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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신인 창작자 계약 실태 조사 [No.201]

글 |배경희,안세영 2020-06-17 4,241

신인 창작자 계약 실태

 

언제부터인가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관련 정보에서 낯선 신인 창작자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이 늘었다. 이제 갓 데뷔한 창작자의 작품이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시상식을 휩쓸기도 하고, 신인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관객을 사로잡아 빠르게 재공연을 올리기도 한다. 해마다 무대에 오르는 창작뮤지컬의 편수가 늘어난 데에는 이러한 신인 창작자의 활약이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을 마냥 기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는 신인이다 보니 불리한 조건에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신인 창작자  계약 실태 조사                                      

 

지난 5월 신인 창작자의 실제 계약 조건을 알아보기 위한 무기명 비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계약 내용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계약서의 비밀 유지 조항을 고려해 이 같은 방식을 이용한 것이다. 참여 대상은 3개 이하의 상업 뮤지컬 프로덕션에 참여했으며, 그중 1개 이상의 작품이 최근 3년 이내에 공연된 바 있는 작가 및 작곡가로 한정했다. 설문 참가자에게는 개별 연락을 취해 해당 내용을 안내했다.

 

 

설문 참여자

 

직종

작가 21명 (60%)

작곡가 14명 (40%)

 

참여한 상업 뮤지컬 작품 수 (워크숍 미포함)

1개 14명 (40%)

2개 9명 (26%)

3개 12명 (34%)

 

뮤지컬 창작 경력 (워크숍 포함)

1~3년 18명 (46%)

4~6년 13명 (37%)

7~9년 5명 (14%)

10년 이상 1명 (3%)

 

 

늘어난 신인, 위태로운 생계

 

+공연권 계약이 이루어진 주된 경로는?

창작 지원 제도에 선정된 후 제작사의 연락을 받았다 13명(37%)

제작사에서 계약 제안를 받았다 12명(34%)

제작사에 먼저 접촉을 시도했다 6명(17%)

지인을 통해 제작사를 소개받았다 2명(6%)

기타 2명(6%)

 

설문 조사를 통해 공연권 계약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본 결과, 창작 지원 제도에 선정되어 제작사의 연락을 받은 경우가 37%로 가장 많았다. 창작 지원 제도가 실제로 신인 창작자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결과다. 하지만 이들 중 실제로 뮤지컬 창작을 통해 충분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창작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창작자는 얼마나 될까. 설문 결과를 보면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뮤지컬 창작자로서 얻는 수입이 연수입의 몇 %를 차지하나?

20% 대 이하 14명 (40%)

30~50% 대 10명 (29%)

60~80% 대 5명 (14%)

90% 대 이상 4명 (11%)

기타 2명 (6%)

 

+뮤지컬 창작 외에 어떤 경제 활동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나?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음 3명 (9%)

타장르에서의 창작 활동 8명 (23%)

공연과 관련된 부업 13명 (37%)

공연과 무관한 부업 8명 (23%)

기타 3명 (9%)

 

신인 창작자의 40%는 뮤지컬 창작을 통해 얻는 수입이 연수입의 20%대 이하라고 답했다. 작품 수가 늘면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한다. 1개 작품 창작자와 2개 작품 창작자 모두 ‘연수입의 20%대 이하’라고 답한 응답자가 57%로 가장 많았으나, 3개 작품 창작자는 ‘연수입의 30~50%대’라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을 차지했다. 2개 작품을 내놓고 7~9년의 활동 경력을 쌓은 한 창작자는 기타 응답으로 “공연이 올라가는 해에만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수입이 아예 없는 해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거의 모든 창작자가 다른 경제 활동을 통해 수입을 얻고 있다. 37%의 응답자가 공연과 관련된 부업을 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공연과 무관한 부업(23%), 타장르에서의 창작 활동(23%)에 종사하고 있었다. 뮤지컬 창작으로 얻는 수입만으로 생활하는 창작자는 9%에 불과했다. 

 

 

+표준계약서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나?

매우 그렇다 11명 (31%)

약간 그렇다 18명 (51%)

별로 그렇지 않다 5명 (14%)

전혀 그렇지 않다 1명 (3%)

 

+그동안 표준계약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계약이 이뤄졌나?

매우 그렇다 8명(23%)

약간 그렇다 18명(51%)

별로 그렇지 않다 8명(23%)

전혀 그렇지 않다 1명(3%)

 

창작자의 권익이 보호받기 위한 첫 단추는 제작사와 공정한 계약을 맺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정한 계약 문화 정착을 위해 2013년부터 공연예술 분야 표준계약서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표준계약서란 합리적인 계약 기준을 제시하는 일종의 견본 계약서다. 공연예술 분야에는 창작, 실연, 기술지원 영역의 표준계약서가 존재하며, 모두 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창작 표준계약서는 저작물 이용 허락 범위, 공연 이용권 존속 기간, 저작물 사용료 및 지급 방법, 공연 제작자와 저작자의 권리와 의무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 표준계약서를 참고하면 창작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고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 자체가 구속력을 지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불공정한 계약을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계약 내용과 형식은 어디까지나 계약 당사자끼리 합의하기 나름이다.

 

신인 창작자에게 그동안 표준계약서를 기반으로 계약이 이뤄졌는지 묻자 51%가 ‘약간 그렇다’, 23%가 ‘매우 그렇다’라고 답해 대체로 표준계약서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답한 창작자들도 표준계약서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 창작자는 “표준계약서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세부사항을 제작사에 유리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또 표준계약서는 조항을 제시할 뿐 계약금과 로열티 비율 등의 수치는 빈칸으로 남겨져 있는데, 업계 평균치나 최저 기준이라도 알려 주면 좋겠다. 제작사로부터 제시받은 금액이 합당한 수준인지 파악하기 힘들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본적인 조건, 쉽지 않은 협의

 

+구두 계약에서 서면 계약이 성사되기까지 협의에 소요된 기간은?

3개월 이하 15명(43%)

4~6개월 13명(37%)

7~9개월 3명(9%)

10~12개월 1명(3%)

1년 초과 3명(9%)

 

+계약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가? (복수 응답)

계약금과 로열티 비율 협의 25명(71%)

공연권 계약 기간 협의 14명(40%)

계약서 초안이 단순함 11명(31%)

계약 성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림 9명(26%)

창작 방향에 대한 협의 9명(26%)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음 3명(9%)

 

신인 창작자들은 제작사와 공연권을 계약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느낄까? 크게 다섯 가지 사례를 보기로 제시한 해당 질문에서 창작자들에게 압도적으로 높은 응답율을 기록한 항목은 ‘계약금과 로열티 비율 협의(71%)’다. ‘공연권 계약 기간 협의(40%)’는 두 번째로 높은 답변율을 기록했다. 창작자들이 계약의 어려운 요인으로 꼽은 두 항목은 공연권 협의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공통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신인 창작자일 경우 불리한 조건을 제시받더라도 이를 조정하는 게 어렵다는 게 창작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3위를 기록한 응답은 ‘계약서 초안이 단순함’(31%)이다. 제작사가 공연 형식이나 성격에 맞는 세부사항이 담겨 있지 않은 계약서를 제시할 경우, 이는 제작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률 지식이 부족한 개인 창작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공연권 계약 기간은 몇 년이었나?

3년 이하 5명(14%)

4~5년 14명(40%)

6~7년 3명(9%)

8~10년 7명(20%)

10년 초과 6명(17%)

 

“작품 개발과 제작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공연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초연 성공 이후 두세 시즌 재공연을 올려야 수익이 발생한다. 때문에 공연권 계약 기간은 적어도 세 차례 이상 공연할 수 있는 ‘5년 이상’이 적합하다.” 이는 공연권 계약 기간에 대한 한 제작 관계자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창작자들이 희망하는 공연권 계약 기간은 몇 년일까? 설문 조사에 참여한 35명의 창작자들에게 계약 기간으로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과반수 이상인 54%가 ‘5년 이하’를 꼽았지만, 이들의 실제 공연권 계약 기간을 묻는 질문에서 ‘4~5년’에 응답한 창작자의 비율은 40%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계약 기간으로 ‘3년 이하’를 희망하는 창작자와 실제 이러한 조건으로 계약한 창작자는 각각 7명(20%)과 3명(14%)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공연권 사용 기간을 6년 이상으로 계약한 창작자는 모두 16명(46%)이었는데, 이 중 계약 기간이 10년을 초과한다고 답한 응답자 수가 6명(17%)으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창작자가 생각하는 계약의 적정 기간으로 ‘6년 이상 10년 이하’를 꼽은 응답자 비율은 17%에 그쳐, 공연권 계약 기간을 두고 창작자와 제작사 사이에 입장 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장기 계약의 부당함을 토로한 한 창작자는 “제작사 사정으로 재공연 여부가 불투명해졌을 경우, 창작자 입장에서는 공연일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가장 힘들다. 계약 기간 내에 몇 차례 이상 공연을 올린다는 조건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계약금은 얼마였나?

계약금 500만 원 이하 12명(34%)

계약금 1,000만 원 이하 19명(54%)

계약금 1,500만 원 이하 1명(3%)

기타 3명(9%)

 

+몇 퍼센트의 비율로 로열티를 지급받나?

순매출의 1% 이하 9명(26%)

순매출의 1.5% 이하 17명(49%)

순매출의 2% 이하 4명(11%)

기타 5명(14%)

 

 

앞서 창작자들이 계약의 가장 어려운 요인으로 꼽은 것처럼 계약료는 계약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이다. 신중한 접근을 위해 제작사 관계자와 기성 창작자들에게 계약 조건에 대해 자문을 구한 결과, 현재 공연계에서 계약금과 로열티(저작권 사용료)를 따로 지급하는 방식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었다. 다수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계약금의 통상적인 수준은 1천만 원 전후이며, 로열티 지급 비율은 크게 1%와 1.5%, 2% 단위로 나뉜다. 단, 제작사별로 초연 때는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거나, 초연과 재연의 로열티 비율을 다르게 책정하는 등 세부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신인 창작자들에게 계약금이 얼마였는지 묻자 ‘1,000만 원 이하’라는 응답이 54%로 가장 높았는데, ‘500만 원 이하’라고 답한 비율도 34%로 낮지 않았다. 기타 답변으로는 ‘영리를 추구하는 공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계약금을 받지 못했다’ 등이 있었다. 로열티 비율에 대한 답변을 살펴보면, 가장 높은 응답을 기록한 비율은 ‘1% 초과 1.5% 이하’로 절반에 가까운 창작자가 해당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답변했다. ‘1.5% 초과 2% 이하’를 지급받는 창작자는 11%에 그치는 반면, ‘1% 이하’의 조건으로 계약한 창작자는 두 배 넘는 수치인 26%를 기록했다. 가령 제작사가 티켓 판매로 1억의 매출을 올리면, ‘1%’로 로열티 계약을 한 작가와 작곡가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각각 100만 원인 것이다. 현재 국내 공연계에서 대극장 작품을 제외하면 10억 이상 매출을 올리는 공연이 손에 꼽힌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창작자들이 로열티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크지 않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로열티 정산 시, 신뢰할 만한 자료가 제공되었나? (n=34)

그렇다 14명 (41%)

그렇지 않다 20명 (59%)

 

창작자들이 로열티 정산에서 가장 문제를 삼는 부분은 매출 증빙 자료가 제공되지 않는 점이다. 정산 방식에 대해 추가 의견을 보내준 창작자들의 입장을 요약하면 “공연으로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 공연계 대부분의 제작사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이에 위축된 창작자들은 제작사에 매출 자료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창작자가 먼저 나서서 요구하지 않아도 매출액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한 간혹 일부 제작사가 ‘순매출액’(티켓 판매 수입)이 아닌 ‘순수익금’(제작사가 공연을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얻게 된 금액. 매출액에서 공연 제작에 들어간 비용이 제외된 비용이다.)을 바탕으로 로열티를 계산하는 경우도 있어서 계약 당시 이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놓치기 쉬운 세부 조항

 

+저작권이 적용되는 MD(실황 DVD, OST 앨범, 대본집, 악보집 등)를 판매할 경우, 창작자에게 수익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었나?

그렇다 27명(77%)

그렇지 않다 8명(23%)

 

+대본의 공연화 권리를 제외한 2차 저작물 작성권(출판, 드라마화, 영화화 등)이 창작자에게 귀속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었나?

그렇다 28명(80%)

그렇지 않다 7명(20%)

 

앞선 질문에서 설문 참여자의 31%가 ‘제작사가 제시한 계약서 초안이 너무 단순해서 세부사항 확인에 많은 노력을 요한다’는 점을 계약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으로 꼽았다. 계약 단계에서 세부 사항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으면 훗날 분쟁이 일어나기 쉬운 법. 설문조사를 통해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세부 조항들이 계약서에 명시되었는지 알아보았다. 

 

저작권이 적용되는 MD의 판매 수익금 일부를 창작자에게 지급한다는 내용과 2차 저작물 작성권이 창작자에게 귀속된다는 내용은 모두 표준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실제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20% 가량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계약서 초안에 관련 내용이 없어서 직접 의견을 내서 추가했다”고 밝힌 창작자도 있었지만, 또 일부 창작자들은 “관련 내용이 없어 문제를 제기하니 제작사에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당한 권리임에도 당당하게 주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몇몇 창작자는 MD 판매 수익 배분에 관한 불만을 구체적으로 적었는데 그 가운데 2명은 “관련 내용이 계약서에 적혀 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계약 당시 수익 배분에 관해 협의해 이를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고 나중에 낮은 가격을 제시하거나, 처음부터 창작자에게 수익을 나눠주지 않기로 계약한 사례도 있었다.

 

 

+향후 지방 및 해외 투어 공연이 이뤄질 경우 저작권 사용료에 대한 협의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었나?

그렇다 29명(83%)

그렇지 않다 6명(17%)

 

최근 창작뮤지컬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난 만큼, 관련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었는지도 알아보았다. 실제로 창작자의 83%는 지방 및 해외 투어 공연 저작권 사용료에 대한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열티가 터무니없이 낮게 설정되어 있거나 계약서상의 금액을 받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2명의 창작자는 “지방 공연에 관한 내용은 포함됐으나 해외 공연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참고로 표준계약서는 일정 금액의 개런티를 받는 초청 공연의 경우 초청 금액의 일부를 창작자에게 로열티로 지급할 것을 권고한다. 이 조항은 지방 초청 공연뿐 아니라 해외 초청 공연에도 적용된다. 

 

해외에서 라이선스 공연이 올라갈 경우, 보통 작가와 작곡가의 저작물만 사용하는 논레플리카 프로덕션과 국내에서 공연했던 것을 그대로 공연하는 레플리카 프로덕션으로 공연 방식이 나뉜다. 해외 공연권 계약 방식에 따라 저작권료를 다르게 지급받기로 세부 내용을 협의한 응답자는 5명에 그쳤다. 첫 계약 때는 공연의 성패를 가늠하기 힘든 만큼, 해외 라이선스 판매까지 염두에 두고 계약을 맺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해외 라이선스 판매에 대해서는 제작사와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한국 뮤지컬의 미래를 위해

 

+신인 창작자에 대한 대우가 부당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가? (복수 응답)

배우, 연주자, 현장 스태프에 비해 적은 보수 28명 (80%)

창작 과정에서 제작사의 지나친 개입으로 작품 의도가 달라짐 18명 (51%)

불리한 계약 조건 16명 (46%)

불투명한 로열티 정산 13명 (37%)

계약 불이행 9명 (26%)

프로듀서 등이 아이디어 제공을 이유로 공동 저작권을 주장함 6명 (17%)

부당하다고 느낀 적 없다 4명 (11%)

 

 

설문에 참여한 신인 창작자 35명 가운데 단 4명을 제외한 나머지 31명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배우, 연주자, 현장 스태프에 비해 적은 보수’에 부당함을 느끼는 창작자가 80%에 이르렀다. 응답자들은 “배우 출연료는 아끼지 않으면서 창작자에게는 1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돈을 지급한다”, “창작자가 창작에 들이는 시간, 연습 동안 수정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따져보면 주어진 보수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창작자는 매출 정산이 끝나봐야 안다는 이유로 공연 종료 후 가장 마지막에 로열티를 지급받는다. 아주 늦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여러 응답자가 정부나 뮤지컬협회 차원에서 최저임금처럼 계약금 및 로열티의 최저한도를 정해, 신인 창작자가 부당한 금액으로 계약하는 것을 방지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더불어 뮤지컬 계약에 필요한 지식을 창작자에게 교육하고 홍보하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는 브로드웨이처럼 창작자 대신 계약을 진행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보호해주는 에이전시가 생기면 좋겠다고 답했다. 

 

‘창작 과정에서 제작사의 지나친 개입으로 작품 의도가 달라졌다’고 답한 창작자가 51%에 달하는 점도 눈에 띈다. ‘프로듀서 등이 아이디어 제공을 이유로 공동 저작권을 주장했다’고 응답한 창작자도 6명이었다. 현행 저작권법에 의하면 공연의 경우 제작자로부터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작품도 로열티는 창작자에게 속한다. 본 설문조사는 신인 창작자의 계약 조건을 살피는 데 초점을 맞췄으나, 제작사와 작품 방향을 협의하면서 생기는 갈등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과다. 

 

열정과 노력에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분야에 인재가 모일 리 만무하다. 현재 뮤지컬계는 어렵사리 데뷔한 창작자마저 업계 현실에 실망하여 떠나기 쉬운 상황이다. 창작뮤지컬이 발전하려면 창작자들이 뮤지컬계에 오래 남아 경력을 쌓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신인 창작자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를 미룬다면, 뒤늦게 후회할 때는 이미 붙잡을 이가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인 창작자의 목소리

“창작자의 숫자에 비해 제작되는 작품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창작자는 늘 약자가 되기 쉽다. 특히 신인들은 제작사에서 그저 작품을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받았다고 여기고 불리한 계약 조건을 수긍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이러한 태도는 불공정한 계약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신인 창작자는 공모전이나 창작 지원 사업을 통해 데뷔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창작 활동비나 상금을 받으면 계약금이 적어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곤 한다. 그러나 상금 액수는 점점 줄고 있는 추세며,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창작자는 동등한 작업자로 존중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신인 창작자들의 불공정 계약의 대부분은 위축된 심리에서 비롯되는데, 조언을 구할 동료 창작자가 많지 않고 전문가에게 법률 자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첫 계약서를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사인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점검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러 창작진과 작업을 시작한 상태에서 뒤늦게 서면 계약서를 받은 적이 있다. 불리한 계약임을 알았지만 공연이 엎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인했다. 수개월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 탓에 경제적 압박으로 계약금을 서둘러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계약금은 업계 표준에 현저히 못 미치는 액수였지만 신인인 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또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계약 체결을 위해 창작물을 완성해 수없이 검증받는 과정에서 제작사의 개입을 감내해야 했다.”

“제작사가 창작자의 협조로 공공기관에서 지원금을 받아도 그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기 어렵다. 주변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약금 지급이 늦어지거나 부당한 처사를 당하더라도, 법적 대응을 하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창작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이 조속히 마련되면 좋겠다.”

“임금 미지급 사태를 방지하려면 2~3차에 걸쳐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는 계약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보통 계약금의 절반 혹은 1/3을 공연이 올라간 후에 받기로 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 공연이 흥행에 실패하면 임금을 다 지급받지 못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한다. 제작사도 사정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미지급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시장이 작아 제작사와 창작자 모두 금전적인 보상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한국뮤지컬협회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원에서 양측의 의견을 반영해 국내 실정에 맞는 적당한 계약금과 로열티 기준을 제시해주었으면 한다. 예술위가 주관하는 창작뮤지컬 지원 사업 ‘공연예술 창작산실’의 경우에도 지원작마다 제작사와의 계약 조건이 제각각인데 예술위에서 나서 일관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면 좋겠다.”

“몇몇 주연 배우가 막대한 출연료를 받는 동안 앙상블 배우, 현장 스태프, 창작자 등은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 만큼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한 작품에 매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동시에 여러 작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기에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일 또한 빈번하다. 한국 뮤지컬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몇몇 주연 배우에게 모든 공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뮤지컬은 수많은 사람이 함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인 만큼 모든 구성원에게 금전적 보상이 고르게 분배되길 바란다.”

“신인 창작자들은 한 편의 공연을 위해 무기한의 시간을 투자한다. 그 노동에 따른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꿈’과 ‘열정’, ‘목표’로 그 보상을 대신 하려는 제작사들이 있다. 창작자가 자신이 만든 작품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불합리한 창작 환경이 개선되길 소망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1호 2020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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