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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LIGHT] <헤드윅> 김동완 [No.132]

2014-09-23 2,603
길 밖의 남자
                              
3년 만에 다시 <헤드윅>이라는 심판대에 오른 김동완은 이제 비로소 헤드윅이라는 인물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위그 인 어 박스’와 토미의 ‘위키드 리틀 타운’을 전보다 더 좋아하게 됐다면서. 
헤드윅의 슬픔을 담담히 읊조리고, 그녀의 버둥거림을 감싸주는 그 노래들 말이다. 



어제 엔딩곡을 부르고 객석을 가로질러 퇴장할 때 무슨 생각했어요?
빨리 걸을까, 천천히 걸을까. 내가 너무 늦게 걸으면 누나(이츠학)가 힘들 텐데, 조금 빨리 걸을까. 하하. 어제 잠을 못 자서 지금 머리가 멍해요. 공연 끝나고 잠이 안 와서 새벽 세 시쯤 잠들었나? 되게 늦게 잤는데, 아침에 윗집 애가 피아노를 쳐서 일찍 깼거든요. 

왜 늦게까지 못 잤어요? 공연 생각 때문에요?
그런 것도 있고, 늦은 시간에 공연하면 진정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이번 제 의상 좀 파격적이죠? (김동완은 이번 시즌에 비키니 크롭톱과 하이웨스트 반바지에 커다란 도트 무늬 스타킹을 신고 나온다.) 

단순히 예뻐 보이기 위한 의상과 가발으로는 안 보였죠. (웃음)
의상 선생님이랑 분장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다들 헤드윅이 예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사실 헤드윅은 예쁘면 안 된다고. 헤드윅은 소외당하는 여자라고. 그래서 의상을 만들 때 제가 뭐에 씌었는지 더 기괴해 보이게 해달라고 했다가 그만…. 하하. 

첫 공연을 마친 소감은 뭐예요? 
이번에 다이어트를 못해서 공연 전날까지 어떡하지, 어떡하면 군살이 안 보이지, 되게 걱정했어요. 근데 무대에 올라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뱃살을 쭉 내미니까, 부끄러움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 이상한 자신감이 생겨서 앉을 때도 일부러 더 살이 접히게 앉고 그랬어요. 음, 관객 분들에게는 좀 죄송하네요. 군살 공연을 보여드려서. 

하하. 살집 있는 헤드윅은 처음이어서 조금 놀라긴 했어요. 그것도 연예인이. 마음을 내려놓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건가 싶었죠. (웃음) 다이어트는 왜 못 한 거예요?
<헤드윅> 하기 전, 캐나다에 어학연수 가 있는 동안 엄청 먹었어요. 연수 마지막 달을 다이어트 기간으로 잡아 놓고요. 근데 하필 그때 쇄골을 다친 거예요. 자전거를 좀 험하게 타다가 넘어져서. 사고가 난 게 주말이었는데, 주말엔 의사가 쉬어서 수술도 못한다고 하고, 그날 하루 움직일 때마다 드륵드륵 하는데, 아, 죽는 줄 알았어요. 어쨌든 그 사고로 수술하고 회복하느라 운동을 못했죠.

캐나다는 어떻게 갔다 온 거예요? 어학연수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좀 신기했어요. 보통 연예인은 잘 안 그러니까.
떠날 즈음 갑자기 결정해서 준비랄 것도 없이 갔다 온 거예요. 그 전부터 뭔가 억지로 쥐어짜 내고 있었거든요. 에너지가 바닥을 쳐서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이런 생각도 들었고. 서울에선 무슨 짓을 해도 방전이 되기 때문에 잠시 떠나있고 싶었는데, 마냥 멍 때리다 오긴 시간 아까워서 어학연수를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떠나 있는 동안 생각의 전환이 됐어요? 
네, 거기선 하루를 내 마음대로 보내니까 좋았죠. 도서관 가고, 호숫가에서 수영하고, 바비큐 해 먹고…. 재밌었어요. 앞으로 1년에 3개월은 꼭 쉬려고요. 아, 일 년에 몇 달씩 쉰다고 하면 팬들이 싫어할까요? 미움 살 얘기하면 안 되는데. 하도 많이 해서. (웃음) 저는 연예인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종종 일에 쉼표를 찍으려는 거예요. 일하다 보면 자신 없어지는 순간이 오거든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근데 그럴 때 매니저나 회사는 그래요. 계속해. 하면 돼. 안 되면 되게 해. (못 하는 건) 구린 정신이야. 그거, 잘못된 생각인 것 같아요. 힘들면 잠깐 일을 놔야 해요. 그래야 체력도 생기고, 아이디어도 생기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죠. 스트레스를 제때 못 풀어서 “난 빨리 돈 벌고 그만둘 거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 제 주위에 많아요.

주위 동료들이 그런다고요? 스트레스가 커서?
네. 저는 술자리에 가면 이런 질문을 자주 해요. “넌 로또 되면 뭐 할 거야?” 그럼 대부분 일 그만두고 쉬어야지 그래요. 이유는 여러 가지겠죠. 하나 분명한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많아지든 적어지든 유명세는 커진다는 거예요. 근데 유명세가 늘 달가운 건 아니죠. 그 유명세가 그 사람을 향한 고정관념이 돼버리기도 하고, 그 고정관념은 한 예술가를 그저 그런 사람으로 가두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대중을 조정하려고 해도 안 돼요. 우린 그들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짧게라도 잊혀지는 게 좋은 것 같다는 거예요. 전 아까 말한 대로 1년에 3개월씩 사라질 거예요. 딱 3개월이면 날 미워했던 사람들도 그리워지더라고요. 다음엔 강원도로 사라질까….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돈 벌고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은 안 해요?
안 해요. 고생스러워서 그렇지, 재미있으니까. 노래나 연기는 사람들이 위로받는 것 이상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해 주거든요, 어떤 상황에서 건. 돈 벌고 그만두고 싶다는 애들도 막상 그래 보면 절반은 되돌아올 거예요. 

충전하려고 떠났다 왔는데 다음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으면 어떡해요?
그럴 땐 그냥 나에게 온 또 다른 기회구나 하고 쉴 것 같아요. 독수리는 날갯짓을 않는대요. 바람이 왔을 때 바람을 타지. 제가 좋아하는 얘기예요. 저는 저한테 바람이 오지 않았을 때 날려고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아요. 이게 다 팬들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겠죠.



나를 좋아하는 팬 앞에서 그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어때요? 특히 이번 시즌은 공연 중 객석에 불이 자주 켜져서 관객들이 잘 보일 것 같던데.
이번 시즌은 관객 얼굴이 정말 잘 보여요, 진짜! 영화 <헤드윅>에서 헤드윅이 등장하면 사람들이 야유 보내고 딴청 피우고 그러잖아요. 그런 표정의 사람들이 객석 중간중간에 껴있어요. 그럴 때 좀 무섭죠.(웃음) 아, 내일 공연도 겁나는데…. <헤드윅>은 공연할 때마다 내가 이걸 왜 했지, 이 생각이 들어요. 무서워서. 왜 술 마신 다음 날 그러잖아요. 아, 내가 술을 왜 마셨지. 두 번 다신 안 먹어. 그러고선 다음 날 또 ‘으와아아아!’ 그러면서 마시고. <헤드윅>은 저한테 그런 작품이에요. 

맞다, 첫 <헤드윅> 인터뷰에서도 그랬어요. <헤드윅>을 왜 한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웃음) 
그땐 특히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큰 상태에서 어려운 작품에 도전한 거라 생각이 많았어요. 남자 연기자 김동완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려고 했죠. 무려 <헤드윅> 무대에서. (웃음) 이젠 나에 대한 편견이 좀 사라졌구나, 느낄 수 있어서 마음 놓고 몰입할 수 있어요. 지금은 어떻게 하면 내가 안 보일까 생각해요. 그러려고 재도전한 거고요. 

헤드윅은 힘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억압받고 비주류의 인생을 사는 헤드윅에게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왜 이 인물에 끌렸어요? 
저는 헤드윅이 저랑 닮아서 불쌍했는데. 저도 아프고 힘들고 화나는 상황에서 웃거든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그게 이기는 거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요. 제 생각에도 그게 이기는 것 같았고. 근데 아플 땐 아프다고 말하는 게 맞더라고요. 그리고 이번엔 왠지 더 그렇게 느꼈어요. 이 사람, 나하고 참 닮았다고.

이번엔 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온 다음에 한 거니까 확실히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을 것 같아요.
캐나다 휘슬러에 있었을 때 그 지역을 돌아다니는 여장 남자가 한 명 있었어요. 하루는 디저트 가게에서 학원 애들하고 밥을 먹고 있는데, 그 남자가 우리 옆 테이블에 앉더라고요. 계속 힐끗힐끗 봤죠. 속으로 ‘이따 애들하고 저 남자 얘기해야겠다’ 생각하면서. 그 남자가 가고 나서 애들한테 “우리 옆에 있던 남자 봤어?” 그랬더니 “응” 그러고선 원래 하던 이야기를 해요. 제가 다시 “그 남자, 여장 남자 아니야?” 했더니 애들은 “응, 맞아, 왜? 킴(Kim), 너 그 남자에 대해 할 얘기 있어?” 그러더라고요. 이 친구들은 나와 다른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훈련이 돼 있는 거죠. 그때 확실히 알았어요.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게 뭔지. 저 지금 무슨 말하려고 했는데, 뭐더라….

그래서 헤드윅을 나와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요?
아뇨, 아뇨. 아, 최근에 신촌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열렸잖아요. 그걸 반대하는 집회를 보면서, 참. 저는 기독교 신자고,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동성애자들의 문제가 좀 더 수면 위로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주위에 이런 얘길하면, 너 그러다 나중에 네 아들 게이 된다, 그래요. 게이가 전염병도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어쨌든 저는 진심으로 제 아이가 게이로 태어날 수도 있으니까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자꾸 언급되길 바라는 거예요. 제 자식이 누구라도 어디서든 당당히 사랑했으면 하니까. 제 생각에 우리 사회는 모두 나란히 서 있어서 누군가 그 줄을 이탈하는 걸 못 견디는 것 같아요. 그게 새치기가 아닌데도. 아, 이거 또 미움받을 만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저는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게 아닌데, 공격적이라는 말 되게 많이 들어요. 

전 별로 공격적이라는 인상을 못 받았는데 왜 그럴까요. 근데 소속사는 다시 안 들어갈 거예요?  
일 년에 2~3개월씩 놀 건데, 회사에 들어가는 건 민폐죠. 그리고 이젠 제가 기억하지 못할 일, 그러니까 ‘그래, 하지 뭐’ 이런 식으로 하게 되는 일은 최대한 안 하고 싶어요. 중국의 어떤 기업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네 인생의 핸들을 남에게 맡기지 말라고. 쉽게 말하면 멋대로 살라는 말이잖아요. 남들이 이기적이라고 해도, 멋대로 살아야죠.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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