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NEW FACE] <배니싱> 박좌헌, 어둠 속 한 줄기 빛 [No.216]

글 |이솔희 사진 |맹민화 2022-10-14 898

<배니싱> 박좌헌
어둠 속 한 줄기 빛

 

“제 태몽이 뭔 줄 아세요? 어머니가 길을 걷는데, 저 멀리서 엄청나게 큰 달이 떠오르더래요. 등불같이 밝은 빛을 내면서. 저는 제가 그런 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 곁에서 환한 빛을 비춰줄 수 있는 사람이요.” 박좌헌이 언제 어디서나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유는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힘이 절로 솟아난다는 그는 오늘도 반짝이는 에너지로 관객의 마음을 환히 밝힌다.

 

 

박좌헌은 최근 뮤지컬 작품에서 쉽게 이름을 찾을 수 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신인 배우다운 뜨거운 열정은 물론, 신인 배우답지 않은 여유로움을 겸비한 이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말이다. 박좌헌이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이 궁금해 데뷔작으로 알려진 <적벽>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을 띠며 장난스레 속삭였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무대 데뷔는 그보다 더 빨리 했어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성격 덕분에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가족극, 마당극, 심지어는 지역 특산물 축제에서 선보이는 소규모 연극까지,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상관없이 도전했단다. “사실 어렸을 때 꿈은 TV에 나오는 리포터가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리포터과’는 없다는 거예요. (웃음) 그러다가 중학교 은사님의 추천으로 김성녀 선생님의 마당극 영상을 봤고, 그게 계기가 돼서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에 들어갔어요. 학창 시절에 여러 무대에 설 때는 내가 왜 공연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2017년 <적벽>에 출연하면서 알게 됐어요. 모든 관객의 시선이 내게 쏟아지는데 얼마나 짜릿하던지. 그때 ‘나는 배우를 계속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느꼈죠.”

 

그 후 서울시뮤지컬단 연수단원으로 입단해 2년간 기초를 단단히 다진 그는 2021년 <마마, 돈 크라이>에서 쇼맨십을 보여줘야 하는 프로페서 V 역을 탁월하게 소화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은하철도의 밤> <스메르쟈코프> <미아 파밀리아> 등 공연장에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든 뮤지컬로 출연작을 채워갔다. 이번에 참여하는 작품 역시 2017년 초연 이후 마니아 관객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배니싱>이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친한 형인 의신에게 동경과 질투심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인물인 명렬이다. “명렬은 단순히 악역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에요. 의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만큼 그를 향한 열등감에 사로잡히면서, 그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죠. ‘결핍’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객에게 각인된 유쾌하고 밝은 이미지를 깨고 다른 분위기의 인물을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을까. 그는 오히려 “명렬이가 곧 나 자신”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명렬이가 의신에게 의지하면서도 열등감을 느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락없는 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대의 저는 부족한 점이 많았고 열등감도 느꼈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다 서른 살이 된 후로는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지금 힘든 이유는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해내지 못해서’라는 걸요. 그래서 명렬이와 가까워질수록 제가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겨요.”

 

박좌헌이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오롯이 마주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은 역설적으로 크고 작은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홀로 타국 생활을 하며 느낀 외로움부터 데뷔 이후로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없었던 현실적인 상황까지, 역경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는 어떤 일이든 유쾌하게 소화하는 법을 배웠다. “제가 스스로에게 무조건 ‘힘들지 않다’고 주문을 거는 건 아니에요. 힘든 걸 인정하되 그 힘듦에 유쾌하게 대처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큰 힘이 되는 건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정말 행복해요.”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재차 강조하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 해주고 싶은 칭찬이 있다면?’ 장난기 가득하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대답이 돌아왔다. “좌헌이 진짜 대단하다! (웃음) 힘들었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시간을 잘 버텨낸 제가 대견해요. 떫은맛이 빠져나가고 점점 익어가는 제 자신이 너무 멋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6호 2022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