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SPOTLIGHT] 삶이라는 우주를 유영하는 법, <시데레우스> 기세중 [No.214]

글 |안세영 사진 |맹민화 2022-10-11 885

삶이라는 우주를 유영하는 법
<시데레우스> 기세중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이를 뒤집고 지동설을 주장한 두 천문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요하네스 케플러의 이야기를 그린 <시데레우스>. 2020년 이 작품에서 케플러를 연기한 기세중이 다시 한번 같은 역으로 돌아온다. 진실을 알기 위해 지금껏 믿어왔던 것이 틀렸음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케플러를 두고 기세중은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연스레 알게 됐다. 거침없이 지난 삶의 궤적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케플러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가볍게, 유연하게


올해 상반기에는 <난쟁이들>과 <차미>에 연달아 출연하며 밝고 코믹한 모습을 보여줬죠. 공연을 보면서 많이 웃었는데, 관객을 웃겨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녹록지 않은 공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 저는 즐겁게 공연하고 있어요. <난쟁이들> 개막 전에는 관객들이 웃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때 배우들끼리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일단 우리끼리 재미있게 공연하자. 그래야 그걸 보는 관객도 재미있게 여길 것이다. 다만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과한 애드리브는 하지 말자고 약속했죠. 실제로 배우들끼리 마음이 잘 맞아서 아주 재미있게 공연했어요. 원래 저는 공연 중에 어떤 해프닝이 생겨도 잘 안 웃거든요. 근데 <난쟁이들> 공연할 때는 몇 번이나 ‘현실 웃음’이 터졌어요. 기본적으로 무대에 서는 게 즐겁고 행복한 상태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어요?
지난 3월에 대학로 일대가 정전된 적이 있는데, 그때 저랑 신창주, 조풍래 형이 <난쟁이들> 공연 중이었어요. 문제가 생겼구나 싶어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혼자 무대 뒤로 나갔죠. 아니나 다를까 무대감독님께서 인터미션을 갖자고 하시더라고요. 알겠다고 하고 다시 돌아와 화장실 변기가 막혔으니 나머지 둘도 무대 뒤로 나오라고 말했어요. (웃음) 그런데 풍래 형이 이 상황이 재미있다고 느꼈는지 계속 말꼬리를 잡는 거예요. 변기 고치는 법도 모르는데 왜 가야 하느냐고. 제가 “난쟁이 마을에서 철물점을 해봐서 고치는 법을 안다, 대신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둘러대니까 철물점은 물건 파는 곳이지 고치는 곳이 아니라나. 한참 실랑이하다가 싸우기 직전에 창주 형이 말려서 퇴장했어요. (웃음) 심각한 공연이었다면 위기를 재치 있게 넘기기 어려웠을 텐데 <난쟁이들>은 이런 상황조차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 재미있었어요.

 

관객들에게도 잊지 못할 공연이 됐겠네요. 현재 출연 중인 <차미>에서는 고대와 진혁의 랩 배틀 장면이 웃음을 주잖아요. 뮤지컬에서 랩을 하는 건 생소한 도전이었죠?
안 믿기시겠지만 저 랩 좋아해요. 평소에 힙합 음악도 많이 듣는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이래 봬도 열심히 준비한 거랍니다. 그 노래를 제일 많이 연습했는데, 온라인 공연 실황 중계 때 랩 배틀 장면에서 어떤 분이 실시간 채팅창에 “안쓰럽다”라고 쓰신 거예요. 집에서 혼자 중계를 보고 있다가 빵 터졌어요. 저는 세상 자신 있게 부른 거였는데. (웃음)

 

실황 중계를 보셨군요. 배우들 중에는 부끄러워서 본인이 연기하는 모습을 못 보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세중 씨는 그렇지 않은가 봐요.
제가 출연한 회차의 공연이 전막 실황 중계를 한 건 <차미>가 처음이지만, 데뷔 초부터 제가 연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녹화해서 봤기 때문에 이제는 익숙해요. 사실 어릴 때는 성격이 지금보다 무뚝뚝해서 감정을 표현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게 민망했어요. 그래도 영상으로 찍어놓고 보면 고쳐야 할 점이 바로 눈에 띄더라고요. 내가 이러저러한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의도와 다르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는 더 좋은 표현 방법을 찾아봐요. 스스로 모니터링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조언해 주는 것보다 훨씬 좋더라고요.

 

차기작 <시데레우스>는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하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돌아왔나요?
천문학이라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소재를 다루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좋아요. 진지한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마냥 무겁게 풀어내지 않아서 더 좋고요. 저란 사람 자체가 힘든 일이 생겨도 가볍게 털어내려는 편이다 보니 비슷한 성격의 작품에 끌리나 봐요. 지난 공연 때 느꼈던 행복감이 지금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어서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요. 이번에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상대역을 보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극 중 케플러와 갈릴레오는 편지로 소통하기 때문에 실제로 대면하는 장면이 별로 없거든요. 서로 떨어져 있는 장면에서도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연기해 보려고요.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케플러는 오랫동안 증명하려고 애썼던 가설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좌절하는 대신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연구를 시작해요. 결국 새로운 가설을 세워 진실에 다가가죠. 꼭 케플러 같은 학자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굳게 믿는 것이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그 신념이 꺾이는 순간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져 버리기도 해요. 하지만 그 순간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더 넓은 시야가 열릴 수 있어요. 저도 한때는 무조건 ‘내가 맞고 넌 틀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살다 보니 상대가 맞을 때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거죠. 작품 속 갈릴레오와 마리아도 마찬가지예요. 갈릴레오는 처음엔 케플러의 주장이 말도 안된다고 여기지만, 자기 생각을 꺾고 케플러의 얘기에 귀 기울이면서 우주에 대해 더 잘 알게 돼요. 마리아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내려놓고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요. 이런 변화는 모두 마음을 열고 서로의 얘기를 듣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몰랐던 우주


지동설이 천동설을 대체한 것처럼, 최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있다면 뭐예요?
아, 있어요. 얼마 전에 투자를 했다가 큰돈을 잃었거든요. (웃음) 저는 어렸을 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편안하고 풍족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한 번은 위험 부담이 큰 투자를 했다가 크게 손해를 봤는데, 막상 돈을 잃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헛된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겠더라고요. 돈에만 신경 쓰느라 정신 건강이나 시간 활용,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때는 비싼 차 같은 물질적인 걸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런 욕심도 거의 없어졌고요.

 

내년이면 어느덧 데뷔 10주년이잖아요. 처음 배우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마음가짐이 달라진 점도 있겠죠?
처음에는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요. 데뷔하고 3년간은 기대한 만큼 빠르게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힘들었죠. 배우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는데 2016년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에 출연하며 모든 게 달라졌어요. 얼굴이 알려지자 작품 제안이 들어왔고 행사로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얼마나 작은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지. 배우로서 다른 목표를 찾고 싶어서 선택한 차기작이 연극 <보도지침>이에요. 연습 초반에는 다른 배우들이 제 미숙한 연기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게 피부로 느껴졌어요. 그럴수록 연습에 매진했죠. 나중에는 선배들도 인정해 주었어요. “너처럼 시시각각 실력이 느는 배우는 처음 봤다”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생한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어요. 단순히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공연하는 것보다 하루하루 더 나은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공연하는 쪽이 훨씬 즐겁더라고요. 그제야 계속 배우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럼 지금의 배우 기세중이 원하는 건 뭐예요?
자랑하는 공연 말고 이야기하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간혹 화려한 스타일만 앞세워 ‘나 잘하지?’ 하고 뽐내고 싶어하는 공연이 있거든요. 물론 창작자나 배우나 무대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 맞는데, 미묘한 농도 차이라고 할까요. 이야기하려는 마음보다 자랑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앞서면 감동이 사라져요. 배우의 임무는 글로 쓰인 이야기를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무대에서 전달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하면 나를 뽐낼 수 있을까’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날 때 재미있고 행복해요. 그리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한 대본은 배우가 아무리 잘난 체하려고 해도 그러기 힘들어요. 그걸 체감하고 있어요.

 

2018년 『더뮤지컬』 인터뷰 때도 “진심으로 쏟아낼 수 있는 대사가 단 한 줄이라도 있는 무대에 서고 싶다”라는 얘기를 했죠. 그와 더불어 “35세까지 소극장 하나를 꽉 채울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얘기했는데, 기억해요?
그때의 기세중은 지금보다 조금 더 야망이 있었네요. (웃음)

 

그런데 실제로 작년에 단독 콘서트를 매진시켰잖아요.
맞아요.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자선 콘서트 제안을 받고 시간적 여유 없이 준비한 공연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내년이 데뷔 10주년이라 단독 콘서트 계획이 없느냐는 얘기를 듣고 있는데, 다시 한다면 꼭 내년이 아니라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어요. 지금 이 인터뷰처럼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면서, 특별할 것 없었던 제가 관객분들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고마움을 전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지난 콘서트에서 첫 곡으로 <시데레우스>의 ‘살아나’를 불렀다면서요. 이 곡을 첫 곡으로 선택한 이유는 뭐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인 케플러의 노래이고, 오프닝을 열기에도 좋은 노래라서 선택했어요. 또 제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많은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셨다는 걸 아니까요.

 

공연에 대한 관객 반응을 찾아보나 봐요.
공연 후기를 안 찾아보는 배우가 있을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관객 여러분, 여러분이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든 다 안 그런 척하며 여러분 반응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웃음) 사실 예전에는 안 봤어요. 반응을 알면 연기할 때 관객이 어떤 부분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신경 쓰게 됐거든요. 하지만 중요한 건 배우가 스스로 전달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표현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지금은 알아요. 그걸 깨달은 뒤로는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걸 정확하게 봐주시더라고요. 조사나 접속사 하나를 바꿔서 뉘앙스를 달리한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캐치하셔서 놀라곤 해요. 관객들은 정말 대단해요.

 

최근에는 개인 연습실도 마련했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대다수 연습실이 지하에 있고 공기가 안 좋잖아요. 그런 곳에서 연습하면 컨디션이 나빠지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배우 지망생들에게 개인 레슨을 하고 있는데, 그들도 건강한 환경에서 연습하는 게 좋겠다 싶어 개인 연습실을 마련했죠.

 

학생들을 가르치는 줄은 몰랐어요.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 있나요?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연습해 왔는지 아닌지 보면 안다”라고 말할 때 ‘에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랬는데 제가 선생님이 되어보니 알겠더라고요. 저는 솔직하게 말해요. 열심히 할 생각이 없다면 괜히 돈 써가며 레슨받지 말라고. 배우는 낭만만 품고 덤비기에는 너무 힘든 직업이에요. 쉽게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만둘 거면 지금 그만두고, 아니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제일 현실적인 조언이에요. 그렇게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 벌써 두 명이 데뷔를 했는데 정말 기쁘더라고요.

 

얘기를 나눠보니 자기만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주로 어떤 생각을 하나요?
아무 생각 안 해요. (웃음) 최대한 생각을 비워요. 무대 위에서는 어떤 생각도 쓸모가 없더라고요. 그동안 연습한 걸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해요. 인터뷰할 때도 무슨 얘기를 할까 미리 생각해 오는 타입은 아니에요. 준비한 답변이라 해도 진심이 아니면 금방 탄로 나고, 투박하게 말해도 진심이라면 어떻게든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신 있거든요. 제가 지금 하는 생각이나 가지고 있는 신념이 얼마나 건강한지 자신 있어요. 만약에 누군가 과거의 저와 비슷한 생각에 사로잡혀 힘들어하고 있다면,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생각을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고요. 실제로 제 인생이 그렇게 바뀌었으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4호 2022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