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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렛미플라이> 김지현, 조용히 나아가는 당당함 [No.210]

글 |배경희 사진 |김현성 Stylist |김은주(주주커스텀) Hair |민순주(모아위) Make-up |최영란(모아위) 2022-09-08 683

<렛미플라이> 김지현
조용히 나아가는 당당함

 

올봄 초연되는 <렛미플라이>의 키워드는 ‘시간 여행’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남원이 갑작스럽게 시간 여행을 떠나면서, 우리의 평범한 나날들이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한 명의 등장인물이 더 필요한데 남원이 선택한 평범한 삶을 빛나게 해 주는 단 한 사람, 선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20년 트라이아웃 공연에 이어 다시 한 번 선희로 우리 앞에 설 김지현의 인생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

 

 

“저는 항상 제 선택을 믿으려고 해요.”

 

지난해 봄 공연한 <맨 오브 라만차> 이후 1년 만에 뮤지컬 출연 소식을 알렸어요. 오랜만에 연습실에 가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나요?
무엇보다 연습실이 있는 대학로에 가는 게 설렜어요.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대학로는 저한테 제2의 고향이거든요.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제일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니까요. 드라마 촬영 때는 보통 매번 새로운 장소에서 연기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제가 잘 알고 있는 동네를 오가니까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았어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것 같고, 익숙한 골목과 건물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잖아요. 대학로 거리에서는 반가운 얼굴들을 우연히 마주치게 될 때도 많고요.

 

<렛미플라이>는 2020년 우란문화재단 트라이아웃 공연에 참여했던 작품이에요. 당시 이 작품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그 시기에 배우들한테 우란문화재단은 일종의 워너비였어요. 배우들 사이에 우란문화재단은 제작 시스템이 탄탄한 데다 창작 작품을 전폭 지원해 줘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나는 왜 안 찾나, 이제나저제나 연락이 오길 기다렸는데, 어느 날 진짜 우란문화재단 피디님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드디어 나한테도 기회가 왔구나 기뻤죠. 그런데, 저 보고 할머니 역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뭐지? 이거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닌데?’ 맘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죠. (웃음) 사연을 들어 보니, 남자 배우로 오의식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의식이가 저를 추천했대요. 누나랑 이 작품을 같이 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요. 처음엔 생각지도 못한 역할에 좀 당황했지만, 우란문화재단과 작업해 보고 싶었던 터라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상대 배우가 의식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고요.

 

같은 극단 배우라서요?
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 의식이랑 저랑 안 친한 건 아니지만, 또 아주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이였어요. 좋은 선후배 사이로 포장된 관계였달까. (웃음) 왜냐면 오랫동안 한 극단에 소속돼 있으면서 같이 제대로 작업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오래전에 <올모스트 메인>이라는 연극을 같이 하긴 했는데, 에피소드 형식에 출연진이 워낙 많다 보니 서로 마주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오의식이라는 배우하고 작업하면 어떨지 궁금했고, 왠지 모르게 즐거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죠. 아, 오의식한테 확신을 느꼈다니,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요? 하하.

 

오의식 배우와 실제 같이 작업해 보니 어땠어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나요?
의식이가 겉으로 보기엔 예민하지 않을 것 같잖아요? 근데 연기할 땐 엄청 예민해요. 고민도 정말 많이 하고요. 쉽게 말해, 저는 연습실에서 다섯 번 정도에 오케이한다 치면, 의식이는 일곱 번은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에요. 맨날 연습 끝나고 “근데 있잖아, 누나, 거기 그 부분 약간 이상하지 않아?” 그러죠. 그리고 의식이는 배우로서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아요. 창작 초연을 할 때는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시너지를 내는 게 중요한데, 저는 스스로 아이디어가 많은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품하는 동안 의식이한테 존경스럽다는 말을 참 많이 했어요.

 

지현 씨는 연습실에서 의견을 말하기 보다 듣는 쪽에 가까운 편인가 봐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듣는 역할이 편한 사람이에요.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내는 아이디어를 듣다 보면, ‘어떻게 저런 기발한 생각을 하지?’ 감탄할 때가 많죠. 전 아무래도 그런 창의력은 부족한 것 같으니 대신 좋은 아이디어들을 잘 수행해 내려고 해요. (웃음) 그리고 좀 수동적인 데는 이런 이유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연출가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장면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하기 전에 연출가가 요구하는 걸 최대한 표현해 보려고 노력하죠. 제가 그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요.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대본이 완성되기 전이었다고 들었어요. 혹시라도 완성된 대본이 기대한 것과 다를까봐 걱정하진 않았어요?
아니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했으니까요. 사실 <렛미플라이>는 트리트먼트를 읽고 출연을 결정한 거라 실제 어떤 이야기로 완성될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모든 창작 작업이 그렇듯 창작자와 배우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면 잘 완성해 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죠. 완성된 대본이 설령 제 기대에 조금 못 미친다고 해도 조금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얻을 수 있고요. 저는 어떤 결정을 내리고 나면 제 선택을 믿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운이 정말 좋았던 게, ‘내가 이 작품을 왜 한다고 했을까’ 하고 후회했던 적이 없어요. 작품 소재나 등장인물에 마음이 끌려야만 출연해서 그런가 봐요.

 

 

“선희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에요.”

 

할머니 역할을 맡아 달라는 말에 놀랐다고 했잖아요. 일흔 노인을 연기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 됐을까요?
처음엔 정말 놀랐어요. 할머니 역이라고 해서 몇 살인지 물어봤더니 일흔이라잖아요. “네…? 칠십 살이요…? 제가요?” 즉각적으로 이렇게 반응했죠. (웃음) 그래도 상대 할아버지 역을 또래 배우가 맡는다고 하니까 부담이 덜했어요. 노부부로 나오는 배우 둘 다 젊으니까 연극적 허용이 가능하겠다 싶었거든요. 근데 여기서 반전, 연습 시작 전엔 노역을 어떻게 할지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까 어르신들 특유의 느릿한 호흡이 저랑 너무 잘 맞더라고요. 자세나 몸짓도 그렇고. 생각해 보면 전 평소에도 앉았다 일어날 때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는 사람이거든요. 하하. 이전에 제가 맡았던 가냘픈 캐릭터들보다 오히려 선희가 훨씬 편했던 것 같아요.

 

노인을 연기하다 보면 왠지 자연스럽게 부모님 생각이 날 것 같아요.
극 중에서 선희가 스무 살 정분이랑 부르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그래, 그런 꿈을 꾸었지, 사느라고 모두 잊었는데, 돌아보니 꿈도 꾸며 살았었지.” 처음 대본 리딩을 했을 때부터 이 장면만 되면 엄마 생각에 울컥해져요. 저 노랫말이 꼭 우리 엄마의 마음일 것만 같아서요. 아, 또 눈물 난다. 이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핑 돌아요. 사실 저는 그래도 제법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선희 할머니 나이가 돼도 내 마음대로 못 살았다는 아쉬움은 없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는 지금보다 덜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고, 특히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당신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했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져요. 그런데 <렛미플라이>의 좋은 점은 남들 눈에는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삶이지만, 그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려 준다는 거예요. 선희도, 남편 남원도, 어릴 적 꿈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해 살아가지만, 자신들이 살아온 시간을 귀하게 여겨요. 그 점이 정말 좋아요.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 이 작품은 꿈 대신 현실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게 실패한 삶은 아니라고 말하죠.
선희나 남원의 삶이 실패로 비춰지지 않는 건 그들이 그렇게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에요. 현실에 따라 꿈을 못 이뤘다고 해도, 두 사람은 ‘내 인생은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하고 비관하지 않아요. 평범한 삶을 살게 됐다고 상대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 따라 서로를 보듬어 주죠. 물론 50년을 같이 살다 보면 싸우기도 많이 싸웠겠지만요. (웃음) 그런데 실제 우리 삶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면 그걸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 중요하잖아요. 뭐가 됐든 자신이 내린 결정에 따라 마음을 못 바꾸면 불행해지니까요. 예를 들어, 차선을 선택하게 됐을 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행복할리 없겠죠.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스스로를 응원해 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뻔한 말이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트라이아웃 공연 때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당시 저희 팀 멤버들 의식이, (안)지환이, (나)하나가 다들 감성이 풍부해서 연습 때부터 되게 잘 울었어요. 근데 저는 이상하게 다 같이 우는 상황에는 오히려 눈물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맨날 “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야!” 그러고 다녔는데, 리허설 때 제가 펑펑 울어서 연습이 중단된 적이 있어요. 그게 어떤 장면이었냐면, 남원이 선희 옷을 만들어 주거든요. 그 옷이 완성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진 거예요. 선희한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컵케이크 장식이 옷에 붙어 있는 걸 보는 순간,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렇게 감정 컨트롤이 안 됐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의 진폭이 좁아져서 웬만해서는 그렇게 큰 감정적 동요를 느끼지 않거든요. 감정의 큰 폭발을 경험했다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특별했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뮤지컬은 슬플 때 노래를 해야 하잖아요. 배우한테 참 여러모로 어려운 장르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 공연 날, 남원과 선희의 마지막 듀엣을 불러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의식이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더라고요. 서로 시선을 맞추면서 부르는 곡이라 눈빛으로 계속 신호를 보냈죠. “의식아! 이성을 잡아라! 울면 안 된다!” 그날 공연이 끝나고 나서 뮤지컬에서 감동은 노래로 주는 거라고 의식이를 놀렸더니, 저 보고 김 선배 너무 빡빡해서 같이 못 하겠대요. (웃음) 그런데 저도 사실 뮤지컬을 하면서 늘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에서는 보통 감정이 세질 때 노래가 시작되는데, 노래를 잘 부르려면 이성적인 상태여야 하니까요.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면서 소리를 컨트롤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죠. 뮤지컬은 모순적인데 매력이 있는 묘한 장르인 것 같아요.

 

<렛미플라이> 에서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는 뭐예요?
제가 이 작품에서 반한 뮤지컬 넘버는 ‘선희야’예요. 남원이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삶이 뭐였는지 깨닫는 장면에서 부르는데, “선희야 고운 내 선희야”라는 단순한 가사가 반복되는 짧은 곡이죠. 한데 저는 단순하지만 진심을 담은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멜로디도 정말 좋아요. 리허설하면서 현악기로 편곡된 사운드를 들었을 때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 민찬홍 작곡가는 어떻게 이런 멜로디 라인을 쓰는 건지 참 대단해요. 저희끼리는 민찬홍 작곡가를 ‘민차르트’라 불러요. (웃음)

 

“창작극에 대해서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요.”

 

트라이아웃 공연은 3일 동안 짧게 진행된 거라 마지막 날의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마지막 날, 이 작품을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네, 저희와 관객분들의 마음이 같다는 게 무대에서 느껴졌거든요. 우란문화재단 피디님도 우리 재단의 역대급 흥행작이 나왔다고 해 주셨어요. 관객 반응이 정말 좋았대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상상할 수 있는 크기의 감동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무대에서 다 갖춰진 상태로 공연하니까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감동이 왔어요. 작품에 담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무대에서 훨씬 증폭되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론 그런 경험이 오랜만이라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느꼈어요. <렛미플라이>는 어쩌면 조금 뻔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알면서도 속는 것처럼 눈물이 나는 작품이에요. 꼭 많은 분들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니까 정식 초연 소식이 누구보다 반가웠겠어요.
트라이아웃 공연이 끝나고 나서 한두 달쯤 지났을 땐가, 이 작품을 기획, 개발하신 제작사 대표님이 전화하셔서 2022년 대관을 알아보고 계시다는 거예요. “2022년이요? 그때가 오긴 오나요?” 제가 농담으로 그랬죠. 그때만 해도 2022년은 미래 세상처럼 느껴졌는데, 이렇게 빨리 그 시간이 와 버렸다니,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갈까요? 이렇게 또 인생 타령이 시작되고! (웃음) 따뜻한 작품으로 뭉치면 여운이 오래가는지 보통 공연이 끝나도 팀워크가 계속 유지돼요. <렛미플라이> 팀도 그랬어요. 다들 마음을 많이 쓰면서 작품을 만들었고, 작업 과정에서의 좋은 기억이 많아서, 지난 2년 동안 ‘카톡’ 단체방에서 끊임없이 추억담을 나눴죠. 그래서 이 작품은 계속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최근에는 드라마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출연을 결정하기가 어렵진 않았어요?
네, 약속한 거니까요. 배우라면 다들 비슷한 마음일 텐데, 창작극에 대해서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요. 리딩 공연이든 워크숍 공연이든, 개발에 참여한 작품이 세상에 나올 때는 그래도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하죠.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이상한 작품이 아니라면, 어떤 작품의 시작을 함께한다는 것 자체에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개인적으로 <렛미플라이>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라 더 큰 책임감을 느꼈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을 관객이 되어 보러 간다면 객석에서 후회할 것 같았어요. “내가 해도 됐는데, 해야 했는데!” 이러면서. (웃음)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현 씨는 고1 때 연극반에 들어가면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걸로 아는데, 그보다 더 어릴 때 최초로 가졌던 꿈은 뭐였나요?
저는 어렸을 때 꿈이 없었어요.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른 애들처럼, 과학자요, 선생님이요, 그랬죠. 그날그날 떠오르는 대로 아무거나 말했어요. (웃음) 미래에 대한 고민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 해 본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친언니가 대학생이 돼서 ‘나는 나중에 뭘 전공하지?’ 생각해 보게 됐거든요. 그런데 도통 무슨 과에 들어가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안 떠올랐죠. 그러다 우연히 친구 따라 연극반에 들어간 건데,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걸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대학에 연기과가 있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안 하게 됐어요.

 

<렛미플라이>에서 남원이 복장 학원에 합격했을 때 “눈 떠 보면 다 꿈이었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마치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글쎄요, 나한테 그런 순간이 있었나? 오스카 시상식이나 칸 영화제쯤 가서 레드카펫을 밟아야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하하. 모든 공연의 커튼콜 때, 특히 첫 공연과 마지막 공연 커튼콜이 꿈처럼 느껴지긴 해요. 질문에서 조금 벗어난 답변이긴 하지만, 두 날 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 박수를 받으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모든 기억이 사라지거든요. 어떤 작품이든 첫날과 마지막 날은 늘 너무 소중해서 무대 위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데, 공연이 끝나면 어떻게 공연했는지 기억하려고 아무리 애써 봐도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나 봐요.

 

최근 5~6년 사이에 무대나 드라마, 영화 장르 구분 없이 활동하는 배우들이 부쩍 많아졌잖아요. 지현 씨도 자연스레 다른 매체 활동을 생각했을 것 같은데 출발이 늦은 편이에요.
그게, 저는 뭔가를 계획하면서 사는 편이 아니라… 어렸을 때 꿈이 없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죠? (웃음) 유재석 씨가 언젠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자기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 뿐이라고. 저도 그런 마인드예요. 큰 목표를 세우는 게 소심한 제 성격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왜, 기대가 크면 상처받을까봐 아예 기대하지 않는 사람 있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그랬어요. 그래서 배우가 됐을 때도 어떤 작품이나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없었어요. 오디션을 보러 가도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야 마음이 안 다치니까. 매체 활동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주위에서 드라마나 영화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면, 그게 내 뜻대로 되는 건가 싶은? 그러다 2017년 즈음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됐어요. 배우로서 리프레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연기해 보고 싶어졌거든요. 그래서 이전에는 해 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대극장 뮤지컬도 하고, 드라마 출연에도 조금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됐죠. 제가 바란다고 되는 건 아닌데,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기회들이 찾아와 줘서 감사할 뿐이에요.

 

나중에 선희의 나이가 돼서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본다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길 바라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작품을 하든 동료들이 나로 하여금 연습실에 오는 길이 즐거워져야 한다고, 오늘은 어떻게 같이 재미있게 연습할까 동료들을 설레게 하는 배우가 돼야 한대요. 그 말이 저한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연습실은 제가 살아가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그곳에서의 시간이 즐겁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연습실에서의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려면 선생님 말씀처럼 구성원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테고요. 마음을 함께 나누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 한 작품의 구성원으로서 제가 늘 그런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보다 조금 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요?
친구들끼리 만나면 다음에는 뭐 먹으러 가자, 뭐 하러 가 보자,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요즘 저는 친구들하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아니, 지금 하자! 다음은 없어!” 그래요. 지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있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하자! 이게 요즘 저의 모토인데,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게을러져서… (웃음) 그래도 나중에 사십 대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게, 좀 더 다양한 경험들을 많이 해 봤으면 좋겠어요. 제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이요.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걸 잊지 않고, 올해는 꼭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0호 2022년 3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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