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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조로> 조승우, 그리하여 지금은 다시 봄 [No.98]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11-11-29 19,095

 


인터뷰를 시작하기로 한 시각은 토요일 오후 3시였지만 조승우는 그보다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해 있었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낡은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흡사 제 집에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스튜디오에 있는 토이 푸들 달래가 처음 보는 남자에게 낯도 가리지 않고 애교를 부리자 동물 좋아하기로 유명한 조승우는 능숙하게 끌어 안고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3년 전, 그러니까 그가 군 입대를 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인터뷰, 특히 공연을 앞두고 하는 인터뷰를 무지하게 싫어하기로 유명한 이 남자가 제대 후 첫 신작인 <조로>의 개막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시점에 녹음기를 가운데 둔 테이블 앞에 앉아 이렇게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홍보 담당자의 말대로라면 캐릭터 분석이 안 된 상황에서 홍보 이미지를 촬영하면서 조로처럼 포즈를 취해달고 했더니 그건 안 한다고 먼저 말하지 않았냐며 항의했다는 배우인데. 하긴 그녀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액션 연습에 힘든 분들 힘내라’는 쪽지를 붙여놓은 프로틴 두 통을 연습실에 슬그머니 갖다 놓고, 앙상블 배우 전원의 이름을 제일 먼저 외우는 동료이고, 플라멩코 선생님이 오디오를 계속 끄러 다니는 게 힘들어 보인다고 원격조종장치를 챙겨온 제자이기도 하다. 그 조승우에게 물었다.

 

 

요즘 하루 일정이 어떻게 돼요? 아침 7시쯤 기상해서 밥 먹고, 뉴스 보다가 다시 좀 자고, 일어나서 씻고 짐을 싸서 10시까지 연습실에 가요. 요즘은 저녁 7시까지 연습을 하니까 끝난 후에 우리 멤버들이랑 정리를 하고, 8시나 9시쯤 연습실에서 나와서 뭘 좀 먹고, 집에 와서 씻고, 11시에 자요. 원래 이렇게 일찍 절대 못 자는데 연습이 너무 힘들어서 요즘은 그냥 뻗어요. <조로>에는 춤이 있고, 액션도 있고, 극중극은 아니지만 디에고와 조로를 오가면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어서 정말 고되거든요. 그런데 숙면을 하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요. 군대에 있을 때도 책 보느라 새벽 두세 시쯤 잤으니까 그때보다 지금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거예요.


입대 직전에 인터뷰를 했죠. 그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때는 좀 아슬아슬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훨씬… 밝아졌죠. 옛날에 비해 성깔도 없어졌고. 군대를 갔다 왔으니까. 사실 그래서만은 아니고. 지금 참 좋아요. 돌아와서 첫 작품인 <지킬 앤 하이드>도 잘됐고, 구(혜선) 감독님이랑 한 <복숭아 나무>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퍼펙트 게임> 역시 아주 만족스럽게 나왔고. 또 지금 <조로>를 하고 있는데 빨리 2막을 만들어서 어서 런스루를 해보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어요. 요즘 드는 생각이 그래요. 내가 마음이 굉장히 건강해졌나보다, 행복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예전보다 더 즐기고 있어요.전 사실 되게 단순하고 허술한 사람인데, 나이 먹어가는 게 요즘 참 재미있어요. 이제야 진짜 30대가 펼쳐진 거 같아요.


군대에서는 내가 할 작품을 내가 선택할 수 없잖아요. 배우로서 허기를 느끼지는 않았어요? 군대 생활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게 좀 좋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있어도 되는 거 같아서. 그런데 허기를 느낀 건… 1년쯤 지나면 계급이 올라가니까 몸이 좀 편해지고 밖의 돌아가는 일들이 보였죠. 한번은 <코러스 라인>을 보러 갔는데 제 스승님이신 남경읍 선생님과 함께 고명석, 최영화, 김경민 같은 친구들이 출연을 했어요. 영화와 경민이는 저하고 같이 작품을 했을 때 앙상블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메인 배역으로 무대에 서 있는 걸 보니까 너무 멋있더라고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와, 얘들이 이렇게 컸구나 생각하면서 그때 또 자극을 받았죠. 아,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 우리 부대에 한지상이 들어왔어요. 지상이가 노래하는 걸 들으면서 ‘와아… 정말 잘한다, 넌 어쩜 이렇게 잘하니…’ 항상 그랬죠.


남이 잘하는 걸 이야기하면서 왜 그렇게 좋아해요? 좋잖아요. 저녁 8시가 되면 지상이를 연습실로 불러놓고 피아노 치면서 발성 좀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노래하는 걸 배웠죠. 그런 게 좋아요. 신선한 자극이 되니까. (박)은태가 처음에 딱 나왔을 때도 완전히 자극이었어요. 은태나 (홍)광호나 (한)지상이, (김)무열이, (조)정석이. 얘들이 우리보다 데뷔를 조금 늦게 해서 어떻게 보면 0.5세대 정도 뒤잖아요. 이런 반가운 후배들이 등장해서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게 좋아요. 얼마 전에는 김준수 씨한테 문자가 왔어요. (윤)공주한테 전화번호를 물어서 ‘형님 저 준순데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기에 반갑다고, 앞으로 꾸준히 잘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저는 새로운 배우들이 계속 나와 주는 게 제일 반갑고 좋아요.


제대 후 첫 작품은 <지킬 앤 하이드>였지만 신작으로는 <조로>가 처음이죠.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니라서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조승우가 선택을 했나 많이들 궁금해 하던데요. 군대 가기 전에 재키가 영국에서 저작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면서 주연 배우의 사인이 들어가 있는 <조로> OST CD를 줬어요. ‘이게 뭐야?’ 하니까 조로 뮤지컬이라는데 사실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어요. 군대에 가야 했으니까. 하기로 한 건, 일단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인 조로였어요. 또 팀이 꾸려지는 걸 보니까 여기는 들어가야겠다 싶었어요. 계약을 할 때까지 직역을 한 대본만 받아본 상태였는데 영국 쪽에서 작품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한테만 줬다고 하더라고요. 좋아, 이 정도 대본이면 할 수 있어, 데이비드 스완이 보완을 잘해 줄 수 있을 거야, 하는 그런 믿음이 있어서 결정을 했죠. 그리고 저는 늘 무게감이 있는 쇼 뮤지컬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팔랑 거리는 게 아니라 메시지가 있고, 음악도 좋고, 어느 정도 유머도 있으면서 감동도 있는, 즐길 수 있는 쇼 뮤지컬을 원했는데 지금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거 같아요. 얼마 전에 1막 런을 했는데 재밌었어요.


<지킬 앤 하이드> 공연 중에 학전 20주년 기념 공연의 <의형제>에 출연했죠. 객석에서도 무대에 선 배우 스스로 벅차 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 공연은 정말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어요. 원래 공연 하는 중에 다른 작품을 못하지만 저 역시도 <의형제>를 언제 다시 한번 해볼 수 있을까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내심 잡상인을 하고 싶었는데 안 시켜주시더라고요. (웃음) 학전 쪽에서는 제가 방정 떠는 역할을 으레 안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고 빼셨던 거 같아요. 나 잘할 수 있는데.

 


그러고 보니 <지하철 1호선>에서도 남자 주인공 격인 안경이 아니었어요. 제비였죠.(웃음) <지킬 앤 하이드>가 내 첫 뮤지컬이라고 아는 기자님들도 되게 많아요. 그 전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데 사실 저는 2000년에 <의형제>로 데뷔했고 그 후로 <명성황후>, <지하철 1호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그 다음이 <지킬앤하이드>인데 뮤지컬은 항상 대박이었어요. 영화배우로는 무명 배우였지만 뮤지컬에서는 나도 놀랄 정도로 늘 자리가 없을 만큼 잘됐죠. 극장 복도 없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래, 난 뮤지컬에서는 흥행 배우야’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곤 했어요. (웃음)


그러다가 갑자기 <지킬 앤 하이드>와 <말아톤>이 함께 터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고요. 저 역시 그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한번에 크게 터질 줄이야’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거품 인기에 끼어서 갔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저는 까칠한 성격의 덕을 본 셈이에요. 고집을 많이 부렸거든요. 방송 섭외가 되게 많이 들어왔는데, 내 범위를 벗어난 일들은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유혹도 많았고 물론 당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어요. 그러다 무너지는 게 순식간이었죠. 이미 짧게 겪고 끝냈어요. 물론 그랬기 때문에 조승우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티비에 나가지 않고도 알릴 수가 있었어요. 그렇게 버겁지는 않았고요. 즐겼죠. 하지만 그 뒤로 받는 관심들, 추측성 기사들, 오보들, 그런 것들에 상처를 받기는 했어요. 사생활이 없어져버렸으니까.


지난달에 홍광호 씨가 그런 말을 하던데요. 뭐가 제일 무섭냐니까 유명해지는 거라고. 그건 운이에요.


사실 자기가 어떻게 풀릴지는 본인이 다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죠. 본인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그런 시기를 겪은 것 때문에 배우로서 달라진 게 있어요? 똑같아요. 내가 작품을 선택하고 그 작품에 뛰어드는 건 내 가슴이 요동쳐야만 하는 일이죠. 내가 지금 <조로>를 선택했는데, <조로>의 오버추어를 시작할 때 ‘빠라바라밤’ 하는 첫 소절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콩닥하는 그런 느낌이 있는지, 늘 그렇게 작품을 선택했어요. 관객이 안 들어도, 작품이 잘 못 만들어져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하고 싶은 작품일 때 한다는 게 기준인데, 그런 결정을 할 때 나와 우리 사무실 대표님은 죽이 잘 맞아요. 내가 대본을 보다가 ‘이거 좋은데, 어때요?’라고 하면 읽어보겠다고 하고 좀 있다가 전화가 와요. ‘괜찮은 거 같은데?’ ‘그럼 가죠’. 우린 주로 그렇게 가요.


몇 해 전에 <스모키 조스 카페> DVD를 가지고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조승우가 그 작품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국내 공연을 고려해보려고 그런다는 거예요. 어떤 작품이나 배역을 꿈꾸는 것이 배우에게 갈증을 주고 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원하는 작품을 하게 해주겠다는 제작자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조승우라는 배우에게 그런 갈증이 있을까 궁금하던데요. <의형제> 같은 경우도 있어요. 저는 학전에서 꼭 다시 <의형제>를 하고 싶어요. 학전에 가서 김민기 선생님을 뵈면 늘 ‘선생님, <의형제> 안 하세요? 6개월, 아니 1년 공연이어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졸랐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어려워져버렸어요. 그 원작인 <블러드 브라더스>가 있지만 번역극처럼 하는 <의형제>는 하고 싶지 않고, 선생님이 번안한 버전으로, 한국식으로 된 걸 하고 싶은데 그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영국에 있는 저작권자에게 연락을 해서 해달라고 조를 수도 없는 거고. 그런 경우는 있어요.


<의형제>의 걸인 역할이 왜 그렇게 좋았어요? 음… 일단 작품 자체가 주는 느낌. 그리고 그 작품 속에서 내가 그 감정들을 따라가면서 내 식대로 해설한다는 거. 하여튼 무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부랑자처럼 갈고리 차고 깡통 들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인물인데 작품 속 어딜 갔다 놔도, 어느 신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은 역할이잖아요. 뮤지컬 무대 데뷔작에서 그런 자유로운 역을 맡았기 때문에 제가 그 맛을 잊지를 못해요. 스무 살에 그 역을 맡았는데 그때도 ‘아, 이건 좀 더 나이를 먹어서 하면 더 깊이가 느껴질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이건 10년 후에 하면 또 다를 거야’ 라는 걸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10년이 지났지만 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쉽죠.


10년쯤 시간이 지나서 보면 때가 타고 색이 바라는 작품도 있고, 향이 깊어지고 윤이 나는 공연도 있잖아요. 학전 20주년 갈라에서 본 <의형제>는 정말로 후자의 작품이던데요. 그렇죠. 바로 그거예요. 배우들도 많이 하고 싶어 해요. ‘이걸 우리가 왜 못하는 거야’ 하고 답답해하죠. 지금 학전에서 <의형제>를 한다고, <의형제> 할 사람 모이라고 하면 배우들이 극장 밖으로 나올 만큼 줄을 설걸요.

 


업계에 있다보면 조승우가 이런 작품을 해줬으면 좋겠다, 저런 작품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도 종종 들려요. 좀 더 나가면 왜 이런 작품을 안 할까 라는말도 들리고. 예를 들자면, 손드하임 작품이라든가. 어렵잖아요. 물론 굉장히 천재적인 작곡가에요. 그런데 난 아직도 들어보면 아, 흉내도 못낼 정도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볼 기회가 없기도 했고.


조승우가 <컴퍼니>를 하면 어떨까 궁금했던 적이 있어요. 아, <컴퍼니>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3년쯤 됐나. 그런데 주인공이 서른다섯 살인데,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아직 어려서인지 몰라도, 그가 가진 고민에 대해서 나로서는 와 닿지가 않았어요.


생활적인 것, 또는 생활의 이면을 다룬 작품들보다는 큰 감정,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맞아요. 굵직하고 명확한 감정이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남들은 너무 신파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 너무 단순한 걸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도 하는데 저는 뮤지컬 작품은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동을 주려면 그 감동이, 재미와 웃음을 주려면 재미와 웃음이 명확하게 전해져야 10만 원 이상씩 티켓 값을 지불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소한 이야기들도 좋아요. 작은 극장에서는 미세한 감정들을 가지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으니까 괜찮지만 제가 서는 극장들이 중극장 이상이 많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작품이 추구하는 바, 가야 하는 방향이 크고 확실한 작품들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입대 전에 인터뷰를 했을 때, ‘신도 아니고 괴물도 아닌, 그냥 배우 조승우’라고 제목을 썼어요. 지금이라면 그런 제목을 절대 쓰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그런 극단적인 분위기가 있었어요. 한쪽에서는 조승우라는 배우를 신격화하고 한쪽에서는 폄하하지 못해서 안달인 이상기후였죠. 지금은 그때와 또 분위기가 달라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글쎄. 일단 나는 복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부담과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존재해요. 일단 대본이 완전히 수정된 것을 받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심지어 <퍼펙트 게임>이라는 영화 마무리를 하느라 아직 까까머리를 하고 야구 선수로 분해 있는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고 칼싸움을 하는 작품의 티켓이 오픈이 됐어요. 노래 가사 수정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그런 소식을 들으면 정말, 부담스러워요. 티켓이 오픈이 되고 얼마 만에 매진이 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게 됐는데 티켓도 잘 팔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해주는구나, 참 감사하다 생각을 해요. 하지만 그 압박감을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늘 첫 공연 때 바들바들 떨면서 가는 거예요. <지킬 앤 하이드> 연습을 하다가 화장실을 갔다 오는 길인데 저 앞에서 회사원 아저씨들이 포스터를 보면서 그러더라고요. 조승우 걔는 얼마나 받는다더라, 걔 좋겠다, 그런데 쪼그만 놈이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냐? 그런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고 있으면, 아, 정말 뭔가를 못 보여주면 큰일이겠구나, 그런데 내가 뭘 보여줄 수 있지? 이런 쓸데없는 고민들을 하게 돼요. 누군가는 ‘네가 뮤지컬을 하면 네가 선택한 작품에 투자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만큼 네 공연에 기대를 하는 관객들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넌 모른다’고 말을 하는데…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즐기는 수밖에 없는 거죠.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외국처럼 캐스팅이 공지가 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나와 같이하는 배우의 팬들도 원하는 캐스팅이 있을 테니까. 적대적인 분위기는…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건 느낀 적이 한 번 있지만… 그러네요. 인신공격을 한다든지 일부러 상처를 준다든지 하는 말을 듣는 일은 줄었어요.


다행이네요. 다행이죠. 하지만 나도 다 인정해요. 나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 엄청 많아요. 나보다 노래 잘하는 배우, 나보다 춤 잘 추는 배우는 정말 정말 정말 많아요. 나보다 잘 생기고 키 크고 매력 있는 배우는 정말, 정말 수도 없이 많아요.
그런데 조승우는 조승우뿐이고요. 에이… 아까도 말했지만 새로운 배우들이 출현해 주는 게 정말 반가워요. 좋은 배우들을 보는 건 진짜 반가운 일이에요


그 짐을 나누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교만한 것 같아요.


뮤지컬에서만 느끼는 기쁨과 영광이 있고 그에 비례하는 짐이 있는 것 같아요. <퍼펙트 게임>을 찍으면서 스포츠와 무대 예술이 뭐가 비슷한가 생각해봤어요. 촬영을 할 때 마운드에 서는데, 이건 정말로 고독한 싸움인 거죠. 다 투수만 바라보고 있어요. 마운드도 무대에요. 거기 서면 촬영인 걸 알면서도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가요. 공을 어떻게 저기다가 던질까, 커브를 던질까 직구를 던질까. 다들 뒤에서 나만 보고 있고, 그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죠. 내가 잘해야 하고, 잘 이끌어야 하고, 그런데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사실은 호흡이고 앙상블이에요. 내가 무대 위에 서면 받쳐주는 우리 앙상블들이 있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내가 이렇게 하면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거 알고 하는 게 있나요? 그런데 그걸 계속 의식을 하면 내 집중을 깨는 거기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무대 위에서 받아들여지는 공기들을 타는 거예요. 솔직히 <맨 오브 라만차>를 할 때는 장난을 많이 쳤어요. 그 작품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드리브를 했는데 가령 ‘이 벌레 같은 놈’이라는 대사를 돈키호테 캐릭터라면 더 재미있는 말로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온갖 버전으로 했는데 무대에서 장난을 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재미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말이 나올까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었죠. 물론 그러다가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을 친 적도 있어요. 그건 분명히 내가 실수를 한 거예요.


본인이 잘못했다는 건 언제 깨닫나요. 대사를 한 바로 그 순간에. 아아, 이걸 왜 했지… 이건 아닌데…. 그러면 커튼콜 때 나와서 기쁨의 인사가 아니라 사죄의 인사를 하게 되요. 허술하죠. 전 완벽주의자가 아니에요. 지금도 악보만 보고 노래를 흥얼거리지 못해요. 피아노를 쳐줘야 하는데, 음, 음악은 굉장히 신성하고 좋은 거지만 여기서는 표현을 콩나물이라고 할게요. 콩나물에 얽매이기가 싫어요. 그래서 손드하임의 작품처럼 작곡가가 너무나도 치밀하게 계산을 해놓은 작품이면 내가 그 작품을 망쳐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나는 감정이 우선인 사람이라, 감정에 따라서 멜로디나 박자나 리듬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번역을 할 때도 늘 참여를 하려고 하고요. 내 감정이 음악에 맞춰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요. 한참 많은 비난을 받았을 때 쟤는 악보대로 안 한다, 쟤는 노래를 못 불러서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얽매이고 싶지가 않아요. 작가도, 작곡가도 배우가 자기가 만든 작품이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해 주기를 바랄 거라고 생각해요. 그에 합당한 정당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을 때 그런 변형을 줘도 인정해줄 거라고.


배우가 장기판의 말처럼 쓰이는 작품과는 굉장히 안 맞겠네요. 정형화되어 있는 거 싫어해요. 전 세계의 모든 프로덕션에서 똑같은 동선으로 맞춰야 하는 작품이라면 저는 좀 힘들어요.


지금까지 연기를 해왔던, 어디에 뭔가 문제가 있는 캐릭터들과 달리 조로는 딱 봐도 멋있는 남자 아닌가요. 조로라고 하면 바로 생각나는 쾌남이고 멋있고 유쾌하고 진지할 때는 진지한, 그런 캐릭터는 변화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작품은 조로의 성장부터 시작해요. 데이비드 스완이라는 연출가가 모든 작품에서 키포인트로 삼는 것이 사람이 갖고 있는 두려움인 것 같아요. <지킬 앤 하이드>도 그랬지만 사람의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그리는 건 <조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작품 초반에 디에고라는 인물이 헐렁헐렁하게 나와서 자기는 아버지처럼 될 수 없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그걸 원할 때마다 두렵다고 털어놓죠. 그런 디에고가 상류층 자제로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 스페인으로 간 사이에 라몬이 음모를 꾸며서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고 디에고를 제거하려고 하는데 루이자가 집시가 된 디에고를 찾아와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 싶지만 어떤 면에서는 <라이온 킹>과 비슷한 이야기에요. 결국에는 영웅이라는 존재에게 달라붙어 있는 그림자가 자신의 두려움들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죠. 대중들은 영웅을 원하지만 사실 그 영웅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돌파하는 사람들이에요.


대중들이 무대 위의 스타에게 원하는 것도 비슷한 거 같은데요. 으아, 부담스럽다… 하지만 저는 그 표를 사는 사람들이 내 편이라고 믿어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인데 저 배우가 선택한 작품이라는 걸 믿고 티켓을 구입한 사람들이라면, 난 트위터는 하지 않지만 팔로우라고 하나? 나를 팔로우 해주는 사람이라고 봐요. 떨리는 마음으로 티켓 전쟁에 참여해서 표를 사고, 예매한 날짜를 기다려서 본인이 선택한 제일 예쁜 옷, 멋있는 옷을 입고 몇 달 전부터 짜놓은 그날 하루의 계획대로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공연장을 찾아주는 그들. 그들에게 내가 최선의 공연을, 최고의 공연은 아니더라도 내가 숨거나 머리 굴리거나 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공연에 대해 그분들은 분명 나에게 박수를 보내줄 거라고 믿어요.

 


계원예고를 다닐 때, 자려고 누워서 나중에 이런 배우가 돼야지, 이런 무대에 서 있겠지 상상했던 것들이 있어요? 그때 꿈은 굉장히 광범위했어요. 뮤지컬에 미치잖아요. 전 구(혜선) 감독님 나오는 드라마 <더 뮤지컬> 1회를 봤는데, 거기서 감독님이 <마리아 마리아>의 옥주현 씨 노래를 듣고 극장에서 못 나오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뮤지컬에 한번 미치면… 아주 싼 티 나게 비유를 할게요. 남자들은 당구를 배우면 자려고 누워도 머릿속에 당구 길이 보여요. 뮤지컬에 미친 사람은 똑같아요. 꿈을 꾸면 갑자기 장발장이 나오는데, 장발장 옆에 럼텀터거가 서 있어요. 알돈자와 스위니 토드가 <코러스 라인> 식으로 턴을 돌고 있는데 돈키호테가 말을 타고 막 가로질러 가요. 완전 판타지에요. 그런데 그 주인공들은 다 저예요. 다 하고 싶은 거예요, 다. 그때는 그렇게 가릴 게 없는 거죠. 1막에선 장발장을 하다가 2막에서는 자베르를 하고, 그러다가 대사 까먹어서 무대 위에 멍하게 서 있는 악몽도 꾸고. 아, 얼마 전에는 <스위니 토드> 연출가가 갑자기 와서 <렌트>에 마크 역으로 출연하라고 하는 꿈도 꿨어요. 대사는 영어로 해야 한다고. 극장도 할아버지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구민회관 같은 곳이었는데… 하여간 이상한 꿈이었죠. 그게 <조로> 1막 런을 처음 하기로 한 날에 꾼 꿈이에요.


이번 작품에는 친구들이 많아서 좋겠어요. 지금 너무 신나요. 조정은 있지, 선영이 누나 있지, 재웅이 있지, 종원이 있지, 영미 누나 있지, 배준성 형 있고, 데이비드가 있고 김문정 누나 있고 너무 행복해요. 진짜 행복하죠. 아, (구)원영이도 있어요. 원영이는 십년지기 친군데 둘이 동갑내기 학전 막내였어요. 삽겹살 회식하면 같이 수저 놓고 물티슈 놓던 사이예요. (웃음) 그리고 건형이 형과 준현이 형. 건형이 형과는 처음 작업을 같이하는데 진짜 완소. 정말 재밌고 너무 귀여운 사람이죠. .


첫 공연이 11월 4일이에요. 긴장돼요? 되죠. 좋은 긴장감인 것 같아요. 솔직히 1막 런 하기 전까지는 나쁜 긴장감이었는데 1막 런을 마치고 나서는 좋은 긴장감이 됐어요.


참, 걱정되는 게 하나 있는데 플라멩코 어떻게 준비하고 있어요? 아, 또 이런 이야기를… 제가 고등학교 때 힙합을 배워서… 아니 왜 웃지? 전미례 재즈댄스라고, 98년도에 신사동에 있었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거기서 한 달 반 정도 춤을 배웠는데 전미례 선생님이 직접 가르치는 법이 별로 없는데 오시면 꼭 저를 파트너로 지정해서 가르치셨죠. 그리고 또 선생님이 그랬어요. 댄스단 단원으로 들어오라고. 정말 들어갈까? 이걸로 내가 밥벌이를 해볼까? 내 인생의 길이 이쪽으로 열리나 저 그때 되게 고민 했어요. 내가 정말 춤을 잘 추나? 잘 추나보다! 그랬는데… 아닌 거 같더라고요.


아닌 건 언제 알았어요? <카르멘> 할 때. 서정선 선생님이 안무를 짜주셔서 열심히 했는데 다음 날 와서 보니까 안무가 없어졌어요. 플라멩코가 어려운 춤이긴 하지만 음… 잘 춘다 못 춘다 판단하지 마시고 쟤가 춤을 추네 신기하다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저의 헤드윅을 본 사람이면 얼추 예감을 하실 거예요. 아우, 저의 점프와 저의 턴은… 아주 깜짝! 놀라실 수 있어요. 플라멩코가 아니라 힙합이 가미된 훌라댄스가 될지도…


안무가는 뭐래요? 안무가가 데이비드 스완인걸. 좋아죽어요. 눈에 하트가 막 생겨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나와요. 제가 고등학교 때 했던 유머 코드부터 그때 춘 춤, 제가 할 수 있는 창법, 그동안 배운 액션까지 다 나와요. 그런 작품이에요. 공 던지는 것만 안 나오네요. 공 잘 던지는데.아 그런데 제가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사회인 야구단 게임을 뛰었는데 삼진 세 개 잡았어요. 2루타도 두 개 쳤고요. 그게 다 (<퍼펙트 게임>으로 인연이 닿은)롯데 캡틴 조성환 형님이 보내주신 글러브와 아대, 땀복 덕분이예요. 이 이야기는 꼭 써주세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8호 2011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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