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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국카스텐의 `하현우` - 폭풍의 바다를 헤치고 태양을 만지러 간다 [No.92]

글 |김유리 사진 |김호근 2011-05-31 15799


2008년부터 지금까지 1장의 정규 앨범과 1개의 EP앨범만으로 한국 록을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로 당당히 꼽히는 국카스텐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밴드 중 하나다. 2008년 인상적인 데뷔곡 ‘거울’과 ‘파우스트’ 두 곡이 담긴 싱글앨범으로 다음 행보를 기대케 했던 국카스텐, 1집은 데이터 유실로 재녹음까지 거치기도 했지만 이들의 탄탄한 실력을 입증하기엔 차고 넘쳤다. 지난해 대중음악평론가, 기자, 라디오 PD 등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록 노래상 두 부문을 수상하고, 12월에는 새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EP 앨범을 발표한 그들의 행보에는 가속이 붙었다.


 

 


국카스텐의 사운드는 사이키델릭 폭풍이 부는 바다다. 그 안에서 들리는 보컬 하현우의 목소리는 때론 폭풍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해적선의 선장 같기도 하고, 때론 뱃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탄탄한 사운드와 라이브 연주 실력과 더불어 이미지를 듬뿍 담은 가사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보컬의 폭풍 같은 가창력과 이를 부정하지도 않고, 우쭐해하지도 않는 담담한 솔직함을 지닌 국카스텐, 그 안에서 몽환의 이미지를 직조하고 있는 하현우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국카스텐, 폭발하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만화경

 

국카스텐(Gukkasten), ‘중국식 만화경’이란 의미의 독일어더라고요. 이름이 독특해요.

EP앨범 타이틀도 「Tagtraume」 독일어잖아요. 노래도 선이 강하면서 약간 딱딱하고 고딕적인 면이 있어서 독일에 관심이 많나 생각했어요. 아뇨, 독일 문화나 이미지에 대해서 남다른 애착이 있진 않아요.(웃음) ‘국카스텐’은 진중권 씨의 『미학 오딧세이』에서 보고 쓰게 되었고, ‘타그트라움’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본 ‘잠을 자지도, 꿈을 꾸지도 않았는데, 마치 꿈을 꾸는 듯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각성몽’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쓰고 보니 그게 다 독일어더라고요.   


책에서 단어를 보고 한순간에 ‘이건 우리 밴드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단어’라는 감이 왔나요? 밴드가 지향하는 음악과 어떤 연관성을 읽었나요?

만화경은 나무로 된 상자 안에서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마술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잖아요. 무척 아름답더라고요. 기타도 나무로 만든 가장 기본적인 악기잖아요.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이 네 가지가 밴드의 가장 기본적인 세팅이고요.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악기 세팅과 소리로써 가장 사이키델릭한 것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평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불현듯 떠오른 거죠. ‘아, 이게 바로 내가 그동안 표현하고자 했던 그 이미지다.’

 


국카스텐의 전신으로 ‘뉴 언발란스’와 ‘더 컴’이 있어요. 변화 과정이 궁금해요.

지향하는 바가 다 달랐어요. ‘뉴 언발란스’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더 컴’때는 라디오헤드나 스타세일러 등 영국 음악에 빠져있던 때라 어쿠스틱 성향이 약간 강하기도 하고, 좀 더 몽환적이기도 했어요. 지금보다는 날이 덜 선 음악이었죠. ‘더 컴’ 때 나름의 음악적인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때 발표한 앨범은?) 녹음한 건 있는데 절대로 바깥에 세상에 나오면 안돼요, 그건.(웃음) 사실 얼마 전에 그때 시디를 발견했는데, 얼른 부숴버렸어요. 크크


이후 어떻게 날을 세우게 되었나요?

이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올 데까지 다 왔다. 정말 마지막으로 후회 없이 한번 해보자’란 심정으로 정말 공격적이었어요. 치열해졌죠. 그래서 그런 음악들이 나왔을 거예요. 


데뷔곡 ‘거울’은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거울’은 기타 치는 규호 형하고 강원도 민박집 3번 방에서 합주하다 만들어진 노래예요(웃음). 어느 날 TV를 보는데 ‘뽕짝’이 나오더라고요. ‘이 리듬으로 만들어 볼까?’ 싶어서 장난치다가 나온 노래에요.  


흥미로운 것이 앨범 전반이 사이키델릭한데, 한국적인 뽕필이 많이 녹아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내가 살아온 환경, 즐겨 듣던 것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잖아요. 제게 음악적인 지식이나 테크닉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도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테크닉이 더 발달해 있었다면, 아마도 음악을 이미지적으로 대하려고 했던 자세나 그런 시각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테크닉이 부족하다 보니 이미지로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구현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음악도 그렇지만 가사도 이미지 중심적이고 영상적인 느낌이에요. 단어와 표현들이 모이고 모여서 한 곡의 이미지를 이루는 느낌이랄까? 네, 이미지 전달을 염두에 많이 둬요. 어떤 소재를 가지고 가사를 쓸 때, 소재가 된 그 사물에 나를 투영해서 그것의 특징과 습성에서 나와의 연관성을 많이 생각해내려 해요. 그래서 가사를 쓸 때 제겐 소재가 가장 중요해요. 사람들에게 느낌이 올 듯한 그런 소재 거리.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요.


1집엔 라플레시아(Rafflesia), 맨드레이크(Mandrake), 가비알(Gavial) 등 동식물의 학술적 고유명사로 된 제목이 꽤 있어요. 이런 단어들은 어떻게 찾아 소재로 삼나요?

‘라플레시아’는 이외수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본 꽃이었고, ‘가비알’은 악어가 날 물어뜯는 꿈을 꾸고 만든 곡이에요.


꿈이 잘 기억나요? 어떤 아티스트들은 꿈을 꾼 것을 바로 적기 위해 머리맡에 필기도구를 두고 자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꿈을 비교적 생생히 기억하는 편이에요. 가비알은 꿈을 꾸고 바로 메모해서 나온 거예요. 원래 제목은 ‘악어’였는데,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에 조금 더 가까운 걸 찾다보니, ‘가비알’이라는 이름의 인도산 악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악어랑 생김새가 좀 다르더라고요. 주둥이가 좁고 길었어요. 일반적인 악어보다는 가비알이란 그 악어가 온전치 못한 내 자신과 조금 더 닮은 것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1집이 한국적인 뽕필과 사이키델릭한 면이 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면, EP는 어쿠스틱한 부분이 강화된 느낌이에요. 특히 EP에서 ‘붉은 밭’ 어쿠스틱 버전과 연주곡 ‘타그트라움’의 경우엔 영화음악 같은 느낌도 있고요.

EP 앨범은 딴짓을 해본 앨범이에요. 원래는 ‘붉은 밭’과 ‘매니큐어’로만 싱글앨범을 내려했어요. 그런데 뭔가 부족한 것 같아서, 각각 하나씩 더 편곡을 하기 시작했죠. ‘붉은 밭’은 원곡이 조금 공격적이라 어쿠스틱하게 좀 진정시켜보고 싶기도 했고, ‘매니큐어’ 원곡은 록 필이 굉장히 강하고 드라이브감이 있어서 좀 세련되게 바꿔보자 해서 일렉트로닉 작업을 했어요. 거기에 보컬이 없는 연주곡도 만들게 되었어요. 앞서 편곡한 두 곡 자체가 이미 1집 선상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라, 그렇다면 어차피 중간 앨범이니까 아예 벗어나 작업해보자 해서 만들게 된 게 연주곡이에요. 처음엔 2곡 싱글 앨범으로 낼 생각이었는데, 아예 5곡의 EP앨범이 된 거죠.


2집은 언제쯤 나올 예정인가요?

올해 안이나 내년 초? (매니저 눈치를 흘깃 보며)하하하. 원래 무조건 올해 안이라 했는데, 이제 조금씩 내년 초에 나오려고 해요.(웃음) 


활동 4년 차인데 다작 밴드는 아니에요. 특히 1집 「국카스텐」의 Before Regular 앨범과 Re-Recording 앨범 사이가 약 1년 정도로 길었는데, 그 사이엔 뭘 했나요?

활동을 진짜 열심히 해서 돈을 끌어다 모았어요. 그 돈을 탈탈 털어서 1집을 다시 녹음한 거예요. 그때 돈을 다 썼어요. 그래서 거지가 됐어요. 그냥 거지도 아니고 개거지.(웃음) 그래도 라이브로 홍보를 꾸준히 많이 한 셈이에요. 그래서 제가 고생이 좀 심했죠. 국카스텐 노래 너무 어렵거든요. 부르기가 되게 힘들잖아요. 몸을 쥐어짜면서 부르는 거예요.    

 

 

하현우, 만화경 안에서 아름답고 슬픈 이미지를 펼쳐 보이다

 

어린 시절 하현우는 어떤 소년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활발했다가 중학교 때는 내성적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다시 활동적이 됐어요. 노래를 부르면서부터 활동적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스무 살 때까지 좀 길게 사춘기를 보냈어요.


어떻게 해서 노래를 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때 여자한테 차여서요. 이후에 노래 연습하다가 피도 토했어요. 아무래도 그때 득음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하현우는 미술부인데 만날 여기저기서 노래만 부르던 애였어요.


고등학교 때 미술도 했잖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고, 고등학교 땐 의상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그림으로 대학을 가긴 했는데, 스무 살이 되니 내가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이)정길이가 학교 앞 길거리에서 대뜸 ‘음악 혹시 좋아하세요?’ 하고 묻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밴드 재미있게 하다가 학교도 같이 그만두고 서울로 왔죠. 우리의 음악을 하자고 밴드를 결성하게 된 거예요.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지원으로 미대를 갔는데, 어머니 몰래 학교를 그만뒀다는 게 알려져서 한 달간 집에 못 들어갔다면서요.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는 괜찮아요. 스무 살 때부터 밴드를 했는데, 십년 정도 지나고 나서야 그때부터 조금 인정을 해주시더라고요. 국카스텐으로 활동 시작하면서 곡 만들려고 강원도 갔을 때가 스물여섯이었는데, 스물아홉 살 때까지만 해도 걱정을 더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이제는 다른 데로 가기엔 늦었다. 너는 그렇게 살다 죽을 운명이구나’라는 걸 받아들이신 거 같아요. (좌중 폭소)


지난해엔 제7회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록 노래상, 이렇게 두 개의 상을 탔어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인가요?

네, 예상은 좀 했어요. 하하하. ‘음, 하나는 받겠구나’ 생각했는데, 두 개나 받게 됐어요. 많이 좋더라고요. 


하현우 하면 ‘지나친 존재감, 허세’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멤버 중 현우 씨만 그런가요, 사실 다른 멤버들도 그런데 프론트 맨이다 보니 본인만 유독 튀는 건가요?

사실 모든 멤버가 그래요.(그럼 다른 멤버들도 현우 씨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거죠?) 네. 만약에 반대하는 얘기가 있으면 저한테 얘길 했을 텐데, 별 얘기 안 하더라고요.


그런 자신감의 원천은 뭔가요?

자신감보다는, 솔직함이라 봐요. 예를 들어 누군가 ‘상을 받을 줄 알았어요?’라고 물었다 쳐요. 난 받을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런데 ‘아이, 몰랐죠~’라고 얘기할 순 없는 거잖아요. 상대방에게 최대한 솔직히 얘기해주는 거거든요.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허세로 보는 것 같아요. 가끔씩 노래를 만들다가도 ‘와 이거 진짜 멋있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우리 라이브를 보다가도 ‘야, 우리나라 밴드 중에 이만큼 라이브를 하는 밴드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보통은 그걸 생각만 하고 밖으로 꺼내지 않는 거고, 전 말로 하는 거죠. 그걸 허세라고 하더라고요. 귀엽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재수 없다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뭐 근데 별로 신경 안 써요. 저는.


가사를 직접 쓰잖아요. 가사에서 괴로움이 많이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자신감이라 하기엔 생각보다 염세적인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무엇이 그렇게 괴로운가요?

제가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라.(웃음) 제가 사실 음악을 제외하면 참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음악에 매달리는 걸 수도 있죠. 불만이나 괴로움보다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참 신비로웠고, 궁금한 것들도 많았어요. 내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하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음악을 하는 목적에 순위를 매긴다면 저 자신이 1번이에요.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게 첫 번째 이유였거든요. 보통의 하현우는 간사하고 야비하고 자기만 아는데, 음악이라는 게 나를 정화시켜줘요. 정말 다행이죠. 나 같은 사람이 음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비뚤어졌을 거야. 패배주의가 좀 강해요.


폭발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연의 모습에서나 솔직한 발언들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는데, 가사를 보면 세상에 처절하게 SOS를 던지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공연으로 보면 굉장히 이질적이면서 매력적이에요.

흥미로운 건 관객들은 이런 폭발하는 외침들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고요. 모든 인간은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불안함이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결여되어 있는 것들, 결핍들이 있잖아요.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어떤 방법으로 해소시키느냐가 관건인데, 100% 해소할 수 없다면 망각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돌파구를 국카스텐 음악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본인에겐 해소인가요, 망각인가요?

사실 해소하는 것 같은데, 결국은 망각인 것 같아요. 공연할 때는 그게 해소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서부터 그 결핍들이 바로 얼굴을 드러내요. 망각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하현우에게 음악은 무엇인가요?

녹슨 칼이에요. 저를 지키는 어설픈 무기죠. 


‘거울’의 도입부를 본인의 팔에 새겼다면서요. 어떤 의미인가요?

‘거울’은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가장 불완전한 방식으로 잘 표현한 곡인 것 같아요. 내게 의미가 있는 노래고, 나와 가장 닮아있다고 생각하는 노래죠. 내가 만들었고, 그 노래로 인해 스스로 어떤 변화를 느끼고, 위로도 받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 노래는 나를 지키는 무기일 수 있죠. 어설픈 녹슨 칼. 그런 의미에서 제 몸에 새겨놓았어요. 


볼 때마다 잊지 않겠다는 의지인가요? 그렇죠.


인상적인 데뷔곡은 내게 날개가 되는 동시에 족쇄가 될 수도 있잖아요. 본인의 모습이 너무 반영되어서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겠어요.

저도 가끔씩 이 상황이 지루할 때도 있어요. 많이 들어왔고,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언제나 새롭게 들리진 않아요. 꼭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부르게 되지도 않아요. 하지만 어쨌든 사랑스런 노래인 건 분명해요.    


자신을 감동시켰던 아티스트는 누군가요?

라디오헤드와 커트 코베인. 극단적인 양면의 매력을 가진 아티스트들이에요. 너바나는 한순간에 불타올라 모든 청춘들이 갈망하는 이미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 그렇게 살다 간 뮤지션이었죠. 이와 달리 라디오헤드는 상당히 오랜 시간 꾸준히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보하는 모습으로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잖아요. 너바나는 제 삶에 뜨거운 뭔가를 제시했던 거고, 라디오헤드는 음악적인 면에서 내게 올바른 길,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팀이에요. 사실 그들의 음악을 계속 듣진 않아요. 하지만 항상 제 엠피쓰리엔 있어요. 제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둔 것처럼.     

  
어느 인터뷰에서 본인에겐 음악적 영감이 떨어질 일이 없을 거라 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은 2012년에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요. 그러면 아쉽지 않겠어요?

아니요. 제까짓 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견하죠. 멸망하면 어쩔 수 없죠. 흐흐. (멸망하지 않으면?) 종합검진부터 받아야죠. 지금 몸을 너무 무책임하게 놔두고 있어요. 2012년이 지날 때까지.(웃음) 


만약에 멸망하지 않는다면, 10년 후 국카스텐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그럼 되게 잘되어 있을걸요. 멤버들이 교통사고나 폐암 등으로 죽지만 않는다면?(웃음) 분명 굉장히 잘되어 있을 거예요. 아마 들국화 같은 밴드가 되어 있지 않을까. 들국화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시대에 한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가장 자기 색이 분명한 음악, 가장 치열한 음악을 했던 밴드였어요. 


그땐 시대 자체가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던 때잖아요. 한때 인디 신에서도 젊음 자체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산하는 흐름도 있었지만, 요즘은 개인 자체는 치열한데, 음악 자체는 편안한 감성을 추구하는 분위기예요.

좀 더 숭고하고 치열한 것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그건 진부하다고들 얘기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렇게 ‘진부한 상태’로 계속 갔어요. 그런데 한동안 인디 신도 음악적으로 변화를 거듭했어요. 굉장히 깔끔한 테이크아웃적인 음악으로 말이죠. 그게 또 변화하고 있는 시점이에요. 결국 음악이란 건 어떤 하나가 대세가 되어도 어느 순간 질려서 새로운 물결이 오게 마련인 거죠.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들국화가 활동했던 시절엔 ‘아침 이슬’과 ‘물 좀 주소’ 등의 음악들이 시대와 진짜 잘 어울렸다면, 지금은 목이 마르면 자기가 물을 사 먹을 수 있는 참 풍요로워 보이는 시대인 것 같은데, 그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각각의 속은 황무지인 거예요. 들국화 시절엔 예술이 개인보다는 사회적인 시각에서 흘러갔다면, 지금은 개인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음악적 스타일은 과거 스타일이지만, 노래 안에서 얘기하고 있는 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허무함과 빈곤함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라 과거와 현재 필요로 하는 점들이 잘 섞여 있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음악의 스타일과 내용이 진부하다는 이야기를 듣진 않는 것 같아요.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기도 하나요?

얼마 전에 <영웅> 봤어요. <모차르트!>도 봤구나. 저희 집 근처에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있어서 가끔 봐요. 연극은 잘 안 보고, 뮤지컬은 시간될 때마다 보긴 해요.  


보통 록 음악 하는 뮤지션들은 뮤지컬을 별로 즐기지 않던데, 어땠어요?

무대 세팅 면이나 조명, 거기에 따른 효과음 등이 우리 공연 할 때 많이 도움이 되던데요. 작품을 보고 아이템 같은 것들이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본인이 출연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섭외가 들어온 적은 있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그것까지 하면 망하죠(웃음).

 

지난 12월에 EP앨범을 발표하고, 방송 출연에 단독 콘서트, 그리고 1월부터 광주MBC의 ‘문화콘서트 난장’의 MC를 맡고 있고, 꽤나 바쁘죠?

요즘은 공연 준비 때문에 바빠요. 이번 주말에 대구, 부산에서 콘서트가 있고(4월 16~17일), 5월엔 LG아트센터에서 하는 ‘러시아워 콘서트’, 무엇보다도 7월에 악스코리아 홀에서 단독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러시아워 콘서트는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에 하는 콘서트인가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일상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들을 확실히 풀어줄 수 있는 밴드가 국카스텐 말고 또! 있긴 있지만, 국카스텐이 탁월한 선택이니까! (웃음)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저희가 먼저 공연에 몰입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려야죠. 그러면 사람들도 거기에 안심하고 자신도 공연에 몰입하게 되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2호 2011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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