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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앨리스 바이 하트>, 소설 속 앨리스가 현실로 녹아들 수 있을까 [No.188]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Deen van Meer 2019-05-16 377

<앨리스 바이 하트>
소설 속 앨리스가 현실로 녹아들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예술 장르가 사랑한 이야기 

1865년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 받아온 이야기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작품의 문학적인 가치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 그리고 독특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창작욕을 불러일으켰다. 이 동화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 공연 예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예술 장르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는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출연하고 팀 버튼이 연출한 2010년 동명의 영화가 있고, 2009년 <원더랜드>라는 제목으로 프랭크 와일드혼과 잭 머피가 올렸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있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는 한때 정신병동이었던 브루클린의 낡은 건물에서 수년간 공연하고 있는 이머시브 공연 <덴 쉬 펠(Then She Fell)>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작가 루이스 캐럴의 또 다른 작품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내용을 차용해서 만들었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다양한 분야의 창작물은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며, 우리 문화에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창작자로 잘 알려진 던컨 쉬크와 스티븐 세이터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 <앨리스 바이 하트> 역시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2012년 영국에서 작게 선보인 작품은 몇 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서 지난여름 뉴욕의 바사 칼리지 워크숍에서 미국 관객에게 소개됐고, 당시 꽤 호평을 받았다. 그렇게 기대 속에 지난 1월 뉴욕 헬스 키친 지역에서 새롭게 문을 연 MCC 극장에서 프리뷰 공연을 시작했고, 4월 초 짧은 공연의 막을 내렸다. 앞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입할 수 있을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관객과 평단의 평가는 호불호가 나뉘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관객들에 비해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응이 나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일단 관객들은 공연의 전반적인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닮은) 분위기에 공감한 듯 보이지만 평단에서는 앨리스의 이야기와 관점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꽤 극명하게 차이가 있는 두 집단의 반응 자체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만큼 장단점이 확실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원작이 던져주는 난제를 극복하지 못한, 아니 극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동화 속이 아닌 1941년 영국의 앨리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단 <앨리스 바이 하트>의 주인공 앨리스 스펜서는 소설 속 앨리스와 다른 인물이다. 뮤지컬에서 앨리스는 1941년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는 영국에 사는 인물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 역에 임시로 만들어진 대피소 혹은 방공호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다. 공연은 사이렌과 멀리서 떨어지는 포탄 소리로 시작하는데, 여러 아이들과 그들을 무섭게 관리하는 간호사와 의사가 등장한다. 첫 장면은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고 굳게 믿으며 곧 다가올 시험을 걱정하는 아이와 모든 것에 냉소적인 아이, 담배류의 환각제를 앨리스에게 권하는 아이, 정서적으로 불안해 계속 소리 지르는 아이 등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관객들은 그 아이들 가운데 루이스 캐럴의 소설을 꼭 붙들고 있는 소녀(로 보이는) 앨리스 스펜서와 앨리스의 친구이자 폐렴에 걸려 다른 아이들로부터 격리된 알프레드 할람을 만난다. 알프레드와 앨리스가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각별한 사이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앨리스는 몰래 알프레드를 만나러 격리된 공간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치 늘 그래 온 것처럼 앨리스는 소설책을 알프레드에게 읽어주며 그가 겪는 현실의 고통을 덜어주려 한다. 그러던 중 간호사가 이들을 발견하고 앨리스가 애지중지하던 책을 뺏어 찢어버린다. 이로 인해 앨리스가 각성(?)하여, 수백 번이고 읽었던 책의 내용을 암기해서(제목의 ‘by heart’는 암기와 관련이 있다) 알프레드에게 읊어주기 시작한다. 동시에 앨리스는 카디건을 벗어 던지며 소설 속의 앨리스가 되고, 폐렴으로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알프레드는 ‘시간에 늘 쫓기는’ 흰 토끼가 되어 모험 아닌 모험을 시작한다. 공연 대부분은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상황들을 비슷하게 묘사한다.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에피소드적인 진행으로 이루어지는데, 기승전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앨리스 스펜서와 알프레드 할람의 이야기이다. 시작부터 앨리스 스펜서는 만약 자신이 알프레드에게 앨리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줄 수 있다면 알프레드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알프레드의 병세가 더 나빠지기 전에 앨리스가 이야기를 끝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앨리스가 말해 주는 소설 속의 이야기와 맞물려 나름의 기승전결을 만들긴 한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모험 중에 앨리스가 여왕의 재판을 받기 전, 알프레드의 병세가 깊어진 시점에 환상의 세계에서 한 번 빠져나온다. 알프레드는 앨리스를 달래주고, 증세가 더 나빠져 완전히 다른 곳으로 격리된다. 알프레드의 상황이 나빠진 것에 상심하고 있는 앨리스가 다시 이야기 속으로 돌아와 여왕의 법정에 서고,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결국 당당하게 여왕에 맞서서 이긴다. 그러나 결국 현실로 돌아왔을 때 앨리스는 알프레드가 이야기의 마지막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다. 모험을 다 끝낸 앨리스는 자신이 앨리스 스펜서로서 마주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조금 더 성장한 것으로 공연이 막을 내린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 동화

공연을 보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음악과 조명, 그리고 앙상블이 다 함께 만들어내는 무대 위의 움직임을 통해 완성되는 전체적인 분위기이다. 브래들리 킹이 디자인한 조명은 앨리스가 소설 속의 세계에 있으면, 장면에 따라 원색적이고 강렬하거나 어슴푸레한 색감과 패턴의 사용을 통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캐릭터에 맞춰 조명을 설정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앨리스가 커지고 작아지는 장면을 그림자로 표현해 낸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에드워드 피어스가 디자인한 무대와 앤드루 디아즈가 디자인한 소품은 함께 창의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시각적으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무대 중앙에 매달린 커다란 시계다. 마치 흰 토끼의 회중시계가 200배쯤 확대되어 형상화된 것 같은 이 시계는 공연하는 내내 인물들의 머리 위에 존재하며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시간의 압박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현실 세계에서 사용했던 간이침대가 소설 속의 정원으로 향하는 문이 되거나, 사다리는 나무가 되는 식으로 장면이 연출된다. 앨리스가 도도새를 비롯한 새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앙상블이 책장으로 만들어진 날개를 달고 등장하는데 첫 장면에서 간호사가 앨리스의 책을 찢어버렸던 것과 연결되어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를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관객들에게 재현해 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릭과 제프 쿠퍼만 형제의 안무이다. 제시 넬슨의 연출과 더불어 쿠퍼만 형제의 안무는 동물과 인간, 그리고 벌레를 넘나들어야 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잘 만들어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앨리스가 애벌레와 재버워키를 만나는 순간이다. 애벌레는 앙상블 여러 명이 팔에 같은 토시를 끼고 일렬로 선 채로 팔을 움직인다거나, 함께 일렬로 ‘ㄴ’자로 앉아 있는 식으로 애벌레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장면 이외에도 앙상블의 움직임을 통해 커다랗고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애벌레를 잘 묘사했다. 물론 애벌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머리 역할을 하는 히쓰 선더스와 킴 블랭크가 앙상블을 잘 리드해 준 것 역시 앨리스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는 중요한 애벌레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 주요했다. 재버워키 역시 장총과 목발을 이용해서 괴물같이 긴 팔다리를 만들어내고, 조명과 앙상블의 움직임을 통해 비현실적인 괴물처럼 보이는 재버워키를 단순하지만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앙상블의 조합은 각 장면과 인물의 개성을 살리고 원작 소설이 지닌 문학적인 상상력을 무대 위에 올려놨다. 최근에 브로드웨이 <디어 에반 한센>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노아 갈빈은 등장인물 중 코미디가 강한 공작부인 역할을 맡아 배우로서 그가 연기할 수 있는 범위를 넓게 보여줬다.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혜성>에서 마리아 부인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긴 그레이스 맥린은 간호사와 여왕 그리고 까치 역을 담당해 그녀의 역량을 뽐낸다. 애벌레 외에도 체셔 고양이 역을 맡은 킴 블랭크 역시 미친 세상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관점을 주는 앨리스의 조력자로, 종종 따라잡기 힘든 앨리스라는 인물에게 무게를 실어준다. 물론 앨리스 스펜서 역할을 맡은 몰리 고든과 알프레드 할람 역의 콜튼 라이언은 앨리스와 알프레드, 혹은 앨리스와 흰 토끼로서 각 장면에서 꽤 합이 잘 맞는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던컨 쉬크의 음악이다. 이 공연은 마치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연상시키는 기타 선율로 시작한다. 기타 선율은 앨리스와 알프레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마다 등장해 감정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특히 모험을 시작하기 전, 공연을 여는 ‘West of Words’나 공연의 마지막에 성장한 앨리스가 알프레드와 앙상블과 함께 부르는 음악의 시퀀스인 ‘Afternoon’과 ‘Winter Bloom’은 그 사이에 있는 허술한 이야기를 보완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울린다. 음악과 가사를 같이 묶어서 쓰지 않고 음악의 장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세이터의 가사가 너무 문학적인 표현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작의 내용에 충실한 세이터의 가사는 각 장면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데 효과적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1941년 영국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는 동화

환상적인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1941년 전쟁이 벌어진 영국에서 첫사랑에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겪어야 하는 앨리스 스펜서의 성장을 그린 의도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넓게 보면, 미쳐 있는 동화 속의 세계와 등장인물은 전쟁을 겪고 있는 앨리스 스펜서의 상황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할 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원작 동화의 이야기에 좀 더 실용적인 가치를 주기 위해 첨가한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은 20대 이상의 배우들과 영국식 영어 발음과 억양이 굉장히 들쑥날쑥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는 현실 속의 앨리스 스펜서는 동화 속의 앨리스가 아이이기 때문에 괜찮은 ‘변화’를 조금은 불편하게 그려냈다. 앨리스 스펜서가 자신의 가슴을 쥐며 자신이 점점 크고 있어서 옷이 잘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간호사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는 의도는 알겠다. 소녀에서 여성이 되어가는 앨리스를 무대 위에서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 역시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장면은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앨리스의 성장에 도움을 줬다기보다는 그 순간 어색하고 말초적인 자극을(관객들은 앨리스가 가슴을 잡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위한 값싼 장치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듯 사소하고 구체적인 부분에서 동화와 합이 맞지 않은 현실을 피상적으로 그려내는 구성은 전체적으로 불편했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은 특히나 던컨 쉬크의 음악이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 더 증폭된 것도 사실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불편함과 마음으로 느끼는 위로 사이의 괴리가 작품의 숨은 의도였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지만(배우들이 그런 부분에 대한 자각을 보이지 않고 연기한 것으로 봐서),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은 앨리스의 이야기를 다룬 최근의 작품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성공작이란 생각도 든다. 물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음악이 좋은 아쉬운 작품으로 남겠지만 말이다. <앨리스 바이 하트>가 혹시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게 된다면 또 어떠한 발전을 거치게 될지 궁금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8호 2019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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