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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빈센트 반 고흐> 조형균, ​흔들림 없는 발걸음 [No.195]

글 |안세영 사진 |김호근 2019-12-31 5,734

<빈센트 반 고흐> 조형균
흔들림 없는 발걸음

 

2015년과 2016년 <빈센트 반 고흐>에서 고흐를 연기했던 조형균이 3년 만에 같은 역할로 돌아온다. 전작 <시라노>에서 관객들로부터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찬사를 듣고, 지난 10월 제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올해의 남자 배우상까지 받은 조형균. 하지만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그는 들뜬 기색 없이 담담했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도 쑥스러워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담백한 답변만 내놓았을 뿐이다. 누군가의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게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의 이야기는 묘하게 고흐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다시 만난 아픈 손가락

 

예전 인터뷰를 살펴보니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의미심장한 얘기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떠올리면 가슴 아픈 작품’이라든가, ‘이 작품을 할 때 가장 예민했다’든가.  그럴 수밖에 없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누구나 인생에서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시기가 있잖아요. 당시에 저는 무언가에 쫓기듯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만족감이 낮았던 것 같아요. 그런 시기에 고흐를 만났는데, 캐릭터 자체도 완만한 삶을 살지 못한 인물이다 보니 연기하면서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을 거예요.
 

심리적으로 힘든 작품이었는데도 다시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뭐예요? 공연이 끝나고 나니 더 잘 해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공연을 마치고 고흐가 살던 여인숙에도 다녀왔을 만큼 여운이 강했어요. 실은 지금보다 나이를 먹고 내공을 쌓아서 한 40대 중반쯤 다시 고흐를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 나이쯤 되면 관객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몰라도 저 스스로 연기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았거든요. 이번에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도 고흐와 재회하기엔 아직 시기가 이르지 않나 싶었지만, 5주년 기념 공연을 함께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흐가 살던 곳에 직접 가보니 어땠나요? 먹먹했어요. 방이 그렇게 작을 줄 몰랐거든요. 두 평 남짓의 고시원만 한 공간이더라고요. 그림에서는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았는데 침대 하나 들어가면 옆에 누울 자리도 없어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그런 곳에서 오래 살면 미쳐버릴 거예요. 
 

고흐라는 인물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또 어떤 노력을 했어요? 고흐가 쓴 편지를 모아놓은 책을 읽고, 그의 그림에 대한 해석을 찾아봤어요. 흥미로운 해석이 많더라고요. 예컨대 고흐의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는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떤 학자는 그걸 고흐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이라고 해석했어요. 가장 좁은 게 아들로서의 길, 중간 폭이 성직자로서의 길, 가장 넓은 게 화가로서의 길이라면서요. 그 해석을 읽고 보니까 그림이 달라 보였어요. 특히 가장 좁은 아들로서의 길에 눈길이 갔죠. 뮤지컬에서도 고흐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나는 개’라고 자조하는 노래가 있거든요. ‘고흐의 방’ 그림에 의자와 액자가 두 개씩 있는 이유는 함께 살게 될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두 사람의 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는 걸 알고 그 그림을 보면 서글퍼요. ‘고갱은 이런 사람일 거야, 고갱은 이런 걸 좋아할 거야’라는 상상을 하며 그 그림을 그렸겠죠? 뮤지컬에는 고흐가 계속해서 자신과 고갱 사이의 교집합을 찾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와요. 그만큼 외로운 거죠.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술집에 가서 압생트 한 잔 주문하는 게 하루 중 유일하게 누군가와 말하는 시간’이라고 쓰기도 했어요.
 

뮤지컬에서 고흐는 고갱을 붙잡기 위해 귀를 잘라요. 그런 극단적인 행동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까요? 고흐는 생전에 누구에게도 자기 작품을 인정받지 못했잖아요. 그런 그에게 고갱은 유일한 희망이었을 거예요.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해 줄 유일한 사람, 마지막 끈. 그런 고갱이 떠난다고 하니 절망감에 상식 밖의 행동까지 저지르게 된 거죠. 실제로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수많은 고통이 고흐를 옥죄어 오다 보니 정신이 불안정해져 환청까지 들렸던 게 아닐까. 귀를 막아도 피할 수 없는 환청 때문에 스스로 귀를 자를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완성하고 자살하러 떠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어떤 생각을 해요? 충분히 할 만큼 했다. 결국 고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모든 걸 내려놓은 것 같아요. 그는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그린 그림은 죽은 뒤에 인정받을 거라는 예언 같은 말을 남겼어요. 그걸 보면 다른 사람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기 그림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고흐가 편지에서 늘 대상의 본질, 내면의 진실을 그림에 담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아마 그 점만큼은 나중에라도 인정받으리라 생각한 것 같아요. 
 

자기 그림이 이렇게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고흐가 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요.  저는 고흐가 생전에 관심을 받았더라면 이런 명작을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어요. 사람은 한 번 인정을 받으면 이게 정답이구나 생각하고 안주하기 쉽잖아요. 틀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못하게 되는 거죠. 예술 작품은 누군가에게 보이고 감동을 주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세상의 잣대에 너무 얽매여서도 안 된다는 게 아이러니해요. 
 

뮤지컬은 고흐의 자살로 끝을 맺지만, 엔딩 장면만큼은 밝은 분위기로 연출되는 게 인상적이에요. 고흐의 비극적인 최후보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기쁨과 열정을 상기시켜 주는 게 좋더라고요.  맞아요. 엔딩곡 ‘부치지 못한 편지’는 고흐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늘 가슴속에 묻어두고 전하지 못한 진심을 솔직하게 노래하는 곡이기도 해요. 저는 고흐가 죽은 뒤에 하늘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불러요. 그래서 밝은 곡임에도 부르다 보면 슬퍼져요. 가끔 감정 조절이 힘들어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작곡한 음악은 뮤지컬 넘버라기보다 가요를 듣는 느낌이었어요. 직접 노래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다른 점이 느껴지나요? 글쎄요. 저는 뮤지컬다운 곡이란 드라마를 음악으로 펼쳐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래는 뮤지컬다워요. 가사가 시적인 게 아니라 대부분 대화와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물론 멜로디가 일반적인 뮤지컬 음악과 달리 서정적인 발라드 같아서 연습하는 과정에서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한 번 습득하고 나니 노래가 드라마와 잘 맞아떨어지는 게 느껴졌죠. 


 

감춰진 노력의 시간

 

같은 예술가로서 작품 속 고흐에게 특별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나요? 고흐가 동생의 돈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부르는 ‘돈이라는 놈’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가 현실적으로 가장 와닿았어요. 제 주변에 배우 생활을 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부모님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아요.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싶은 연기를 계속하기 위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 저도 배우가 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혼자 상경했을 때 생활비 때문에 힘들었어요. 올해로 데뷔 13년 차가 됐지만 그중 5년은 아르바이트를 했죠. 그러다 보니 ‘돈이라는 놈’의 가사처럼 도대체 돈이라는 게 뭘까, 왜 계속 돈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비단 예술가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예요. 
 

이제는 돈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어요? 아유, 아니에요! 지금도 열심히 오디션 보러 다니는걸요. 공개되진 않지만 떨어지는 오디션도 많고요. 이건 겸손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지난 인터뷰를 살펴보니 본인은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남들만큼 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더라고요. 그와 동시에 ‘긍정적인 마인드가 강점’이라는 얘기도 자주 했고요. 그런데 내가 남들보다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동시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다는 건 사실 되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죠? 가능하죠! 저는 지금도 스스로 습득이 느린 편이라고 생각해요. 연습실에서 보면 대본을 몇 번 안 읽어도 작가 의도를 팍팍 꿰뚫고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거든요. 저는 그런 센스가 부족한 편이라 연습이 끝나고도 ‘방과 후 자습’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이건 오롯이 저 혼자 해결해야 할 몫이니까요. 그래서 동료 배우들한테 매번 이런 얘길 들어요. ‘어, 이거 연습해 왔네?’ 그럼 제가 대답하죠. ‘야, 나 연습실에서 노는 것 같지만 열심히 해!’ (웃음) 반면 연습실에서는 무조건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습실 분위기가 처지지 않도록 텐션을 올리려고 노력하죠. 저도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제가 존경하는 다른 배우들을 보고 배운 거예요. 신기하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누군가 한 명이 그렇게 에너지를 끌어올리면 그 기운이 조금씩 전파되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더라고요. 연습이 끝났을 때 힘내서 재밌게 연습했다는 기분이 들어야 하루가 보람차잖아요. 그러기 위해 기왕이면 나부터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죠. 
 

센스가 부족한 편이라는 말이 의외네요. 코믹한 연기를 잘해서 순발력 있는 배우라는 인상이 있거든요. 공연 중 애드리브도 잘 칠 것 같고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대본대로 해요.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무조건 연습한 대로 해요. 
 

그럼 본인이 배우로서 타고난 재능은 뭐라고 생각해요? 주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뚜렷한 색깔이 없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그게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장점이라고 여겨요.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그것 같거든요. 편식하지 않고 잡식하는 스타일이랄까. (웃음) 
 

전작인 <시라노>에서 첫 대극장 타이틀롤을 맡아 호평을 받았잖아요. 솔직히 인생캐를 만났다는 얘기 많이 들었죠? 기분이 어땠어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고생한 보람을 느꼈어요. 저는 다른 때와 똑같이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만, 배우의 능력치와 별개로 캐릭터와 배우가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평가와 상관없이 <시라노>에 참여해서 좋았던 점은 뭐예요? 무엇보다 좋은 배우들을 많이 만난 게 만족스러워요. 류정한 형님하고는 이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프로듀서가 아닌 같은 배우 입장에서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주셨어요. 재연이지만 초연의 틀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죠. 같은 역할의 이규형, 최재웅 형까지 넷이서 똘똘 뭉쳐 시라노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느낌이에요. (르브레 역의 최호중 배우와도 오랜만에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호중 형이야 말할 것도 없죠. 저한테는 친형 같은 존재고 연기적으로도 본받을 게 많은 배우예요.
 

<시라노> 이후 조형균이라는 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가 더욱 높아졌다고 느껴요. 형균 씨는 스스로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나요? 시라노는 제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만든 캐릭터예요. 하지만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공연이라는 게 배우가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는 거잖아요. 시라노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감을 가지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서 행동한다면 본질을 놓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연기하는 어떤 역할은 관객분들이 보시기에는 별로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하게 준비된 상태로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가 저에게 기대하는 건, 스스로에게 거짓되지 않게 사는 모습이에요.
 

이제 데뷔 13년 차인데, 앞으로 또 10년이 흐른 뒤에는 어떻게 살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냥 지금처럼 좋은 배우들, 좋은 스태프들과 어울려 살고 있으면 좋겠어요. 연습실에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얼른 가서 동료 배우들하고 장난치고 싶고, 이런 나날이 계속되길 바라요. 그게 제 인생의 낙이니까요. 제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공연이 흥행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10년이 지나서 누군가 ‘그 공연 어땠어?’라고 물어봤을 때 고민 없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와 함께 공연한 사람들도 그렇게 대답해 주면 좋겠고요. 만약 누군가가 이 시절을 돌아보며 ‘그냥 힘들었어’라고 얘기한다면 되게 가슴 아플 거예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 더 즐겁게 공연해야겠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5호 2019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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