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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킹키부츠> 최재림 [NO.172]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2018-01-31 5,628

여전히 보여줄 게 많은 청춘


이십 대 청춘 찰리가 혁명적인 신발 ‘킹키부츠’를 만들어 쓰러져가던 아버지의 신발 공장을 되살려내는 이야기. 2014년 초연 이후 벌써 두 번째 재공연을 앞두고 있는 <킹키부츠>는 목표도 없고 꿈도 없는 청년의 유쾌한 자아 찾기를 그리는데, 그의 성장엔 아주 중요한 인물이 존재한다. 그는 바로 찰리 인생에 우연히 끼어드는 롤라! 마음 넓은 진짜 어른 롤라로 변신하기 위해 생애 첫 드래그 퀸 캐릭터에 도전하는 최재림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도전을 위한 주저 없는 선택


최재림이 <킹키부츠>에 캐스팅됐단 소식에 누군가는 롤라를, 또 누군가는 찰리를 떠올리는 것 같았어요. 처음 오디션 제의를 받았을 때, 재림 씨 스스론 어떤 역을 먼저 떠올렸나요?
제가 <킹키부츠> 지난 공연을 못 봤어요. 그래서 오디션 제의를 받았을 때 영상을 찾아봤는데, 굉장히 신나는 작품이더라고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싶었죠. 그래서 롤라를 하고 싶다, 또는 찰리를 하고 싶다 이런 생각보단 <킹키부츠>란 작품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오디션은 두 역할 다 봤는데, 심사위원분들이 찰리를 하기엔 일단 키가 너무 크고 기가 세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넌 공장 혼자 구하겠다.” (웃음) 찰리는 초반에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다가 주위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인데, 저는 스스로 답을 구할 것 같대요. 대신 당당하고 화려한 느낌을 가진 롤라에 어울린다고 해주셨죠. 개인적으론 이번 기회에 다른 색깔의 최재림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돼요.


생각해 보니 여장 남자 캐릭터를 맡는 건 이번이 처음이더라고요. 롤라라는 인물을 마주했을 때 제일 처음에 했던 고민은 뭐예요?
롤라의 성 정체성은 뭘까.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대본에는 롤라가 여장을 하는 이성 남자라고만 나와 있거든요. 롤라의 성 정체성이 작품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캐릭터를 어떤 방향으로 잡아야 할지 궁금했죠. 마침 얼마 전에 오리지널 연출가 제리 미첼이 한국에 왔거든요. 제리 미첼한테 롤라의 성 정체성에 대해 물어보니 그건 롤라를 연기하는 배우에게 달렸대요. 해외 프로덕션에서 어떤 배우는 이성애자 롤라를 연기하기도 했고, 또 어떤 배우는 동성애자 롤라를 연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 역시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우리 작품의 핵심이라는 거였어요. 거기서 힌트를 많이 얻었죠.


그럼 이성애자 롤라와 동성애자 롤라 중 어떤 노선을 택할지 고민해 봤어요?
그건 좀 더 연습을 해봐야 알 것 같은데, 당분간 롤라의 성 정체성에 대해선 생각 안 하기로 했어요. 성 정체성이 롤라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롤라는 화려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여장 남자에 드래그 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상처가 있다는 게 그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1막 후반 ‘Not My Father's Son(난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아냐)’이라는 노래에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선 이야기가 나와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안 됐다고, 대신 자기 마음을 따라가 봤더니 진짜 자신을 찾게 됐다고 찰리에게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죠. 사실 그 전까지 롤라에게 찰리는 나사가 풀려 있는 것 같은 어리바리한 꼬마 같은 존재거든요. 근데 그 장면에서 찰리 역시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녔다는 걸 알고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죠. 내가 어떤 모습이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믿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방향으로 계속 고민해 볼 생각이에요.


그런데 사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실제론 어떤 편인가요?
요즘에도 종종 하는 고민인데, 전 제 성격 중에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제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지거든요. (웃음) 가령 가까운 사람들한테 좋은 일이 생기면 잘됐다고 하긴 하는데, 그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서 진심으로 하는 얘기인진 잘 모르겠어요. 반대로 주위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마음 깊이 같이 슬퍼하면서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잘 연결되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다 잘하던데 전 좀 문제가 있나 봐요. (웃음)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런가. 아무튼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면, 제가 맡은 인물도 더 잘 이해할 테고 그럼 더 진실한 연기가 나올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죠. <킹키부츠>에서 롤라와 찰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각자 자라온 환경이 다를 뿐, 서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마음으로 이해하면서잖아요.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게 앞으로 고치고 싶은 점이에요.





일상의 깨달음이 가져온 작은 변화들


과거 인터뷰에서 봤는데 아버지가 군인이셨다죠. 일반적으로 ‘군인 아버지’ 하면 엄격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롤라처럼 아버지와 진로에 대한 갈등을 겪진 않았나요?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아버지가 “너는 시력이 좋으니까 조종사 할 수 있을 거야”란 말을 종종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저한테 형이 한 명 있는데, 형은 어렸을 때부터 눈이 나빴거든요. 아버진 내심 제가 당신을 따라 공군 조종사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강요하진 않으셨어요. 아마 아버지 본인이 굉장히 무섭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당신은 아이들을 너무 엄하게 키우고 싶지 않으셨나 봐요. 제가 대학에서 성악

을 전공하게 된 것도 부모님의 권유였어요.


부모님께서 일찌감치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셨나 봐요.
전 진짜 고등학교 때까지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친구들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만화 보는 거 좋아하는,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 애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꾸준히 했던 게 성당 성가대 활동이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좋은 목소리를 타고나서 성당 어른들이 저희 부모님한테 재림이가 노래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얘길 자주 하셨대요. 저희 부모님이 보기에도 제가 딱히 공부할 애는 아닌 것 같으니까 고등학교 때 저보고 성악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처음엔 막연한 거부감이 들어서 안 한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 꾐에 넘어갔죠. 분명 성악 선생님한테 테스트만 한번 받아보자 하셨는데, 그날부터 바로 레슨을 시작하게 됐거든요. 나중에 대학도 성악으로 들어가게 됐고요. 아, 저희 어머니는 제가 계속 성악가의 길을 걷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군 제대 후 뮤지컬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반대는 안 하셨지만 걱정을 좀 하셨죠. 


롤라는 꿈 없이 건조하게 살아가던 찰리의 인생에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인물이잖아요. 혹시 인생에 롤라 같은 존재가 있어요?
항상 하는 얘기지만, 저한테는 뮤지컬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박칼린 선생님이 롤라 같은 분이세요. 선생님께선 제가 살아온 어떤 틀을 깨주셨다고 해야 하나. 남의 기대에 맞춰 살 필요 없다고, 네가 뭘 하든 그건 네 자신을 위한 것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게 저한테 굉장한 영향을 줬어요. 어쨌든 아버지가 군인이셨다 보니 저희 집은 모든 게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갔거든요. 제가 스무 살 전까지 살았던 세계는 그냥 한마디로 군대였죠. 어렸을 때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가 대전의 계룡대였는데, 거긴 육군, 해군, 공군 본부가 다 있는 곳이에요. 한 반에 애들이 서른다섯 명이면 그중 서른셋이 아빠가 군인이죠. 게다가 아버지들의 계급도 다 다르고요. 그러다 보니 서로 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예요. 어디 가나 무리에 잘 섞여야 하고, 사람들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모난 행동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단 생각이 무의식중에 늘 있었어요. 그러니까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내가 이걸 하면 혹시 아버지한테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접는 일이 많았죠. 그런데 사회에 나와 박칼린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의 틀을 좀 깨게 됐어요.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겠네요.
그럼요, 제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전 친구가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인생의 친구를 꼽자면 몇 명 없어요. 또 지금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친구들도 저한테 되게 중요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 친구들하고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연락을 자주 하나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예전엔 전 제가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회식 같은 데 가면 항상 자리가 끝날 때까지 있는 사람 있잖아요.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주도하면서. 그게 저였어요.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절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그걸 즐긴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사람들하고 마구 어울려 다니지 않아도 전혀 외롭거나 허전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광대가 되는 순간은 오직 무대 위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다시 롤라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드래그 퀸을 연기하기 위해선 테크닉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잖아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우선 몸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타고나길 목이 워낙 긴 데다 어깨가 구부정해서 걸어 다닐 때 보면 목이 항상 앞으로 빠져 있어요. 그래서 좀 엉거주춤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지난 몇 년간 자세를 고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근데 롤라처럼 당당해 보이려면 어깨가 쫙 펴져 있어야 하니까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쓰고 있죠. 하이힐을 신고 자연스럽게 걷는 연습도 하고 있고요. 굽이 10센티미터가 넘는 높은 구두는 이번에 처음 신어봤는데, 드래그 퀸이 힐 신고 걷는 게 어색해 보이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여성스러운 동시에 남성적이기도 한 제스처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다 해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꾸준히 반복해 연습하다 보면 저만의 디테일이 생기겠죠.


<킹키부츠>라는 작품이, 또 롤라라는 캐릭터가 최재림에게 어떤 도전이 될까요?
초연과 재연 모두 정말 훌륭한 배우들이 너무나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셨잖아요. 전 이번에 새롭게 캐스팅된 배우이니까 분명 새로운 롤라를 기대하실 텐데, 제 몸에 맞는 롤라를 찾는 게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거리에요. 아주 큰 도전이라 조바심이 나기도 하죠. 제가 표현하는 드래그 퀸이 너무 뻔한 캐릭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가령 우리가 어떤 직업군에 대해 말할 때 쉽게 떠올리는 고정적인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군인이나 경찰이라고 했을 때 공통적으로 어떤 묘사를 할 수 있는 것처럼요. 저의 롤라가 그런 정형화된 캐릭터가 되는 게 제일 두려워요. 롤라라는 인물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깊이 있게 보여주고 싶죠. 롤라를 시작으로 앞으로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최재림한테 이런 숨겨진 면도 있었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뭐든 계속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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