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더뮤지컬 15주년 - 한국 뮤지컬의 인상적 사건 15 [No.142]

글 | 박병성 2015-08-04 9,241

한국 뮤지컬의 인상적인 열다섯 장면 

200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뮤지컬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열다섯 장면을 꼽아보았다. 
지난 15년간 한국 뮤지컬을 상징할 만한 열다섯 장면을 보다 보면, 앞으로의 한국 뮤지컬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1. 2000년
법원 <캣츠> 저작권 위반 공연 금지 결정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공연하는 뮤지컬이 드물었다. 우리나라에 세계 저작권법이 발효된 것은 1987년 7월 1일이다. 그러나 이 법은 비소급 입법이었다. 즉 <오페라의 유령>,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맨 오브 라만차> 등 1987년 7월 1일 이전에 제작된 작품은 원제작사의 동의 없이 올려도 무방했다. 1995년 WTO 무역협정이 실행되면서 우리나라는 1996년 베른협약에 가입하게 된다. 이 협약이 발효되는 1996년 7월 1일부터는 소급 입법에 따라 과거에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저작권을 지불해야 했다. 2000년 RUG가 극단 대중의 <캣츠> 공연에 대해 저작권 위반으로 인한 공연 중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 <캣츠> 저작권 분쟁은 제대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올리던 한국 뮤지컬계의 관행에 제동이 걸린 사건이었다. 명백한 저작권 위반이었고, 법정도 그렇게 판단했지만 당시 언론 중에는 제대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극단이 몇이나 되겠냐”며 연극계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해이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일화다. <캣츠> 저작권 분쟁 이후 국내 제작사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라이선스 뮤지컬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흔히 1990년대 우리 배우들이 출연하는 해외 뮤지컬을 번역 뮤지컬이라고 하는 이유는 대부분 정식 라이선스를 지불하지 않고 대본과 악보를 구해 공연했기 때문이다. ‘번역 뮤지컬’에서 ‘라이선스 뮤지컬’로의 변화는 그런 역사적인 과정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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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 저작권에 대한 법원 결정이 나고 2개월 후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신문을 연상시키는 표지의 <더뮤지컬> 창간 준비 호가 발간됐다.


2. 2002년 
<오페라의 유령> 폐막식



2001년 12월 2일 개관한 지 1년 남짓한 LG아트센터를 구조 변경까지 하며 올린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 공연은 7개월간 수많은 한국 공연 시장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0년대 대형 뮤지컬 2~4주일 평균 공연 기간 대비 7개월간 공연, 대형 뮤지컬 5억 원의 -평균 제작비 대비 120억 원대 제작비, 뮤지컬 시장 140억 원 추정 대비 단일 작품의 매출액 190억 원. <오페라의 유령>은 대한민국 뮤지컬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고, 이후 뮤지컬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공연계에 서서히 투자가 몰리고 <아이다>, <맘마미아!> 등의 대형 뮤지컬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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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은 한국 뮤지컬의 발전 속도를 높인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 발표회(6호)부터 결산 기사 ‘유령이 남긴 것’(13호)까지 8회에 걸쳐 집중 조명했다. 6호의 표지 이미지는 <오페라의 유령> 무대 셋업 사진을 이미지로 사용했다.  


3. 2004년 
<맘마미아!> 커튼콜



아바의 히트곡 ‘워털루’가 울려 퍼지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중년의 관객들이 하나둘 일어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20~30대 뮤지컬 관객층이 대다수인 한국 뮤지컬계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2004년 신시뮤지컬컴퍼니, 에이콤인터내셔널, 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해 3개월간 공연했던 <맘마미아!> 한국 초연은 공연 오픈까지 티켓 판매가 예상외로 저조해서 애간장을 태웠다. 하지만 공연이 오픈되자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이 몰려들어 큰 흥행을 기록했다. 초연 당시 관객 중 50% 이상이 중년층으로 그 어느 공연보다 중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당시 일반 공연의 40대 이상 관객 비중은 10% 초반대였다. 아바의 노래를 앞세워 중년층을 공연장으로 이끌었던 <맘마미아!>. 재공연에서는 초연과 같이 중년 관객들의 비중이  높진 않았지만, 타 공연에 비하면 여전히 중년 관객 비중이 두 배 이상 높았다. 2011년 디큐브아트센터 <맘마미아!> 공연 당시 40대 이상의 중년 관객 비중은 37%였던 반면, 일반 공연은 1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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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3월 호 화제의 공연에서 <맘마미아!>를 집중 조명하며,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가로형으로 디자인해 책 속의 신문 느낌으로 다루었다. 당시 관심을 모았던 아바의 노래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했는지 소상히 다루었다.


4.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앙코르 공연 티켓 오픈

2004년 여름 공연장을 잡지 못해 주로 국제회의장으로 쓰이던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공연했던 <지킬 앤 하이드>는 여러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조승우, 류정한의 열연으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다. 그해 겨울 곧바로 올라간 앙코르 공연에서는 초연 공연의 인기와 개봉을 앞둔 영화 <말아톤>의 홍보 효과가 결합돼 이제까지 보지 못한 스타 파워가 만들어진다. 티켓 오픈 7시간 만에 조승우가 출연하는 공연분의 좌석 1만 2천 장이 모두 매진된다. 가로가 넓은 공연장 구조상 사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관객들의 성화로 사석까지 모두 매진됐다. 당시 9만 원이었던 티켓이 25만 원 암표로 팔릴 정도로 조승우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후 그는 <헤드윅>, <렌트> 등을 거치면서 매진 시간을 단축시키며 조승우 파워를 입증했다. 조승우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뮤지컬계에서 이제껏 없었던 스타 파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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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5월 호에서는 조승우 신드롬 현상을 다루었다. 공연 칼럼니스트 김수미는 조승우 신드롬의 원인으로 우수한 배우적 자질, 젊은 관객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쿨한 인간적 매력, 영화를 통해 서서히 쌓아온 입지를 꼽았다. 


5. 2004년 
<노트르담 드 파리> 공식 팬카페

2004년 12월 일곱 명의 열성 팬들로 <노트르담 드 파리> 팬 카페가 개설됐다. DVD를 통해 이미 작품을 좋아했던 팬들이 2005년 2월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만든 것이다. VIP 좌석이 25만 원이나 되는 높은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노트르담 드 파리>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반복 관람하는 팬들 덕분이다. 7명으로 시작한 팬카페의 회원 수는 공연이 진행되면서 빠르게 늘어가더니 2006년 재공연 당시에는 4천 명을 넘어섰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산 뮤지컬만 보아왔던 한국 관객들에게 <노트르담 드 파리>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에 프랑스 뮤지컬 붐이 일게 되었다. 2006년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 앙코르 공연뿐만 아니라, <벽을 뚫는 남자>, <챈스>, <십계>, <돈 주앙> 등 다양한 프랑스 뮤지컬이 투어와 라이선스 형태로 들어왔다. 2007년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와 함께 3대 프랑스 뮤지컬로 꼽히는 <로미오 앤 줄리엣>마저 투어 형태로 공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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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호 기획 기사에서는 2006년 사건과 인물 중 하나로 ‘프랑스 뮤지컬의 붐과 이를 선도한 NDPK 정홍국 대표’를 꼽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 라이선스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 대해 한국 배우들의 능력을 믿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6. 2005년
뮤지컬 워크숍 쇼케이스 발표



2005년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면서 창작뮤지컬의 관심도 높아져 갔다. CJ문화재단과 박칼린음악감독이 이끄는 킥뮤지컬은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를 양성하는 ‘뮤지컬 워크숍 쇼케이스’를 운영했다. 2004년 10월 참가자를 모집하여 워크숍과 1차 심사를 거쳐 최종 6편을 4월 4일 폴리미디어시어터(현 TOM 시어터 1관)에서 선보였다. 이 중 <컨츄리 보이 스캣>은 2007년 CJ E&M에 의해 소개됐다. 2007년부터는 CJ문화재단이 독자적으로 쇼케이스를 운영했고, 이것이 현재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모태가 되었다. 뮤지컬 쇼케이스는 뮤지컬의 단계적 제작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창작뮤지컬 제작 시스템을 빠르게 바꿔 갔다. 대표적인 창작뮤지컬 지원제도인 창작산실(구 창작팩토리)도 이런 제작 방식을 받아들여 단계적 제작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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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은 2005년 뮤지컬 워크숍 형태로 시작한 쇼케이스를 해마다 관심을 가지고 취재해 왔다. 뮤지컬 작가, 작곡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7. 2006년
극단 시키 진출과 뮤지컬협회 출범식




2006년 2월 27일 ‘뮤지컬의 발전과 권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뮤지컬협회가 출범했다. 사실 협회 출범은 일본 대형 극단 시키의 한국 진출을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2006년 뮤지컬계가 그토록 염원하던 제대로된 뮤지컬 전용극장 샤롯데씨어터가 개관하게 되는데, 개관작으로 일본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이 선정되면서 국내 제작사들의 반발을 샀다. 국내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일본 제작사가 공연한다는 점과, 장기 공연이 가능한 뮤지컬 전용극장의 혜택을 일본 극단이 독점한다는 점에 대해 국내 제작사의 반발이 거셌다. 새롭게 결성된 뮤지컬협회를 주축으로 반대 성명을 내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시키는 최고 티켓 가격을 9만 원대로 낮추는 등 한국 뮤지컬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지만, 1년 330회 공연 동안 36억 원의 적자를 남기고 물러나야 했다.  <라이온 킹>이 1년 정도로 짧게 공연되고 적자를 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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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의 진출로 뮤지컬계가 시끄러웠던 2006년 여름 <더뮤지컬> 주최로 핵심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시키 진출에 대한 공개 좌담회를 가졌다. 뜨거운 사안이었던 만큼 토론도 뜨거웠다.


8. 2007년 
대형 창작뮤지컬의 고전




2000년 이후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던 한국 뮤지컬이 2007년 정점을 맞는다. 전해 대비 40% 이상 성장을 기록했고, 시장 규모도 1,500억 원을 넘어선다. 이러한 분위기에 국내 대표 뮤지컬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와 PMC프러덕션에서는 대형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와 <대장금>을 선보였다. <댄싱 섀도우>는 차범석의 대표작 <산불>을 우화적으로 꾸민 작품으로 극작에 아리엘 도르프만, 작곡 에릭 울프슨, 연출 폴 게링턴 등 해외 창작진으로 구성됐지만 흥행에 실패한다. MBC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대장금> 역시 영화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음악을 담당한 조성우를 참여시키는 등 작품 제작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50억 원대 이상의 창작뮤지컬 두 편이 제작되었으나, 2007년 킬러 콘텐츠의 출연은 다음으로 연기해야만 했다. 허준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30억 원대 창작뮤지컬 <해어화>도 올랐으나 작품성과 흥행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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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대형 창작뮤지컬이 세 편 올라갔다. 아쉽게도 세 편 다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44호는 <대장금>의 주인공 김소현, 원기준 배우가 표지를 장식했다.


9. 2007년
스타 배우 양성소 ‘쓰릴 미’




2005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3개월간 올라간 <쓰릴 미>는 유아 살해와 동성애라는 비대중적인 소재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2007년 국내에 소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주로 대극장에 서왔던 류정한이 ‘나’ 역할로 출연했고, 최재웅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그’ 역에는 뮤지컬 팬들에게 서서히 관심을 받던 김무열과 신인 이율이 캐스팅되었다. 독특한 소재와 새로운 형식의 로맨스, 긴장감 넘치는 전개, 피아노 한 대로 극을 진행하는 방식 등이 화제가 됐다. 독특한 긴장감을 자아냈던 이 작품은 반복해서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을 양산하며 대표적인 팬덤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초연 배우였던 류정한, 최재웅, 김무열 등이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스타로 확고히 자리 잡았고, 이 작품으로 데뷔식을 치렀던 이율 역시 빠르게 뮤지컬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5차 공연이었던 2010년 공연은 5개월 동안 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소극장 공연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그해 인터파크 판매 집계 9위를 차지했다. 2010년 공연의 2회 이상 재관람객이 2,447명이었으며, 최다 관람객은 56회였다. 초연 배우 이율을 비롯 강하늘, 이재균, 송원근, 전성우, 손승원, 임병근, 신성민, 박영수, 백형훈 등의 젊은 배우들은 <쓰릴 미> 출연을 통해 인기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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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호 표지는 <쓰릴 미> 5차 공연의 배우들이 장식했다. 무려 8명의 배우를 펼친 면 표지에 담았다. 최재웅, 김재범, 김무열, 최수형, 조강현, 최지호, 지창욱, 강하늘이 그들이다.


10. 2010년
김준수 뮤지컬 데뷔, 새로운 뮤지컬 스타의 등장



한국에 처음 소개된 비엔나 뮤지컬은 <모차르트!>다. 조성모가 캐스팅되었으나 부상으로 하차하고 새롭게 투입된 배우가 인기 아이돌 그룹 JYJ의 김준수였다. 김준수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차 티켓이 매진됐고, 2차 티켓도 티켓 예매처의 서버를 다운시키며 두 시간 만에 1만 5천 석이 모두 팔려 나갔다. 티켓 파워만 본다면 그동안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던 조승우를 넘어서는 배우가 등장한 것이다. 김준수의 뮤지컬 출연으로 해외 공연 관객들이 한국에 몰려들기도 했다. 2009년부터 뮤지컬에 아이들 캐스팅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증가하던 해외 공연 관객들이 2010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2010년 해외 관광객의 티켓 판매가 전년에 비해 15%나 증가했으며, 본지가 일본 한국 공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2012년 6월 호)에서 2010년 처음으로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는 관객이 41%를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에는 김준수의 뮤지컬 출연이 기여한 바가 크다. 이후 김준수는 <천국의 눈물>, <엘리자벳>, <드라큘라>, <디셈버>, <데스노트> 등 창작과 라이선스를 번갈아 출연하며 최고의 티켓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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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계 최고 티켓 파워 김준수와의 인터뷰는 2014년 1월 <디셈버>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그해 8월에는 <드라큘라> 공연으로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11. 2011년
블루스퀘어 1년 4개월 만에 100만 관객 동원



2011년 11월 4일 개관한 블루스퀘어가 1년 4개월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조로>를 개관작으로 <엘리자벳>, <위키드>, <오페라의 유령> 등 굵직굵직한 대형 해외 뮤지컬들이 흥행을 이어온 결과다. 2000년대 초반 뮤지컬계 최대 염원은 뮤지컬 전용극장의 신설이었다. 2003년 정동이벤트홀을 리모델링한 뮤지컬 전용극장 팝콘하우스가 등장한 이후, 본격적인 뮤지컬 전용극장으로는 2006년 샤롯데씨어터가 처음이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서울 지역에 리모델링되었거나 신설된 중극장 이상의 공연장은 24곳이다. 이 중 현재 운영되는 뮤지컬 전용극장은 샤롯데씨어터(2006), 코엑스아티움(2009), 디큐브씨어터(2011), 블루스퀘어(2011),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2012), 대학로뮤지컬센터(2013), CJ토월극장(리모델링, 2013), BBCH홀(2013) 등 일곱 곳에 이른다. 충무아트홀은 복합 공연장을 지향하지만 사실상 대부분 뮤지컬이 공연된다. 이화여대삼성홀, 유니버설아트센터 등 뮤지컬 전용극장은 아니지만 대형 극장들은 주로 뮤지컬을 공연해 왔다. 뮤지컬 공연장의 증가는 2010년 이후 새롭게 뮤지컬 시장을 확장시키는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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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호에서는 2000년 이후 1천 석 이상의 공연장만 열 곳 이상이 늘어난 현실에 대해 전문가를 모아 좌담을 벌였다. 그에 앞서 각 제작사와 공연장을 대상으로 설문을 통해 각 공연장의 현위치를 점검했다.


12. 2011년
<미션> 리콜 사태



2011년 뮤지컬 <미션>의 리콜 사태는 한탕주의에 물들어가는 한국 뮤지컬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유명 영화 원작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의 결합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던 이 뮤지컬은 시작부터 불안한 조짐을 내비쳤다. 국내 제작사가 이탈리아 프로덕션과 손잡고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무려 120억 원이 투입된 대형 기획이었다. 기획 당시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에, 여주인공 사라 브라이트만 캐스팅 등 관심을 끌 만한 투자 제안서가 돌았다. 2010년 6월 개막하기로 했던 작품은 불과 2주일을 앞두고 별다른 설명 없이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2011년에도 엔니오 모리코네가 방한할 것이라는 등 이슈를 만들어냈지만 지켜진 것은 없었다. 티켓 가격은 VIP 좌석이 20만원으로 다른 대형 뮤지컬보다 20~30% 높았지만, 공연은 엉망이었다. 120억 원 프로젝트의 작품에서 녹음 반주를 사용하고, 여주인공의 음정 불안, 일부 장면의 립싱크 등 상상을 초월한 문제들로 관객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이런 관객들의 반응에 제작사는 공연을 대폭 수정해 먼저 본 관객들에게 리콜 관람을 감행했다. 고쳐진 작품도 작품성에선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션>을 만든 제작자는 사모펀드를 통해 모은 130억 원대 투자금을 횡령하고, 선급금을 가로챈 혐의로 수배 중이었는데, 그런 중에 <미션>을 진행한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한탕을 기대했던 제작자의 말로는 2011년 법정 구속으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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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평론가는 2011년 3월 호 <미션> 리뷰를 통해 작품을 해부했다. 리뷰 제목은 ‘열린 뮤지컬 시장과 그 적들’.


13. 2013년
도쿄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 오픈



2013년 4월 도쿄 중심가인 롯폰기에 900석 규모의 한국 뮤지컬 전용극장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가 개관했다. <카페인>을 시작으로 <김종욱 찾기>, <풍월주>, <형제는 용감했다>, <뮤직 인 마이 하트> 등이 1년간 공연됐다. 2010년 이후 뮤지컬에 출연하는 K-POP 스타로 인해 한국을 찾는 해외 공연 관객이 급증하면서, 이것이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까지 이어진 것이다. 2011년 일본에 진출한 한국 뮤지컬은 2편에 불과했지만, 2012년 7편, 2013년 15편으로 급증했다. 2013년 일본 진출 뮤지컬의 수가 증가한 데에는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의 역할이 컸다.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아뮤즈가 추진한 이번 사업은 K-POP 스타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한국 뮤지컬 배우를 출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한국 배우만으로는 당시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은 흥행면에서 부진했다. 일본에서 K-POP 스타를 배제한 한국 뮤지컬은 경쟁력이 약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는 1년간 한국 뮤지컬 8편을 소개하고 갈라 콘서트를 끝으로 사업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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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호 기획 기사에서는 일본 진출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일본의 평론가로부터 일본 시각에서 한국 뮤지컬 진출을 바라보는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 기획을 이끈 아뮤즈엔터테인먼트의 오사토 요키치 회장을 인터뷰해 한국 뮤지컬에 대한 애정과 한일 협력 구상을 들어보았다.


14. 2014년
<두 도시 이야기> 공연 15분 전 취소



2014년 7월 29일 <두 도시 이야기>가 공연 15분을 앞두고 돌연 취소 발표를 했다. 배우와 오케스트라가 개런티 미지급을 이유로 공연을 거부하자, 대표가 취소 발표를 한 것이다. 공연계에 암암리에 퍼져 있던 열악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중견 제작사인 뮤지컬해븐이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서 뮤지컬계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 뮤지컬계 상황을 분석하는 기사가 잇따랐고, 서울뮤지컬페스티벌에서는 업계와 정부 관계자를 패널로 ‘송승환의 100분 토론’을 개최했다. 공연 시장 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한국 뮤지컬의 위기 상황이 중심적으로 다뤄졌다. 2014년 뮤지컬계 위기는 기획된 공연의 취소로 이어져, 2015년 각 뮤지컬들이 취소된 공연장을 갈아타는 사태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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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위기론에 대한 여러 기사들이나, 좌담을 종합하여 위기의 한국 뮤지컬을 진단했다.


15. 2014년
대형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흥행



2014년 충무아트홀 10주년 개관 기념작으로 선보인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초연 공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40억 원대 규모로 제작된 이 작품은 세계적인 소재를 연출가 왕용범이 각색, 연출하고, 이성준이 작곡하여 성공으로 이끌었다. 왕용범, 이성준 콤비는 체코 뮤지컬 <삼총사>, <잭 더 리퍼> 등에서 이미 창작에 준하는 개작을 통해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프랑켄슈타인>은 제작 전부터 ‘너의 꿈속에서’, ‘난 괴물’ 등의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는 쟁쟁한 라이선스 뮤지컬들과의 경쟁에서 9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인정받았다. 객석 점유율 95%를 기록하며 대형 창작뮤지컬로서는 매우 드물게 초연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2015년 11월 재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며 일본에 라이선스 수출이 추진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성공에 힘입어 2015년 <아리랑>, 2016년 <마타하리>, <페스트> 등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이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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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호는 공연 전부터 관심을 모은 <프랑켄슈타인>을 특집으로 박은태, 유준상을 표지로 내세우고, 공연 전 관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기획 기사를 별도로 구성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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