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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랭보> 성종완·이심의, 미지의 세계를 향한 한 걸음 [No.183]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9-01-02 3,686

<랭보> 성종완·이심의 , 미지의 세계를 향한 한 걸음

 

창작뮤지컬 <랭보>가 막을 올렸다. <랭보>는 처음부터 한·중·일 프로젝트로 공동 개발되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오는 12월 상하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중국 무대는 한국의 연출가, 안무가, 음악감독이 참여하는 레플리카 공연으로 제작된다. 이를 위해 중국 배우들이 지난 10월 말 한국에 들어와 연습하고 있다. 한국 스태프들이 중국 현지에서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종종 보지만 중국 배우들이 들어와 공연 준비를 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랭보>의 연출가 성종완과 중국 공연의 협력연출인 이심의(Lee Xin Yi, 李心毅)가 함께 한중 뮤지컬 교류와 작품 <랭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공연을 본 소감을 말해 달라.

이심의_ 랭보를 맡은 네 명의 배우들이 자기만의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 극적 상황과 대본, 음악을 잘 인지하고 있어서 각 배우의 랭보가 서로 달랐지만 자연스럽고 매력적이었다. 무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잘 짜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중국에서도 랭보가 유명한가? 이 작품이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을까?

이심의_ 랭보의 시는 1900년대 초반에 중국에 소개되었다. 나 역시 랭보의 시를 읽은 적이 있고 랭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랭보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작품의 관객이 될 것이다. 
 

중국 배우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았을 텐데 어떤 차이를 느꼈나?

성종완_ 한국 공연에서도 배우들에게 말을 시처럼, 시는 말처럼 해달라는 모순된 요청을 했는데 중국 배우들이 하니까 그게 저절로 이루어지더라. 아마도 중국말의 성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되게 자연스럽고 중국말이 <랭보>랑 썩 잘 어울렸다. 민찬홍 작곡가의 음악도 마치 중국 공연을 위해 쓰인 것처럼 잘 맞았다. 
 

중국 공연은 흔히 현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번 공연은 완전한 레플리카 형태로 공연되는 것인가.

이심의_ 현지화가 없을 수는 없다. 한국어 대사를 중국어로 번역했을 때 어색한 부분이 많아서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한에서 변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초록’이란 노래가 있는데 중국어 발음이 ‘루위’이다. 이 발음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이 발음만으로는 뜻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중국 관객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수정하고 있다. 중국 투어 공연을 갈 때는 지역 사투리를 넣는다거나 그러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아직 연습 초기라 성종완 연출과 중국 배우들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 상태는 아니었다. 이후에는 이심의 중국 협력연출이 작품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성종완 연출이 주로 대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심의_ 배우들을 연기 지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성종완_ 창작은 항상 어려운데 대본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습을 하게 된다. 배우들마다 랭보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그런 의견들을 종합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연출의 일은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서 한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랭보는 지금 작품에서보다 더 악마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나 민찬홍 작곡가 음악의 결이 그렇지 않았고, 윤희경 작가의 선한 성품이 작품에 배어 있어서 최종 결과물에서는 랭보의 악마적이고 파괴적인 느낌이 희석되었다. 

이심의_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랭보는 말도 없고 마음속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파격적인 일을 벌이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종완_ 랭보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점은 아버지의 부재였던 것 같다. 부재한 아버지 자리에 수많은 예술가들을 놓다 보니까 랭보는 그들의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보들레르의 악에 관한 것까지도 그대로 흡수한 17세의 랭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이심의_ 베를렌느도 애매한 캐릭터였다. 성장 배경으로 봤을 때는 보들레르랑 비슷하고 랭보는 둘을 비슷한 존재로 받아들인 것 같다. 베를렌느나 랭보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인데 랭보에게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베를렌느와 들라에밖에 없다. 들라에는 그의 시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예술적인 인정을 받고 위안을 줄 수 있는 인물은 베를렌느밖에 없다. 그래서 랭보와 베를렌느의 관계는 사랑을 넘어선 그 이상의 관계라고 봤다. 

성종완_ 정확하게 본 것 같다. 베를렌느에 대해 좀 더 말하면 그는 랭보를 만나기 직전 깊은 우울에 빠진 상태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그런 상황이었다. 랭보와 같이 예술적 이상을 추구했지만 취직도 해야 했고 결혼도 해야 했다. 삶에 지쳐 있고 죽지도 못한 난파선 같은 그의 상황이 시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 순간에 랭보의 편지를 받게 된 것이다. 

이심의_ 요 며칠 베를렌느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는 사람이었고 성공한 사람이면서도 혁명의 실패 때문에 그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성종완_ 우리 작품에서는 베를렌느를 오로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봤다. 파리코뮌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부인에게 비난을 받고 실제 가담했다가 시청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시를 쓰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인데 오히려 그런 주변의 일들이 그에게 스트레스였던 거다. 

이심의_ 세 명의 캐릭터 중에서 베를렌느가 가장 어렵다. 이 인물을 어떻게 연출했는지 궁금하다. 

성종완_ 랭보나 베를렌느가 만약 우리 지인이었다면 우리도 비난했을 만한 인물이다. 랭보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었다면 관객들이 베를렌느에게서 감흥을 받을 수 있는 지점은 처절함이다. 그는 처절한 여정 끝에 (작품에는 나오지 않지만) 시인의 왕이 된다. 시인의 왕은 당시 파리 예술가들이 뽑았다. 랭보를 만난 이후 베를렌느도 성장을 했던 것이다. 작품에서 베를렌느의 성장이 보였으면 좋겠다. 

이심의_ 작품 속에서 들라에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성종완_ 관객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의 인물이다. 랭보와 베를렌느는 관객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인물이다. 관객의 입장과 가장 가까운 들라에의 눈을 통해 랭보의 삶을 바라본다. 많은 관객들이 들라에의 감정선을 따라가더라.



 

<랭보>의 원작 연출과 중국 협력연출과의 대화는 인물에 대한 고민을 넘어 작품 자체로 향했다. 랭보는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최종 목표를 찾았을까. 

 

시를 쓰던 랭보가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난다. 이 지점을 어떻게 이해했나?

이심의_ 중국에서도 하늘이랑 가장 가까운 티베트에 가서 힐링을 받고 오곤 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 랭보도 그와 비슷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 시기의 아프리카는 가장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고 원시적인 상태인데 그 속에서 자신이 찾고 있는 이상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성종완_ 랭보가 그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시인이란 고통 속에 있는 존재였다. 랭보는 자신의 시 세계를 이해받고 싶어 했다.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인물이 베를렌느였는데 그가 “너의 시는 모두 허상이고 망상”이라고 말했을 때 랭보는 더 이상 시의 세계를 걸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마지막 총을 들고 읽는 시가 그에게는 시인으로서의 생명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삶의 고행을 통해 진정한 시의 세계를 발견한다. 일기지만 그것이 진정한 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심의_ 불교에서도 체물이라고 머물러 사물을 체험한다는 말이 있는데 랭보도 몸으로 체험하면서 세상을 이해했다고 본다. 일기장은 랭보의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담았다. 

성종완_ 노동이라는 개념이 더해지는 게 중요하다. 들라에는 우리 모두처럼 노동을 하는 농부이다. 랭보가 마지막에 시를 접고 또 다른 시로 노동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일반 관객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랭보에게는 감각들이 중요했던 것 같다. 배우들에게 대사나 시어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표현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부딪혔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네.” 감각의 착란을 통해서 진실을 투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인이었다. 고행 역시 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통찰하려고 했던 그의 시 세계의 연장선이라고 본다. 

이심의_ 랭보는 오감이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색맹이나 색약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가 눈으로 보는 세계는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모음들’이라는 시는 랭보의 그런 특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들에게 시란 무엇이었을까?

성종완_ 베를렌느는 시가 목적이었다면 랭보에게는 수단이었던 것 같다. 미지의 세계로 가기 위한 수단. 랭보는 투시자가 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투시자라는 단어가 생경한데 선지자와 같은 의미이다. 거의 예수나 싯타르타와 같은 반열에 자신을 놓았던 것 같다.
 

랭보는 아프리카에서 육체적인 노동을 통해 자신이 찾던 미지의 세계를 찾았을까?

성종완_ 그렇다. 그것을 바로 ‘영원’이라는 시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 인생의 다음 걸음, 그것이 미지의 세계이다. 창작자의 자의적인 해석이긴 한데 우리는 찾았다고 봤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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