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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쓰릴 미> 범죄를 공모하는 계약도 효력이 있을까 [No.216]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엠피앤컴퍼니 2022-10-14 839

<쓰릴 미> 
범죄를 공모하는 계약도 효력이 있을까

 

 

피로 사인한 계약의 효력


<쓰릴 미>는 1924년 시카고에서 명문대생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차드 로엡이 저지른 범죄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다. 극 중에서 주인공 ‘나(네이슨)’와 ‘그(리차드)’는 범죄를 도모하며 서로를 구속하는 계약을 맺는다. 계약의 내용은 이러하다. 네이슨은 리차드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함께하고, 리차드는 그 대가로 네이슨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줄 것! 둘은 계약서를 작성한 뒤 각자의 피로 서명까지 한다. 과연 이들이 체결한 계약은 실제로 법적 효력이 있을까?


계약이 유효한지 따져보려면 그에 앞서 계약의 성립 여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계약의 효력과 성립은 혼동하기 쉽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애초에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효력은 논할 필요조차 없다.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간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법률 용어로 표현하면 ‘청약의 의사 표시와 그 청약에 대한 승낙의 의사 표시의 합치’가 이뤄져야 한다. 뮤지컬에서는 리차드가 먼저 계약을 체결하자고 ‘청약의 의사 표시’를 하고, 네이슨이 이를 승낙하기 때문에 계약이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계약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지 않아도 서로 의사만 합치한다면 계약은 성립한다.


그럼 이제 이들의 계약에 효력이 있는지 따져보자.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르면 사법상 법률 관계에서 개인이 어떤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지는 당사자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범죄를 도모하는 계약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짐작한 대로 계약 자유 원칙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 질서에 위반되는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은 무효다. 살인청부, 장기매매, 인신매매 등 범죄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은 강행법규(당사자의 자유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법규)를 위반하기 때문에 위법이며 효력이 없다. 같은 이유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빌려간 돈을 갚지 못하면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겠다는 조건으로 맺은 계약 또한 실제로는 효력이 없다. 


리차드와 네이슨이 쓴 계약서에는 어떤 일이든 함께하고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겠다는 추상적인 내용만 담겨 있어 계약의 효력을 판단하기 애매하다. 하지만 만약 당사자가 계약 내용에 무조건 범죄에 가담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계약은 위법이며 무효이다. 계약서에 날인하는 대신 피로 서명했기 때문에 효력이 없는 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계약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고, 그 당사자가 본인이 직접 서명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는 이상 피로 서명했더라도 계약상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

 

 

낡은 창고 대신 주택에 불을 지른다면


뮤지컬에서 네이슨과 리차드가 처음 저지른 범죄는 낡은 창고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붉은 불길에 휩싸인 창고를 바라보며 네이슨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리차드는 이 정도 장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이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방화범으로 붙잡혔다면 현행법상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방화죄는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로 무겁게 처벌되지만, 그 대상이 일반건조물이냐, 현주건조물이냐, 공용건조물이냐에 따라 형량에 차이가 있다. ‘현주건조물’은 사람이 주거로 사용하거나 현존하는 건조물을, ‘공용건조물’은 국가 또는 공공단체, 공중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건조물을 말한다. 물론 일반건조물보다 현주건조물, 공용건조물 방화가 더 무겁게 처벌받는다. 네이슨과 리차드는 사람이 주거로 사용하지 않는 낡은 창고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일반건조물방화죄로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야 한다. 만약 리차드가 창고 태우기에 싫증을 느끼고 주택처럼 사람이 주거하는 건물에 불을 질렀다면, 현주건조물방화죄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것이다. 또한 건조물 방화로 인하여 사람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하면 결과적 가중범이 되어 더 강한 처벌을 받는다.


창고에 불을 낸 것이 실수라면 어떨까? 고의가 아닌 과실로 불을 내도 실화죄로 형사 처벌을 받는다. 다만 대상이 되는 건조물이 현주건조물, 공용건조물, 그리고 다른 사람 소유의 일반건조물인 경우에만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자기 소유의 일반건조물이 과실로 불타면 그로 인하여 공공의 위험이 발생한 경우에만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즉, 리차드와 네이슨이 실수로 낡은 창고에 불을 냈는데, 그 창고가 리차드나 네이슨의 소유라면 그 자체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다른 건조물에 불이 옮겨붙어 공공의 위험이 발생했다면 벌금을 내야 한다.

 

가석방 심사 요건과 기간


네이슨과 리차드는 결국 범죄가 탄로 나 재판을 받는다. 두 사람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지만, 리차드는 감옥에서 사망하고 네이슨만 34년이 지나 일곱 번째 가석방 심의를 받는다. 우리 형법에도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가 ‘행장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하다면’, 즉 깊이 반성하여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고 인정되면, 형기 만료 전에 조건부로 석방하는 제도가 있다. 유기형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 무기형의 경우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가석방은 말 그대로 임시로 석방되었다는 의미이므로 사면과 달리 가석방 기간이 경과해야 형의 집행이 종료된 것으로 본다. 유기형이라면 남은 형기만큼(10년 초과 금지), 무기형이라면 10년 동안 가석방 기간을 거친다. 가석방 기간에는 원칙적으로 보호 관찰을 받아야 하며, 이 기간에 잘못을 저지르면 가석방이 실효되거나 취소된다. 고의로 지은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판결이 확정되면 가석방 처분은 효력을 잃는다. 감시에 관한 규칙을 위배하거나 보호 관찰 준수 사항을 위반해도 가석방 처분이 취소되어 다시 구속된다. 이처럼 가석방이 실효되거나 취소될 경우, 결과적으로 가석방 전보다 더 오래 형기를 살 수 있다. 가석방 상태에서 보낸 일수는 형기에 포함하여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 한국 공연은 두 주인공을 ‘나’와 ‘그’로 지칭하지만 본문에서는 편의상 ‘네이슨’과 ‘리차드’로 표기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6호 2022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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