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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REVIEWERS TALK] <안나 카레니나>, 객석에 닿지 못한 사랑의 불꽃 [No.190]

글 |안세영 사진제공 |마스트엔터테인먼트 2019-07-15 4,026

<안나 카레니나>, 객석에 닿지 못한 사랑의 불꽃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러시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재연을 올렸다. 이 작품은 매력적인 귀부인 

안나가 금지된 사랑에 빠져 파멸을 향해 치닫는 모습을 그린다. <더뮤지컬>이 리뷰어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더뮤지컬 리뷰어 6인이 <안나 카레니나>를 관람하고 대화를 나눴다. 

 

*익명성을 위해 참여자 이름은 뮤지컬 캐릭터명으로 기재했다.

 

안나의 선택이 갖는 의미

스위니_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은 안나와 레빈이라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돼. 브론스키를 만난 후 연애 감정을 쫓아 가정을 저버린 안나와 키티와 함께 가정 생활을 꾸려가며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레빈을 대비시켜 후자를 이상적으로 그렸어.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레빈과 키티 커플의 비중이 줄어서 이들이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과 대비되는 이상적인 삶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안 들어.

나타샤_ 원작의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모두 옮기는 건 불가능해. 이 뮤지컬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과 파멸을 신파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한 것 같아.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고 봐.

모리블_ 안나의 사랑에 집중했지만 그녀의 심리가 잘 이해되게 그리지는 못했어. 안나와 브론스키가 너무 갑작스럽게 가까워지고 멀어지잖아. 그 과정에서 브론스키의 내적 갈등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안나 혼자만 난리를 치는 느낌이야. 특히 후반부에 가면 브론스키는 왜 일에만 빠져 있는지, 안나는 왜 질투의 화신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어. 

나타샤_ 브론스키는 장교로서의 삶을 버리고 안나와 대도시에서 시골로 사랑의 도피를 떠나잖아. 원작을 보면 브론스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이런저런 일에 뛰어드는 이야기가 나와. 그러는 사이 안나는 사교계에서 외면당하고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기쁨인 브론스키와의 사랑에 집착하게 되지. 그런데 뮤지컬에는 이런 중간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니까 안나가 남자 앞길 막는 이상한 여자처럼 보여. 

스위니_ 사회적 굴레를 벗어나 사랑만으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두 사람이 결국 실패하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뮤지컬에서는 그런 면이 잘 살지 않았어. 

롤라_ 궁극적으로 이 작품이 안나를 변호하고 싶은 건지 비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스위니_ 원작자인 톨스토이의 의도는 안나를 비판하는 거였어. 그런데 뮤지컬 연출가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안나를 여성에게 차별적인 당대 사회에 반항하는 인물로 봤다고 하더라.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카레닌에게 시집가서 사랑 없는 삶을 살다가 브론스키를 만나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거지.

모리블_ 연출의 의도가 안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거였다면, 사교계에서 아무리 안나를 욕해도 관객은 안나가 브론스키를 선택한 이유를 납득하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롤라_ 그 전까지 카레닌과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당시 러시아 귀족 사회가 얼마나 모순 투성이었는지 강조했다면 거기서 빠져나오길 원했던 안나의 선택이 더 이해가 됐을 거야.

나타샤_ 뮤지컬에도 브론스키가 카레닌에 대해 ‘걸어다니는 제복 같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긴 해. 열정적인 안나와는 맞지 않는 꽉 막힌 남자라는 거지. 또 경마장에서 카레닌이 브론스키를 응원하는 안나를 자제시키는 장면에서는 가부장의 권위에 억눌려 살아온 안나의 삶이 엿보였어. 그런데 뮤지컬에서 카레닌이 완전히 악역처럼 보이지는 않아. 오페라 극장에서 안나를 만났을 때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주잖아. 

스위니_ 연출은 마지막 순간 카레닌이 안나를 용서하는 결말을 그리고 싶었대. 키티도 안나를 끝까지 미워하지 않고 그녀의 고통을 이해해 주잖아. 이런 장면을 보면 연출이 안나를 변호하려 한 의도가 드러나긴 해. 그럼에도 안나의 캐릭터가 얄팍해 보이는 건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대부분 구체적인 내용 없이 사랑한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마틸다_ 원문 가사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어 가사는 음악과 잘 안 맞고 불필요한 가사가 너무 반복되어서 스토리가 흘러가지 않는 느낌이야. 

히카루_ 재연에서 번역가가 달라졌는데, 어떤 장면은 오히려 번역이 더 나빠졌어. 초연 때는 경마장에서 안나가 카레닌에게 ‘나는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떠났는데, 지금은 ‘나는 이미 그 사람의 여자예요’라고 말하거든. 안나가 자신의 의지로 자유와 행복을 찾아 떠났다기보다 또 다른 속박을 향해 떠난 걸로 느껴졌어.  

파국을 향해 달리는 운명의 기차

나타샤_ 이 작품은 기차역을 배경으로 시작되고 끝나.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는 곳,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마지막에 안나가 자살하는 곳 모두 기차역이지. 기차가 정해진 선로를 따라 달리는 것처럼, 금지된 사랑에 빠진 안나가 파멸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는 건 숙명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느껴졌어.

스위니_ 오프닝부터 기차가 칙칙폭폭 움직이는 걸 표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잖아. 그 멜로디가 극 중간중간 파국을 암시하는 복선처럼 깔리는 게 인상적이었어. 또 기관사 차림의 MC가 계속 등장해서 ‘길을 벗어나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노래를 불러. 이 역시 사회도덕에 어긋난 행동을 한 안나가 결국 파국을 맞게 되리라는 걸 암시해. 

롤라_ 하지만 초반에는 MC의 역할이 불분명하고, 워낙 다양한 장면에 등장하니까 멀티맨으로 착각할 수 있을 것 같아. 

모리블_ 나도 1막에서는 MC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랐어. 나중에 오페라 객석처럼 뜬금없는 장소에 MC가 나타나는 걸 보고 그제야 <엘리자벳>의 토드처럼 죽음을 의인화한 캐릭터인가 생각했지. 

히카루_ 안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날 때 사람이 기차에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연출의 말에 따르면 이때 기차가 멈추면서 나는 끼이익 소리를 의인화한 게 MC라고 해. 그 소리가 안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서 따라다니는 거라고. 

스위니_ 원작 소설에서도 기차역에서 죽은 남자의 형상이 안나의 꿈에 자꾸 나타나. 안나를 따라다니는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지. 그런데 뮤지컬의 MC는 기차 사고와의 연관성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아서 정확히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어. MC가 등장할 때마다 끼이익 하는 효과음이라도 넣어주면 좋았을걸.



 

현대적인 그릇에 담긴 고전

모리블_ 이 작품은 세트를 최소화하고 LED 영상으로 무대를 채웠어. 그런데 철도 노동자처럼 차려입은 무대 크루가 LED 판넬을 움직이는 모습을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하더라.

스위니_ 철도 노동자의 옷을 입혔다는 건, MC와 마찬가지로 안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운명의 힘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마틸다_ LED 판넬이 움직이면서 배경이 매끄럽게 바뀌는 데다, 크루의 움직임에도 연출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좋았어. 또 격자무늬 조명으로 안나를 가두고 있는 틀을 나타낸 것도 좋더라.

롤라_ 나도 경마장 장면, 유리창 장면의 영상 사용은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머지 장면에서는 영상이 사실적인 배경을 재현하는 데 그치잖아. LED 영상이 화려함을 더해 주긴 하지만 특별히 영상 활용이 뛰어났다고 느껴지지는 않아. 

스위니_ 나는 영상이 계속 번쩍거리면서 부산스레 움직이니까 산만하게 느껴졌어. 아무래도 LED 영상은 프로젝션 영상보다 눈이 부셔서 계속 보니 피곤하더라고. 

롤라_ 군무도 너무 많아. 농부들의 풀베기 춤을 그렇게까지 힘줘서 보여줘야 하나.

스위니_ 레빈이 정직한 육체노동의 가치를 중시한 톨스토이의 대변인이라는 배경지식 없이 뮤지컬을 본다면, 그 장면이 굉장히 뜬금없게 느껴질 것 같아. 

히카루_ 프랑스 뮤지컬처럼 노래하는 앙상블, 춤추는 앙상블이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치고 앙상블 합이 잘 맞지 않는 것도 아쉬워. 

모리블_ 음악 역시 프랑스 뮤지컬을 떠올리게 해. 현대적인 전자 음악이 들어간 게 낯설었어.

스위니_ 고전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했지만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진 않았어. 또 멜로디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저음에서 고음으로 갑자기 치솟는 식이라 배우들이 소화하기에 힘들어 보여.  

나타샤_ 2중창, 4중창도 불협화음처럼 들렸어. 오페라 가수 패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귀가 정화되는 기분이었어. 

스위니_ 무대, 음악, 안무가 모두 강약 없이 몰아치기만 하니까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어. 관객에게 음미하고 생각할 여유를 남겨주면 좋겠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0호 2019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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