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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빈센트 반 고흐> 이준혁의 고흐 [NO.171]

글 |박보라 사진제공 |HJ컬쳐 2017-12-27 4,306

당신이라는
위대한 존재


천재라고 불린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겨울입니다. 평생 동안 8백여 점의 작품을 남겼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예술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친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많은 편지들은 외롭지만 아름다웠던 그의 일생을 주목하게 만들었죠. 고흐의 아름다운 작품이 사랑받고 있는 지금, 권총 자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던 그를 <더뮤지컬>이 어렵사리 만났습니다. 평생 외로웠던  고흐와 압생트를 홀짝이며 나눈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 이 글은 빈센트 반 고흐 역을 맡은 이준혁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즘 당신을 향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어요.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지금도 행복하겠지만,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군요.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늘 행복했어요. 아무도 나와 내 그림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면 가슴이 벅차올랐죠. 그런 만큼 ‘가장’ 행복했던 때란 없어요. 그 많은 순간들을 어떻게 손에 꼽을 수 있겠어요.


당신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엄청난 관심을 받았어요. 당신에게 테오는 어떤 존재였나요?
없으면 안 될 존재. 내게 테오는 정말 특별했어요. 축구에서 축구공이 없으면 아예 축구를 할 수 없듯, 테오는 그런 존재였죠. 항상 있어야 하는 존재 말이에요.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했어요.


당신은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상당히 많은 도움을 받았더군요.
늘 미안했어요. 그런데 테오에게 미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확신이 있었어요. 테오가 내게 해주는 만큼, 나는 그 이상의 것을 그에게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마음이요. 미안한 마음보다는 고마움을 보답해 줄 거라고 다짐했죠.


돈이 없어서 캔버스에 덧대서 그림을 그렸다고도 들었어요.
맞아요. 그것마저도 즐거웠어요. 캔버스를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상황이지만, 누구 탓을 할 수 있겠어요. 모든 상황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테오와 애틋한 관계였는데, 왜 함께 살지 않았어요?
테오와 같이 살기도 했고, 또 그렇게 함께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처지와 상황이 그럴 수 없었어요. 나만 생각할 수 없었거든요. 테오를 볼 낯이 없었어요. 테오랑은 프랑스 파리에서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테오와 그의 부인에게 한심해 보이면 어쩌지? 내 비참한 모습을 테오와 그의 부인에게 보여주기 싫었어요.



당신이 테오에게 ‘참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사실 그 말은, 테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테오에게도 ‘너도 만족한 삶이었지?’라고 묻고 싶었죠.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는…, 나도 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살아 있는 내게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거나 내 그림과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죽으면, 나와 내가 그린 그림들의 가치가 높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였죠.


힘든 삶을 살았다고 들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때를 회상해 보면요?
시엔을 사랑했을 때요. 이 사랑 때문에 존경하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죠. 기독교에 대한 신념이나 이념이 한순간에 무너지더라고요. 아마 내가 처음으로 원망이란 감정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솔직하게 말하면 아버지가 미웠어요. 그리고 테오도요…. 내게 테오는 마지막 희망이었고 유일한 지지자였는데, 그는 시엔과의 만남을 격렬하게 반대했어요.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할 정도로요.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해요.


시엔을 왜 사랑했어요?
나는 늘 겉도는 느낌을 느꼈어요. 사산된 형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그 형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남들 몰래 노력했죠. 시엔을 만날 때, 여러 가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서 외롭고 고독했어요. 그런데 시엔을 본 순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졌죠. 마치 무언의 동질감이랄까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성격이나 환경에 놓인 사람을 볼 때 동정심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시엔이 자꾸만 생각났어요. 


당신에게 아버지는 큰 존재였던 것 같아요.
훌륭한 목사님이셨죠.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늘 우리 집으로 사람들이 모였어요. 모두가 목사였던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죠. 아버지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해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봤던 터라, 내겐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도 당신에게는 큰 상처였겠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에도 여기저기에서 많은 오해를 받았어요. 마음의 상처를 잔뜩 받은 상태였죠. 그림을 그리려고 들어간 마을에서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쫓겨났어요. 오해를 받을 때마다 좌절과 죄책감도 느꼈죠.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나서,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남았더라면 하는 후회와 슬픔이 몰려왔어요.


당신이 죽은 후, 6개월 후에 테오도 당신의 뒤를 따라갔어요. 그리웠던 동생을 보자마자 무슨 말을 해주었나요?
미안해.


이후엔 당신의 유고전도 열렸고, 지금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봤어요, 제 유고전을 이곳에서 당연히 내려다봤죠. 테오와 함께 압생트를 마시면서 웃었어요. 행복하네요. 하하.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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