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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ESTIVAL] 제15회 의정부음악극축제, 인간다움을 묻다 [No.152]

글 |박병성 사진 |의정부음악극축제 2016-05-13 5,592

제15회 의정부음악극축제, 인간다움을 묻다





2002년 의정부예술의전당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시작한 의정부음악극축제가 올해 15주년을 맞았다. 음악극(Music Theatre)은 오페라나 뮤지컬과 같이 장르로 자리 잡은 극을 넘어서 음악이 중심이 된 연극을 말한다. 개념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지금처럼 공연에서 음악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음악극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음악의 비중이 높은 다양한 작품들이 음악극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지난 15년 동안 음악극이란 범주 안에 묶일 수 있는 세계적인 작품들이 의정부를 방문했다. 세계적인 연출가 유리 류비모프가 이끄는 타간카극장의 <마라와 사드>를 비롯, 대만 당대전기극장의 <리어왕>, 독일의 떠오르는 연출가 오스터 마이어의 <리퀘스트 콘서트>가 이곳을 통해 소개됐다. <다크 러브 소네트>를 통해 체코의 젊은 극단 팜 인더케이브를 알게 된 것도 의정부를 통해서였다.


이처럼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해외 초청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다양한 음악극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자람의 히트작 <억척가>는 의정부와 공동 제작한 후 LG아트센터 등에서 앙코르 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거리 공연들로 축제 기간 내내 의정부는 공연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


15회를 맞는 의정부음악극축제의 주제는 ‘아트 앤 휴머니티’이다. 산업사회와 기계문명의 발달로 점점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축제 동안 실내 초청작 7편, 야외 초청작 11편, 자유참가작 22편이 공연되고, 이외에도 개막작인 블라디미르 판코프의 <더 워>와 폐막작인 영국 게코시어터의 최신작 <미싱(Missing)>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프리렉쳐와 아티스트 토크가 펼쳐진다. 프리렉쳐에서는 공연에 앞서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가 두 작품과 밀접한 ‘예술과 전쟁’, ‘현대인의 결핍’이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게코시어터의 독특한 창작 과정과 움직임에 관한 연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워크숍이 축제 기간 중 유료 강좌로 진행되며, ‘오늘 우리는 왜 공연예술축제에서 휴머니티를 말하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펼쳐진다. 이번 의정부음악극축제는 더욱 다채로워진 공연들로 다양한 음악극의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자리이면서, 점점 실종되어가는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푸르른 5월 의정부는 다양한 음악극의 매력으로 넘쳐날 것이다. https://www.umtf.or.kr



15회 의정부음악극축제,  추천작 세 편 


개막작 <더 워>                                                                                                       

(5월 13일 오후 8시, 14일 오후 5시)





의정부음악극축제 개막작으로 소개되는 <더 워(The War)>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에딘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체호프 페스티벌에서 공동 기획한 작품이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측과 체호프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었던 발레리 샤드린은 이 작품을 러시아의 떠오르는 연출가 블라디미르 판코프에게 맡겼다. <더 워>는 1차 세계대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지만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전쟁’ 그 자체를 소재로 삼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또 다른 전쟁이 지구 상 어딘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과거에도 한순간도 전쟁이 멈춘 적이 없었다. 그래서 판코프는 “전쟁이라는 주제는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연관이 있다, 그런 면에서 마치 ‘죽음’이란 주제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더 워>는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1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한 영국 작가 리처드 올링턴의 『영웅의 죽음』을 인용하면서 전쟁의 본질적인 얼굴을 들여다본다.


때는 1913년 프랑스 파리, 영국인 화가 조지와 그의 아내 벳시, 러시아의 시인 블라디미르와 니콜라이, 블라디미르의 아내 안나, 그리고 각국의 예술가들이 모여 파티를 연다. 이들에게 가장 뜨거운 주제는 ‘전쟁’이다. 많은 이들이 전쟁은 최악의 재앙이라고 말하지만, 니콜라이는 전쟁이 구태의 사상을 휩쓸어버리고 새로운 사상을 자리 잡게 하는 불길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논쟁은 뜨겁지만 실질적인 전쟁과는 거리가 먼 관념적인 이야기들이다. 왜냐면 누구도 전쟁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 전쟁에 참전했던 조지는 사망하게 된다. 블라디미르는 이 소식을 접하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안나는 유명한 신경정신과 의사의 제안으로 조지의 가족들과 트로이전쟁의 상황극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블라디미르를 치료하려 한다. 상황극을 통해 조지가 전쟁에서 겪어야 했던 상처와 아픔, 그리고 동료에 대한 인간애를 경험하게 된다. 2천5백 년 전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에서 그려냈던 전쟁이 개인에게 주는 아픔과 상처가 1차 세계대전 중의 조지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시간은 흐르고 전쟁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지만 전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판코프는 전쟁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서사에 의존하지 않고, 라이브 음악과 시와 노래,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는 사운드라마(Soundrama)라고 알려진 새로운 연극 기법을 실험하는 연출로 유명하다. ‘사운드라마’란 연극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형태의 장르를 시도하려는 실험이자, 이러한 실험을 하기 위해 뜻이 맞은 아티스트와 만든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판코프는 <더 워>에서 사운드라마 방식으로 ‘전쟁의 소리를 재창조’하려고 한다. 악기의 연주와 시를 읽는 육성이 섞이고 다친 병사의 비명 소리가 하나의 악기처럼 각각의 노래를 하고 ‘전쟁’이라는 소리를 완성한다. 이러한 목적을 둔 <더 워>는 관념적이고 이미지적이며, 지금까지 보아온 연극과는 결을 달리한다.



고대부터 근대, 현대까지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전쟁의 본질을 판코프는 어떤 소리로 관객들의 가슴속에서 울리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어떤 소리이든 이제까지의 관극과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폐막작                                                                                                        

(5월 21일, 22일 오후 5시)





이번 의정부음악극축제가 폐막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영국 피지컬 극단 게코시어터의 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릴리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유지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래된 작은 상자를 들여다보던 그녀는 기억 속에 봉인되었던 다양한 추억들을 만나게 된다. 기억이라는 시간은 단선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균일한 속도로 흐르지도 않는다. 시간과 시간을 건너뛰기도 하고, 같은 시간대에서도 속도의 흐름이 다르다. 때로 그것은 반복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한다. 은 릴리의 기억 속으로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이다. 기억처럼 극은 갑자기 쑥 들어왔다가 천천히 머무르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가 하면 빨라졌다가 느려진다. 기억이라는 시간의 특징을 은 배우들의 몸과 음향, 그리고 간단한 오브제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표현한다. 옛날 TV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각 프레임은 에서 매우 중요한 오브제이다. 다양한 사각 프레임 속에 보이는 기억들은 따듯한 온기를 담고 있다. 반투명한 프레임 안에서 제멋대로 유영하는 손전등 불빛은 기억의 공간을 신비롭게 만든다. 이처럼 은 기억이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배우들의 몸과 음악 그리고 오브제를 이용해 시적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오브제는 인형이다. 릴리의 기억 속에서 발견한 허전함의 정체. 릴리의 기억 저편에 묻어 있던 소중한 시간의 파편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뭉클한 감동으로 박혀 자신들의 기억을 헤집게 만들지도 모른다.



<바람구두를 신은 두 남자>                                                    

 (5월 17일 오후 2시, 8시)





동물 쇼, 기상천외한 묘기로 대변되던 서커스는 20세기 뉴 서커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름다움을 추가해 종합 퍼포먼스로 영역을 넓혔다. 솔라스 데 벤토(Solas de Vento)의 <바람구두를 신은 두 남자>는 여기에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 서커스의 영역을 더 확장시킨다.


배경은 공항이다. 출국이 금지되고 공항에 갇혀버린 서로 다른 문화의 두 사람이 처음에는 경계하지만 서서히 친밀해진다. 무수한 사람들이 세계 각지로 오가는 공항은 빈 무대로 표현된다. 그곳에는 자신들의 여행 가방에 의지해 지탱하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여행 가방은 공중에 매달린 그네의 받침으로 그들의 존재를 떠받치는 유일한 도구이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두 남자는 지상에 있으되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유목민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그들은 낯선 환경 속에 상대를 경계하다가 그 공간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상대에게 마음을 연다. 가방과 줄, 청소 도구 등 익숙한 물건들을 이용한 퍼포먼스는 쇼보다는 극에 가깝다. <바람구두를 신은 두 남자>는 서커스라는 장르로 한정하기에는 굉장히 연극적이고 무용적이다. 다양한 요소가 혼합된 이 작품은 두 사람이 겪는 만남, 갈등, 모험, 우정을 유쾌하고 독창적인 색깔로 만들어낸다.


프랑스 출신의 브루노 루돌프와 브라질 출신의 리카르도 로드리게즈가 만나 2007년 탄생시킨 <바람구두를 신은 두 남자>는 뮌헨,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축제에 참가했고, 2014년에는 브라질의 38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 하는 등 세계 각지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2호 2016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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