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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어쩌면 해피엔딩> 집중 탐구 : 사랑이란 힘, 올리버와 클레어 [No.182]

글 |배경희 사진제공 |대명문화공장 2018-12-06 546

 

사랑이란 힘, 올리버와 클레어

 

21세기 후반, 외딴 아파트에 버려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 우리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두 로봇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자율적인 사랑이 불가능한 이 로봇들이 사랑이란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두 로봇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사랑하게 된 걸까요. 사랑의 힘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미래의 도시로 날아가 올리버와 클레어를 만나봤습니다.

 

※이 글은 올리버 역의 김재범과 클레어 역의 최수진 배우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재범의 올리버, 찬란히 빛나는 순수함   
 

옛 주인 제임스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 친구 제임스요? 제임스는 주인 아니에요. 우린 친구 사이거든요. 뭐 어쨌든. 제임스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짠돌이에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 해도 쉽게 버리잖아요. 그런데 제임스는 10년 넘게 저를 데리고 있었어요. 제가 고장이 나면 수리해 주면서요. 그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정이 많은 사람인지 알 수 있죠. 제임스는 저한테 절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어요. 시킨 일을 다 했을 땐 항상 고맙다고 해줬고요. 어디선가 들은 건데, 헬퍼봇 중에는 주인한테 너무 학대를 받은 나머지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로봇들도 있대요. 그러니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그래도 언젠간 이별의 순간이 올 것이라는 걸 예감했나요?

제임스는 결혼하면 제주도에 내려가 살 거라고 했어요. 여자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죠. 그래서 솔직히 어느 정도는 짐작했지만, 그 이별이 영원한 이별일 거란 생각은 안 했어요. 왜냐면 제임스가 제주도에 내려가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저를 꼭 데리러 오겠다고 했거든요. 메트로폴리탄의 아파트에 데려다 주던 날, 제임스가 차 안에서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전 그 말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럼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언제…?

제가 버려졌다뇨. 제임스가 저를 못 데리러 온 건 그가 아팠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가족들이 절 반대했을 수도 있죠. 왜 구형 헬퍼봇을 여기까지 데리고 오냐고 하면서. 하지만 절대 제임스의 뜻이 아니었을 거예요. 저희 집에 매달 배달되는 월간 재즈, 그거 제임스가 매달 보내준 거거든요. 그것만 봐도 그가 저를 얼마나 생각해 줬는지 알 수 있어요. 아닌가요? 제 방에 있는 레코드플레이어도, 레코드판도 다 제임스가 아끼는 물건들인데 제게 맡겨두었죠. 제 유일한 대화 상대였던 화분도요! (사이) 제임스가 오지 않는 건, 분명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아주 요만큼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리 없다고 믿었죠. 
 

근데 화분 말이에요, 제임스가 키웠던 거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어요?

제 화분은 미래에 새롭게 개발된 식물이에요. 굉장히 오래 살죠. 아직 이 미래를 경험하지 못한 분에게는 어떻게 설명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클레어가 찾아왔을 땐 어땠어요? 노크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저희 집에 노크 소리가 나는 유일한 순간은 우편배달부님이 방문할 때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우편배달부가 왜 이 시간에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이어 혹시 제임스가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설레였어요. 그러다 저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났고요. 아시겠지만, 제가 병을 팔아서 동전을 모으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잖아요. 헬퍼봇은 원래 돈을 모으면 안 되는데. 그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클레어를 사랑하게 됐나요?

클레어하고 제주도에 갔을 때요. 정확히는 제주도에 사는 제임스를 찾아갔다 혼자 돌아 나온 저를 클레어가 위로해 주던 바로 그 순간이요. 제임스는 작년에 죽었고, 제 오랜 기대와 달리 그의 가족들은 절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클레어의 진심 어린 위로가 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었거든요.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았는데, 제임스가 제게 선물을 남긴 걸 보면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저를 생각했을 거라는 그 위로의 말이 정말이지 너무 고마웠어요. 아마 그때 저한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오류가 일어난 것 같아요.
 

사랑 때문에 메모리를 초기화하기로 하고선 기억을 지우지 않은 이유는 뭐예요?

소중한 추억이니까요. 너무 가슴 아프지만 기꺼이 그 아픔을 버티게 하는 소중한 추억. 클레어가 기억을 지웠는지 안 지웠는지 모르겠지만, 전 차마 지울 수 없었어요. 사실 클레어랑 헤어지고 나서 먼저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방 안을 서성였어요. 하지만 클레어를 위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죠. 클레어가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들과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다 어느 날 편안하게 전원이 꺼지길, 그녀에게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요.


 

최수진의 클레어, 밝고 당당한 에너지
 

올리버와 점차 가까워지면서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하잖아요. 사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건, 당신 주인의 영향이었겠죠? 

제 주인은 두 명이었어요. 연인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두 사람이 이별을 맞으면서 구형 헬퍼봇들이 살아가는 외딴 아파트에 오게 된 거예요. 연인끼리 강아지를 같이 키우다 헤어지면, 강아지는 두 사람 모두에게 버림받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 비슷한 경우였죠. 전 아무래도 남자 주인보다는 여자 주인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는데, 행복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였어요. 그때부터 제 마음속엔 사랑에 대한 상실감이 두렵게 자라나고 있었나 봐요.
 

그럼 아파트에 처음 보내졌을 때, 주인에게 버려졌다는 상황을 다 알았던 거예요?

네. 하지만 전 주어지는 상황에 빠르게 순응하는 헬퍼봇이라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제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아파트에 혼자 남겨졌을 때조차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슬퍼하지 않고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전히 클레어로서 이곳에서 혼자 살아갈 방법을 고민했죠. 긍정적으로요. 그래서 아파트에 있는 다른 로봇들하고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리버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올리버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제게 적대적으로 굴었는데, 당시에는 충전기를 빌리는 게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건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아, 제가 올리버에게 충전기를 한참 빌리러 가다 안 갔더니 올리버가 저희 집을 찾아오잖아요? 그때 정말 너무 미안했어요. 올리버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아차 싶었죠.
 

화분을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레코드플레이어로 재즈음악을 듣는 올리버는 여러모로 독특한 면이 있는 헬퍼봇이에요. 그런 올리버의 성격 중에서 가장 특이하게 느껴졌던 게 있어요?

제가 올리버보다 한 단계 버전이 높잖아요. 올리버는 5모델이고, 저는 6모델이니까. 그런데 제 생각엔 5든 6이든 어차피 둘 다 똑같이 버려진 낡은 구형 로봇인데 버전 하나 차이가 뭐라고 저를 경계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나중엔 자격지심 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올리버가 진짜 특이하게 느껴졌던 건, 주인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주인이 언젠가 자기를 다시 찾으러 올 거라 믿는 모습이었어요. 자기를 버리고 떠난 주인을 찾으러 가기 위해 동전을 모으다니 정말 독특한 헬퍼봇 아닌가요. 물론 나중에는 올리버를 통해 제가 그동안 몰랐던 주인과 헬퍼봇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 알게 됐지만요.
 

그럼 제주도에서 올리버가 진짜 제임스의 집을 찾아간 것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겠네요? 

올리버한테 제주도에 가자고 한 이유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어서였거든요. 당연히 안 갈 거라 생각했는데, 올리버가 그러자고 해서 처음엔 좀 놀랐죠. 아마 제임스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그래도 올리버가 진짜로 제임스를 찾아갈 줄은 몰랐어요. 주인은 주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른 로봇들은 다 아는데, 얘는 왜 모르는 걸까 답답했죠. 그런데 제임스의 집에 갔다 혼자 되돌아 나온 올리버를 봤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어떻게든 위로를 해줘야겠다 싶었죠.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뿐이었어요.
 

올리버에게 사랑한 기억을 지우자고 말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어요?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아마 많은 고민을 했겠죠?

물론 아주 많은 고민을 했죠. 하지만 기억을 지우자고 마음먹었을 때는 제 선택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제가 점점 더 고장 나기 전에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저로 인해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올리버를 만나기 전에는 수명을 다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하지만 올리버를 알고 나서 조금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사랑의 폐해예요. (웃음)
 

그런데 클레어, 당신은 정말 기억을 지웠나요?
글쎄요. 그건 영원한 비밀로 남겨둘 거예요. (미소) 하지만 올리버를 다시 만나서 혹시라도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면, 눈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이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억을 지우자고 해서 미안하다고, 한날한시에 똑같이 수명을 다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끝까지 함께하자고 말할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2호 2018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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