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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이프/덴> IF/THEN [No.133]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4-12-01 11,914

스타 작곡가, 작가, 배우의 완벽한 조합 



<넥스트 투 노멀>의 작곡가 톰 킷과 작가 브라이언 요키가 다시 뭉쳤다. 한 여성 뉴요커의 삶과 사랑, 선택과 운명에 관한 작품이 그것인데, 주인공은 바로 <렌트>, <위키드>, <프로즌(겨울왕국)>의 주인공 아이디나 멘젤(Idina Menzel)이 연기했다. 출연진의 일부는 뉴욕 공연 시 함께 좋은 성과를 냈던 <렌트> 팀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렌트>는 명작의 반열에 들어섰고, 작품에 출연했던 많은 사람들은 멘젤을 비롯해 스타덤에 올라, 이제는 더 이상 ‘렌트’ 인생을 살지 않게 되었다. 

<이프/덴>은, 굉장히 ‘뉴욕적인’ 작품이다(‘미국적’이 아니다!). 뉴요커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고, 옆집 친구의 이야기 같다. 푸른 마녀나 용이 나오는 모험담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제일 살벌한 게 현실을 모험하는 이야기 아닌가 싶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컴퍼니>가 떠오르는 부분도 있다. <컴퍼니>는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뉴욕에 정착하고 살아남은 뉴요커 독신남의 자기 짝 찾기 여정과 외로운 뉴욕에서의 우정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옆집 남자 이야기다. 반면 <이프/덴>은 20~30대의 젊음으로 낚을 수 있었던 최선의 남자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귀결되는 데 실패하고 마흔 무렵 뉴욕으로 돌아온 여자의 이야기다.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기 인생 찾기’, ‘자신만의 진정한 행복 찾기’의 이 여정 또한 정말 현실적인 ‘옆집 여자 이야기’다.  



엘리자베스의 인생극장 인 뉴욕

도시 설계사로 일하다가 결혼과 함께 은퇴, 다른 곳으로 이주해 살던 ‘엘리자베스’. 이혼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38세의 나이로 뉴욕에 돌아온다. 오랜만에 매디슨 스퀘어 파크로 나와, 옛 친구인 유치원 선생님인 레즈비언 ‘케이트’와 지역사회조직가이자 양성애자인 ‘루카스’를 만나 회포를 푼다. 이야기는 여기서 갈라지고, 비로소 ‘If/Then’이 뜻하는 바가 드러난다. 엘리자베스가 케이트를 따라가면 ‘리즈’로 살아가며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루카스를 따라가면 안경을 쓴 커리어우먼 ‘베스’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경우를 교차해 모두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인생이란 운명인가, 아니면 선택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마치 그 옛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생극장’ 같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극에서는 모든 뮤지컬 넘버가 각각의 상황에서 중의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배치가 되어, 그 곡들을 교차점으로 주인공이 리즈와 베스로 상황을 넘나든다. 먼저 케이트와 리즈는 공원에서 만나 길거리 뮤지션의 음악을 듣다가 전쟁에서 돌아온 군의관 ‘조쉬’를 만나게 된다. 조쉬는 리즈에게 한눈에 반하지만, 뚜렷한 진전 없이 헤어진다. 그런데 우연히도 뉴욕의 지하철 안에서 리즈, 케이트, 케이트의 여자 친구 앤이 조쉬와 또 마주친다. 몇 번의 우연 후에 조쉬와 리즈는 데이트를 하게 되고, 리즈의 친구들과도 함께 만나게 된다. 그 와중에 조쉬의 친구 ‘데이빗’과 리즈의 친구 ‘루카스’는 게이 커플이 된다. 조쉬와 리즈는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사는데, 행복한 결혼 생활도 잠시, 다시 외국으로 출전 명령을 받은 조쉬는 리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났다가 전사한다. 또 한 번 인생 굴곡을 겪은 리즈는 조쉬 없이 다시 홀로서기를 하게 되며, 오랜 친구 스티븐의 제안을 받아들여 ‘도시설계사’로 일하게 된다. 

다음은 베스의 인생이다. 베스는 리즈보다 훨씬 액티브하고, ‘어쩔거야? 살아야지!’라는 식의 대범한 태도를 지닌 커리어우먼이다. 흥미로운 것은 베스의 인생에서는 인간관계의 변화에 따라, 양성애자인 루카스의 파트너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조쉬는 극 초반에 공원에서 베스를 보지만, 당시 그녀는 케이트가 아닌 루카스와 함께 있어서 조쉬는 그 두 사람이 연인이라 짐작하고 무심히 지나친다. 따라서 베스는 조쉬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되고, 조쉬의 친구인 데이빗도 만날 일이 없고, 루카스는 이 이야기에서는 동성애자로 살지 않는다. 루카스는 베스를 좋아하게 되어 그녀의 인생에서 한동안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며 베스 곁에서 보통 남자로 살아간다. 루카스와 베스는 함께 도시 개발 계획 반대 집회에 참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스는 옛 친구 ‘스티븐’을 통해 바로 그 ‘도시 개발 계획 책임자’ 자리의 직업을 얻게 된다. 이후 베스는 루카스보다도 스티븐과 가까워지게 되고 사랑으로 발전해 키스도 하지만, 스티븐은 아내가 있는 몸이라며 자리를 뜬다. 베스는 홧김에 평소에 자신을 좋아하던 루카스와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한다. 그러나 베스는 루카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홀로 낙태를 하고, 이를 알게 된 루카스는 크게 상처받아 베스와 인연을 끊는다. 

시간이 지나며, 베스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하고, 루카스 역시 주목받는 사회운동가가 된다. 스티븐은 이혼 후 뒤늦게 베스를 찾아오지만, 베스는 그를 거절한다. 이런저런 상처를 딛고 서로를 만날 준비가 된 친구들. 맨해튼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세 사람, 루카스, 케이트, 베스는 몇 년 전처럼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모인다. 그리고 방금 세 번째 출전에서 갓 돌아온 군인 조쉬가 지나가며 베스에게 커피 한잔하겠느냐 물으며 다가온다. 



뉴욕 생활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작품

작품은 전체적으로 강한 한 방은 없어도 대체로 신선하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즐거움과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삶이 주는 버거움이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을 보여주지만 결코 우울하진 않다. 오히려 다음날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매력이 있다. 특히 두 갈래의 인생 모두 정말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많은 부분이 참으로 현실적이다. 조그마한 선택이 모여 운명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나비효과 같은 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정해진 운명으로 향하는 줄거리는 왠지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보통 ‘뉴욕 맨해튼’ 하면, 화려하고 호화로운 <섹스 앤 더 시티>를 떠올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래 부자라서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일과 꿈을 찾아 가족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브루클린의 젊은 아티스트들이나, 이제 막 경력이 시작돼 매일 울음을 삼키며 애쓰는 청춘들이 모여 사는 곳이 뉴욕이다. 그런 외로운 청춘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영혼들끼리 서로 독려하기 위한 작은 파티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늘 마음에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도시, 하지만 그래서 설렘이 있는 도시. ‘I never felt at home anywhere’라는 대사는 뉴요커들이 느끼는 감정을 함축해서 말해준다. 

토끼만 한 쥐와 쥐만 한 바퀴벌레가 들끓고 냄새나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매일 러시아워를 보내지만 어느새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있다면 좋다’라는 느낌을 받는다든가, 매주 금요일 저녁 똑같은 친구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울고 웃을 때라든가, 소위 ‘뉴욕 데이트’를 하며 여러 갈래 썸을 탄다든가, 매디슨 스퀘어 파크의 뉴욕 버전 히피들과 참기 힘들 만큼 넘쳐나는 시끄러운 길거리 뮤지션들 등등 온갖 뉴욕의 풍경이 극 곳곳에 녹아들어 그걸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백그라운드부터 인물 묘사까지 디테일 하나하나가 정말 생생하게 살아있어, 뉴요커들은 데자뷔를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음악 역시 강한 한 방은 없지만 극에 잘 녹아들어 있고, 아기자기한 깨알유머도 음악적으로 곳곳에 묻어난다. 전통적인 브로드웨이식의 재즈튠이나 완전한 팝튠은 아니지만, 요즘 힙스터들의 취향에 잘 맞는 자연스러운 인디적 멜로디들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그토록 강하게 음악으로 어필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이 토니를 가져갔을지 모를 일이다. 



아이디나 멘젤의 전성시대  

이 작품에서 먼저 언급되어야 할 요소는 톰 킷도 브라이언 요키도 아닌, ‘아이디나 멘젤’이다. 이 <위키드>의 초록마녀는 <프로즌>의 엘사로 변해 ‘렛 잇 고’를 빅 히트시키고, 움츠러들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제2의 전성기를 열어놓았다. 그녀는 이제 단순한 브로드웨이 배우나 <글리>의 조연 배우가 아닌 월드 스타다. 그래서 작곡가나 작가 이름을 제일 먼저 내세우는 브로드웨이에서도 이 작품만큼은 홍보를 ‘아이디나 멘젤의 <이프/덴>’이라고 했다. 사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대극장에 걸맞은 작품이 아니다. 다소 인디적인 성격이 커서 뉴 월드 스테이지 같은 브로드웨이형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이면 적당하다. 그런데도 오로지 멘젤의 이름값을 믿고 대극장에 입성했고, 티켓 판매도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멘젤의 명성과 티켓 파워는 현재 상한가다. 그녀는 완벽한 미모와 몸매를 갖춘 금발의 여배우, 소위 ‘전형적인’ 스타의 요건을 지닌 스타가 아니다. 가정 환경과 인종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이루기 힘든 일을 이뤄냈느냐를 알 수 있다. 그러니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녀가 노력으로 이뤄낸 많은 것들은 귀감이 되고, 그녀를 롤모델로 삼는 여자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대에서 실제로 본 아이디나 멘젤은 그런 명성에 100% 부응하진 못했다. 두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 이 작품에서 그녀의 독창들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경직돼 과도하게 쓰는 콧소리와 쉰 목소리는 전체 발성과 어우러지지 않았다. 원톱 배우라고 하기엔 안정감이 부족했다. 레코딩에서는 그 특이한 목소리 톤을 잡아내고 얼마든지 부분 재녹음을 통해 베스트를 뽑아낼 수 있겠지만, 무대는 다르다. 그녀 특유의 독특한 음색은 ‘마녀’ 같은 가상의 캐릭터에는 잘 어울리지만 ‘옆집 베스’, ‘옆집 리즈’로 그려지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발성도 이 역할을 위해서는 잠시 바꿀 필요가 있었다. 

물론 멘젤은 대본과 배역 고르는 눈을 타고 났고, 운도 매우 좋다. <렌트>, <위키드>, <프로즌> 같은 작품들이 없었다면 이 작품의 그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알고 있다. 그녀의 실력은 분명히 좋지만, 그 재능 이상으로 성공한 배우라는 사실을. 

그와 별개로 아이디나 멘젤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얼마 전 엄청난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녀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와 마주하며 이런 일정들을 모두 소화해내는 데는 얼마나 많은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한국 라이선스화의 가능성

이 작품이 아이디나 멘젤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노래와 연기를 겸비한 배우가 한다면 오히려 원작보다 더 그럴듯한 작품으로 재탄생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가창력이 출중하고 이런 깊이와 밝음, 호기심 등을 과장 없이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들이 몇몇 있으니까. 한 가지 문제는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그랬듯,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워도 성과를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구심을 떨치고 이 작품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주로 젊은 남자 배우들의 이름값으로 흥행을 이어가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도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서울은 놀라우리만치 뉴욕과 많이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뉴욕은 미국인에게도 다른 나라처럼 느껴지는 곳인데, 서울 생활이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뉴욕이 아주 비슷하게 느껴질 것이다. 생활 패턴이나 라이프 스타일도 비슷해지고 있다. 점점 여성들의 목소리나 자립심도 높아지고, 여성들에게 던져지는 화두도 그런 것들이다. 영화 <싱글즈>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바람난 가족>이 처음 나왔을 때와 지금의 분위기를 비교해보면, <이프/덴>이 마냥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지지는 않을 듯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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