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 [AUDITION] 면도칼 대신 열정을 높이 치켜들고! <스위니 토드> 오디션 현장 [No.125]

글 |이민선 사진 |이맹호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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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내 초연한 <스위니 토드>는 매년 뮤지컬 마니아들이 다시 보기 원하는 작품으로 손꼽혀 왔다. 초연 관객은 경험의 금자탑을 품에 안고 그 영광을 다시 한 번 누리길 바랐으며, 보지 못한 이들은 만나길 동경한 작품. 7년 만의 공연에 마니아들의 기대가 높은 만큼 오디션을 향한 열기도 뜨거웠다. 제작사에 따르면 무려 1,4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고, 지난 1월 20일부터 22일까지 서류 전형에 합격한 400여 명이 실기 전형을 치렀다. 홍지민과 김봉환, 임문희 등 초연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재도전과 더불어, 그간 성장한 신인 및 중견 배우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대학로 예술마당 연습실에 마련된 오디션장. 이번 공연의 연출과 안무를 맡은 미야모토 아몬을 비롯해 한국 협력연출 이종석과 일본 협력연출 가와이 노리코, 음악감독 이나영, 보컬코치 권혁준, 그리고 프로듀서 박용호가 심사대에 앉았다.


가장 먼저 지정곡 가창. 스위니 토드의 지정곡인 ‘Epiphany’와 러빗 부인의 ‘The Worst Pies in London’, 안소니의 ‘Johanna’와 ‘Ah, Miss’, 토비아스의 ‘Pirelli`s Miracle Elixir’와 ‘Not While I`m Around’가 며칠에 걸쳐 수도 없이 반복됐다. 간혹 연출가 미야모토는 지원자에게 같은 곡을 다시 불러봐 달라 부탁했다. 이때 그는 그 장면에서 해당 배역이 처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그에 맞는 감정으로 불러보도록 요구했다. 스위니 토드 지원자에게 “객석의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입니다. 극장의 프로시니엄이 무너질 만큼, 분노를 넘어 흥분 또는 쾌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불러보세요”라고 했다면, 안소니 역엔 “생전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십대 소년처럼 천진하게, 두근거리고 흥분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주문했다.
지정곡 가창에서 호감을 불러일으킨 배우에게는 대사 연기의 기회가 주어졌다. 해당 대사는 즉석에서 제공됐고, 배우들은 순발력 있게 그 장면의 감정을 표현해냈다. 이때도 연출가 미야모토의 해석이 더해졌다. 터핀 판사 역에 지원한 배우에게 “그녀에게 거절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바닥에 깔고 노인의 고독함과 필사적인 의지를 담아” 다시 한 번 읽어달라고 부탁한 것.
오디션에 참여한 배우들의 외모와 의상, 소품 등에서 합격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었다. 거지 여인에 응모한 대부분의 배우들은 긴 스커트에 투박한 외투, 또는 숄을 걸치고 오디션장에 들어섰으며, ‘Epiphany’를 부르던 한 배우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어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스위니 토드 배역 오디션에선 상대적으로 무대 경험이 많고 강한 인상과 보컬을 가진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면, 안소니에 지원한 배우들은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유자들이 주를 이뤘다. 안소니 역에는 최근 다양한 작품에서 훈훈한 외모로 멜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이들 외에 풋풋하고 젊은 신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간혹 ‘이 배우라면 이 역할도?’라는 호기심을 품게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럴 경우 심사위원들은 다른 배역의 노래를 요구하기도 했다. 안소니 역에 지원했으나 “토비아스 역할을 준비해올 수 있겠냐”는 심사위원의 말에 “네, 당연하죠!” 하고 기뻐한 이가 있었던 반면에, 한 배우는 “혹시 피렐리 역에는 관심 없냐?”는 질문에 정색으로 “네” 하고 스위니 토드에 대한 의지를 고집했다. 그들이 결국 토비아스 또는 스위니 토드가 될지, 혹은 이 공연에선 볼 수 없게 될지, 그 결과는 머지않아 오는 8월 무대 위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INTERVIEW

<스위니 토드> 연출가 겸 안무가
미야모토 아몬


오디션을 통해 한국 배우들을 만난 소감부터 부탁드립니다.

최근 3년 사이에 매우 많은 한국 배우들이 일본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일본에 한국 뮤지컬 전용 극장도 생겼고요. 한국 배우들이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은 일본 공연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통설이 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국 배우들의 실력에 기대를 많이 하고 왔는데 상상한 대로 혹은 상상 이상으로 연기력과 표현력이 훌륭했고, 특히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여태까지 런던이나 뉴욕 등에서 여러 차례 오디션 심사를 해봤지만 한국에서 가장 놀란 이유는, 목소리의 폭이 무척 넓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직 오디션이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만족스러운 걸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배역 전원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더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배우들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만족스럽습니다. 제가 오디션에서 연출가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보는 부분은 한 번 연기를 보여준 지원자가 역할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제 설명을 듣고 어떻게 달라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 말을 받아들이고 재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순발력과 현명함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아서 기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첫 연출작이 <스위니 토드>네요.

<스위니 토드>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거칠고 추한 19세기 말의 런던에서 성심성의껏 인간답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톱니바퀴가 엇물리면서 비극이 일어나죠. 여기서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이 날것 그대로 그려지고요. 먹고 사랑하고 질투하는 것을 포함해 무엇 하나 거짓이 없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모습, 그들 각자가 뒷면에 감추고 있던 아픔을 아주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이렇듯 구원과 연결되는 지점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나면 통쾌한 느낌이 듭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다 토해냄으로써 감정 표출을 넘어 그보다 높은 단계로 승화된 쾌감을 안겨준달까요? 제가 일본인이라서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모든 것이 논리정연하고 정돈돼 있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솔직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진 시대라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위니 토드>는 스토리는 슬프지만 본질을 파헤치고 싶다는 인간 찬가이기도 하죠.


주요 배역들은 각각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배역의 어떤 면에 중점을 두고 심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토드는 추방당하기 전에 진지하고 성실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진지했기 때문에 그간의 믿음과 의지가 꺾였을 때 분노와 증오가 엄청나죠. 가장 악인이 될 것 같지 않았던 남자가 결국 살인귀가 되어갑니다. 그여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의미죠. 도쿄에서 오디션을 치를 때도 주의하는 부분인데, 그에게 처음부터 악인이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을 보는 거죠. 그런데 그는 헤어진 아내를 잊지 못해서, 그리고 남겨진 딸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세상 사람들의 목을 하나씩 베어 나갑니다. 결국 인간이, 사랑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고 말죠. 사회적으로는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그것이 가장 진지하고 순수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러빗 부인과 토비아스도 무척 독특한 캐릭터들입니다.

러빗 부인은 이성에게 인기 없는 타입에, 뭐랄까, 요령 없이 사는 사람이죠. 예전부터 좋아했던 스위니 토드의 마음을 어떻게든 끌기 위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그럼에도 그 남자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아요. 그녀는 더욱 필사적으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그 아이디어는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런 의미에선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죠. 토비아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은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피렐리에게 얻어맞으며 살면서도 그가 먹을 것을 주는 데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그때 나타난 러빗 부인은 토비아스에게 엄마, 어쩌면 마리아 같은 존재예요. 러빗 부인에게 스위니 토드가 굉장히 나쁜 사람이란 걸 말하고 싶은데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죠. 굉장히 섬세하고 착한, 가장 순수한 인간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션 심사에서 이런 배역에 맞는 느낌을 찾아내기 위해 집중하시겠군요.

배우가 연기할 때 그가 살면서 쌓은 것들, 고독과 슬픔, 허무함, 인간을 사랑하는 진지함 등이 묻어나옵니다. 특히 손드하임의 곡은 그런 게 표현되기 좋고요. 손드하임은 늘 가수를 위해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배우가 ‘연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그래서 그는 최고의 배우가 연기할 때를 상상하며 숨과 사이도 모두 계산해 곡을 쓰죠. 정말 훌륭한 배우가 대사 읊는 것을 들어보면 그 사람 특유의 리듬이 느껴질 겁니다. 그것이 노래가 되죠. 이게 손드하임이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인간의 목소리는 넓게 생각하면 음악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걸 그대로 들으면 이상한 불협화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사람의 감정을 그려내는 음악이라고 이해합니다. 오디션에서 그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그저 노래에 그치는지 아니면 드라마가 되는지 나뉘므로 중요한 심사 기준이 되죠.


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연출님의 생각과 한국 배우들의 접근 방식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사람에 따라 각각 달랐어요. 초연 때 참여했던 배우들을 보면서 ‘초연 연출가는 이런 해석을 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외 몇몇 배우들은 전혀 다른 발상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각각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예요. 오히려 모두 같은 해석으로 연기했다면 싫었을 겁니다. 내가 어떤 주문을 했을 때, 배우가 그에 맞게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자리가 오디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적인 형태나 표현이 아닌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 장면의 설정이나 감정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메인 캐릭터 오디션 때 몇몇 배우들은 두려움 없이 제가 말한 내용에 확 빠져서,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기를 보여줘 무척 기뻤습니다. 일본에선 별로 없는 일이거든요.


한국 관객들은 새로운 <스위니 토드>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솔직히 말하면 맨 처음에 이 작품을 연출할 때는 사이코 스릴러의 재미가 잔뜩 담긴 작품으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는 위압적인 사회 속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 없는 인간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죠. 더 깊숙한 인간의 진실을 표현하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2007년 한국 초연 영상을 봤고 무척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 차이가 있다면, 땀을 흘리는 날것으로서의 인간을 확실히 표현하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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