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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맨 오브 라만차> 산초 [No.110]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2-11-20 4,264

 

당신이 본 세상을  저도 보고 싶어요

 

산초 씨의 여행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겠지요. 누구와 함께든 더 많은 세상을 보기 위한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산초를 연기한 배우 이훈진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알론조 씨와 여행을 다녀오셨다고요? 그분과는 어떤 사이셨어요?
존엄하신 숙녀님, 안녕하세요. 저는 라만차에 살고 있는 산초 판자라고 합니다. 저는 와이프가 시키는 대로 소처럼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저희 집에 찾아오셨어요. 우린 오랜 이웃이긴 하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분은 이 동네 지주시고, 저는 그분 댁에 일이 있을 때 도와주러 간 적이 몇 번 있는 정도였으니까요. 불쑥 함께 길을 떠날 시종이 필요하다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시데요. 그래서 함께 갔죠.


아니, 그냥 흔쾌히 따라나섰단 말인가요?
나중에 땅도 주고 재산도 일부 떼어주시려나 솔깃했지만, 사실 그것보단 현실 도피, 지금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제 와이프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에요. 아, 진짜, 밭일이랑 가축 관리, 집 안 청소랑 허드렛일 등등 일이 너무 많고요. 그걸 다 못하면 와이프한테 엄청 맞거든요. 물론, 와이프가 저를 싫어해서 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뭔가 잘못을 하나 봐요, 으흐. 아무튼 맞다 맞다 지쳐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알론조 씨는 그 여행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굉장히 광대하게 말씀하셨어요. ‘무서운 일도 있을 거고, 즐거운 일도 있을 거다, 네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거’라고요. 제가 여태껏 살면서 본 게 별로 많지 않아요. 늘 같은 모습이었죠. 그러니까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될 거라는 말에 흥분이 됐어요. 흐흐. 하지만 곧바로 떠날 수는 없었어요. 무서운 사람이 제 뒤에 있으니까, 몰래 떠날 준비를 할 수 있게 시간을 달라고 했죠. 으, 제가 아내한테 떠난다고 말했다면 골방에 가둬놓고 몇 날 며칠을 때렸을 거예요. 다리를 부러뜨리든가요. 크흣.


그래서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몰래몰래 짐을 조금씩 챙겼어요. 옷가지랑 덮을 것, 간식거리를 쌌어요. 배고프면 안 되니까요. 제가 집을 떠나고 나서 한동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될 만큼, 집안일도 미리 다 해뒀고요. 그래야 와이프가 기분 좋게 잠들었을 때 몰래 빠져나올 수 있죠. 흐흐.


알론조 씨도 여행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오셨고요?
아, 그게 범상치 않았어요. 늘 뵙던 모습이 아니었고요. 갑옷이랑 창, 칼, 투구, 뭐 이런 걸 착용하고 계셔서, 이분이 그분 맞나 싶었죠. 그런데 그 모습 때문에 더 흥분됐어요! 제 것은 없냐고 여쭸더니, 시종은 갑옷 입는 거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싸움은 내가 할 테니까, 넌 내가 싸울 수 있게 돕거라’ 하셨어요. 저는 말로 싸웠다고 할 수 있죠. 주인님이 적에게 결투를 신청할 때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제가 해야 할 말들을 알려주고 외우라고 하셨어요. ‘존엄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요런 문구랑, 상대방을 약 올리는 말들 있죠. ‘니 엄마가 너 낳기 전에 미역국은 드셨더냐, 이 좀팽이 같은 놈아!’ 아, 이건 아닌가? 아무튼 습득하라고 적어주신 게 있었는데 금세 다 잊어버리고, 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죠. 흐흐.

 

막상 여행을 떠나보니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로웠나요?

제일 흥미로운 건, 주인님의 행동이었어요. 늘 제가 보았던 길인데 주인님은 영광의 대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한 번은  풍차랑 싸운 적도 있어요. 누가 봐도 풍찬데 암흑의 괴물이라며, 그와 싸워서 이겨야만 이곳을 지나갈 수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유, 만신창이가 되셨죠. 창도 찌그러지고 갑옷도 여기저기 뚫리고. 그런데도 끝까지 싸우곤 이겼다고 하시더라고요. 풍차는 그대로였거든요. 그래도 주인님이 이겼다면 이긴 거겠죠. 흐흐. 주인님은 제가 보는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셨는데, 마음을 열면 제게도 보일 거라고 하셨어요. 마음을 어떻게 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열어보려고 노력했어요.

 

또 여행 중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 어떤 성에서 숙녀를 한 분 만났어요. 그분은 다른 이름을 말했지만, 주인님은 꼭 둘시네아라고 부르셨죠. 그 숙녀 분은 주인님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주인님은 다 안다며 계속 쫓아다니셨어요. 솔직히 조금 민망하기도 했어요. 주인님이 늙어서 왜 저렇게 주책이실까. 하지만 한편으론 같은 남자로서 이해가 됐죠. 저는 그냥 주인님을 편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알론조 씨를 정신 나간 노인으로 취급할 땐 속상했을 텐데요.
주인님이 저를 설득시킨 것처럼, 저도 그분들께 이야기했죠. 아직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게 있다고요. 그럼 저도 같이 미친놈 취급받았죠, 뭐. 크흣. 하지만 그들도 나중엔 우리를 이해하고, 그때 몰랐던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믿어요.


많은 사람들이 묻잖아요. 왜 그와 함께 다니냐고요.
몰라요. 제가 바라는 건 없어요. 그냥 그분과 있으면 좋아요. 재밌고요. 우리 여행도 어떻게 풀리든 상관없었어요. 흐흣.

 

그런데 알론조 씨가 쓰러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빨리 여행을 끝내게 됐잖아요. 속상하셨죠?

아, 그러게요. 너무 무서웠어요. 까, 어쩌고 하는, 조카딸의 약혼자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게 됐는데요.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실 거라고 믿었어요. 전 집에 와서 와이프한테 무진장 맞았고요. 엄청 화가 났는지 울면서 절 때렸는데 이상하게 아프지가 않더라고요. 살살 때린 건지, 그새 주먹이 약해진 건지. 암튼, 언제고 다시 여행을 떠나려고 또 몰래 짐을 챙겨 놨는데, 꽤 오랫동안 못 일어나셨어요. 그러다 하루는 제가 겨우 그분을 뵈러 갔는데, 여행 때 만났던 둘시네아 님이 오신 거예요. 아유, 엄청 울고 가셨어요. 가정부는 못 들어오게 막고 까라스코는 막 집어 던지려고 하고, 분위기 살벌했죠. 그런데 딱 그때 주인님이 깨어나셨어요. 둘시네아 님이 우리가 만났던 이야기를 엄청 많이 계속 해드렸는데, 주인님은 기억을 못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둘시네아 님이 쫓겨나기 직전에 갑자기 정신이 드셨는지, 더 이야기해보라며 일어나 앉고 조금 걷기도 하셨어요. 그러곤 바로 돌아가셨어요. 무척 슬펐지만, 다행히 저희의 여행을 기억하셨죠. 아마 그분은, 여기 어딘가 저희 곁에 계실 거예요. 그렇게 믿어요.

 

그 여행을 다녀와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뭔가요?
딱히 잃은 건…, 잃은 건 주인님이죠. 얻은 건 많아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얻은 건 분명 많아요. 주인님은 늘 꿈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사랑을 믿고 정의를 위해 싸우며, 별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꿈도 이뤄질 거라고, 알듯 모를 듯한 말씀만 하셨죠.


그렇다면 알론조 씨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아 있나요?
아뇨.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걸 이해하고 계셨던 분, 제가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에요. 제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저 스스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다보면, 저도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0호 2012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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