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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지금 가장 빛나는 라이징 스타 - 정휘 [No.176]

글 |박보라 사진 |심주호 2018-06-04 6,441
첫 키스의 설렘처럼


 
정휘는 빛날 휘(輝)를 쓴다. 외자에 독특한 이름이 본명이란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더러 있을 정도다. 정휘는 할아버지가 지은 이름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지만, 이젠 이름 뜻과 그의 행보가 꽤 잘 어우러지는 것만 같다. 그는 최근 뮤지컬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배우니까 말이다. 스무 살에 데뷔해 꽤 오랜 시간 무대에 섰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정휘가 대중에게 기억된 건 2016년 방송된 JTBC <팬텀싱어> 시즌1을 통해서다. 멀끔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걸어 나와 뮤지컬 <알라딘>의 ‘Proud Of Your Boy’를 부르던 소년. 그의 무대를 본 한 심사위원은 “맑고 고운 미성에 반했다. 한국의 알라딘은 정휘가 될 것”이라는 감탄을 건넸다. 정휘가 거쳐간 여러 작품을 되짚으면 그의 맑고 고운 미성이 작은 체구의 귀엽고 똘똘한 외모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정휘가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다. 가수를 꿈꾸다 군 전역 후 복학을 앞두고 경험 삼아 지원한 오디션에 덜컥 합격한 것. 그렇게 그는 무작정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될 놈은 된다는, 운명적인 일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8년이란 시간 동안 정휘는 대학로의 여러 작품을 거쳤고, 최근엔 마니아층이 두터운 연극 <모범생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베어 더 뮤지컬>에 출연해 신뢰를 쌓아갔다. 특히나 올해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해다. 평소 너무너무 좋아해 ‘꿈의 작품’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던 연극 <에쿠우스>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말이다. 캐스팅 소식을 접하고도 여러 번 되물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던 현실. “연습하면서도 자꾸 무대 위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첫 공연 날이 되니 정말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좋았어요. 음…, 첫 키스를 하면 종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실제로 첫 키스를 하면 종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마치 그런 느낌이었어요. 쉽게 잊을 수 없는 기분 좋은 기억이요.” <에쿠우스>의 알런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인물이다. 말을 신앙으로 삼고, 얇은 니트와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은 채 말과 함께 뛰어다니는 소년. 물론 평범한 듯 기이한 소년을 그려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스무 살 때 이 작품을 처음 만나 8년이 지났어요. 연습하면서 과거의 저와 자꾸 비교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보다 지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 작품을 통해 무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배우가 해내야만 하는 숙제라고 생각해요.” 


 
정휘의 장점 중 하나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리고 순하게 보이는 외모다. 지금까지 그가 거친 몇몇 캐릭터는 이런 그의 강점이 무대에서 잘 발휘됐다. 그는 <꽃보다 남자 The Musical>의 루이로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한 연상의 여인을 향한 지고지순한 마음을 훌륭하게 그렸고,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는 북한군 순호를 맡아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외유내강의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외모적인 부분은) 배우로서 늘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무기로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고 해요. 일부러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요. 여러 가지 캐릭터를 통해 제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죠.” 
 
‘왜 하필 배우였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자 정휘는 바로 “좋아하고 행복하니까 하는 것”이라는 간단하고도 힘있는 답으로 모든 걸 설명했다. 그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었을 때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버티는 게 낫지, 싫어하는 일을 어떻게 견디냐”고 되묻는 그에게서는 내면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마치 연기와 노래 외에는 어떤 길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듯 말이다. “무대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죠. 제가 무대 위에 있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정휘는 종종 무대 위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에겐 지금까지 참여한 모든 작품이 아픈 손가락이자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추억이다. “뒤돌아보면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자꾸만 보이더라고요.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도 들죠. 그러고는 이렇게 한 뼘 자랐다는 걸 깨닫죠.” 


 
데뷔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정휘는 이제 진중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사람이 언제나 완벽하진 않잖아요. 완벽해지려고만 하면 흠이 나고, 그러면 사소한 일에도 자괴감을 얻더라고요. 오히려 조금 내려놓을 때 사람다워지고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이런 깨달음은 자신을 엄격하게 채찍질했던 과거 경험에서 배웠다. 감당할 수 없는 기준을 내세우고,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었을 때 느껴지던 외로움과 괴로움. 그렇게 알게 된 감정은 지금의 그를 만드는 큰 힘이 됐다. 비로소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행복을 알게된 것. “전 외로움이 많아서 혼자 있는 걸 싫어하거든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이 쌓여, 행복이란 인생의 큰 가치도 생각해 보게 됐단다. 그가 내린 행복의 정의는 바로 이거다. “사람은 행복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을 사는 거죠.” 벌써 이십 대 후반, 데뷔 당시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일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또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정확한 눈이 생겼다. 그러면서 여유도 생겼다고 말하는 정휘.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그는 여전히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흔히 말하는 아홉수, 스물아홉이 되기 전에 여유를 얻고 싶다는 그. 이십 대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즐기고 싶다는 정휘의 각오엔 언뜻 설렘이 비쳤다. 
 
인터뷰를 마친 뒤, 헤어짐을 고하는 정휘의 얼굴에선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약속한 시간을 한참 앞두고 홀로 백팩을 메고 카페로 들어오던 소년. 당시 정휘는 순진한 얼굴로 솔직한 마음을 내뱉다가도 작품과 연기, 노래에 대해서는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 순하고 예쁜 그의 얼굴엔 그때보다 더 많고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우린 그냥 지켜보면 된다. 수많은 뮤지컬 배우 중 반짝이면서 성장하는 정휘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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