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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더뮤지컬> 발행인 설도권, 유일한 뮤지컬 월간지가 존재한 이유 [No.207]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21-02-01 3,150
<더뮤지컬> 발행인 설도권
유일한 뮤지컬 월간지가 존재한 이유 


2000년, 뮤지컬이 낯설었던 그때에 뮤지컬보다 더 낯선 존재였던 뮤지컬 잡지가 세상에 나왔다. 모두가 성공보다는 실패를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이 낯선 뮤지컬 잡지는 그로부터 20년 동안 보란 듯이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뮤지컬 잡지 발행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발행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클립서비스 대표 겸 <더뮤지컬> 발행인을 맡고 있는 설도권 대표에게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뚜렷한 목표 의식 아래 출발한 잡지 사업

<더뮤지컬> 휴간 소식에 공연 업계 다양한 직군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아쉬워했습니다. 제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큰 반향이라, 편집장으로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러니 20년 동안 자존심처럼 지켜온 잡지의 휴간을 결정해야 하는 마음은 얼마나 무거우셨을지요.
휴간 소식이 발표되고 나서 <더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 과정을 지켜봤던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다들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표했지만,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왜 버티지 못했는지 묻지 않았어요. 그러니 참 미안하죠. 그리고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과거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더뮤지컬>을 읽으면서 행복해하고 우리에게 박수 보내줬던 독자들에게도 참 많이 미안했습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 어쩔 수 없이 휴간을 결정하게 됐지만, 상황이 어떻든 이를 버티지 못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 받으셨을 때 옛 생각이 많이 나셨을 것 같아요. 20년 전에 뮤지컬 잡지를 창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그러한 결단을 내리게 되셨나요.
그 당시는 뮤지컬 잡지를 만들겠다고 하면 ‘뮤지컬이 뭔데?’라는 반응이 돌아오던 시기예요.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 뮤지컬이란 장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기 때문에, 뮤지컬 시장이 확장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알리는 잡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주위에서는 반대가 심했죠. 제가 아는 어떤 선배들은 <더뮤지컬>을 애견 잡지하고 비교하기도 했어요. 허허.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가 성공한 사례가 드물어서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패가망신할 수 있는 지름길을 왜 가려느냐고 했죠. 제가 잡지 발행 수지를 산출해 봐도 구조적으로 당연한 적자가 예상됐어요. 그래도 <더뮤지컬>이 공연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연 잡지와 공연 시장이 공생 관계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죠.

사업 초기에 발생하는 적자는 일종의 투자라 여기더라도, 어느 시점에는 수익을 창출할 거란 목표를 세우진 않으셨나요?
<더뮤지컬>의 모회사인 클립서비스(공연 홍보 마케팅, 투자, 제작, 배급사)를 만들었던 이유는 미래에 뮤지컬이라는 콘텐츠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질 거라고 전망했기 때문이에요. 좋은 뮤지컬 콘텐츠가 공연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사람들에게 뮤지컬이 지닌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할 것. 이것이 창립 모토였죠.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절대적인 요소는 뮤지컬을 즐기는 관객인데, 탄탄한 관객층은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낮은 일반 사람들이 어쩌다 공연을 본다고 해서 저절로 형성되지 않아요. 뮤지컬 관객은 말 그대로 뮤지컬에 훈련된 사람들이잖아요. 때문에 적극적인 뮤지컬 관객을 창출하기 위해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더뮤지컬>과 같은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수익을 내기 위해 잡지를 만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실제로 광고 수입이나 판매 부수에 대한 큰 압박 없이 잡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편집장인 제게는 참 좋았습니다. 수익성을 쫓았다면 공연 잡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판매량을 기준으로 표지 모델을 선정해야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지 못한 잡지를 만들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론 그래서 휴간이란 결과를 초래했는지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지만요. (웃음) 
아니죠, 우리의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요. 우리는 뮤지컬이란 무대를 중심으로 하는 매거진이지, 연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은 아니잖아요. 뮤지컬 무대 위에 스타 뮤지컬배우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요. 새롭게 등장한 눈여겨볼 신인 배우나 인기와 상관없이 주목할 배우가 있다면 그들과 표지 촬영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에요. 지금껏 잡지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유명인을 표지에 내세워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우리가 그런 상업성을 추구했다면 잡지가 아닌 화보집을 만들어 팔았어야지요. (웃음) 다만, 다른 장르의 스타가 무대 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들을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에요. 아마 그런 의미에서 진행한 표지 촬영도 몇 번 있을 거예요. 

발행 초기에 부딪쳤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클립서비스에서 발행하는 잡지이다 보니 그에 따른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어요. 업계 내부에서 <더뮤지컬>을 독립적인 매체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회사 작품을 홍보하려고 만든 잡지로 바라보는 시선이 훨씬 많았죠. 그래서 발행 초기에는 유일한 뮤지컬 전문지임에도 다른 제작사들과 협력 관계를 다지기가 쉽지 않았어요. 클립서비스 대표가 <더뮤지컬> 발행인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거예요. 때문에 대외적인 역할을 하기보다 대내적인 살림을 맡는 마음으로 잡지를 만들었지요. 뮤지컬과 관련된 행사 자리에는 발걸음도 조심하면서. 우리 매거진 팀원들은 잘 알다시피, 매달 잡지를 만드는 것에 제가 전혀 관여를 안 했잖아요? 그 이유도 제작사 대표 겸 잡지 발행인이라는 제 정체성이 도드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발행 방침에 맞는 몇 가지 중요한 가이드라인만 정해 놓고 편집권은 온전히 편집부에 넘긴 것도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에요. 제 나름대로 <더뮤지컬>이 어느 한쪽에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뮤지컬 업계를 다뤄왔다고 생각해요. 제작사 관계자들은 물론 뮤지컬 시장에 진입한 많은 뮤지컬인들에게 친화적인 매체 역할을 잘 해왔다고 생각하죠.

지난 20년 동안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겸하신 셈이니 간혹 난처한 상황도 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홍보 부탁을 받거나 항의 연락을 받는 둥, 많은 일을 분명 겪으셨을 테지요.
맞아요, 가장 힘들었던 게 리뷰 코너를 유지해 온 거죠. 제작사 관계자들에게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평론을 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으니까요. (웃음) 뮤지컬 시장이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제가 목표로 삼은 <더뮤지컬>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발행 초창기에 이런 항의 연락을 받으면 참 난처하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리뷰라는 것은 부족한 부분을 꼬집을 수는 있어도 그걸 통해 발전 방향성을 제시하기란 어렵거든요. 그리고 좋은 뮤지컬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지만, 아직 성숙도가 높지 않은 시장에서 비평이란 무의미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과거에 한동안 날 선 평론을 싣는 것을 자제했던 때가 있었죠. 다행히 당시 매거진 팀원들이 취지에 공감해 줬고요. 





고됐기에 더욱 의미 있는 시간 

창간 준비호부터 연재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소식 기사는 <더뮤지컬>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코너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독자들 가운데 <더뮤지컬>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던 해외 신작을 한국에서 보게 돼 반갑다고 피드백을 보내주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2000년대 초 한국 뮤지컬 시장은 지금처럼 해외 유명 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작품을 들여올 만한 환경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까다로운 해외 프로덕션들은 검증되지 않은 공연 시장에 자기 작품 라이선스를 쉽게 내주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더뮤지컬>은 창간 당시 주요 컨셉이 ‘책 안의 극장’이었기 때문에, 아직 한국에서 만날 수 없는 작품까지 적극적으로 다루려고 했어요. 선진 공연계의 작품이나 소식이 국내 시장에 소개되면 성장 과정에 있는 우리 시장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거죠. 독자들이 우리 정보를 통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그들이 품고 있는 뮤지컬에 대한 애정에 우리가 소소하게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어요. 해외 소식을 다룬 기사 시리즈는 지금 돌아봐도 좋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해요.

<더뮤지컬>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일이 또 있으세요?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이 성사되는 데 <더뮤지컬>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도 뿌듯한 일이지요. <오페라의 유령> 2001년 초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해외 메이저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제작사인 RUG에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증명할 근거 자료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때 그 시기의 한국은 해외 공연 시장에서 시험대에 올라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우리나라에서 제작비 회수를 위한 장기 공연이 가능할지, 뮤지컬에 동원할 수 있는 전체 관객 수는 얼마나 될지,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증명할 수 있느냐고 하는데, 그때 RUG에 보여준 게 <더뮤지컬>이에요. “한국에서는 뮤지컬 전문지가 발행돼. 너희 나라에는 뮤지컬 잡지 없지?” 이렇게 말하니 그들이 당연히 깜짝 놀랐죠. (웃음) 온라인 티켓 예매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것도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카드였어요. 이런 두 가지 근거를 내세워 <오페라의 유령> 공연 계약이 시작됐으니, <더뮤지컬>이 나름 뮤지컬 산업의 성장에 작은 기여를 한 셈이지요. <오페라의 유령> 2001년 공연을 기점으로 국내 뮤지컬 시장이 전과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제가 <더뮤지컬>에서 가장 큰 자긍심을 느꼈던 순간은 창간 15주년 콘서트를 기획했을 때였어요. 5주년을 주기로 진행한 창간 기념 콘서트는 잡지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마 그때마다 남다른 감회를 느끼셨을 테지요.
그럼요, 우리 10주년 때는 콘서트도 하고 사진전도 열었잖아요? 그때 내 나름대로 10년 동안 잡지에 나왔던 표지 인물들을 쭉 한 번 돌아봤어요. 여럿이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도 있어서 표지 인물이 상당히 많았는데, 개중에는 신인에서 스타가 된 배우들도 있고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죠. 무엇보다 10년간의 잡지를 돌아보니 한국 뮤지컬 시장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한눈에 보여서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한국 뮤지컬 시장의 2000년과 2010년은 상황이 굉장히 다른데, 10년 동안 이뤄온 변화에 <더뮤지컬>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 생각하니 굉장히 뿌듯했어요. 2019년에 부산 드림씨어터를 개관하면서 극장 안에 <더뮤지컬> 전시 공간을 만든 이유도 사람들이 한국 뮤지컬 역사를 돌아볼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던 거예요. 200권 가까운 잡지를 한데 쭉 모아 전시해 놓으니까 발행인으로서도 만족감이 꽤나 컸어요. 그리고 조금 더 개인적인 의미에서는 10주년 행사를 하면서 아주 옛날 옛적, 제 20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게 되어 뜻깊었지요. (웃음) 30년 전 청년 설도권은 무엇을 계기로 현재 이곳 이 세계에서 살고 있을까 스스로 소회를 밝히는 시간을 가졌죠.

마음 아픈 이야기이지만, 2018년 편집장직을 맡고 나서 회사 사정을 좀 더 알게 됐을 때 생각보다 <더뮤지컬>의 적자 규모가 커서 놀랐습니다. 20년 동안 수익 없이 사업을 꾸려오는 것은 사명감 없이 불가능한 일일 텐데, 종이 잡지가 예전 같은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시대에 휴간 위기를 느낀 고비는 없었나요.
종이 잡지의 위기론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지요. 하지만 창간 10주년 때까지는 지난 10년을 계속 달려왔고, 달리고 있으니까 멈춰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러다 창간 15주년을 맞이한 시점에 정보 홍수의 시대 속에서 <더뮤지컬>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을지 질문이 생겼죠. 사람들이 너무나 쉽고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월간지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동시대와 호흡하기 위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우리가 사실은 그 고민을 몇 년 동안 했잖아요? 그러면서 온라인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려해 봤고요. 고민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휴간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실제 지금 회사가 겪고 있는 코로나 타격이 얼마나 큰가 하면, 폐업에 들어가는 여행사들처럼 우리 회사도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예요. 직원들 월급을 책임질 수 없는 회사는 문을 닫아야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뮤지컬 공연이 우리 회사 전체 매출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지금 공연을 하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봐요. 우리에겐 슬픈 역사로 남을 일이기 때문에 올해 공연한 작품의 적자 규모를 밝히고 싶진 않지만, 앞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절망적이에요.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공연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보니, 공연 산업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어두운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연이 지속되리란 믿음이 있으신지요.
코로나로 붕괴된 공연 시장이 복구되려면 코로나가 끝난 후에 적어도 2~3년이 더 걸릴 거예요. 올 한 해 가족 단위 관람객 수는 80퍼센트 가까이 줄었고, 노년 관객층은 전멸하다시피 했어요. 청소년 관객층 상황도 비슷하고요. 다시 말해 공연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못 버티고 문을 닫는 제작사들이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연 산업 전체를 어둡게 바라보는 것은 속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공연으로 인해 이미 발생된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잖아요.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다시 엄마 배 속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공연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곳을 쉽게 벗어날 수 없어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공연을 올리는 제작사, 개런티나 작업료를 덜 받으면서 공연을 만들고 있는 배우와 스태프, 마스크를 쓰고 전투하는 심정으로 공연을 보러 오는 마니아 관객, 이들이 현재 공연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지닌 가치는 언젠가 다시 빛을 발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세요?
<더뮤지컬>이 지금껏 매달 발행되어 왔다는 것은 앞으로도 발행하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나 다름없어요. 독자 여러분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송구하고 죄송하죠. 그리고 <더뮤지컬>을 함께 만들어온 식구들이 열정을 바친 매체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참 안 좋아요. 사실은 독자들보다 우리 <더뮤지컬> 팀원들에게 더 미안합니다. 저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잠시 제자리에 머물러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새롭게 다시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어요. <더뮤지컬>에 ‘휴간’이라는 단어를 떼고 새로운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7호 202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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