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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콘보이쇼-아톰> 연극의 진지함과 콘서트의 흥겨움 사이에서 [No.89]

글|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콘보이하우스코리아 2011-02-07 5,152

공연을 보기 전에 그 공연을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먼저 듣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미가 있네 없네, 배우가 잘하네 못하네, 음악 하나는 끝내주네 등등. 이런 이야기가 하도 많고 생생해서 그 말만 들어도 마치 공연 한 편을 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사람들이 공통되게 이야기하는 말에는 대부분 일리가 있다. 재미있다는 공연을 보면 진짜 재미있고, 배우가 잘한다는 공연을 보면 정말 배우만 보인다. 관객들이 한두 마디씩 던지는 감각의 논평은,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략 정확하고 가차 없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런 관객들이 <콘보이쇼-아톰>에 대해서는 조금씩 말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정말 신나는 쇼라 하고, 어떤 이들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엔 좀 독특한 공연이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골 때리는 공연’이라고도 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공연이라는 점에는 일치하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들이 하는 말이 조금씩 다르다면 그것은 이 공연이 흥미롭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게다. <콘보이쇼-아톰>은 도대체 어떤 공연이길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배우들의 넘치는 에너지이다. 1986년 공연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일본의 신화적인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콘보이쇼-아톰>은 대단한 퍼포먼스의 공력을 품고 있었다. 예닐곱 명의 남자 배우들이 제이팝에 맞춰 뿜어내는 춤의 에너지는 다른 어떤 공연의 앙상블보다도 밀도가 높아서, 마치 아이돌 그룹의 팝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에너지는 공연이 이어지는 두 시간 내내 소진되지 않고 공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넉넉히 이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을 채 잇기도 전에 무대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등 철학자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부조리극의 대사처럼 읊조리기 시작하는 거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등등. 게다가 주인공들의 이름이 플라톤이니 칸트니 다윈이니 대강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철학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가?    


언뜻 보기엔 그런 것 같아 보인다. 공장의 굴뚝연기 너머로 떠가는 구름을 보며 사노라니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인간답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시로 읊조리며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의 대사는 철학자들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도 꽤나 진지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뭔가 신나는 공연을 기대하고 온 관객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만큼 이들의 고민은 관념적인 연극의 언어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콘보이쇼-아톰>은 춤을 향한 열정만큼이나 진지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공연이다. 생각해보시라. 시를 읽는 몽상가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런 진지함의 젖줄이 철학에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들의 이름은 약간의 허세가 섞인 과대한 작명일 뿐 플라톤이 플라톤 이야기 안 하고 칸트가 칸트 이야기 안 한다. 가끔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야기나 다윈의 진화론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그건 상식선에서 오갈 수 있는 이야기일 뿐 이들의 철학과 이념과는 깊게 상관없으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콘보이쇼-아톰>의 진지함은 오히려 그네들의 대중 예술 전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할 거다. 이 작품의 부제가 그걸 말해준다. 주인공들은 이야기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가의 문제를. 이건 분명 철학의 문제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플라톤도 아니요 칸트도 아닌,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심성을 가진 조그만 꼬마 로봇 아톰이다. 패전 이후 패배감과 자괴감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에게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희망을 이야기했던 주인공은 위대한 철학자가 아닌 만화 속의 주인공 아톰이었다. 일본 만화의 대가 테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은 그 이후 세대의 작품에 이런 진지한 사유의 전통을 물려주었다. 그래서 일본의 애니메이션에는 공통되게 흐르는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다움’을 향한 문제의식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공각기동대>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서, 어렸을 때 TV에서 봤던 일본 만화 영화의 주제도 다 그랬다.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요괴인간>의 뱀, 베라, 베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 우주를 끝없이 여행하는 <은하철도 999>의 철이. 그리고 문명이 파괴한 자연의 땅에서 생명의 힘을 회복하고자 하는 <미래소년 코난>의 이야기까지. 이들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은 음울하고 황폐한 세상 속에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를 꿈꾼 친구들이다. 만화 영화는 친근한 방식으로 삶을 향한 진지한 질문을 숱하게 던지고 있었던 셈이다. <콘보이쇼-아톰>의 세계관은 이러한 연계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이런 세계관이 형식을 압도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극의 흐름은 어느 정도 만화의 황당무계함과 통하는 면이 있다. 친구가 되겠다고 찾아온 녀석이 갑자기 폭탄 인질극을 벌이는 것이나, 그 인질극 해결하느라 옛날 드라마 수사반장 분위기로 극이 흘러가는 것도 그렇고, 느닷없는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도 뜬금없긴 매한가지다. 이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이다.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작은 단서 하나로 다음 이야기가 비약적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마치 연상 게임을 보는 것 같다. 이야기가 이어지는가 싶으면 어느덧 재즈댄스가 펼쳐지고, 춤의 유려함과 흥겨움에 익숙해질 즈음에 느닷없이 시를 읊어대며, 시를 듣는 것에 귀를 기울일라치면 노래를 불러 제낀다. 이건 연극으로 치면 부조리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부조리 뮤지컬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콘보이쇼-아톰>의 독특함은 바로 이런 틀거지이다. <콘보이쇼-아톰>이라는 브랜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연극적인 것과 쇼의 특징을 공존시킬 수 있고, 만화적인 상상력과 인문학적인 몽상을 맘껏 부려놓을 수 있는 열린 틀거지인 것이다. 이야기의 논리나 장르의 일관성과 상관없이 소재와 주제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신이 말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블록 맞추기 하듯이 뚝딱뚝딱 조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콘보이쇼-아톰>의 놀이성은 관객의 것이라기보다는 만드는 이의 것이라고 보는 게 더 맞겠다. 만드는 사람이 가벼운 놀이를 향한 진지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때에야 이것은 비로소 관객의 놀이가 될 터이다.

 


그런 놀이가 되기에 이번 <콘보이쇼-아톰>은 어딘지 좀 무거워 보인다. 진지함과 가벼움의 층위를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는 오히려 진지함에 더 경도돼 보였고, 그러다 보니 농담과 진담의 무게가 같아져서 분위기 넘나들기의 경쾌함이 살아나지 못했다. 이건 배우들의 역량 때문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연출의 경향 때문인 것 같다. 특히나 2막에 해당하는 극 후반부, 그러니까 일곱 명의 주인공들이 차례차례 자신의 시를 읽고 그것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부분에서 보이는 나열식의 평면적인 연출은 <콘보이쇼-아톰>이 표방하는 역동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질감의 한국 노래가 삽입된 것도 한국적인 것을 넣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처럼 느껴졌다. 굳이 한국적이어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을뿐더러, 사실 이 공연을 보는 젊은 세대들은 그 노래에 그렇게 동질감을 느끼진 않는데.


그래도 <콘보이쇼-아톰>이라는 틀거지는 여전히 흥미롭다. 춤이라는 몸짓과 노래라는 소리 이전에 시의 언어로 침잠하는 의외성이 그렇고, 그러한 사유를 상상력과 에너지의 만남으로 구체화하는 순발력이 그렇다. <콘보이쇼-아톰>은 잡스러움과 가벼움이 미학적으로 추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가벼움이 곧 <콘보이쇼-아톰>의 무게감일 게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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