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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더뮤지컬 배경희의 내가 사랑한 뮤지컬 [No.186]

글 |배경희 2019-03-29 3,787

내가 사랑한 뮤지컬  

당신이 기억하는 첫 번째 뮤지컬은 무엇인가요? 당신을 가장 많이 웃음 짓게 했던, 또 가장 많이 울게 했던 뮤지컬은요? 당신에게 뮤덕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한 뮤지컬도 있나요? 바람 잘 날 없는 뮤지컬계 관계자들에게 당신을 붙잡아 두고 있는 인생작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공개되는 프로 관극러들의 덕밍아웃 다이어리!

배경희



처음이란 의미 <오페라의 유령>
자기 기분을 해치는 사람이라면 살인이라는 처벌을 내리는 팬텀을 연민하게 하는 이 공연의 완벽한 흐름과 짜임새는 언제 봐도 감탄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생 때 떠난 첫 유럽 여행 중 관람한 첫 해외 관극작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작품이죠. 살아본 적도 없는 런던에 향수병이 있는 탓에 최근 몇 년의 휴가를 계속 런던에서 보냈는데, 작년 봄 여전히 ‘팬텀’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허 머제스티스 시어터 앞을 지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2년 동안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꿈이, 그리고 인생이 바뀌었을까? 그래서 말인데, 앤드루 로이드 웨버, 그런 속편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사랑스러운 살구색 성장담 <내 마음의 풍금>
제 인생 창작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처음 봤을 때의 감정적 경험을 평생 간직하고 싶은 작품. 너무 아낀 나머지 흥행 성적을 내 일처럼 걱정했죠. 이 작품처럼 제가 좋아하는 성장담을 따뜻하게 그려낸 창작뮤지컬은 없었거든요. 게다가 남녀 주인공 둘 다 공평하게 각자 자기의 인생 계단을 하나씩 오르죠. 드라마와 음악, 연출, 모든 부문에서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았고요. 특히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작업 중 가장 뛰어난 무대였다고 생각하는데, 수십 개의 전구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오르던 장면은 제게 아주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내 인생의 찬가 <렌트>
제가 처음 본 <렌트>는 조승우가 로저로 출연한 2007년 공연이었습니다. 티켓이 빠르게 매진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매 전쟁에서 살아남은 친구 덕분에 승리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죠. 그런데 이 작품을 진짜 사랑하게 된 건,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리기 전의 마지막 공연 실황을 담은 DVD를 통해서였어요. 우리 인생도 결국은 빌려 쓰는 것이니 되돌려주는 날이 오기까지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작품 메시지가 그때 이상할 만큼 마음을 힘껏 움직였어요. 그러니 2009년 오리지널 로저와 마크였던 아담 파스칼과 앤서니 랩이 참여한 투어 공연이 제게 어떤 의미였을지 다른 설명은 필요 없겠죠. 



완벽한 캐스팅 <스프링 어웨이크닝> 
벤들라 김유영(지금의 전성민), 멜키어 김무열, 모리츠 조정석, 그리고 그 외의 모든 배우들이 이보다 더 탁월해 보일 수 없었던 2009년 <스프링 어웨이크닝> 초연은 제가 기억하는 가장 완벽한 캐스팅 중 하나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 그날 그때 그 공연을 봤다는 걸 자랑스러워할 만한 그런 캐스팅이요. 배 위에 선 것처럼 모든 게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절의 이야기를 이토록 가슴 시리고 아름답게 무대로 옮긴 작품도 자랑스러웠고요. 이런 구식 같은 표현을 쓰기가 꺼려집니다만, 뮤지컬에서도 젊은 감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서로를 성장하게 한다는 것 <위키드>
<위키드>에는 제가 뮤지컬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몸이 탄탄한 미남에다 힘이 세고(중요합니다) 단순한데 여자를 좋아하는, 심지어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는 남자, 피에로요. 사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For Good’이라는 뮤지컬 넘버 때문입니다. 우리말로는 ‘널 만났기에’로 옮겨진 이 곡의 가사는 누군가가 우리 삶으로 들어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죠. 젊은 날의 사랑은 느닷없이 왔다가 금세 가버리곤 하지만, 그 사랑이 가져다준 변화는 내 안에 영원히 남기에 사랑을 잃어도 너무 오래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작품이 제게 준 사라지지 않을 위로입니다. 



스타일리시한 록 뮤지컬 <헤드윅> 
고교 시절 영화로 먼저 접한 <헤드윅>. 분명 영화에 담긴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없었는데도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어떤 비참한 순간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헤드윅이 대단했거든요. 자칭 헤드헤즈가 되어 대학생 때는 원작자 존 캐머런 미첼이 출연한 10주년 콘서트에 헤드윅처럼 노란 가발을 쓰고 간 적도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버전은 마이클 메이어가 연출한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입니다. 스타일리시한 록커 헤드윅에 어울리는 아주 세련된 무대를 보여줬거든요. 닐 패트릭 해리스가 연기하는 헤드윅을 본 것 또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진짜 기적 <원스> 
음악도, 인생도 포기하려는 ‘가이’ 앞에 낯선 여자 ‘걸’이 등장해 거의 막무가내로 그를 다시 노래하게 하는 이 공연의 시작을 좋아합니다. 내 삶에 불쑥 뛰어든 누군가가 마음속 벽을 두드려 인생의 다음 챕터로 한 발 내딛게 하는 것, 이게 우리가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기적 아닐까 싶어서요. 설령 그 관계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디즈니식 해피엔딩을 맺지 않더라도, 그런 기적의 순간들이야말로 삶을 찬란하게 하지 않나요. 덧붙여서, 외국 배우들이 해야만 하는 해외 작품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원스>는 제게 그런 공연 중의 하나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6호 2019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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