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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노트르담 드 파리> 윤형렬 [No.176]

글 |박보라 사진 |김승완 2018-05-17 8,246
스스로 개척하는 운명에 대하여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다양한 인간의 모습과 삶의 의미를 전하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돌아온다. 작품은 2007년 김해 공연을 시작으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연 당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꼽추 콰지모도의 캐스팅에 많은 기대가 쏟아졌는데, 파격적이게도 한 번도 뮤지컬 무대에 서본 적 없는 신예 윤형렬이 그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노트르담 드 파리> 이후로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했던 윤형렬. 그가 10년이 흐른 지금 자신의 데뷔작으로, 그리고 콰지모도로 돌아온다. 그가 다시 그려낼 콰지모도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10주년 공연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노트르담 드 파리>는 처음 데뷔한 작품이기도 하고 올해는 10주년을 맞았다. 어떠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게 아니고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과거와 달리 이젠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본인의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를 주는가. 
<노트르담 드 파리>는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뮤지컬 배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작품이니까. 그 전에는 가수로서 앨범이 나와 있었지만, 활동을 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 전까지는 돈을 쓰기만 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비로소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또 내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 인정을 받게 된 거다. 만약 이 작품에 캐스팅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초연 때의 콰지모도와 비교해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데뷔 당시엔 감정 표현이 투박했을 거다. 아무래도 경험도 없었고 심지어 어렸으니까. 이번에는 조금 더 섬세하게 콰지모도를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분명 선택의 기로가 올 것 같다. 왜냐면 투박함에서 나오는 순수함도 있으니까. 이런 고민을 잘 풀어서 어떻게 적재적소에 투박함과 섬세함을 표현할지 계획을 잘 짜야겠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여러 시즌에 참여하면서 좋아하는 장면이 생겼을 것 같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단순히 뮤지컬 작품이라기보다는 종합 예술에 가깝다. 장면마다 허투루 볼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난다. ‘기적의 궁전’만 봐도 서커스에 가까운 화려한 묘기가 펼쳐져서 눈을 뗄 수 없다. 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것도 슬프지만,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따로 있다. 내가 무대에서 연기할 땐, 뒤를 볼 일이 없어서 어떻게 연출이 됐는지 몰랐다. 초연 당시 더블 캐스팅이었던 (김)법래 형의 공연을 보는데 비로소 뒤가 보이는 거다. 아, 내가 노래를 하고 있을 때 댄서들이 저런 걸 하는구나! 콰지모도의 분신들이 종지기의 옷을 입고 종을 밀었다가 끌어안았다가 매달리기도 하고. 그걸 보면서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나를 보고 운 게 아니었구나, 저걸 보면서 울었구나! (폭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콰지모도의 바람대로 에스메랄다의 영혼이 살아나 춤을 추면서 그를 향해 손을 딱 뻗는데, 죽어서야 행복해지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배우는 자신의 무대를 보지 못한다. 그 장면을 본인이 직접 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 촬영한 영상을 볼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현장감이 있으니까. 직접 보는 거랑 영상을 보는 건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무대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차이 때문에 재관람을 많이 하는 거라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그 전과는 또 다른 공연. 궁금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유체 이탈을 할 수도 없고. (웃음) 난 그래도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앙상블이나 스태프들은 정말 공연을 볼 수 없지 않나. 어느 날 한 무대 스태프가 “정말로 <노트르담 드 파리>가 보고 싶다”고 말하더라. 공연마다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를 움직이기 때문에 정작 한 번도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정말 안타까웠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공연을 좋아하는 마니아 관객과 일반 관객 모두 이 작품을 많이 사랑해 주셨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공연예술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노트르담 드 파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 않나. 노트르담의 꼽추 이야기에 한국 정서에 맞는 음악이 더해졌고 빠른 전개로 쉴 틈이 없다. 거기다가 애크러배틱이나 다양한 안무로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서 자연스럽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뮤지컬로 자리한 게 아닐까.



콰지모도라는 인물을 어떤 부분에서 돋보이게 만들고 싶은가.
콰지모도의 마음은 ‘불공평한 이 세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 노래가 끝나자마자 바로 ‘살리라’가 펼쳐진다. 방금 전까지 불공평한 이 세상과 에스메랄다를 향한 사랑을 이야기했던 콰지모도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갑자기 그걸 지켜보다가 절뚝거리면서 뒤를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 슬펐다. 불행한 사람 스스로가 ‘나 진짜 불행해!’라고 외치는 것보다 혼자 있는 쓸쓸함마저도 익숙해진 모습에서 풍기는 짠함이 더 강렬하다. 난 콰지모도를 통해 이런 정서를 보여주고 싶다.

사실 콰지모도는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쉽지 않은 캐릭터다.
힘들다. 정말 많이 힘들다. (웃음) 감정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의상도 무겁고 분장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이번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데, 무대가 엄청나게 넓다. 요즘 다시 아침 조깅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다. 노래하다가 중간에 끊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넓은 무대를 잘 사용해야 하니까. 또 그냥 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콰지모도의 한을 표현해야 한다. 특히 콰지모도는 올바른 발성으로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 일그러트리고 뭉개고 짓이겨서 내는 소리가 바로 콰지모도의 소리다. 초연 당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맑고 정확한 소리를 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신체적으로 등이 굽은 사람이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폐와 후두가 찌그러져 있을 거란 점도 놓칠 수 없었다. 그리고 종지기라 큰 종의 소리를 평생 들었으니 귀가 안 좋을 거라 판단했다. 그럼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고, 매번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니 분명 목이 쉬었을 거다. 그래서 콰지모도는 탁성을 사용해, 호흡도 거칠게 섞어서 긁으며 목소리를 표현한다.

콰지모도의 감정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뮤지컬 넘버도 있을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불공평한 이 세상’은 콰지모도의 심정을 다 보여주는 노래다. 콰지모도가 스스로를 보면서 ‘나는 왜 이러냐’고 신을 원망하는 내용이다. 공연하면서 울분이 치솟았던 가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이여, 이 불행은 나의 잘못인가요.’ 콰지모도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착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잘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더 잘만 살지 않나. 이런 점에서 콰지모도가 신을 향해 물을 때마다 무대에서 너무 안타까웠다. 매번 이 노래를 부르며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콰지모도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안타깝다. 콰지모도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남들보다 뛰어난 것도 없고, 심지어는 제대로 사랑받아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콰지모도는 어떻게 저렇게 순수할까. 누구를 저렇게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 콰지모도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순수함을 지닌 인물이다. 그래서 기대된다. 난 늘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모두 콰지모도 같은 면을 품고 있다. 열등감, 사랑, 누군가를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우직함 그리고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 있는 마음. 이런 콰지모도의 순수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 아닐까.

윤형렬에게 콰지모도는 ‘인생캐’라는 말도 듣고 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좋지만은 않다. 콰지모도로 데뷔를 하고 나서 들은 이야기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라이선스로 제작된다고 했을 때, 콰지모도로 캐스팅될 배우가 누군지 큰 기대가 쏟아졌다는 거였다. 콰지모도는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꽤 높은 음역대를 소화해야 한다. 쉽게 배우를 찾을 수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가 콰지모도로 발탁이 됐다. 하지만 당시엔 실력도 없었고 약점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엄청난 관심이 있던 거지. 콰지모도 이후에 난 스스로 어떤 편견과 끊임없이 싸워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삽으로 땅을 푸욱 파서 올려놨구나. 이걸 내가 넘어야 할 텐데’란 마음이었다. 양날의 검같이. 또 이런 게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도 그랬고, <에드거 앨런 포>도 그렇고. 어떤 작품에 내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이 ‘윤형렬이 어떻게 그걸 해?’라고 했다. 여전히 넘어야 하는 산이지만 아직도 불안한 면은 있다. 마치 트라우마처럼 말이다. 물론 대표작이 있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중 가장 깊은 의미가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 작품마다 나름의 아픔이 있다. (웃음) 아픈 정도로 따져볼 때 가장 애틋한 작품은 <두 도시 이야기>다. <두 도시 이야기>는 언젠간 꼭 다시 해보고 싶다. 지금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아쉬움이 있다. 마치 못다 푼 숙제처럼. 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상당히 즐겁게 했던 작품이고, <에드거 앨런 포>도 회차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좋았다. 또 <노트르담 드 파리>는 뮤지컬을 시작하게 해준 작품이니까 의미가 있고.




내 마음을 볼 수 있다면

흔히 말하는 슬럼프가 있었나.
20대 중반에 데뷔해 군 복무를 28세에 했다. 군 복무 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공연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2년 정도 무대에 서질 못하게 되니 생각이 많아졌고, 그 사이에 서른이 됐다. 책임감이 많이 생겼다. 다시 사회로 나오니 나랑 비슷한 선에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쫙 나가 있더라. 따라갈 수 없는 갭이 생겼다. 그 사람들이 날 기다려주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그걸 느끼면서 조바심이 났던 시기가 있었다. 심지어 여기에 욕심이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이상향과 현재 내 상태가 극명하게 대비된 거다. 실력이 따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욕심만 많아졌던 그 시기가 바로 슬럼프였다. 노래도 노래지만 연기로 더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쫓아 다녔다. <더 데빌>에 참여할 때, 감사하게도 이지나 연출은 내게 존과 엑스 두 배역의 선택권을 줬다. 엑스가 성스루로 연기와 노래를 할 수 있었던 반면 존은 대사와 연기 분량이 많았다. 그래서 난 존을 선택했다. 내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는 이 작품으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존을 통해 연기에 대해 내실을 쌓고 싶었다. 준비된 배우는 무대에서 떨지 않는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연습했다. 그렇게 버티다가 조금이라도 스스로가 성장한 걸 느끼면 자신감을 얻었고.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걸 체감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하게 됐다.

배우로서 욕심이 나는 부분이나 능력은 무엇인가.
항상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배우마다 스스로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난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했으면 좋겠다.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도 마찬가지로. 내 목소리는 상당히 독특하지만, 캐릭터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고 싶다. 예를 들어 콰지모도는 조금 더 굵고 허스키하게, 포는 조금 더 가볍게 소리를 내려고 시도했다. 이렇게 관객들의 예상을 벗어났을 때 주는 감동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측할 수 없는 디테일을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다.

배우로서 뿌듯함이나 존재의 의미를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언젠가 팬이 보내준 편지를 읽다가 울었다. 공연을 보고 힘든 일을 견뎌냈다는 글을 보는데 갑자기 마음에 쿵 하고 와닿았다. 내 공연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즐겁고 행복한 걸 넘어, 현실 생활에서 벌어진 힘든 일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보람으로 다가왔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나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란 사명감이 생겼다. 그 편지 말고도 힘을 얻었다는 편지들이 많다. 표현의 차이지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같을 거다. 그러니까 무대 위에서 한순간도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원래는 가수로 활동했다. 앨범 발매 계획은 없나.
물론 있다. 그런데 앨범을 낸다면 직접 곡과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뮤지션. 어차피 이젠 서른여섯이라 아이돌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폭소) 대신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내 안의 무언가가 더 쌓였을 때 앨범을 내고 싶다. 지금 당장은 작품을 열심히 하는 게 최우선이다.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
마흔여섯. (웃음) 10년 후에는 무대와 학교를 넘나드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문화예술학 박사 과정 중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음…, 이렇게 공부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한 발자국 물러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학교와 현장은 확실히 다르니까, 내가 가진 경험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물론 언제나 꿈꿔 왔던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으로도 무대에 섰으면 좋겠고. 그리고 또 지금보다 더 진득하고 깊은 사골국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윤형렬은 행복한가.
물론! 행복하다. 2년 전에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행복하지가 않더라. 난 앞만 보고 더 위로 올라가고만 싶었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서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정말 행복한 사람을 보게 됐다. 정말 멋있었다.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한다는 것과 안주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노력은 하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의 길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힘들다는 생각을 하려고도 안 하고. 지금 내가 행복을 느껴야 좋은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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