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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 윌리엄 셰익스피어, 제 삶마저 이야기가 되어버린 위대한 이야기꾼 [No.189]

글 |김주연 공연 칼럼니스트 2019-06-12 3,9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제 삶마저 이야기가 되어버린 위대한 이야기꾼  

 

단 한 달이라도 셰익스피어가 없는 공연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당장 6월에만 박근형 연출의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과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 극장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썸씽 로튼>,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한 연극 <알앤제이>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이 모든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의 원천인 셰익스피어, 그러나 이 위대한 이야기꾼의 실체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리처드 3세…. 공연을 좀 보는 사람이라면 일 년에 한번 보는 친척이나 대학 동창들보다 더 친숙한 이름들일 것이고, 연극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창조해 낸 이 인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개성이자 세계이자 우주가 되어 수많은 무대를 만들어내고, 또 다른 무대들의 원천이 되어 왔다. 희극과 비극, 그리고 사극을 아우르는 30여 편의 희곡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수많은 인물과 그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지만, 정작 이 생생한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 셰익스피어의 실제 삶과 성격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후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정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7년의 공백 

일찍이 조지 스티븐스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작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몇 가지 빈약한 사실에 불과하다. 즉, 그가 1564년 4월에 영국의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고,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며, 이후 가족을 떠나 런던으로 가서 배우 겸 작가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스트랫퍼드로 돌아와 살다가 1616년에 짧은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삶을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전기들이 이 부분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외의 다른 부분들은 알쏭달쏭 미스터리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수많은 학자, 연구자, 작가 들이 전 세계 도서관과 고문서실의 먼지 쌓인 자료들을 이 잡듯이 뒤지면서 명확한 기록을 찾아내려 애썼지만, 여전히 이 공백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전기는 5%의 사실과 95%의 억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명한 말까지 나왔을까.  

무엇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은 바로 셰익스피어의 청년 시절, 즉 그가 고향 스트랫퍼드를 떠나 런던에 터를 잡고 이곳에서 유명 극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가장 뜨겁고 열정적인 20대에 그는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대체 무엇이 그를 작가로 이끌고 또 성장시켰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으나, 1585년부터 1592년까지 수수께끼의 7년 동안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어떤 전기에도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실한 자료들과 이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토대로 여러 가설들을 내어놓았다. 누군가는 그가 시골 학교 교장을 하며 교양을 쌓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했다고 주장한다. 바다를 좋아하던 셰익스피어가 선원이 되어 항해를 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했다는 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무엇이 되었든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가설일 뿐이며, 문학사에서 이처럼 흥미진진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공백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이다. 



 

‘진짜’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논란들  

한편, 셰익스피어의 인생에 관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많은 이들이 그의 희곡을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부분이 방대한 역사와 수많은 전설/민담에 얽힌 해박한 지식을 아우르고 있으며, 법, 의학, 경제, 정치, 궁정과 귀족의 생활 등 다양한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있는 데 반해, 실제 셰익스피어는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상경한 시골뜨기에 불과했으므로, 이 모든 것을 그가 알고 썼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어떤 사정으로 인해 자기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진짜’ 작가가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빌렸을 거라 확신을 갖고 있다.  

1857년 델리아 베이컨은 그의 책에서 16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시인인 프랜시스 베이컨이야말로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짜 저자라고 주장했고, 많은 추종자들이 이를 지금까지 진실로 믿고 있다. 이들은 베이컨이 자신의 수필에서 연극을 천박하고 가벼운 오락이라고 공격한 것 또한 자신의 정체를 가리기 위한 연막작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외에 옥스퍼드 백작인 에드워드 드 비어, 더비 백작인 윌리엄 스탠리,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였던 크리스토퍼 말로, 그리고 여성인 팸브로크 백작 부인에 이르기까지, ‘진짜’ 셰익스피어로 지목받은 인물들의 리스트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어 왔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셰익스피어라고 믿는 이들의 믿음과 확신이 너무나 공고해, 각자 믿는 인물의 이름을 딴 베이커니언, 말로비언, 옥스포디언이란 명칭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이러한 리스트와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한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재능 있는 여러 작가들의 합작이라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처럼 ‘진짜’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하는 노력은 수세기에 걸쳐 쉬지 않고 이어져 왔으나, 안타깝게도 나름의 논리와 타당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 모든 주장 중 어느 하나도 결정적인 증거나 기록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하나의 가설로만 내려올 뿐이다. 



 

수많은 가설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전설 

언뜻 이러한 주장들은 작가로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모독이자 명예훼손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주장이 이토록 수많은 위대한 희곡을 쓴 작가로서 셰익스피어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데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불만족이 한편으로는 한 작가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찬사이자 축복이기도 하다. 대체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썼을 거라는 지적을 이처럼 오랫동안, 이처럼 자주 받을 수 있을까. 즉 그들의 불만스런 목소리는 사실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인생의 모든 면을 담아내고 있는 위대한 작품들을 어떻게 한 인간이 다 쓸 수 있단 말인가!”라는 감탄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수많은 가설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매혹적인 이야기가 되어 이 위대한 작가의 삶을 더욱 빛나는 전설로 만들고 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 인 러브>나 <위대한 비밀> 등 그의 미스터리한 삶과 정체를 소재로 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소설과 희곡,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의 희곡과는 또 다른 ‘셰익스피어 월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수많은 작품을 남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스로의 삶 자체를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원천으로 제공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역시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작가이자 진정한 이야기꾼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9호 201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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