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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섬: 1933~2019> 고지선, 성찰하는 인간

글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2024-06-24 1,507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매월 넷째 주 더뮤지컬 웹사이트를 통해 연재됩니다.

 


 

 


음악극 <섬: 1933~2019>는 1930년대 한센인들에게 가혹했던 소록도, 1960년대 이들을 돌봤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2019년 발달장애인 가족의 일상이 뒤섞인 작품이다. <섬: 1933~2019>는 사회가 외면한 이들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작품에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뜨끔함’이다. 작품은 차별의 여러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경멸을 담은 언어, 실체 없이 만들어지는 괴소문, 보호를 명목으로 한 고립, 호기심을 가장한 불편한 시선, 추측과 단정에서 비롯된 편견, 연민이라는 과장된 친절함,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 뒤의 무례함, 그리고 무관심. 직접적인 차별 발언은 과거보다 줄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욱 교묘하게 일상에 스며든 작품 속 차별의 얼굴은 때때로 나의 얼굴과 닮아있었다. 다르고 낯설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상대를 알아보려 하지 않거나 곁을 내어주지 않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이런 관객의 경험은 2019년의 고지선과 닿아있다. 

 

‘완벽’은 고지선에게 붙은 수식어다. 그는 양수가 터진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 강한 프로다. 가부장적 삶에 순응하는 대신 엄마의 성을 선택하며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꾸리고, 실수의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해 대비할 줄도 안다. 스스로를 믿기에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완성해 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확하고 빠른 움직임과 확신에 찬 목소리에는 지선의 단단한 심지가 보인다. 그런 지선에게 발달 장애를 가진 지원은 그동안의 사고방식을 뿌리째 흔드는 존재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삶을 예측 불가한 존재와 마주하며 지선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꾸준한 설명에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답답함이, 오롯이 개인에게만 전가되는 책임이, 의지만으로는 높다란 사회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를 괴롭힌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지선이 제 안의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발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거 자신이 일하던 극장에서 마주한 자폐 아동 관객에 대한 고백이 대표적이다. 오케스트라 연주회 도중 소리 지른 관객과 보호자를 향해 던져진 비난의 언어와 시선. “사람들이 대놓고 레이저 쏘고 한숨 쉬고 난리가 났지. 어떻게 저런 애를 데리고 오냐? 민폐다.” 지선은 지난 말을 곱씹으며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무심함을 깨닫는다. 지선의 자기 혐오에는 상황과 입장에 따라 누구든 차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쓰디쓴 진실이 있다. 더불어 객석으로 쏟아지는 대사들이 지금의 관객을 향해서도 직접 질문한다. 과연 오늘의 극장은 모두에게 열려있는가.

 

 

대체로 불행은 부정과 분노, 협상과 우울을 거쳐 수용에 이른다. <섬:1933~2019>는 지선의 부정과 분노보다는 곁에 선 존재들을 통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은 지선 개인의 고군분투를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로 고쳐 말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과거의 인물들은 지선의 고단한 하루하루에 “다 잘될 거야”라고 노래한다. 응원을 등에 업은 지선이 여전히 막막한 사회로 걸어 나간다. 지원을 시설에 보내라는 가족의 무례함에 강하게 항의하고, 동료들과 함께 아이들의 학습권을 지키고, 지원의 5분 지하철 달리기로 새로운 가능성에도 손을 내밀어본다. <섬:1933~2019>는 지선을 통해 장애의 유무를 떠나 서로 다른 존재들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답은 명확하다.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차별의 경험과 문제를 인지하고 수정해 나갈 것.

 

<섬:1933~2019>는 초연 후 5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났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며 이어진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은 매번 공권력에 가로막히고, 서울퀴어문화축제도 새로운 장소를 찾아 헤맨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세상은 변한다. <섬:1933~2019>의 모티브가 되었던 발달장애인 특수학교는 무사히 개교했고, 미디어에서도 다양한 몸과 마음의 사람들을 보게 됐다. 장애인 배우들이 무대에 직접 서고, 공연의 접근성 제공 사항도 다양해졌다. <섬:1933~2019>도 여성과 장애인, 노인 혐오가 담긴 초연의 일부 대사를 삭제했다. 오늘날의 작품에는 젠더와 장애 유무, 나이와 지역 등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질 차례다. 고지선처럼 답을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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