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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한국 뮤지컬계의 낯익은 이방인들 [NO.97]

글 |김영주 2011-10-10 4,126

언제부터인가 뮤지컬 프로그램에서 해외 스태프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연출이나 작곡, 무대 디자인, 조명, 의상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해외 인력들은 보통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인연으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우리와 함께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들과 우리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을까.

 

 

 

뮤지컬 인력 가운데 관객들이 가장 가깝게 느끼는 직군인 배우들 중에 외국인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현대극장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예수 역으로 미국 투어 공연에서 같은 역을 맡았던 챈 해리스를 캐스팅 한 적이 있지만, 사실 인종이 다른 외국인 배우가 한국어 대사를 외워서 연기를 하는 상황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댄서나 아크로바터들이다. <오페라의 유령> 초연 당시뮤지컬 무대에 설 발레리나들이 부족해서 우크라이나의 무용수들이 반년 간 서울에 체류했다. 뮤지컬 <돈 주앙>에서 인상적인 플라멩코를 선보였던 무용수들도 모두 스페인에서 넘어왔고, 2006년 <에비타> 공연에서 아르헨티나의 상징인 탱고를 제대로 소화할 댄서를 찾지 못한 제작사는 에바의 조국에서 한 쌍의 탱고 댄서들을 모셔왔다. 이런 캐스팅은 같은 아시아 국가여도 일본에 비해 전문적인 댄서가 부족한 한국 공연계의 현실 탓이기도 하고, 작품에 이국적인 향취와 오리지널리티를 더해서 완성도를 높인다는 측면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공연장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는 것은 해외 팀의 투어공연이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의 안목이 높아지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 내한 공연’이 실상 오리지널 팀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면서 그럴듯한 이름을 감싸고 있던 거품이 꺼지고 투어공연이 뮤지컬계에서 차지하는 지분 역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저작권을 관리하는 본사가 공연권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제작 전반에 깊이 개입하는 작품일 때 해외 스태프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는데, 그 영향력은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발휘된다. 오디션장에 연출가나 안무가로 해외 스태프가 앉아있을 때는 배우들의 자세부터가 달라진다는 볼멘소리가 있다. 배우들의 오디션에 대한 집중도나 준비해오는 것들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는데 배우들의 입지와 이미지에 대한 사전정보와 선입견이 없는 해외 스태프들이 오디션의 심사를 맡았을 때 깜짝 캐스팅이나 신데렐라 탄생이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에 대한 배우들의 기대가 커지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해외 스태프들이 국내 배우를 보는 안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아시아인들이 느끼는 배우의 매력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다는 지적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 배우의 외모와 분위기가 한국 관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목소리 위주로 캐스팅을 결정하다보니 막상 무대에 올라갔을 때는 관객들로부터 기대한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실패를 통해서 이 같은 문제점이 드러나자 최근에는 국내 뮤지컬 프로덕션 측이 캐스팅에 있어서 좀 더 강력한 결정권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작품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라이선스 공연에도 깊이 개입하는 프로덕션에서 파견된 해외 스태프들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감시, 감독을 하는 중간관리자의 포지션에 서게 된다. 하지만 국내 제작사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직접 섭외를 한 해외 인력의 경우에는 보다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 작업이 이루어진다. 해외 스태프의 국내 무대 진출은 뮤지컬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된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중심에 현대극장이 있다.


연극과 뮤지컬을 고르게 공연했던 현대극장은 83년 한영수교 100주년을 맞아 영국문화원을 통해 소개받은 패트릭 터커와 <베니스의 상인>으로 인연을 맺는다. 영국의 노 연출가는 그 후 한국에서 세 편의 작품을 더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패트릭 터커 버전’ 뮤지컬 <레 미제라블>(1988년)과 <한 여름 밤의 꿈>(2002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스크린 연기의 비밀』의 저자이기도 하고, 아시아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셰익스피어 극 전문가인 그는 국제적인 협력 작업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다소 무리라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한복을 따로 준비해오고, 현대극장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금요일 밤마다 벌이는 소주파티를 몹시 사랑했다는 이 노장과의 작업은 국제 공연계와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했던 8,90년대의 창작자와 스태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패트릭 터커의 추천으로 의상 디자이너 마틴 틸리, 젬마 잭슨이 현대극장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해외 스태프의 국내 진출은 인맥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올 슉 업>, <키스 미 케이트>, <스팸어랏> 등의 연출과 안무를 맡은 데이비드 스완의 경우에도 안무가인 그의 아내가 <미녀와 야수>의 한국 공연에 참여했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가장 많은 해외 스태프가 참여했던 대극장 창작뮤지컬 <천국의 눈물>의 경우에도 배우 브래드 리틀과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친분이 크리에이티브 팀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NYU를 비롯한 현지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창작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들이 젊은 해외 인력을 국내 제작사에 소개하고, 협력 작업을 하는 경우도 보인다. <마이 스케어리 걸>의 대본작가 강경애와의 인연으로 작곡가로 참여했던 윌 애런슨이 <번지점프를 하다>의 새로운 작곡가로 투입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뮤지컬 제작 과정에 대해 어렴풋하게라도 알고 있다면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문화적, 정서적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물리적인 거리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끝없는 조율이 필요한 공동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까. 서울예술단과 <고려의 아침>, <태풍>, <로미오와 줄리엣>을 작업했고, 최근에는 <바람의 나라> 두 번째 이야기 호동 편의 작곡까지 맡은 체코 작곡가 즈데넥 바르탁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 관객의 정서와 잘 맞는 서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음악에 강한 그를 <바람의 나라> 호동편의 작곡가로 낙점한 서울예술단은 지난 2010년 초부터 이메일로 제작 진행 상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유희성 연출과 음악감독이 완성된 대본의 번역본을 가지고 체코를 방문해서 작곡가와 만나 작업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했다. 즈데넥 바르탁은 대본과 미팅에서 오간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곡을 진행하였고 곡이 만들어질 때마다 한국 측에 보내 반응을 확인했고,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1차적으로 완성된 음악을 가지고 올해 초 한국을 방문했다. 이메일과 전화통화로 조율되지 않은 부분들은 체코와 한국에서 번갈아가며 진행된 미팅에서 한꺼번에 해결했고, 공연이 올라가기 일주일 전부터는 작곡가가 한국에서 체류하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최종점검을 할 예정이다. 음악 코디네이터가 중간에서 많은 역할을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음악을 만들 때 바로 옆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창조적인 케미스트리가 있는데 대부분의 소통을 전화로 해결해야하는 협력 작업의 경우에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나 작곡과 작사는 한 몸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이 정말 중요한데 12, 13시간의 시차 때문에 전화 통화조차 쉽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려움이 있다.” 미국의 작곡가 팀 아시토와 함께 <미녀는 괴로워> 초연의 작사 작업을 했던 이지혜 작가의 말이다. 


서울예술단과 서울시 뮤지컬단에 몸담고 있는 동안 많은 해외 스태프들과의 작업을 경험했던 유희성 연출은 “창작뮤지컬 보다는 라이선스 작품, 그리고 창작뮤지컬의 경우라면 셰익스피어극처럼 글로벌한 원작을 가지고 만드는 작품일 경우에 해외 창작자와의 작업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이지만 해외 인력을 기용할 때는 특히 작품이 필요로 하는 것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유희성 연출이 강조하는 점이다.


그는 해외 연출가들의 작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극의 시각적인 구성이나 전체적인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지만, 텍스트의 의미는 안다고 해도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와 정서, 인토네이션까지 짚어주는 역할은 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해외 인력과의 작업에서 또 하나 예민한 문제는 처우에 있어서 국내 스태프들과 차등을 둔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영미권의 크리에이터들은 대부분 에이전트를 통해 표준 계약서대로 계약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그 조건에 맞출 경우 한국 스태프들이 맺는 계약과는 상당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 크리에이터의 1차 저작권에 대해 요구하는 조건 또한 국내 뮤지컬계의 현실과는 갭이 크다. 한 작품에 창작자로 함께 참여하고도 권한에 있어서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것이 기쁠 사람은 없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해외 인력과의 교류를 통해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조금씩 그 거리를 좁혀나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채로 산업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 뮤지컬계가 외부에서 인력을 끌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서 한국의 프로듀서와 크리에이터, 배우들의 꿈이 브로드웨이일 수는 있어도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한국이 꿈의 무대이기는 힘들다. 문화에 있어서 중심과 주변을 구분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많지만, 뮤지컬은 중심과 변방이 너무나 명확한 장르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인력들이 한국에 진출한다면 보통은 둘 중 하나이다. 그곳에서 메인스트림으로 편입되지 못했거나, 이례적으로 좋은 조건의 제안을 받았거나. 어느 쪽이든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예술은 국가의 벽을 뛰어넘는다지만 그건 성공적인 작품의 경우에만 증명할 수 있는 명제다. 그 명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만들려고 하는 작품의 컨셉과 무엇이 필요한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고, 물리적 거리라는 제약까지 감수하고라도 바다 건너에서 손을 빌려야 할 만큼 필요로 한 것을 상대가 제공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7호 2011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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