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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도리안 그레이> 박은태 [No.155]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스타일링 | 박선용 헤어 | 강호 레드카펫·혜림 보이드바이박철 메이크업 | 박하연 보이드바이박철 장소 협찬 | 3rd Space 2016-08-16 15,254

시간을 뛰어 넘는 순간


이제 박은태란 이름 앞에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는 자연스럽고, 떼려야 뗄 수 없다. 물론 이는 지난 시간 쉬지 않고 달려온 남다른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2006년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에서 앙상블을 맡으며 뮤지컬 무대에 첫 발을 디딘 박은태. 그로부터 딱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박은태. 지난 무대만큼이나 앞으로의 무대가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 아닐까? 그 기대에 부응할 첫 무대는 바로 창작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다. 헨리 워튼으로 보여줄 박은태의 새로운 변신. 늘 그러했듯 그는 노력으로 이뤄낸 전진을 보여줄 것이다.




한정되지 않은  매력


9월 개막을 앞둔 창작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캐스팅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뮤지컬계에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박은태와 김준수의 만남인데다, 이들이 원캐스트로 공연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바로 결정 내렸어요. 두 말할 필요가 없었죠.” 이렇듯 박은태가 주저 없이 <도리안 그레이>를 선택한 것은 바로 원작의 힘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작품 선택을 주저하게 돼요.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소재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도리안 그레이>가 그걸 해소해줬어요. 원작 자체가 워낙 훌륭해요. 원작 그대로도 재밌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비트냐에 따라서 재미가 배가 될 것 같아요.”


19세기 말 탐미주의를 대표했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 발표한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박은태는 이 작품의 매력을 하나씩 꼽으며, 무대를 향한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도리언 그레이는 자기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고, 헨리 워튼은 남들이 보는 자기 모습이고, 배질 홀워드는 자기 자신이라고. 이렇듯 세 인물의 매력이 무한해요. 또한 이 책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천재성이 함축되어 있어요. 굉장히 철학적이에요. 무대에서 말하면 정말 멋있을 것 같은 대사들이 넘쳐요. 다 주옥같아서 각색 작업에서 뺄 말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도리안 그레이>에서 박은태가 맡은 역은 헨리 워튼이다. 헨리는 아름다움의 양면성을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열정과 본능을 도리언에게 투영시키며 그를 쾌락의 세계로 빠지게 하는 인물이다. 박은태는 작품 속 인물 중 헨리에게 가장 큰 끌림을 느꼈다. “처음엔 (김)준수 씨와 더블 캐스트로 도리언 역을 맡는 게 어떠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헨리 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도리언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제가 가장 매력을 느낀 인물이 헨리였어요. 이 역할이 더 와 닿더라고요. 또 하나는 준수 씨와 한 무대에서 시너지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모차르트!>와 <엘리자벳>, 두 작품을 하며 인연을 맺었지만 직접적으로 무대에서 부딪힌 적은 없어요. 서로 이런 점을 아쉬워했거든요. 이번엔 욕심이 생겼죠. 그런 만큼 준수 씨와 ‘우리 신나게 스파크를 내보자!’ 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원캐스트란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두 달여 동안 헨리 역으로 매일 무대에 오르는 것. 이 또한 박은태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 <노트르담 드 파리> 성남 공연을 할 때 한 달 동안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어요. 이번 무대가 두 번째 경험인데, 도전인 거죠. 물론 원캐스트의 매력이 분명히 있어요. 오히려 마음이 편할 때도 있죠. 더블, 트리플 캐스팅일 경우 한 사람을 여러 명이 같이 사랑하는 느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대 배역이 나만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겨요. 원캐스트는 그런 걱정이 없죠. (웃음) 하지만 모든 걸 혼자 감수해야 하다 보니 책임감의 무게가 엄청나요.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체력 관리를 하고 있어요. 준수 씨, (최)재웅이 형과 서로 의지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서로 믿으면서 노력한다면 다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

<도리안 그레이>의 헨리 워튼. 박은태는 이 역할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라고 이야기한다. “도전 의식이 불타 올라요.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에 스펙트럼도 무한해요. 헨리는 도리언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보니, 그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극의 방향이 달라지거든요. 헨리의 행동이 처음부터 악의가 있었느냐,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느냐, 도리언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느냐. 원작에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거든요. 그래서 더 흥미로워요.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인물에 대한 해석을 찾아가는 묘미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캐릭터예요.”


박은태는 특히 원작의 힘을 강조하며,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의 말을 한참 듣다 보니,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도리언이 자신의 초상화가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 순간이 소름끼치더라고요. 현대도 아닌 1890년에 발표된 작품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썼다는 게, 소름끼치게 무서웠어요.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작품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변하는 순간이잖아요.” 그는 이 장면이 뮤지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뮤지컬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재밌을 거예요. 그리고 헨리 역시 초상화의 변화를 처음부터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이 캐릭터가 훨씬 풍부해지고, 극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그는 오스카 와일드가 이 작품을 통해 펼친 탐미주의에 대한 생각을 덧붙였다. “도리언, 너 스스로가 본성을 직시할수록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이 작품의 큰 줄기거든요.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본성을 탐구하다 보니 쾌락주의에 빠지게 되는 거죠. 흥미로운 건, 탐미주의를 추구했던 도리언이 결국 파멸한다는 거예요. 작가 자체가 탐미주의를 따랐지만, 이 작품은 쾌락을 따른 도리언이 악마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탐미주의를 이야기한 작품이라 말하기엔 또 물음표가 생겨요. 그만큼 생각할 여지가 많은 깊이 있는 작품이죠.”


헨리는 도리언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아름다움의 양면성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역할을 맡은 박은태는 탐미주의를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사실 저는 탐미주의와는 정 반대죠.(웃음) 예술가의 딜레마 같아요. 예술가는 내면에 억제되어 있던 욕구나 감정을 드러내야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배우 역시 내면의 자아를 무대에서 뿜어낼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뮤지컬 배우는 그러기가 참 쉽지 않아요.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좋을 텐데, 뮤지컬 배우는 자신의 몸을 악기화해야 하기 때문에 녹슬면 안 돼요. 탐미주의를 추구하다 보면, 악기가 망가지는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쾌락주의를 포기하는 대신, 영화나 책을 통해 간접 체험을 많이 하고 있어요.” 특히 지금은 원캐스트 무대를 앞두고 있어 자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고 있다고 하니, 그의 무대가 철저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새로운 시간을  향해

올해로 박은태는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무슨 일이든 ‘10년만 해보라’는 말이 있듯, 10년은 한 분야에서 자연스레 입지를 세울 수 있는 상징적인 시간이다. 데뷔 10주년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되자,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에요.” 그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단 앞으로의 시간을 내다보고 있었다. “데뷔 10주년이라고 하니 뿌듯하죠. 한편으론 걱정도 되고. 하지만 10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어요. 그렇다고 제 배우 인생에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자축을 하기엔 아직 멀었어요. 지금 제겐 눈 앞에 둔 작품이 더 중요해요.”


2006년 <라이온 킹>의 앙상블을 시작으로, 지난 3월 막을 내린 <프랑켄슈타인> 재연까지. 돌아보면 그는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며 무대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관객마다 생각하는 그의 인상적인 무대는 다를 테지만, 무엇보다 그 스스로의 생각이 궁금했다. 박은태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무대는 무엇이었을까? “우선은  <모차르트!>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 박은태란 이름을 드러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제 이름을 세울 수 있었어요. 물론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딨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다 훌륭하죠. 하지만 굳이 꼽는다면 이 두 작품이 지금의 박은태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박은태와 지난 무대를 이야기를 하며 새삼 느낀 건, 뮤지컬 배우가 정말 그의 천직같다는 거였다. “사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정말 좋은 직업이니까요. 전 지금 행복해요.” 그리고 그는 최근 무대에서 느낀 특별한 행복 하나를 들려주었다. “<지킬 앤 하이드>공연을 앞두고 저 혼자 무대 리허설을 할 때였어요. 그때 와이프와 제 딸이 공연장에 왔어요. 딸이 객석에서 처음으로 제 무대를 본 거예요. ‘신이여! 허락 하소서~’하고 ‘지금 이 순간’의 클라이맥스를 끝냈는데, 텅빈 객석에서 어린 딸이 혼자 ‘아빠!’ 하면서 박수를 치는 거예요. 그 박수 소리를 들으니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딸이 성인이 돼서 뮤지컬을 보게 됐을 때, 무대에서 멋진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겠다! 가족이 큰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건강 관리, 외모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밤에 로션도 안바르고 잤는데, 이젠 팩도 하고요.(웃음) 10년, 15년 후에도 변함없이 무대에 서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2006년 박은태의 첫 무대.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겼다.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에서 앙상블을 맡으며 뮤지컬을 시작했어요. 사실 처음 뮤지컬을 시작할 때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리 큰 뜻을 품진 못했어요. 그러곤 <노트르담 드 파리> 오디션을 기적처럼 통과하면서,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죠. 닥치고 10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한 말 같지만,(웃음) ‘언젠가 10년이 올까?’ 하는 바람을 담은 거였죠. 그런데 막상 10년이 되니, 또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게 되네요. 지금부터 10년을 잘 버텨서, ‘이제 데뷔 20주년이 되었습니다!’ 하고 다시 <더뮤지컬>과 인터뷰를 하게 됐으면 하는 새로운 바람이 생기네요.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5호 2016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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