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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시대를 초월하는 거슈윈의 음악 <포기와 베스> PORGY & BESS [No.102]

글 |정예경 (뉴욕 통신원) 사진 |Michael J. Lutch 2012-03-20 4,807

<포기와 베스>가 브로드웨이에 상륙했다. 1935년 작으로, 근 80년 가까이 되어가는 작품인데도 리바이벌되어 공연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80여 년 전에 쓰여진 선율과 장면에 대한 음악적 묘사가 어찌 저리 세련될 수 있는지 음악의 생명력과 작품성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마약과 도박, 살인의 자극적인 소재 3종 세트가 들어가 있으니,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이 극이 창작되었을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이고 이슈도 많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당시 남부 흑인 사회의 생활상을 잘 나타내주었다’는 평을 보고 꽤 놀랐더랬다.

 

 

 

순수한 포기와 알 수 없는 베스의 러브 스토리
막이 오르자마자, ‘서머타임’을 부르며 아기를 달래는 클라라. 이 처량한 자장가로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예측할 수 있다. 바닷가 마을, 캣피시 로 광장의 저녁. 가난한 흑인 어부들과 노동자 여러 명이 모여 놀음을 하고 있다. 그중, 험상궂은 크라운과, 야한 옷을 입은 그의 애인 베스, 그리고 그녀를 호시탐탐 노리는 마약쟁이 스포팅 라이프도 끼어있다. 도박판에서 싸움이 나자, 크라운은 사람을 죽이고 도망친다.


크라운이 도망친 후, 혼자 남은 베스는 평소 정숙하지 못했던 행실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에게 외면 받는다. 그때, 다리는 불편해도 마음은 착한 포기가 그녀를 거두어 같이 살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베스는 새 사람이 되어 포기를 돌보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한 새 삶을 꾸려나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야유회를 떠났던 베스가 모자를 찾느라 뒤처졌을 때, 크라운이 불쑥 나타난다. 그녀는 그를 거부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한데 뒤엉켜버린다. 밤이 지나, 만신창이가 된 베스가 포기의 집으로 돌아온 후, 고열에 시달리다가 깨어난다. 모든 걸 알면서도 용서하는 포기에게, 그녀는 다시 크라운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포기는 자신의 강한 사랑을 노래하며 베스를 설득한다.


한편,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친다. 클라라는 남편을 구해야 한다며 아기를 두고 폭풍우 속에 뛰어든다. 그때, 크라운이 나타나 클라라를 구조한 후 베스를 데려갈 것이라 공언해버리고 다시 폭풍우 속으로 뛰어든다. 시간이 흘러, 폭풍우가 잠잠해지고 마을 사람들은 폭풍우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그런데 크라운이 살아 돌아와 포기와 격투를 벌인다. 포기는 크라운을 죽이고, ‘베스는 이제 나의 여자!’라며 포효한다. 사람들은 모두 포기를 감싸주지만, 경찰관들은 포기를 용의자로 지목하여 데려간다. 포기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란 생각으로 겁에 질린 베스. 그런 그녀에게 접근하는 스포팅 라이프는 마약을 주며, 화려한 뉴욕으로 함께 떠나자고 유혹한다.


며칠 후 경찰에게서 풀려나 집에 돌아온 포기는 베스를 찾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스포팅 라이프를 따라 떠났다는 사실을 얘기해준다. 포기는 다시 베스를 찾아올 것이란 결의를 다지며 역시 뉴욕으로 떠난다.

 

 

뮤지컬 극장에서 개막한 오페라 <포기와 베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앞서 가던 사람들이 말했다. ‘이거 뮤지컬 아니지’, ‘응. 오페라네’, ‘근데 왜 브로드웨이에서 해?’ 이번에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포기와 베스>는 뮤지컬은 아니다. 거슈윈 자신도, 이 작품이 ‘아메리칸 포크 오페라’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음악과 극의 성격상 작곡가의 표현이 정확히 맞는 것 같다. 음악의 성격만 놓고 보자면, 사실상 뮤지컬과 오페라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다.

 

상당히 고전적이고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 기법, 클래시컬한 음악적 진행, 벨칸토 창법이 아니면 부르기 어려운 오페라 아리아적인 요소를 가진 넘버들로만 본다면 이 작품은 오페라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거슈윈 특유의 재즈 이디엄이 깃든 화성 진행과, 음악적인 색채가 마냥 또 클래시컬하지만은 않아서, 뮤지컬 장르에서 함께 다루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굳이 온갖 볼거리와 신나는 음악들이 가득한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것은, 관객층을 폭넓게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실 메트로폴리탄에서 대규모 오페라로 오픈하기에는 규모가 역부족인 이유도 있다. 무대 세트는 엔딩 장면에서 딱 한 번 움직이고, 두 시간 넘도록 한 번도 바뀌지 않는다. 볼거리로 승부하는 작품이 많은 브로드웨이에서 흔치 않은 일인데, 아예 원 세트로 갈 거면 왜 마지막엔 굳이 움직이나 싶을 정도다. 일부러 의도를 가진 상징적 무대가 아니라면, 이런 규모로는 절대 메트로폴리탄에 오페라로 올려질 수 없을 것이다.

 

 

논란이 있는 고전
이번 공연에 아무리 연출가의 해석이 많이 들어갔다고는 해도, 대본 자체가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아마도 보편적인 ‘여성상’이나 ‘사랑’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개념 사이의 괴리가 커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여성의 능력이 공정하게 평가받으며 우먼 파워가 득세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사는 필자로서는 캐릭터의 행동이 당최 이해 가지 않았다.


망나니 같은 옛 애인과 다니던 시절의 베스는 야한 옷을 입고 술을 마시며 남자들과 쉽게 어울리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망나니 크라운이 사라지자마자, 이내 자기에게 잘해 주는 포기의 집에 훌쩍 들어가 살기로 한다. 이건, 베스가 쉬운 여자라서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착한 남자 포기와 함께 살면서 그녀는 성격까지 금방 ‘조신 모드’로 돌변, 가사를 도맡아 하고 내 사랑 포기를 외치며 헌신적인 면모를 보인다. 생활력 없고 몸이 불편하지만 착하기만 한 포기를 꺼려하거나, 자존심 때문에 그의 호의를 무시하는 일말의 제스처도 없이 집에 들어오라고 손을 내미니 바로 들어가 버리고, 다음 장면에서 바로 착한 여자가 되어 동네 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를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동네 사람들이 함께 야유회에 가는데, 포기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며 소풍도 안 가겠다고 하는 ‘착한 여자 모드 베스’에게 적응이 되어갈 무렵. 소풍에서 옛 망나니 애인을 우연히 만나자, 베스는 그에게 돌아가겠다고 대답해 버린다. 물론 약간의 거절 정도는 하지만, 무대에서 그들이 이내 한데 엉켜버리는 신을 보니, 좀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포기의 집으로 돌아와 극진한 간호를 받고 깨어난 후,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포기는 그런 그녀에게 계속 자신과 함께 살자고 설득하자, 베스는 그의 품에 안겨 행복을 노래한다. 좀 더 말해보자면, 포기가 살인 혐의를 받아서 경찰서에 끌려가고, 마약쟁이 스포팅 라이프가 뉴욕에 함께 가자고 부추기자 포기가 없어진 지 3일도 안 돼서 스포팅 라이프를 따라간다.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기구한 운명이라지만, 너무 되는대로 사는 거 아닌가? 의리도 없고. 포기가 크라운을 죽인 게 누구 때문인데. 무슨 여주인공이 저렇게 팔랑팔랑 한 장의 종이처럼 가벼운 캐릭터인가? 보편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인과관계를 가진 캐릭터도 아니고, 감정이 이입되는 캐릭터도 아니고, 아예 술집 작부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동정심이 가지도 않는다.

 


토니상 수상자 오드라 맥도널드의 연기와 노래는 너무나 훌륭하다. 하지만 캐릭터가 겉돌면서 ‘그때 그때 달라요!’라고 말하는 캐릭터의 개연성 부재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티브 손드하임이 이 작품을 관람한 후, 개발 과정이 많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글을 뉴욕 타임즈에 보냈는데, 이것 때문에 극단과 언론이 모두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한정된 세트 안에서 폭풍우를 실감나게 연출해낸 신과 같은 개별적 장면들은 좋았지만 내러티브를 여실히 살려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듯싶다. 그게 아니면, 원작이 원래 지고지순한 순정을 가진 착하디착한 남자와, 예쁘기 때문에 남자가 많이 꼬여서 정황상 나쁜 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여서 중심축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던 듯도 싶다.

 

 

모든 단점을 만회한 음악
결국,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고 나서 ‘어메이징!’을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은 실력 있는 배우들의 훌륭한 노래와, 무엇보다 시간을 초월하는 천재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스코어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의 부실함과 개연성의 부족을 섬세한 스코어가 다 커버하고 있다. 모든 심리 상태, 상황이 음악으로 다 설명이 되는 바람에 마치 영화를 보는 듯했다. 특히 한 장면이 모두 음악으로 이루어진 송스루 부분들은 그 상상력과 섬세함에 너무 놀랐다.


요즘 상업 뮤지컬마냥 드럼의 기본 비트대로 음악이 흘러가지 않고, 클래식하게 완급 조절을 하며 연주를 하기 때문에 음악에 의한 감정의 강약 조절이 매우 섬세하게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음악이 꽃이 되는 극이라는 점이 참 좋다. 팝 스타일 위주의 요즘 뮤지컬 음악들은 보컬과 오케스트레이션이 사람들 귀에 많이 들리게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볼륨이 큰 곳에서 시작하여 끝까지 그대로 유지시키기 때문에 스코어 자체에 정교함과 테크닉, 섬세함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이런 극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마치 매일 3D, 4D 영화관에서 블록버스터만 보다가 <톰과 제리>에서 음악과 장면이 얼마나 훌륭하게 싱크가 되고 있는지를 느꼈을 때 생기는 놀라운 감정과 비슷했다.


빈약한 드라마를 음악이 커버해서 세기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만들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재즈 이디엄과 클래식의 테크닉이 완벽히 만나게 하는 것은, 요즘에도 궁극적으로 추구되는 음악적 미학이다. 이를 근 80년 전에 이미 이루어낸 천재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역량이 그저 부럽고 멋있을 따름이다.


문득, ‘거슈윈은 이 오페라에 만족했을까? 모자란 대본을 음악으로나마 커버해주느라 심리 상태를 설명해주는 장황한 브리지 음악을 많이 써야했던 게 억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 작업에서 능력에 차이가 나는 파트너를 만나면 한 사람이 더 고생하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그것을 공동 작업의 운명,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마냥 그럴 수만은 없는 게 사람일 텐데 어떤 불만도 있지 않았을까? 거슈윈은 작업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갑자기 궁금하다.

 

극단적인 평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에서 이 공연은 선전하고 있다. 작년 12월 말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2012년까지 연장 공연이 확정되었다. 뛰어난 히트작은 이렇듯 80년 후의 후세까지도 먹여 살린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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