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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날아라, 박씨!> 홍륜희, 이제 그녀가 비상할 때 [No.113]

글 |박병성 사진 |김호근 2013-02-13 5,552


배우 홍륜희와 인터뷰를 했다. 혼란스러웠다.
인터뷰를 하기 전보다 더 아리송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대답이 모호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명쾌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도 모호한 느낌을 줬다. 뭐였을까?
10년 만에 <날아라, 박씨!>의 오여주 역으로
첫 주인공을 맡는 홍륜희를 만났다.

 

 

                        

 

 

마음을 비울 줄 아는 배우  

 

홍륜희는 여느 배우보다도 자신의 장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운동 신경이 좋다.’, ‘연출도 인정한 움직임이다.’, ‘안무가가 나한테는 신경 쓰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고 이것은 그녀 스스로 말한 ‘잘난 척’이다. 이렇게 대놓고 자기 자랑을 했던 홍륜희지만 자신감은 없다. 이미지 좋고, 몸 쓸 줄 알고, 노래 잘하는 홍륜희가 이제야 작품의 주인공을 맡게 된 것은 배역에 대한 욕심, 또는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홍륜희는 <날아라, 박씨!>에서 데뷔 10년 만에 오여주 역으로 첫 주인공을 맡았다. 주인공을 맡는 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날아라, 박씨!> 초연 때부터 주인공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 장미 역을 하겠다고 했다. “제가 감히 욕심 부릴 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나 말고 더 잘하는 사람이 했으면, 나는 아직… 하는 마음이었죠.” 수줍어하는 내용이지만 이 말을 굉장히 씩씩하게 했다.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자만할 것을 지나치게 경계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낮춘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쩌면 그것은 공연을 극단에서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홍륜희는 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우연히 교수님의 추천으로 뮤지컬 <나무를 심은 사람>에 출연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극단 유의 단원이 된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4시까지 합기도, 한국무용, 현대무용, 보컬, 화술, 타악까지 다양한 배우 교육을 받았다. 연극 극단에서 기초를 탄탄히 다진 까닭인지 공연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앙상블을 하든 뭘 하든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해요. 다음 작품을 정해놓고 공연해 본 적이 없어요. 배우로서 제가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딱 그 역할만큼 한다. 과하거나 덜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배우들은 생리적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자신이 돋보이길 원한다. 그런데 홍륜희는 천성인지, 학습의 결과인지 그런 배우로서의 돋보이고 싶은 욕심이 거세됐다.


‘거세’라는 다소 무식한 용어를 쓴 이유는 의식적으로 그런 욕심을 자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홍륜희는 초등학교 시절 전학생 신고로 노래 한 번 부른 것을 계기로 노래 대회에 나가고, 중학교 때는 친구들의 권유로 겨우 몇 달 연습해서 선화예고에 들어갈 정도로 노래 실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자신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잘한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고등학교 때 콩쿠르에서 상을 받기 시작하면서 ‘아, 내가 재능이 있나 보구나’, 했다고 한다. 음악성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재능이다. 어머니가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형편 때문에 하지 못하셨던 걸 딸이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이 노래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25년 동안 기도해왔지만 부담이 될까 숨겼다. 지금도 딸의 공연은 몇 번 반복해서 보시지만 칭찬은 인색하다. 자만하지 말라는 배려이다. 이런 환경이 그녀를 자중하게 한 것은 아닐까.

 

 

  

 

 

서서히 성장하는 배우  

10년 차, 적지 않은 배우 경력이다. 극단 유와 일본 극단 시키에서도 6개월간 트레이닝을 받아 기본기도 탄탄하다. <라디오 스타>의 강피디, <천국의 눈물>의 쿠엔, <달콤한 나의 도시>의 유희,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난넬, <왕세자 습격사건>의 중전 등 꽤 많은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들을 맡아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직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업계에서 그녀와 작업을 한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맡겨도 훌륭히 해내는 믿음직한 배우로 인정하지만, 한편 그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겐 신인 배우의 이미지를 준다. 그녀가 주로 조역이나 단역으로 출연해왔고,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매번 다른 성격의 배역을 맡아 고정된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건 의도적인 선택이에요. 앞선 작품과 가급적 다른 느낌의 역할을 선택해왔어요. 같은 역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공연을 참 많이 보러 다니는데요. 여기서 본 배우가 저기서도 같은 연기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건 경계해야겠다 싶어요.”


그래서 그녀는 같은 작품에 출연을 해도 다른 역할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순영과 강피디로 출연했고, <날아라, 박씨!>는 칼롯타A, 장미, 그리고 이번에 주인공 오여주 역까지 세 배역을 맡았다. 보통 그 배우의 이미지나 특성 때문에 한 작품에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캐릭터가 있기 마련인데, 그녀는 어떤 배역이든 담아낼 수 있는 여백이 있다. 그녀는 욕심 내지 않았지만 같은 작품에서도 점점 비중 있는 배역으로 옮겨갔다. 그만큼 작품 내에서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강하고 화려해서 까탈스러울 것 같지만 별명이 ‘부녀회장’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편하게 다가가는 재능이 있다. 또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미지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바른 배우이다. 무대에 올라갈 때는 조용히 정신 집중을 해야 하고, 작품도 열심히 챙겨 보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얼마 전 일본 여행을 다녀오느라 4일 동안 노래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실력이 줄더라고요. 처음 알았어요. 겨우 4일만 안 해도 실력이 준다는 걸.” 그럼 지금까지 4일 정도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게 처음인가요? 언제부터? “음. 중학교 3학년 입시 준비할 때부터. 성대 결절 걸린 대학교 1년을 빼면요.”


가끔 유명세로 주인공을 맡는 배우들을 보면 서운하기도 하지만 홍륜희는 인기를 얻거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애쓰지는 않는다. 그저 노래만 할 수 있어도 행복하니까. 자신이 애쓰지 않아도 이제는 제작자가 그녀를 작은 역할에 쓰지는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점점 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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