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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여성 창작자들 [No.180]

글 |이수진 극작가·공연 칼럼니스트 2018-10-01 5,374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여성 창작자들 

여성 거장들의 종착지는 왜 다 ‘Off’일까?

 

뮤지컬의 탄생지라고 알려진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그 뮤지컬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길버트·설리반 콤비의 오페레타가 공연되었던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한 상업 공연의 격전지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이 두 상업 극장가를 대표하는 시상식이 매해 열리는데, 그 이름은 뉴욕의 토니 어워즈, 런던의 올리비에 어워즈다. 헌데 사실상 이 두 시상식의 후보 범위는 매우 좁다. 둘 다 상업 공연만 대상으로 하며 그나마 올리비에 어워즈의 경우 오페라와 댄스 부문에 작품상과 신작상을 할애하여 연극과 뮤지컬만 대상으로 하는 브로드웨이의 토니 어워즈와 차별성을 지닌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자타 공인 공연계의 잔칫날인 이 시상식에서 여성이 수상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분야는 남녀로 그룹을 나눠 시상하는 배우 부문뿐이다. 이 배우 부문에서도 확률로 치면 백인 배우가 기쁨을 누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팬들 입장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당연히 배우 부문이겠지만, 실제 작품 제작에서 기울어진 운동장과 유리 천장을 볼 수 있는 가장 중심적인 부문은 창작과 제작 파트다. 하지만 이 창작과 제작 파트에서 여성 창작자의 수상 사례는 역대 수상자 리스트를 단숨에 떠올릴 수 있을 만치 적다. 지면 관계상 이번 글에서는 토니 어워즈와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호명된 여성 창작자들 중에서도 작가, 작사가, 작곡가, 연출가만 살펴보려 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제롬 로빈스, 아돌프 그린과 함께 있는 베티 컴든

 

단 24명의 토니상 여성 수상자

브로드웨이의 극장 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도 그럴 것이 장기 공연 중인 작품 편수가 해마다 추가되는 중이라 신작을 올릴 기회를 찾는 프로덕션들의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33개였던 브로드웨이 극장은 2018년 현재, 41개로 늘어났다.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10위 안에 든 작품들 가운데 일곱 작품이 현재까지 공연 중이고, 그중 1위인 <오페라의 유령>은 무려 30년 전인 1988년에 개막해서 아직까지도 오픈 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현재 5년 이상 공연하며 십 년 이상 장기 상연을 바라보는 작품들도 많다보니 극장이 늘어나는 숫자가 신작의 숫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1947년에 처음 시상식을 개최한 토니 어워즈는 이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공연된 작품으로 후보작을 한정하기 때문에 결코 미국 전체 공연계를 대표하는 상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좁고 제한된 상업 극장가로 제한되어 있는 그들만의 리그다. 브로드웨이 극장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한 극장가에 위치한 5백 석 이상의 상업 극장을 말하며 연극을 주로 상연하는 극장들은 천 석 내외, 뮤지컬은 2천 석에 가까운 극장들이 많다. 
 

토니상은 올해까지 72회의 시상식을 치렀다. 다시 말해, 현재까지 72명의 연출가, 희곡작가, 뮤지컬 작사가, 작곡가가 상을 받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아래의 단출한 리스트에 따르면 그 2년의 세월 가운데 스코어상(작사·작곡)을 받은 여성 창작자는 6명인데 네 명은 작사, 두 명은 작곡으로 나누고 보면 그 비율은 더욱 줄어든다. 72년간 작사상을 받은 네 명의 여성 작가 중 단독으로 받은 사람이 두 명이고, 작곡상 여성 수상자 역시 단 두 명에 그치며 그나마도 2013년에 최초 수상이 이뤄졌다. 토니상을 받은 여성 창작자의 숫자가 하도 적어서 연극 대본상을 받은 여성 작가들까지 포함해 보자면 연극 작품상을 받은 극작가는 세 명이며, 그중 국내에 <아트>와 <대학살의 신>으로 잘 알려진 야스미나 레자가 두 차례 수상하는 영광을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상 횟수는 4회에 지나지 않는다. 뮤지컬 대본상은 72년 동안 여성 작가에게 다섯 번만 주어졌고, 그중 여성 작가 단독으로 받은 경우는 세 번뿐이다. 특이하게도 1998년과 2013년은 연극과 뮤지컬 연출상을 모두 여성이 가져가는 기록을 남겼다. 창작진 가운데 그나마 ‘여성적’인 분야라는 인식이 있는 안무의 경우는 다른 분야보다는 아주 조금 나은 편이다. 지금까지 모두 7명이 12회 수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수잔 스트로먼이 4회, 캐서린 마셜이 3회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여성 창작자들의 숫자는 남자 창작자들의 숫자에 비해 현저하게 적고 따라서 그 안에서 수상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2013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2015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펀 홈>은 그해 열린 토니 어워즈에서 여성 창작 콤비로서는 처음으로 스코어상을 받았는데, 이는 무려 69년 만의 일이었다. 



<펀 홈>의 작사·작곡 콤비 리사 크론, 제닌 테소리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짧은 영광 

문제는 여성 창작진들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이 장벽 안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여성 창작자들이 상업 극장가의 테두리 안에 계속 머물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다. 초창기의 여성 창작자를 대표하는 작사가이자 대본작가인 베티 컴든은 <원더풀 타운>(1953)에서 당시 작가 지망생이자 할 말을 참지 않는 시니컬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 루스 셔우드라는 인물을 만들어냈지만, 토니상은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토니 어워즈의 선택은 발랄하되 도를 지키는 인물들에게 주어졌다. 혹자는 베티 컴든이 토니상을 네 번이나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작사 파트너인 아돌프 그린과 작곡 파트너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묻어간 덕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서글프게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늘 베티 컴든에게 작품 상담을 해왔고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아돌프 그린과는 의견 차이로 싸움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돈독한 협력 관계를 평생 유지해 왔다. 베티 컴든은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따뜻한 유머 감각을 선보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고 토니상은 그 자신의 재능과 노력 때문에 얻은 것이지만 남자 파트너들이 아니었다면 받지 못했을 거라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다. 베티 컴든은 남자 파트너들을 선택함으로써 상업 공연계의 장벽 안에 머물 수 있었지만 실상은 여성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베티 컴든 이후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린 아렌스의 경우 2017년에 리바이벌 뮤지컬상을 받은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이후 <수지컬>, <록키>, <아나스타냐> 등 7개 작품을 올리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펀 홈>에서 대본과 작사를 담당했던 리사 크론은 아직 후속작 소식이 없다. 작품 하나가 올라오는 데 최소한 5년 이상이 걸리는 브로드웨이에서 리사 크론의 후속작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걸까. 뮤지컬 작품상과 스코어상, 대본상까지 휩쓸었던 <펀 홈>은 레즈비언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의 원작이 지닌 아우라와 리사 크론의 궁합이 너무나 잘 맞았지만, 리사 크론은 여전히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작가는 아니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실제 리사 크론은 <펀 홈>으로 오프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상인 오비 어워즈에서 상을 받으며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우려를 받았다. 이는 단지 리사 크론에게 씌워진 굴레만은 아니다. 토니상 뮤지컬 연출 부문에서 수상한 연출가 가운데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안무가 출신의 수잔 스트로먼과 다이앤 폴루스 정도다. 수잔 스트로먼은 안무가로서만 네 번이나 토니상을 받았고 <프로듀서스>로 브로드웨이 연출가로 데뷔하여 연출 부문과 안무 부문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로도 꾸준히 전통적인 스타일의 뮤지컬을 연출하고 있지만 연출상은 여전히 다시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뮤지컬 <피핀>의 배경을 유랑극단에서 서커스단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컨셉 변경으로 뮤지컬 연출상을 거머쥔 다이앤 폴루스도 퍼블릭 시어터에서 개최하는 야외 공연 행사인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에서 <헤어>를 선보여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후 안정적으로 브로드웨이 상업 극장가에 안착한 경우지만 연출상 수상은 <피핀> 단 한 번으로 그쳤다.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연출상을 받으며 브로드웨이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공연계를 들썩이게 했던 줄리 테이머는 이후 <스파이더맨> 연출에서 사퇴하고 지난 2017년 공연된 가 흥행에 실패할 때까지 지난 이십여 년간 브로드웨이로부터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가면극을 기반으로 영화와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방면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있음에도 브로드웨이가 줄리 테이머를 비상업적 감수성의 연출가로 분류해 버렸기 때문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수잔 스트로먼이 <크레이지 포 유>로 안무상을 받고서도 연출가로 데뷔하기까는 십 년 이상이 걸린 것은 제리 미첼이 토니상을 받지도, 흥행이 되지도 않은 작품을 안무하면서도 일자리가 끊임없이 주어진 것과는 확연하게 대비된다. 물론 <킹키 부츠>로 뮤지컬 작품상과 안무상을 받은 제리 미첼의 안무와 연출이 결코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짚고 넘어갈 점은 남자 안무가인 그는 첫 작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작품 의뢰를 받지만 여성 안무가나 연출가에게 첫 작품의 실패는 긴 공백이나 퇴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연극 연출 쪽으로 가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연극 부문에서 여성이 거머쥔 연출상 중 세 번은 영국 연출가에게 돌아갔다. 영국 작품의 뉴욕 라이선스 공연의 연출로 상을 받은 것으로 이들의 주 활동 반경은 브로드웨이보다는 런던이다. 게리 하인즈의 경우는 아일랜드 국립극장의 상임 연출가로 마틴 맥도너의 출세작 <뷰티 퀸 오브 리낸>을 맡아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게리 하인즈 역시 브로드웨이급 상업 연출가보다는 ‘예술적’ 대가로 분류되어 슬쩍 밀려난다. 미국 연출가인 메리 짐머먼의 경우도 비슷하다. 메리 짐머먼의 <메타모포시스>는 뉴욕 바깥 극장에서 공연되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케이스로 한국에서도 공연됐다.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원번역자의 저작권 문제로 물의가 있었던 작품이지만 <메타모포시스>는 신화를 물로 해석한 메리 짐머만의 참신한 연출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연출 방식에도 불구하고 다시 브로드웨이의 콜을 받지 못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퍼펫 인형과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연극 <워 호스>로 공동 연출상을 받은 마리안느 엘리엇의 경우 영국 맨체스터에서 출발해 돈마 웨어하우스를 거쳐 웨스트엔드로 진출해 꾸준히 활동하며 강한 존재감을 자아내고 있다. 
 

여성 연출가들과 여성 작가들은 토니상을 받기도 어렵지만 받았다고 다음 작품이 보장되지 않는다. 한 작품이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그들에게는 존재한다. 브로드웨이에 작품 하나 올리고 사라지는 작가와 연출가가 한둘이 아니지만 이들은 상을 거머쥐고도 안심하지 못한다. 왜냐, 여성이기 때문에. 다행히 2016년부터 불기 시작했던 미투 운동 이후 브로드웨이도 확연하게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그 변화는 신작보다는 우선 리바이벌 작품 위주로 불고 있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와 <회전목마>가 장면 연출의 방향을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틀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최근 개막한 <프리티 우먼>도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되지 않도록 여성학계의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또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전체 제작자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던 여성 제작자의 비율도 현재는 약 28퍼센트까지 늘어났다. 여전히 1/3 에도 못 미치지만 여성 제작자들이 늘어나면서 여성 창작자들의 작품에도 호의적인 눈길을 주는 제작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연출가, 작가, 작사가, 작곡가 등 모든 창작자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이트리스>가 올라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를 길게는 150년, 짧게는 100년 정도를 잡는데 모든 창작자가 여성인 뮤지컬이 2016년에 처음 올라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브로드웨이가 보수적이고 여성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에서 여성 수상자는 100년 역사 동안 단 16명뿐이다. 


모든 창작자가 여성인 <웨이트리스>

 

웨스트엔드의 성평등을 위한 움직임 

그렇다면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얼마나 다를까. 웨스트엔드는 브로드웨이보다 먼저 배우들의 인종 초월 캐스팅이 자리 잡은 곳이다. 그에 걸맞게 최근에는 다양한 페미니즘 시각의 새로운 경향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 반면 웨스트엔드를 대표하는 올리비에 어워즈의 결과는 사실 토니상과 그다지 차이는 없다. 올리비에 어워즈가 토니상보다 약 30년 늦은 1976년에 시작된 것을 감안해도 결국은 결과에 큰 차이는 없다. 특히 연극 부문 대본상을 받은 캐릴 처칠로 보자면 <톱 걸즈>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작을 썼고 영국과 미국의 여성 작가들이 꼽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극작가 1위에 꼽힌 살아 있는 전설 같은 극작가이지만 올리비에 상은 단 한 번 받았을 뿐이다. 태어난 나라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더 각광받는 떠오르는 신예 작가인 카토리 홀과 영국의 신예로 떠오른 <차이메리카>의 루시 커크우드도 신작을 들고 나타날 계획이 없는 모양이다. 영국의 뮤지컬 쪽은 더욱 척박해서 작품상을 받은 세 창작자는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건너온 라이선스 프로덕션의 창작자들이다. 연출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는 연출가는 브로드웨이에서도 맹활약 중인 마리안느 엘리엇이다. 안무가 부문의 인물들 역시 카렌 브루스를 제외하면 모두 미국 라이선스 작품의 안무가들이다. 연극이 뮤지컬보다 훨씬 강하고 신작의 편수도 미국이 더 많기 때문이라 한다 해도 지나치게 여성 창작자들의 입지가 좁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소위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창작자들은 웨스트엔드의 바깥에서 ‘예술적인’ 활동에 집중한다. 
 

셰익스피어 글로브 시어터의 예술감독인 미셸 테리는 지난 4월에 시작한 여름 시즌의 캐스팅에서 거의 모든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선언을 해버렸다. 젠더 프리, 인종 프리, 장애 프리 선언을 했고, 차근차근 조금씩 설득하기보다 어차피 그렇게 가는 것이 옳다면 왜 더 미루느냐는 꽤 멋진 실행을 했다. 그 결과 햄릿은 미셸 제 자신이 맡았고 오필리어는 남자 배우가, 햄릿의 친구 역에는 왜소증 장애가 있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동시에 올라간 <뜻대로 하세요>에서는 로잘린드 역에 남자가, 셀리아 역에는 청각장애를 지닌 배우가 등장한다. 흥행은 성공했지만 평단은 이 파격적인 캐스팅에 대해 찻잔 속의 태풍, 지나갈 한시적인 유행이라는 말로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런던의 극장가와 방송, 영화계는 아직 태풍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올해 1월 성평등 캐스팅을 위한 프로그램인 네로파(NEROPA: Neutral Roles Parity)가 론칭됐다. 기계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반반으로 나누기보다는 다양한 기준을 제시해 캐스팅의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으로 근본적인 목표는 성 중립적인 캐스팅을 실현하는 것이다. 네로파 캐스팅 툴이 영국의 극장가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여성 배우들의 권익을 위한 캠페인 그룹인 ERA(Equal Representation for Actresses)는 2020년까지 영국의 배우 노조와 영화 제작자 협회, 극장 협회에 성비 균형에 맞는 캐스팅과 작품 제작을 위한 도구로 네로파 캐스팅 툴을 제안하고 있기는 하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영국발 작품들은 지금보다 훨씬 재밌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캐스팅 툴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더욱더 많은 여성 창작자들을 육성해 고용하고, 무엇보다 믿는 것이다. 남성 창작자들이 보고 싶은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 창작자들이 여성 관객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더 많은, 다양한 작품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앞으로도 의사 또는 소방수가 여성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우치며 공연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0호 2018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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