년부터 12시즌 동안 극장을 이끌어온 브라이언 쿨릭(한 시즌에 적어도 한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잘 알려진 스타 배우를 캐스팅해 극장의 입지를 굳혀온 인물이다)의 뒤를 이어 예술감독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브라이언 쿨릭 재임 기간에 손드하임의 <패션> 같은 큰 규모의 작품을 작은 무대에 맞게 변형해 올리기도 하고 2013년부터는 부예술감독 직을 맡아 극장과 관계를 지속해 왔다. 지난 2016년 여름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후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원작으로 한 무대나 손드하임의 <태평양 서곡>, <갓스펠> 등의 연출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지난 9월, 새롭게 무대에 올린 작품은 우리에게 <위키드>의 작곡가로 친숙한 스티븐 슈왈츠가 음악을 맡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이다.     셰익스피어의 현대적(?) 재현‘고전의 현대적 적용’. 고전을 새롭게 각색해 현대의 관객들에게 선보인다는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의 운영 방침을 생각해 봤을 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더없이 적절한 재료임이 분명하다.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부유한 지역 새그하버의 지역 극장과 협업해 <뜻대로 하세요>를 만들었는데, 뉴욕 입성 전에 새그하버 극장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총 5막 4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로잘린드와 올란도의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로잘린드의 아빠는 동생에게 권력을 뺏긴 후 숲으로 쫓겨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로잘린드 역시 궁정에서 쫓겨나 남장을 하고 아빠가 있는 숲으로 간다. 그리고 친형에게 쫓겨나 숲으로 도망친 올란도가 로잘린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외에 로잘린드의 사촌인 셀리아나 로잘린드와 함께 궁을 나온 광대 터치스톤, 올란도의 형 올리버, 남자 목동 실비우스와 여자 목동 피비 등 로잘린드와 올란도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뜻대로 하세요>는 열 편이 넘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극(어떤 작품들은 별 다른 논란 없이 희극으로 분류되지만, 어떤 작품들은 희극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분분한 의견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 몇 편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든 면이 있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웃기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희극인 <십이야>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잘 알려지고 자주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다. 아마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인 ‘All the world’s a stage(세상은 연극 무대다)’가 나온다는 점이 주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셰익스피어 희곡에 자주 쓰이는 설정(남장 여자를 남자로 오인해 발생되는 혼란)이 나오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유머러스한 상황이 연출되는 요소가 많다는 점도 자주 공연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 프로덕션은 바로 이런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전막 공연에 3시간은 족히 걸리는 작품을 현대 관객들에게 맞춰 100분으로 줄인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즐거움’을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현대의 숲속에서 길을 잃다<뜻대로 하세요>는 블랙박스 시어터 구조를 활용해 극장 삼면에 관객 의자를 배치했다.  무대에는 커다란 궤 한 짝과 피아노 한 대, 몇 개의 의자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무대 뒤쪽은 마치 런던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17세기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공연하던 극장을 재현한 야외극장)처럼 2층 공간에 무명천 커튼을 달아놓아 가려져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숲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존 도일이 이러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다. 2층 구조의 세트와 별 다른 장식이 없는 빈 무대, 벽돌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벽을 활용한다는 점 또한 글로브 극장을 떠오르게 한다. 객석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끄는 것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공간 위로 각각 다른 길이로 매달려 있는 도토리 모양의 LED 조명등이다. 녹색 빛의 조명등은 무대 곳곳에 존재하는 나무 패널과 함께 ‘숲’이라는 공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데, 상황에 따라 형형색색의 사탕 같은 빛을 띠며 사랑이 꽃피는 마법의 숲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엇보다 LED 조명은 전체적으로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의상 역시 시대를 고증하는 대신 전반적으로 작품이 지닌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시대적 배경과 상관없이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러한 선택을 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통일성이 부족해 때론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올란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농장 일꾼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있는데, 귀족 집안의 자제로 나오는 장면에서도 같은 의상을 입고 있어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오히려 혼란을 야기한다. 차라리 특정한 한 가지 스타일을 지향하지 않고 좀 더 중립적인 느낌의 의상을 입고 소품으로 각 캐릭터의 성격과 극 중 상황 특징을 잡아냈더라면 시각적으로 훨씬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가 <뜻대로 하세요>를 현대화하기 위해 택한 또 하나의 방법은 앞서 잠깐 얘기한 것처럼, 원작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3시간짜리 원작을 100분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 원작의 원어가 지닌 매력이 많이 잘려 나간 것은 못내 아쉬웠다. 또한 극 중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 한 명을 무대로 불러내는 등 요즘 공연의 트렌드인 관객 참여적인 연출을 시도한 점 역시 아쉽다. 물론 흥미 유발을 위한 설정인 만큼 관객들의 현장 반응은 긍정적이지만,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동떨어져 얕은수로 보이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연결 고리를 위해 대의를 희생한 것은 아닌지, 고전의 현대화라는 명목 아래 작품의 내실을 잃은 건 아닌가 하는 의문만을 남긴다. 빛을 발하는 스티븐 슈왈츠의 음악<뜻대로 하세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스티븐 슈왈츠가 작곡한 음악이다. 존 도일은 이전에 선보인 액터 뮤지션 뮤지컬 작품들처럼 이번에도 배우들에게 피아노, 더블 베이스, 바이올린 등 몇몇 개의 악기 연주를 맡기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지닌 내재적인 음율과 스티븐 슈왈츠가 만들어낸 다양한 장르의 선율을 만나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스티븐 슈왈츠의 음악은 작품의 분위기를 살릴 뿐 아니라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특히 숲으로 쫓겨난 공작이 우연히 마주친 올란도를 보고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부르는 발라드풍의 노래가 인상적이다. 원작에서는 공작이 아닌 음악을 담당하는 그의 시종이 노래를 부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공작이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는데 현대화에 어울리는 설정이라 그런지 무척 효과적이었다. 또 로잘린드의 광대인 터치스톤이 자신이 사랑하는 양치기 아가씨 오드리드와 함께 부르는 노래 역시 오드리드 역의 배우가 직접 우쿨렐레를 연주한다. 이러한 설정은 천진한 캐릭터의 성격과 알콩달콩하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극 중 상황에 잘 어울렸다. 복잡한 안무 없이 머리를 가볍게 움직이거나 다리를 살짝 흔드는 동작으로 두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을 살린 점도 좋았다. 음악이 들어간 장면에서 오히려 작품의 매력이 살아났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오히려 음악을 더 적극적으로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 퍼블릭 시어터의 사회사업의 일환인 퍼블릭 웍스(매년 여름 센트럴파크에서 무료로 열리는 페스티벌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에 지역 공동체 단체의 일원들이 만든 뮤지컬을 출품시키는 사업)가 같은 작품으로 뮤지컬 <뜻대로 하세요>를 만들어서 그와 반대로 음악의 사용을 최소화했는지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 언어의 음율을 살린 스티븐 슈왈츠의 음악을 더 듣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2017년 현재에 셰익스피어의 희극이 갖는 의미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가 고전 작품을 위주로 공연하는 극단이라고 해도 무수한 고전 작품 가운데 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아마 공연 자체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번 작품이 시대적 상황과 아예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품 곳곳에 2017년 현재의 상황을 담은 부분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모든 커플에 의도적으로 백인과 흑인을 캐스팅해 교차 인종 커플을 만든 점이나, 가장 유명한 대사를 원작과 다른 성별의 배우에게 맡긴 크로스젠더 캐스팅 등이 그렇다. 때문에 존 도일 예술감독 이전에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가 걸어온 길을 생각해 봤을 때 이 정도면 좋은 시작이 아닐까 싶다. <뜻대로 하세요> 다음 작품으로 미니멀한 공연을 선보여온 젊은 극단 피아스코의 <십이야>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도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는 좀 더 지켜보고 싶은 단체임이 분명하다.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을 지닌 연출가 존 도일이 예술감독으로서, 또 연출가로서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의 미래를 좀 더 고민해 보길 바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0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이상(理想)이 되어버린 이상(李箱)이 이상(異常)하다 그리오 <꾿빠이, 이상>실패의 기준서울예술단의 신작 <꾿빠이, 이상>의 공연 팸플릿이나 매체 인터뷰를 봤을 때 눈에 띈 단어는 실험보다 실패였다. 실패를 각오한 공연이라는 말이 공연 당사자에게서 그것도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공공연히 언급되다니. 그렇다면 이건 둘 중 하나다. 절대로 실패할 리 없다는 자신감의 반어법이거나 실패할 게 분명해도 가치를 포기할 순 없다는 결기의 표현이거나. 서울예술단이 방점을 찍은 지점은 물론 후자이다. 이번 작품에서 서울예술단의 선언은 놀랍다.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실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 예술 단체의 마땅한 책임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새로움이 아니라 예술이 요구하는 새로움을 지지하겠다는 거다. 예술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멋진 화답이다. 공공 예술 단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건 쉬운 결단이 아니다. 실험은 이상적이지만 실패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실험은 예술가가 무엇을 하는가를 기준 삼는 데 비해 실패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기준으로 본다. 그러니 실패를 각오한다는 것은 관객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이며 실험을 시도한다는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집중하겠다는 말이다. 관객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성공의 코드, 예를 들어 흥행이라는 관객의 숫자든, 입소문이라는 관객의 평판이든, 회전문이라는 관객의 충성도든, 이 모든 것을 미룬 채 예술가에게만 주목하겠다는 것이다. 관객의 기대에 눈 맞추지 않고 오로지 자기에게 집중하는 예술가의 작품은 관객에게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가기 마련이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을 감수하겠다고 자처한 서울예술단에 박수를 보낸다.    <꾿빠이, 이상>은 이런 선언이 틀에 박힌 표어가 아니라 실현의 의지가 담긴 말임을 보여주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매회 공연에서 입장할 수 있는 관객을 백 명으로 제한한 것을 보시라. 이렇게 하면 공연 기간 전체를 통틀어도 대극장에서 이삼 회 공연으로 동원한 관객 숫자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공연의 특성상 꼭 필요한 설정이라 하더라도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자면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기획이다. 그러나 이 기획을 밀어붙임으로써 이 공연은 경제적 이익보다 더 큰 가치를 얻었다. 바로 희소성이다. 관객이 쉽게 볼 수 없는 공연. 초반부터 이어진 매진 행렬과 엇갈리는 관객 의견은 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배가시켰다. 찬사이든 혹평이든 관객들은 각각 다른 관심으로 이 공연을 궁금해했던 거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앞선 실패의 결의들은 괜한 엄살이었나 싶다. 규모가 아닌 밀도의 측면에서 볼 때 이 공연은 관객을 향해 애초에 실패할 수도 없고 실제로 실패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실험이라기에는 부족한기획이 이토록 과감했으니 이제 ‘실패에 걸맞은 실험’은 전적으로 예술가들에게 던져진 셈이다. 공연을 수식하는 단어들은 큼직큼직하다. 형식으로는 이머시브요 소재는 시인 이상이요 내용은 복잡하고 모호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용물에 비해 과한 포장지이다. 이머시브라는 형식을 단지 관객 참여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도 그렇지만, 관객 참여의 명분으로 선택한 연출의 전략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극장 로비에서 배우가 연기를 시작하는 것이나, 나눠준 가면(정말 아무 의미 없는!)을 쓰고 배우의 안내에 따라 극장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서서 공연을 보다가 둥그렇게 앉는 것까지. 이런 형식은 20년 전에도 드물지 않게 있었던 ‘고전적’인 설정일뿐더러, 관객이 곧장 자기 자리로 가 앉지 않고 약간의 움직임을 허락받는 데 관객 참여라는 명분을 붙이는 건 오히려 민망하다. 관객은 그저 배우의 안내에 따라 극장에 들어가고 가운데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 맞춰 둥그렇게 둘러앉을 뿐이다. 만약 여기서 관객이 ‘진짜’ 참여한다면? 퍼포먼스의 밀도가 높은 이 공연은 망가질 게 분명하다. 애초부터 이 공연은 관객에게 열린 작품이 아니다. 관객을 위한 여지(가면은 벗기보다 찢어야 했건만!)는 이 공연에 없다. 서사도 마찬가지다. 김연수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다고는 하지만 작품의 이야기는 원작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 상관없음이 과연 타당한지는 한 번 물어봐야겠다. 원작은 이상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상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상은 사실을 구축할수록 진실이 모호해지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상은 하나의 비어 있는 공간이요 혼란스러운 부재인 것이다. 원작의 이상은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그런데 공연은 이상으로 하여금 직접 말하게 한다. 그것도 세 명의 이상을 등장시켜서 말이다! 그(들)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고전적이지 않나. 더욱 고전적인 건 그 대답을 찾는다는 점이다. 나와 마주하고 있는 얼굴들, 그게 바로 나다, 라는 대답을 말이다. 명쾌한 윤리로 분명한 존재를 찾은 우리의 이상. 극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복잡하고 모호하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작가가 하는 말은 하나도 복잡하거나 모호하지 않지만 이것이 언뜻 그런 느낌을 관객에게 주는 건 말하는 방식이 지루하고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를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점층되지도 않는 동어반복은 의도가 담긴 실험이라기보다는 자의적인 영탄일 뿐이다.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썼던 관객은 끝내 지쳐버리고 만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뭔가를 찾으려 했으니. 작가의 현학은 자주 관객에게 속임수가 된다.   오히려 이 작품에 새로운 형식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근거는, 관객 참여나 서사가 아니라, 음악과 춤에 있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음악은 드라마를 설명하고 분위기를 주도한다. 언뜻 듣기엔 낯설기도 하지만 극의 흐름을 이끄는 기능으로 보자면 자연스러우면서도 구체적이다. 공연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끌어올린 데는 불협의 불안과 선율의 서정을 넘나드는 음악의 화술이 큰 몫을 담당했다. 춤도 마찬가지. 서울예술단의 가장 큰 장점인 춤이 극적 언어의 전반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나름의 멋을 획득한다. 춤은 현대무용의 문법에 충실하고 음악 또한 자기 언어에 성실한 것이 실험의 파격보다는 안정된 재현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새롭게 보였던 이유는 뭘까. 아마도 작가와 연출이라는 전통적 스태프의 많은 몫을 공간과 음악과 춤 등 무대 스태프의 퍼포먼스가 나눠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공연이 선택한 최고의 ‘실험적’ 전략이 된 셈이다. 더 잘 실패하기 위해서는정작 애매모호한 것은 <꾿빠이, 이상>의 위치이다. 작품 내적인 원리로 보자면 실험적인 작품이 아니고 작품 외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실패한 작품도 아니다. 실험과 실패를 각오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된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실험이란 기존의 생각이나 방식을 깨뜨리는 적극적인 시도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깨뜨려야 할 ‘기존의 무엇’이다. 그야말로 파격(破格)을 행해야 하는 거다. 실패는 이 과정에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결과일 터. 역설은 이 결과에서 생겨난다. 가장 크게 실패한 곳에서 가장 놀라운 혁신이 싹틀 수 있다는 역설 말이다. ‘과감히 실패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 잘 실패할 것이다!’ 실패를 다짐하는 베케트의 선언은 예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를 가슴 뜨겁게 보여준다.결국은 핵심은 방향성이다. 방향성이야말로 실패와 실험을 가늠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가. 이것이 분명할 때 실험은 과거를 향한 결별이 될 것이고 실패는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꾿빠이, 이상>에 이런 방향성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것은 결국 서울예술단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공공 예술 단체보다도 성실하게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단의 저력에 박수를 보내지만, 그리고 이런 작품을 시도한 것에 열렬한 지지를 표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변화의 진폭이 크다는 것은 조직의 특성이자 한계이겠지만, 실정법 위에 헌법이 있는 것처럼, 서울예술단의 흔들리지 않는 방향성은 무엇인지 분명해져야 한다. 그 지속성 위에서 <꾿빠이, 이상>의 위치는 다시 부여될 터. 예술의 공공성을 향한 서울예술단의 다짐, 곧 실험의 의지와 실패의 용기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길 바란다. *외부 필진의 리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0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역사에 묻힌 꿈들 <칠서>서울예술단이 새로운 창작가무극 <칠서>를 선보인다. 작품은 세상을 바꾸고자 혁명을 일으켰지만 역 사의 희생양이 된 일곱 명의 서자들을 모델로 쓴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을 주목했다. 광해군 5년에 일 어난 계축옥사는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웠지만 차별이 사라지지 않은 시대의 부조리에 항거한 서자들 이 일으킨 난이다. <칠서>는 계축옥사를 바탕으로 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탄생 비화를 다룬 팩션 사극이다. 서울예술단은 역사가 역모로 치부해버린 젊은이들의 꿈을 소설 속에서 찾아내 무대 위에 전하고자 한다.작품은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변화, 신분 차별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한 채 개혁에 실패한 일곱 서자 들의모습을통해현재우리의모습을비출예정.일곱서자의호기로운기상과염원을강조하기위해 힘있고강렬한음악을그리고자한다.특히클래식과록을핵심음악스타일로삼아특별한매력을전 한다.<칠서>는 서울예술단의 대표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를 통해 팩션 사극 창작 실력을 보여준 장성희 작가와 민찬홍 작곡가의 두 번째 만남으로 기대감을 높인다. 여기에 <셜록홈즈>, <페스트>의 노 우성 연출가가 합류했다. 칠서의 우두머리이자 홍길동의 모델이 된 서양갑으로 박영수가 무대에 오른 다. 허균에 정원영, 광해에 박강현이 캐스팅됐으며, 최정수, 정지만, 김용한 등이 출연한다.11월 10~17일 충무아트센터대극장 1544-1555


지금 당장 로큰롤의 세계로 <올슉업><올슉업>이 1년 만에 돌아온다. 지난 2007년 처음 한국에 소개된 작품은 1950년대 미국의 대중음악에 서 존재감을 톡톡히 세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흑인 음악을 하는 백인 가수’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큰롤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젊은이들 은 그의 음악을 통해 억눌린 욕망을 분출했고, 특히 그의 ‘엉덩이 춤’은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 지만 10대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Love Me Tender’, ‘Can't Help Falling In Love’ 등 엘비스 프레슬리의 대표곡은 <올슉업>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작품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데뷔 전 이름 모를 한 마을에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엘비 스 프레슬리가 도착한 마을은 노래, 춤 그리고 애정 행각이 금지된 정숙법령이 시행 중인 답답한 곳. 그는 “모두에겐 소울이 필요하다”며 경쾌한 사랑의 노래로 마을 사람들 마음속에 내재된 사랑과 음악 에 대한 열정을 깨운다. 이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사랑의 감정은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소동을 만들어낸 다. 주인공 엘비스로는 손호영, 휘성, 허영생, 정대현이 캐스팅됐다. 나탈리는 박정아, 제이민, 이예은이, 데니스로는 박한근과 김지휘가 출연한다. 산드라는 정가희와 구옥분이, 짐 역으로는 김성기와 장대웅 이 무대에 오른다. 이외에도 안유진, 서신애, 관나윤, 임은영, 진아라 등이 출연한다.11월 24일~2018년 2월 11일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대극장070-8163-7134*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0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