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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아마데우스> 김재욱 [No.174]

글 |박보라 사진 |표기식 2018-03-13 13,943

<아마데우스> 김재욱

겨울의 달빛 아래에서   

 


 

김재욱은 선뜻 다가가기엔 어려운 사람이다. 좀처럼 웃지 않는 얼굴, 바람이 불면 쓰러질 정도로 깡마른 몸매에 무엇보다 온몸에 서늘한 분위기가 서려 있는 사람.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그를 두고 누구는 예민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김재욱이 아픔을 담담하게 쏟아냈던 <헤드윅> 이후 7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그것도 신이 내린 천재, 모차르트로. 그의 답변을 곱씹어보면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던 모차르트의 탄생이 기다려진다. 다음은 무서운 추위가 가슴을 찌르던 어느 날 만난 김재욱이라는 배우에 관한 기록이다.

 


 

순수와 음탕 사이에서

                     

지난해 11월에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온도> 이후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어떻게 보냈나.

여행을 다녔다. 연말이기도 해서 드라마 촬영을 하느라 못 챙긴 사람들도 만났다. 또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다시 보충하다가 이지나 연출에게 <아마데우스> 대본을 받았다.
 

<헤드윅> 이후로 7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이 앞섰다. <헤드윅>에 참여했지만, 1인극에 가까운 작품인 데다가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스탠딩쇼 같지 않나. 그래서 많은 배우와 함께 신을 만들어가는 무대 연기는 처음이다. 무대로 돌아왔다는 느낌보다는 처음 무대에 선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마데우스>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부터 무대 연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난 학교에 입학해서 연기를 배우고, 졸업 공연을 한다든가 극단에 속해서 연기를 시작한 케이스가 아니다. 그래서 늘 이런 부분에 호기심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너무 믿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지나 연출의 작품이었다. 또 <아마데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로 봤던 원작의 대단한 팬이다. 살리에리나 모차르트 이야기로 만들어진 작품은 많지만, 피터 쉐퍼의 <아마데우스>를 한국에서 공연한다고 해서 고민하다가 참여하게 됐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는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뤄왔던 주제다. 이번 <아마데우스>는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다른 작품을 보지 않아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에 집중했다. 스토리텔러는 살리에리지만 모차르트의 이야기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재능 있는 남자와 이 재능 있는 남자를 질투하고 신에 대한 원망과 적대감을 지닌 남자. 두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사실 이 작품이 아니라도 선택받지 못한 자의 콤플렉스를 다룬 이야기는 많다. 이런 클래식한 포맷이 <아마데우스>에서는 더 재미있게 펼쳐질 거다.
 

원작도 그렇지만 영화 <아마데우스>는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혹시 영화와 다른 무대를 위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

무대는 편집이 없는 작업이다. 영화는 보이지 않았던 스토리나 시간의 흐름도 하나의 몽타주나 다른 연출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대는 한정된 시간에 모든 것을 초월해서 표현해야만 한다. 난 아직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런 편집 없는 연기에 대한 무지라고 해야 하나, 이 부분에 적응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점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고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정말 유명하다. <아마데우스>에서도 직접 피아노를 친다던데.

정말 열심히 치고 있다. 입시생처럼. (따로 레슨도 받나?) 그렇다. 피아노는 매일매일 연습하고 있다. (영화에서 유명한 피아노 연주 장면도 나오나?) 비밀이다. (웃음) 공연을 보러 와서 확인해 달라. 
 

모차르트는 신이 내린 천재다. 천재의 삶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가.

어렵다. 천재가 몇 명이나 있겠나. 거의 99%의 사람이 살리에리에 가까울 거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오히려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에 캐스팅됐으면 감정 이입도 쉬웠을 것 같고 편했을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를 이 공연에 이끈 이는 모차르트인 듯싶다. 툭 터놓으면, 만약 살리에리 역을 제안받았다면 많이 고민했을 거다. 모차르트를 만나게 된 것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탐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모차르트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매력은 나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김재욱에겐 어떤 모차르트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도 내겐 도전이다.
 

그렇다면 김재욱의 모차르트는 어떤 모습일까.

글쎄…, 원작하고 다를 거다.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 안에서 모차르트라는 인물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천재성과 순수함 그리고 음탕함이다. 이렇게 뭉툭하게 말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지만, 순수하기 때문에 자기 욕망과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악의 없이.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상처와 관계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욕망을 참는 거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이런 사고방식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별개로 욕망과 욕정이 있다는 거다. 이런 부분에서 봤을 때 관객들이 모차르트라는 인물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느냐도 중요하다. 천재가 지닌 엉뚱함,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 회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천재가 지닌 열정, 특히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징을 띠고 있다. 김재욱의 모차르트는 어떤 특징이 있나.

없다. 그걸 깨는 것이 가장 먼저다. 천재는 이럴 것이고, 이렇게 행동해야 천재처럼 보일 거라는.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면서도 충분히 이 사람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엉뚱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 사람을 표현해 낼 거다. 모차르트는 역사에 남길 만한 음악을 쓴 천재이고, 그의 음악은 300년 가까이 우리 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존재한다. 커피숍, 에스테틱이나 편안한 분위기를 느껴야 할 때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그의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데, 이건 사실 정말 엄청난 일이다. 이런 음악을 만들었던 사람의 삶을 단순하게 사차원적인 엉뚱함 때문에 일어난 실수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데우스>는 그가 어떻게 해서 이런 음악을 쓰게 되었고, 또 그의 음악이 어떤 스토리를 통해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줄 거다. 나 또한 이런 부분을 잘 표현하려고 한다.
 

모차르트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김재욱의 모차르트는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어떤 모습이 주로 나타나는가.

난 기본적으로 밝은 사람은 아니다. 아무래도 (조)정석 형이나 성규의 모차르트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덜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그들이 지닌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다. 그런데 나랑은 조금 톤이 다르다. 연습을 지켜보면서 정석 형이나 성규의 모차르트가 더 슬퍼 보일 거라는 생각도 한다. 밝았던 만큼이나 모차르트의 불행한 삶이 이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계속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누구의 모차르트가 되었든 되게 아플 거다. 연습 중에도 많이 운다.
 

함께 캐스팅된 배우 조정석과 성규는 어떤가.

너무 좋다. 정석 형과는 <헤드윅>을 함께했는데, 작업이 굉장히 편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정석 형은 워낙 연기를 잘하고 무대 경험이 풍부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흔히 배우끼리 자존심을 내세운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당연히 이뤄지고 있는데, 서로의 모차르트를 객관적으로 봐주면서 조언과 아이디어를 건넨다. 이런 말들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이라 무척 좋다. 또 성규는 나와 정석 형의 좋은 영향을 아무런 저항 없이 잘 흡수하려는 친구다. 기본적으로 성실하더라. 비단 정석 형이나 성규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배우들과 사이가 참 좋다. 물론 작업하는 중에는 고통스러운 시간도 많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연습실에 가는 게 신나고 기대된다.

 


 

떨림의 시작점

                     

예술은 어느 특별한 기준이 없다. 김재욱이 생각하기에 연기를 잘한다는 건 무얼까.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기하는 것. 장면의 매력과 자신의 재능을 연기에 잘 녹이는 것. 무대 연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자기가 연기하는 인물을 관객들한테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이 장면에서는 관객을 울려야 한다는 목적으로 연기한다고 한들, 반응은 제각각일 거다. 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 생각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운다고 한들 그 순간 겹쳐지는 자신의 경험이나 과거 때문일 수도 있는 거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내 바람은 작품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더 길게는 극장에 나와서 집으로 가고 잠들기 전까지도 작품과 인물에, 그 감정에 흠뻑 빠졌으면 좋겠다는 거다. 어느 하루가 작품에 먹혀버리는 날이 있지 않나. 그런 시간을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연기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려면 나 혼자만의 힘으론 미약하다. 무대는 다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니까.
 

그동안 드라마 <보이스>의 모태구를 비롯해 상당히 섬세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런 연기를 위해서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인가.

작품마다 다 다르다. 당시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는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는다. 드물지만 레퍼런스로 누군가의 연기나 작품을 보는 경우도 있고, 나와 주위의 경험 그리고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찾아보면서 많은 도움을 얻는다. 모태구의 경우에는 이 인물이 지닌 성향을 어디에서 가지고 와야 하는지부터 생각해 봤다. 터무니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모든 부분에서 그렇지만 시작점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그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지나고 관성을 받으면 결국 어마어마한 차이가 된다. 그런 부분에 늘 경각심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인가, 인물에 잘 접근하고 있는가, 고민하면서 계속 수정을 하고 만들어가는 편이다.
 

그럼 모차르트의 시작점은 무엇인가.

처음엔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에 포커스를 맞추고 충실하게 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밝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가 그런 인물을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캐릭터에 제대로 도전해 보고 싶어서 시작한 것도 있었다. 그러다 중간에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앞서 말한 시작점을 잘못 잡았다는 거다. 내가 아무리 ‘나는 지금 모차르트야’라고 외쳐도 보는 사람이 불편하거나 맞지 않다고 느끼면 그건 잘못된 거다. 연극은 행위예술이나 순수예술도 아니고 대중문화 예술이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김재욱의 모차르트를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고 수정 작업을 오래 거쳤다. 지금도 여전히 다듬어가고 있다.
 

<헤드윅>에 이어서 <아마데우스>도 이지나 연출의 작품이다. 이지나 연출의 작품만 참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지나 연출을 특별하게 고집한 적은 없다. 그런데 한 번 작업해 본 영향이 컸다. <헤드윅> 이후에도 연극이나 뮤지컬 출연 제의가 있었지만, 마음을 확 뺏길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조심스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게 뮤지컬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무대 연기에 익숙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마데우스>를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지나 연출이었다. 이지나 연출과는 <헤드윅> 이후로도 연출가와 배우로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 친한 사람의 관계로 계속 만남을 가져왔다. 그녀는 배우로서의 매력이나 재능을 떠나서 인간 김재욱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지나 연출은 <헤드윅>이 끝나고 나서는 한 번도 내게 작품을 제의한 적이 없다. 그렇게나 많은 작품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지나 연출이 내게 <아마데우스>의 대본을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정말 잘 안다. 그래서 많이 고민했고 이지나 연출에 대한 신뢰로 선택하게 됐다.
 

유튜브에 <헤드윅> 첫 공연 커튼콜 영상이 있더라. 거기서 ‘첫 공이라는 리스크를 가지고 찾아온 관객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날과 <아마데우스>의 첫 공연은 다를 것 같다.

물론 다르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때에 비하면 나이를 많이 먹었다. 어쩌면 반복되는 이야기일 테지만, 정식 연극은 <아마데우스>가 처음이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 경험한다는 기분으로 가고 있다. 심지어 앙상블도 나보다 어리지만 무대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다. 그래서 연습실에 가면 모든 걸 배우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떨림을 느낀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는 새로운 작품을 한다 해도 웬만해선 낯설지 않다. 현장의 공기나 분위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까. 그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촉이 있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혹은 ‘이렇게 흘러가겠구나’라는 감각들. 그런데 연극 무대에 새롭게 도전했을 때, ‘내가 이런 느낌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이렇게 떨림을 느끼는 건 정말 기분좋은 일이다. 이 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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