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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썸씽 로튼> [No.150]

글 |여지현(뉴욕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6-04-01 8,953

오직 웃음을 위해 만들어진 뮤지컬


영미 희곡의 역사는 셰익스피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치에 비해 그 개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나마 알려진 사실 역시 대부분 추측과 추론의 결과이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은 언제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다.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브로드웨이의 2014년 신작 <썸씽 로튼(Something Rotten)> 역시 셰익스피어 역사의 빈 페이지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셰익스피어가 오늘날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당시에도 사랑을 받았다면,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는 불운으로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지 못해서 생활고를 겪은 극작가가 있었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졌을까? 어떻게든 셰익스피어를 이겨보려고 무슨 수라도 쓰고 싶지 않았을까. 셰익스피어가 마치 지금의 팝스타나 아이돌들이 누리는 것 같은 대접을 받았다면,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그의 인기에 편승해서 엄청 잘난 척하는 성격이었다면? <썸씽 로튼>은 바로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뮤지컬은 르네상스의 산물이다?

상상 가능한 허구적 세계를 유머와 말장난으로 풀어낸 <썸싱 로튼>의 주인공은 셰익스피어가 아닌 닉 바텀(Bottom: 아래, 혹은 엉덩이)과 나이젤 바텀이라는 가상의 극작가 형제다. 닉은 극작에는 별로 소질이 없고, 나이젤은 어느 정도 소질은 있지만 사람 자체가 조금 어리숙한 데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국은 셰익스피어의 인기에 가려져 늘 인정도 못 받고 돈도 못 번다.


그 악순환을 타개하기 위해 어느 날 닉은 그의 부인이 모아둔 돈으로 몰래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뻘인 예언가 토마스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가 미래에 가장 인기를 끄는 공연이 뭔지 물어본다. 대사가 아닌 노래로 극을 전개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가장 인기를 끈다는 답을 얻게 된 닉은 극단에서 뮤지컬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생소한 장르가 어려웠던 닉은 다시 토마스를 찾아가 셰익스피어의 다음 히트작이 무엇인지 묻는다. 어딘지 조금 모자란 예언가 토마스는 2퍼센트 부족한 예지력으로 햄릿(Ham-let)이라는 글자를 보긴 보는데, 햄릿이 사람 이름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부분 부분 작품의 정보를 준다. 퍼즐의 조각 같은 정보를 모아 닉은 ‘Ham-let’을 H가 빠진 ‘Am-lette(오믈렛)으로 추론하고, 햄릿에서 ‘덴마크’의 형용사격으로 쓰이는 ‘Danish’라는 단어는 주로 아침에 먹는 빵의 종류인 데니시 브레드로 이해한다. 그래서 닉은 ‘아침 식사’를 소재로 해 왕자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음해 세력이 등장하는 말도 안 되는 뮤지컬 <오믈렛>을 쓰기 시작한다. 동생 나이젤은 누가 봐도 어딘가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작품을 반대하지만, 닉은 조언을 듣지 않고 강행한다. 하지만 정신 승리(?)로 만들어낸 작품은 아니나 다를까 혹평 속에 막을 내린다.


작품을 올리느라(엉터리 예언가에게 돈을 내느라) 부인이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집안의 비상금을 다 써버린 닉은 부인과 다툰다. 설상가상으로, 공연을 올리는 데에 너무 절박했던 나머지, 닉은 당시 유태인이 공식적으로 공연에 투자하는 것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애호가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모두가 생각하는 셰익스피어의 그 샤일록이다)의 돈으로 <오믈렛>을 올렸는데, 그 사실이 들통나 법정에서 참수형을 선고받는다. 다행히 닉의 똑 부러지는 부인인 비가 변호사로 변장해(당시에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지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닉의 ‘정신이상’을 이유로 그를 변호하면서 셰익스피어를 참고인으로 불러 세운다. 셰익스피어가 참수형 대신 유배를 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슈퍼스타의 등장에 감동받은 판사는 그의 말을 따라 닉을 ‘신세계’이자 ‘기회의 땅’인 미국으로 유배 보내고, 그 새로운 땅에서 닉과 나이젤, 그리고 그의 부인은 뮤지컬을 전파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맞는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연극 <햄릿>으로 엄청난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 역시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아,  그거였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기본적인 줄거리는 그렇지만, 시와 문학밖에 모르는 나이젤, 그리고 역시 시에 푹 빠져 있는 청교도 신부의 딸 포샤의 사랑 이야기와 위선 덩어리 청교도 신부 아빠에 대한 풍자를 비롯해 셰익스피어가 사실은 자신의 재능으로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 나이젤의 작품을 베낀 것이라는 암시 등(사실 <햄릿>은 나이젤이 <오믈렛> 전에 써서 닉에게 퇴짜를 맞았던 바로 그 작품이었다) 작품 전체의 웃음 코드는 말장난과 내용의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면면에 묻어있다. 예를 들면, 닉과 나이젤 바텀의 이름은 1막의 마지막, 아래였던 자신이 셰익스피어를 치고 나가겠다고 주장하는 ‘Bottom’s Gonna Be on Top(바텀이 위로 올라갈 것)’이라는 언어유희에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백미는 1막에서 예언가가 닉에게 뮤지컬에 대해서 얘기해 주는 다섯 번째 곡인데, 뮤지컬의 비이성적인 면에 대한 풍자로 시작해 뮤지컬이 어떤 장르인지 설명해 주는 과정에서 <코러스라인>, <레 미제라블>, <렌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 뮤지컬의 고전을 음악과 안무가 섞인 가사로 녹여내 뮤지컬 팬들의 환호성을 자아낸다. 2막에서 그들이 극중극으로 올리는 뮤지컬 <오믈렛>의 첫 곡으로 등장하는 ‘썸씽 로튼’은 가사가 황당무개할 뿐 아니라,무대 위에 실제로 계란 옷을 입은 배우들이 등장해 오믈렛으로 만들어져야 할 계란이 자기는 오믈렛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가득 담아 <드림걸스>의 ‘I’m Telling You I’m Not Going(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의 한 소절을 불러 객석의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닉을 맡은 브라이언 제임스의 진지한 연기는 존 카리아니가 어리숙하게 연기하는 동생 나이젤과 브래드 오스카가 뻔뻔하게 연기하는 예언가, <스매시>에서 작곡가 역할로 얼굴을 알렸던 크리스천 볼이 연기한 밥맛없는 허세쟁이 슈퍼스타 셰익스피어 사이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조연이긴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연기한 크리스천 볼 역시 토니상 수상에 아깝지 않은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자신의 인기를 하소연하는 2막의 첫 곡 ‘Hard To Be The Bard(셰익스피어로 사는 건 어려워: 셰익스피어를 bard라고도 한다)’은 보디가드 같은 패거리를 몰고 다니면서 잘난 척하는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르네상스식의 복장을 하고, 르네상스식 마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대사와 감성은 굉장히 현대적이고, 그 부조화스러움이 또한 이 작품의 전반에 걸쳐 있는 코미디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지극히 상업적인 코미디

<썸씽 로튼>을 구상하고 시작한 창작자는 <치킨 런>,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그리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의 영화 각본을 쓴 작가 겸 감독 캐리 커크패트릭과 기독교적인 메시지의 찬양곡을 주로 작곡해 온 그의 형 웨인 커크패트릭 두 사람이다. 둘이서 오랫동안 생각만 해오던 작품의 구상은 뉴욕 공연계의 베테랑 프로듀서인 케빈 맥컬럼(<렌트>, <애비뉴 Q> 등을 만든 프로듀서)을 만나 2014년 첫 워크숍을 올리게 되고,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제일 웃긴 공연으로 5년째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북 오브 몰몬>의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케이시 니콜라우가 연출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개발이 시작됐다. 워크숍 이후 원래 2015년 시애틀에서 먼저 공연이 올라가기로 돼있었는데,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브로드웨이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이 빈다는 소식을 듣고 트라이아웃 공연을 건너뛰고 지난해 3월 프리뷰 공연을 시작해 4월에 정식 오픈했다. 케빈 맥컬럼의 이 같은 대담한 결정은 브로드웨이의 미디어에 작품에 대한 자신감으로 비춰졌다. 물론 트라이아웃을 취소한 만큼 프리뷰를 거치면서 작품의 이모저모를 지속적으로 수정했다. 오픈 이후 평단의 평가는 조금 엇갈렸다. 너무 과한 개그 코드가 작품의 전체적인 유기성을 해쳤다는 부정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관객을 비롯해 몇몇 평론가들은 웃음에 올인한 이 작품의 헌신도에 큰 점수를 주었다. 토니상을 노리고 4월에 오픈해 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2015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 부문을 비롯해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남우조연상 한 부문에서만 상을 차지했다. 그런데 <썸싱 로튼>은 이런 아쉬움마저 마케팅에 사용해 토니상 이후 지면 광고에 큰 글씨로 ‘LOSER’를 떡하니 붙여 작품을 홍보했다. 어떤 포스터에서는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 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미스 사이공>, <위키드>를 나열해 놓고 자신들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거라는 얘기를 하듯 이런 뮤지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웃음에 충실한 작품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 역시 한편으로는 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뮤지컬 코미디의 유머와 웃음에 대한 충성스러운 헌신이다. 또한 뮤지컬을 통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조롱을 늘어놓는 부분은 뮤지컬을 즐기는 관객들을 일차원적인 관객의 지위에서 작품의 제작진과 좀 더 가까운 내부자의 위치에 올려놓는다. 예언가의 노래 ‘뮤지컬’이 더 큰 환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공연은 관객과 공연과의 관계를 관찰자와 관찰 대상 그 이상으로 발전시켜 배우의 연기를 보고 웃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배우와 함께 웃는 것을 가능케 했다. 특히 진지한 작품들이 많았던 작년, <썸싱 로튼>은 비록 상은 못 받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충분히 차별화했고, 아직까지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재미있는 뮤지컬의 가장 큰 약점은 재미가 과했다기보다는 재미를 위해서 뻔한 공식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리석고 성미 급한 남편 닉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의 사랑을 보여주는 부인 비나, 청교도 수사로 굉장히 엄격해 보이지만 게이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포샤의 아빠 예레미야 수사의 게이 비하적인 농담을 통해서 웃음을 끌어낸다는 것은 뮤지컬에서는 꽤 닳고 닳은 공식이다. 그래서 공연이 진행될수록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썸씽 로튼>은 셰익스피어를 교주처럼 모시는 영문학자들이 아니라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웃을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은 이 상업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프로듀서 케빈 맥컬럼이 대담한 결정을 내린 이유 역시 작품의 그런 장점을 제대로 내다봤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용도, 음악도, 그리고 대사도, 어느 하나 딱히 부족한 부분이 없고, 딱히 관객들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노래도 없다. 유머가 너무 과해서 지치는 관객은 있을지언정, 딱히 공격을 받을 만한 이유도 없는 이 작품은, 아마도 꽤 오랜 시간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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