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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브로드웨이 42번가>·<킹키부츠> 김환희 , 삶이 담긴 무대 [No.203]

글 |안세영 사진 |배임석 2020-08-27 5,437

<브로드웨이 42번가>·<킹키부츠> 김환희
삶이 담긴 무대 




2018년 공연한 <베르나르다 알바>로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았을 때,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시상식 레드 카펫을 밟는 것만으로도 이게 내 인생에 일어날 법한 일인가 싶었거든요. 신인상 후보를 한 명씩 호명할 때 객석에서 눈을 감고 기도드렸죠. 수상자가 누구든 진심으로 축하하고 이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달라고. 그런데 갑자기 제 이름이 들리는 거예요. 김! 환! 희! 놀라서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무대로 직진했어요. 축하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 표현도 제대로 못 하고요. 수상 소감 말할 때도 횡설수설하고. 지금도 그걸로 얼마나 놀림받는지 몰라요. 하하! 사실 <베르나르다 알바>를 통해 얻은 건 상 말고도 너무 많아요.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를 배웠죠. 

돌아보면 신기할 만큼 작품 속 캐릭터와 제 실제 상황이 맞아떨어질 때가 많았어요. <베르나르다 알바>는 하녀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가 셋째 딸 아멜리아 역으로 붙었거든요. 근데 실제로 저희 집에서도 제가 셋째 딸이에요. 신기하죠? 2019년에는 <앙상블>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저처럼 어린이 뮤지컬 출신의 앙상블 역할을 맡기도 했어요. 저한테 맞춰서 대본을 쓴 것도 아닌데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무대에만 서면 가슴이 뛰었어요. 종종 행사나 축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자연스럽게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죠. 대학생 때는 씨스타, 애프터스쿨, 포미닛 같은 아이돌 가수 음반에 코러스로 참여했어요. 좋은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론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죠. 그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교수님께서 뮤지컬이 저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신 거예요. 뮤지컬의 ‘뮤’자도 몰랐던 저는 그때부터 연기 레슨을 받고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 2015년 가족극 <판타지아>로 데뷔했고, 앙상블을 거쳐 지금은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페기로 무대에 서고 있어요. 코러스에서 대극장 뮤지컬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페기의 이야기는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즐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달려온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감사하죠.




사실 저는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참여하기 전까지 탭댄스를 춰본 적이 없어요. 오디션 때도 솔직히 말했어요. “탭댄스는 모르지만 춤추는 건 정말 좋아해요. <베르나르다 알바> 때 플라멩코를 배운 적도 있고요, 알려만 주시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실제로 배워 보니 어땠냐고요? 재미있는 건 잠깐이더라고요. 평소에는 저에게 “환희야, 잘했어”라고 칭찬해 주는 편인데. 이번에는 “환희야, 진짜 왜 그래! 정신 차려!” 하고 혼내면서 밤새 연습했어요. 아직도 더 잘 추고 싶어요. 훌륭한 선생님을 보고 배워서 목표치가 높나 봐요. 꼭 써주세요, 권오환 안무감독님 감사합니다! 

“이런 일을 겪었는데도 계속하고 싶어?” 오디션에서 망신을 당한 페기에게 메기가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어요. 페기는 그렇다며 자기에겐 꿈이 있다고 말하죠. 저도 페기와 비슷해요. 숱하게 오디션에 떨어졌지만 그런 일로 우울해하진 않아요. 그냥 내 자리가 아니었던 거죠, 뭐. 나중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다시 오디션을 보면 되는걸요. 오디션 자체가 두려움을 깨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니까 떨어지더라도 저에게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요. 

실은 <킹키부츠>의 로렌 역도 지난 시즌 오디션에 떨어졌다가 다시 도전해서 따낸 거예요. 연습 때 양주인 음악감독님이 “환희야, 드디어 이렇게 만났네!”라고 말씀하시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감독님이 피아노로 따라라라 하고 ‘인간극장’ BGM을 쳐주시는 바람에 울다 웃었지만! 로렌은 그동안 제가 주로 연기해 온 얌전한 캐릭터들과 다르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왈가닥이에요. 근데 솔직히… 제가 혼자 있을 때 하는 짓이 로렌이랑 똑같거든요. 오디션 준비할 때 <빅 피쉬>를 함께한 김지우 언니에게 로렌을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여쭤봤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환희야, 무슨 소리야? 그거 그냥 너야.” 하하! 너대로 재밌게 즐기고 오라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연애의 흑역사’를 부를 때 로렌이 보여주는 코믹한 모습은 사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속으로 감추고 있는 모습을 겉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로렌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요? 저도 그렇고요. 

<킹키부츠>가 전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는 제 생활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어요. 다른 건 틀린 게 아니고, 우리 모두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인데, 왜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는 걸까요. 작품을 만들 때도 배우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그때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더 즐거운 분위기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브로드웨이 42번가>와 <킹키부츠> 모두 함께하는 일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그런지 요즘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막 샘솟아요. 누군가 저에게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과 사랑이라고 답할 거예요. 

저는 아직도 제가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신기하고요. 이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을 지켜가고 싶어요. 어려울 것 없어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현재를 즐기고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요. 그러다 보면 감사한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순간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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