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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곤 투모로우> [No.157]

글 |전영지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컨텐츠 2016-10-11 4,254

갈 수 없는 나라, 다다르지 못한 나라

<곤 투모로우>




2016년 9월 13일, 국무회의에서는 지진과 사드, 북핵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지진 방재 대책을 전면 재점검함으로써 앞으로 혹시 발생할지 모를 더 큰 규모의 지진에도 철저히 대비해 주시길 바란다”는 대통령의 전언(傳言)을 뉴스에서 접했다. 역시 ‘대비’는 사고 이후에나 하는 것인가 생각하는데,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전혀 고려치 않고, 무방비 상태로 북한 도발에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노출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따름”이라는. 그날은 분명 한반도 관측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을 온몸으로 겪은 다음 날이었다. ‘긴급재난문자’도 하나 받지 못한 채, 국민안전처가 다운됐다는 SNS를 지켜보며, 지진의 강도와 빈도에 대한 예상 없이, 대피 요령에 대한 이해 없이, 흔들리는 반도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다음 날, 대한민국 정부는 참으로 담담하게 위의 조언을 전해 왔다. 지진만큼이나 무섭고 차가운 뉴스였다. 그리고 바로 그날, 뮤지컬 <곤 투모로우(Gone Tomorrow)>가 첫 공연을 올렸다.




오해를 초대하지 않는 팩션                  


지진 때문이었을까, 뉴스 때문이었을까. 완전히 허구화된 역사를 무대화하는 이 뮤지컬이 꼭 지금의 우리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여, 이 작품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허구이며, 역사와 허구를 직조하여 지금의 우리에게 건네는 뮤지컬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볼까 한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 작품은 연극인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1994)를 원작으로 하여, 갑신정변을 이끌었던 혁명가 김옥균(1851-1894)과 그의 암살자 홍종우(1850-1913)를 다룬 팩션(Faction, 역사와 허구가 결합된 이야기)이다. 뮤지컬은 작품의 두 주요인물, 김옥균과 홍종우를 사실적으로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같은 시기 두 인물의 서로 다른 행적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는데, 이를테면 김옥균이 정변에 실패하는 장면 뒤에 홍종우가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일본 정부의 홀대 속에 음주와 도박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김옥균의 모습 이후, 홍종우가 프랑스에서 <심청전>을 번역한 후 조선으로 귀국하는 장면이 뒤따른다. 1890년 유학길에 올랐던, 조선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라는 인물이 낯선 이들이 많겠으나, 뮤지컬이 소개하는 두 인물의 삶의 행적 모두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렇듯 1막이 비교적 충실하게 역사적 사실을 소개한다면, 홍종우가 김옥균을 암살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2막에는 허구적인 요소들이 끼어든다. 실제 암살은 둘이 상해에 도착한 후 한 여관에서 발생했지만, 뮤지컬에서는 상해로 가는 배 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뮤지컬 속 홍종우가 김옥균을 살해하는 이유가 여느 역사책의 설명과도 다르다. 사실, 이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있어 왔다. 홍종우를 새롭게 해석한 역사서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푸른역사, 2005)의 저자 조재곤은 대다수의 역사서가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 홍종우가 개인의 입신영달을 도모하던 중, 조선 정부의 사주를 받아 김옥균을 살해하고 그 공으로 출세한 것으로 서술했다고 요약한다. 그러고는 이러한 기존의 해석에 반대하며, 홍종우는 대한제국의 황제가 중심이 되어 주체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런 까닭으로 외세의 힘을 빌려 근대화를 꾀하고자 한 김옥균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뮤지컬은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해석 모두에 반(反)하는 또 하나의 해석을 제시한다. 암살 장면을 묘사해 보자. (<곤 투모로우>의 큰 매력 중 하나인) 환상적인 영상과 조명은 무대를 일렁이는 바다 위로 데려가, 김옥균과 홍종우를 흔들리게 한다. 홍종우는 자신이 고종이 보낸 암살자임을 고백하며 김옥균에게 어디로든 도망쳐 후일을 기약하라고 눈물로 호소하지만, 김옥균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자신을 죽여, 그 공으로 조선에 돌아가, 자신이 못다 이룬 혁명의 과업을, 조선의 개혁을 이루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 홍종우는 고종을 만나 전한다. “청나라, 러시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고 적당히 이용하여 일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충언을 김옥균이 죽기 전 임금에게 남겼노라고. 홍종우가 말하나, 김옥균의 말이고, 김옥균의 생각이나 홍종우가 앞으로 실천하려는 이상이다. 뮤지컬은 이렇듯 역사 속 김옥균과 홍종우의 충돌을, 두 사람의 정치적 이상의 차이를 지우고, 둘을 같은 꿈을 꾸었던 인물로 그려낸다.


김옥균의 죽음 이후 뮤지컬의 장면들은 모두 완벽한 허구이다. 뮤지컬 속 고종은 홍종우를 곧바로 제주 목사로 좌천시키지만, 역사 속 홍종우는 고종의 두터운 신임 속에 중앙 정계에서 활동했고, 그가 제주로 내려간 것은 1903년이었다. 뮤지컬은 홍종우가 마치 1907년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헤이그밀사 사건의 책임을 지고 숭고하고 비장하게 최후를 맞는 것처럼 그리지만, 역사 속 홍종우는 1905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은둔 생활을 했고, 그의 말년에 관해선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완벽한 역사의 왜곡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팩션 작품들이 교묘하게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워 관객의 판단을 어지럽힌다면, 이 작품은 왜곡을 가리지 않는다. 완벽한 허구로 쓰인 김옥균의 죽음 이후의 장면들에는 김옥균의 혼령이 함께 있어, 현실과 비현실, 역사와 허구가 무대 위에 뒤섞여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두루뭉술 말하자면) 충격적인 뮤지컬의 결말은 구한말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이라도 무언가 낯설게 느껴, 이 작품이 일정 부분 허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즉 역사는 왜곡해도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를 오해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모두 함께 슬퍼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이 뮤지컬은 왜 이토록 공공연하게 역사에 허구를 덧입힌 것일까. 전술한 것처럼, 뮤지컬은 김옥균과 홍종우의 정치적 의견 대립을 지우고, 김옥균 생전에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고, 김옥균 사후에는 홍종우가 김옥균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구국을 위해 힘썼으며, 홍종우의 이러한 행적에 김옥균의 혼령이 함께했다는 듯 무대화한다. 즉 이 두 인물의 서사는 둘 사이의 깊은 사랑을 방증한다. 그런데 ‘브로맨스’라 칭할 법한 이러한 감정은 두 주요 등장인물 사이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 김옥균은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다 하나, 작품 속 그는 어려운 망명 생활 중에도 언제나 고종을 그리워한다. 고종 또한 김옥균을 내내 생각하는데, 자신이 유일하게 어여삐 여겼던 그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에 김옥균을 병적으로 원망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즉, 이 뮤지컬에선 김옥균과 고종 또한 어떤 ‘사랑’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작품은 일본인 캐릭터 와다의 김옥균에 대한 충정(衷情) 또한 비중 있게 다룬다. 이렇듯 뮤지컬은 치열한 역사의 순간에도 사상이나 이념, 민족과 관계없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자리가 있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들은 절박하게 묻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 그곳에는 정령 갈 수 없는 것이냐고.


같은 물음을 물으며 생각했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고. 이지나 연출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컨템퍼러리 형식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감히 평(評)하건대, 그녀는 성공했다. 그러나 연출이 너무 기뻐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미상불(未嘗不)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꿈꿨던 나라에 여전히 다다르지 못했다 느끼는 관객이 더 아파하고, 더 사랑할 작품이니, 김옥균과 홍종우처럼 인간이 소중한 나라, 국민이 우선인 나라를 뜨겁게 꿈꾸는 이들이 여전히 많아 이 작품이 성공하길, 그리고 모두 함께 슬퍼할 수 있길 바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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