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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혼돈과 방황의 끝 자락, <사춘기> [No.70]

글 |김유경(객원기자) 사진제공 |월간객석 2009-07-16 5,697

 

독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사춘기(The Awakening of Spring)>를 원작으로 하는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베데킨트의 원작은 1890년 무렵의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성에 대한 충동과 그에 대한 학교 교육과 성인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하는 청소년 비극이다. 원작을 모티브로 삼아 창작뮤지컬 <사춘기> (연출 김운기, 대본/가사 이희준, 작곡 박정아)는 청소년들의 입시고민, 가족 내 불화, 인터넷 중독 등의 문제를 한국사회로 이식하여 보다 더 공감되는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막이 오르고 이야기는 한 남자 고등학교의 교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시험날 전학을 오게 된 영민은 콧대 높고 건방지다. 하지만 보란 듯이 전교 수석을 하게 되며, 소심한 선규는 그런 영민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백댄서가 꿈인 선규는 춤을 추고 싶어 하지만, 직업 군인인 아버지는 선규가 육사에 진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선규에게 영민은 부정행위의 방법과 정당성을 다룬 비공개 블로그 ‘메피스토’를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자살사이트 ‘쇼펜하우어’도 소개한다. 한편, 자원봉사와 교회 다니기에 열심인 모범생 수희는 영민에게 이끌려 충동적으로 관계를 갖게 되고 임신을 하게 된다. 영민은 알고 보니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낳은 자식이며 같이 살고 있는 어머니는 겉은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영민이 죽기를 바라는 이중인격자다. 이러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영민의 염세적이고 시니컬한 성격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선규는 영민의 블로그에서 익힌 대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다가 적발되어 무기정학을 당하게 되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비극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자신만만하지만 실은 부서지기 쉬운 순결한 영혼을 간직한 청소년들의 위태로운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 뮤지컬 <사춘기>에서, 음악은 그들의 이야기를 한층 더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도입부의 ‘시험’에서는 신나는 비트와 랩이 어우러져 남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을 전달하고 있지만 시험날을 지옥으로 비유하는 가사는 입시의 고통을 안고 사는 그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아무 욕심 없어요’는 수희의 솔로로 시작되는데, 가스펠 같은 느낌을 풍기는 초반의 멜로디는 수희의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영민과 수희가 함께 부르는 ‘그레첸’은 비장한 분위기의 곡으로, 파우스트에 등장했던 지고 지순한 소녀 그레첸이 그랬듯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수희의 상황을 암시한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사춘기>의 대표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억에 남는 후렴구가 이 곡을 뇌리에 각인되도록 해주며 극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극과 극 사이에 적절히 삽입되어 공연의 통일성을 지탱해 준다.

 

배우들의 열연을 더욱 가깝게 체험할 수 있는 ‘ㄷ’자 형의 무대는 삼면이 개방되어 있다. 무대는 텅 비어 있으며 간혹 등장하는 의자나 작은 소품들이 전부이다. 대신 뒷면의 벽이 무대 세트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영상과 조명을 이용하여 각종 효과를 연출한다. 거대한 인터넷상의 화면이 되어 주인공을 위압하기도 하고 남학생들이 일탈을 일삼는 후미진 골목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심플한 영상으로 흔들리는 지하철 문을 표현한 것은 일품이다. 여백이 많은 무대 위를 꽉 채우는 것은 강렬한 안무(안무 오재익)이다. 청소년들의 불안한 심리상태나 혼돈을 몸짓으로 재현하여 인상적인 움직임을 많이 만들어 냈으나, 원형의 구도로 이루어지는 안무가 잦았던 점은 아쉬웠다.

 

 

극을 이끌어 가며 주변의 친구들을 자살에 이르게까지 하는 캐릭터인 영민은 배우 ‘오승준’이 연기했다. ‘영민’은 겉으로는 반항적이지만 내면으로는 외로움을 간직한 입체적인 인물이었는데 오승준은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내며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선규’ 라는 캐릭터는 소심한 인물이고 나약한 마음에 자살을 하기에 이르는데, 캐릭터 자체가 발랄한 면이 더 부각되었고 자살하기까지의 감정 상태가 불연속적이어서 그 인물의 상황에 몰입을 하기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다. 초연 때는 여배우 1인이 모든 여성 캐릭터를 연기했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수희와 그 외의 여성 캐릭터를 분리해 2명의 여배우가 연기하여 인물을 표현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다.

 

창작뮤지컬 <사춘기>는 주제 의식, 스토리, 음악, 안무, 무대 등이 균형 있게 공들여 제작된 작품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천편일률적인 창작뮤지컬이 범람하는 가운데,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겪었던 질풍 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소재로 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낸 치열함이 돋보이는 창작품이다. 물론 참신한 소재를 다루거나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하여 무조건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창작뮤지컬 <사춘기>는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선명하고, 작품의 모든 요소가 통일성 있게 한 극점으로 모아지고 있어 공연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바가 비교적 명확하다.

 

세상의 모든 금기를 깨고 싶어하는 시기이며 하룻밤의 축제나 악몽 같았던, 영원히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은 긴 터널과 같은 ‘사춘기’였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법으로 그 시기를 겪어내고 또 이겨내었다. 그러나 <사춘기>의 영민, 선규, 수희를 만나면서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금새 망각해 버리고 만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 그들이 한없이 가여워 보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지금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면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볼 수 있게 하는 <사춘기>. 뚝심 있게 롱런 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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