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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캐치 미 이프 유 캔> 프랭크 시니어 [No.104]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2-05-29 4,859


 

우리, 프랭크는 괜찮소

 

사업에 실패한 후 아내와 아들도 곁을 떠나버린 이 남자를 섣불리 위로하려 하지 마시라. 안타까워하는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 지난 시간들을 후회하며 한숨짓는다면, 그건 프랭크 시니어가 아니다.


* 이 글은 프랭크 시니어를 연기한 배우 이정열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지고 혼자 남고선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술로 연명하고 있죠. 알고 지냈던 지인들에게 손을 벌려 보기도 했지만, 그다지 큰 성과는 없습디다. 동업자가 있었을 뿐, 친구가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동업자와는 비즈니스가 끝나면 관계도 끝이죠.

 

잘나가던 사업이 한순간에 망해버렸을 때 상실감이 크셨죠?
세금, 그거 무서운 겁니다. 허허. 어쨌든 뭐 스스로 제 무덤을 팠던 거죠. 하지만 사업이란 게,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도 하면 어떤가 싶었는데….


사업 수완이 좋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유복하진 못했던 터라 2차 대전에 참전했어요. 아, 다행스럽게 전쟁의 막바지에 입대해서 별 피해도 없었고 점령군으로서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재밌게 놀다온 셈이죠. 돌아와선 사업을 시작했는데, 전후 미국은 뭘 해도 잘될 때라 제 사업도 날로 거품이 커졌어요. 후에 제대로 한 방 먹고 일순간에 잃어버렸지만. 하지만, 저, 좀 저돌적인 면이 있어선지 사업할 땐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다가오는 파도에 몸을 직접 부딪고 싸웠습니다. 맨발로 싸웠죠. 그러니 사람들을 한번 쓱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 정보가 다 스캔될 정도로 선수가 됐죠. 하하. 저 사람이 뭘 원하고 내가 뭘 해주면 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달까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나시나봐요.
아, 좋았지요. 저도 청년일 때가 있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했는데 날로 번창하여, 집도 넓히고 인생의 달콤한 맛을 누릴 때가 있었단 말이오. 그땐 정말 뭐든지 하면 다 됐어요. 내가 챔피언 같았지. 젊고 예쁘고 사랑하는 아내가 옆에 있고, 프랭크는 건강하게 잘 크고.


그때 가장 소중했던 것은 뭔가요?
내 가족과 내 사업.


그런데 아들 프랭크가 집을 나가버려서, 걱정되지 않습니까?
그다지 큰 염려는 안 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은 내가 알거든요. 프랭크가 자랄수록 ‘이 놈은 정말 나하고 참 닮았구나’ 생각하곤 했어요. 내 사업 수완도 어깨 너머로 많이 배웠을 테고. 고생도 하고 있겠지만, 어디 가서 굶어죽진 않을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프랭크가 한번 찾아온 적이 있었죠? 파일럿이 됐다고 했죠?
파일럿, 그때도 설마 진짜라고는…. 프랭크가 갓 고등학생이 됐을 때 수표책을 준 적이 있어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사인하고 사라고. 그것이 제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곧 빚잔치하고 재산 모두 몰수당하기 전에, 미리 아들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수표책을 준 거죠. 그때 만약에 돈이 모자라면 다른 사람의 이름을 써도 된다고 했는데, 허, 그놈은 한발 더 앞서 나갔더라고요. 제가 볼 때 이 세상은 전쟁터예요. 그리고 저는 총 하나랑 총알 몇 개만 가지고 이 밀림에 뛰어들었죠. 겪어보니 밍숭맹숭하게 살다보면 다 넘어지고 쓰러지더라고요. 내 아들이 그렇게 되는 건 보기 싫었어요. 내가 사업을 일궈온 방식처럼, 허풍 치고 다른 사람 뒤통수 좀 치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터에서 싸워서 이기라고, 현실적인 무기를 안겨준 거죠.


그래도 아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범했던데요?
하, 어쨌든 사기도 기술이라면, 아들이 나보다 낫더군요. 난 고작해야 뉴욕의 작은 동네에서 큰소리 뻥뻥 치고 살았을 뿐인데, 이 녀석은 전 미국을 상대로 허풍을 치더라고요. 역시 넌 내 아들이구나. 뿌듯하기도 했어요. 허허.


프랭크가 아버지에게 돈을 내밀었는데 받지 않았던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미안해서?
자존심과 미안함도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겠지만, 그것보단 제게 마지막으로 남은 그 무언가를 지키고 싶었다고 해두죠. 프랭크를 만나러 나갈 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었어요. 그리고 최근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쇼와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는 있었지만, 그 녀석의 돈을 받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돈을 받게 되면, 그때부턴 우리의 위치가 바뀌는 거죠. 난 여전히 녀석의 ‘아버지’이고 싶거든요. 그 녀석에게 뭐든 가르쳐주고, 용돈도 주고 싶은 아버지. 아들에게 의지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난 아직도 프랭크 시니어야’ 이런 생각을 놓치는 순간, 제겐 서 있을 힘도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프랭크는 예전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하길 바랐어요. 외로워하는 아들을 위해 가정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별로 안 하신 것 같습니다.
이미 프랭크 엄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떠났소. 난 그녀의 성격과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내가 벌어온 돈으로 춤추고 테니스를 치면서,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프랑스 남부 여성이란 말이오. 그녀가 그런 삶을 찾아서 떠났는데, 아들을 위한다고 그녀를 찾아가 다시 어떻게, 그건 못할 일입니다. 프랭크도 다 컸고, 그의 인생이 있고 제 인생이 있는 거죠.


당신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후회, 그런 건 없어요. 남자의 한평생, 파란만장하지만 재밌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을 후회하는 순간, 모든 걸 다 놓게 될 것 같아요. 왕년의 나의 모습들을 후회하지 않는 것, 그게 제 마음이 마지막으로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있지요.


아들에 대해서도 그런가요? 그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나요?
그건 아닙니다. 프랭크가 이젠 정신을 차리고 다른 길로 가보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얼마 전 해너티 형사를 만났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에, 프랭크에게서 받은 편지를 넌지시 남겨두고 왔습니다. 거기엔 프랭크에 대한 정보가 있었고요. 형사님이 내 아들을 만나서 자수를 권유하든 다른 설득을 하든,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길을 찾게끔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해너티도 아마 제 뜻을 알아챘을 겁니다.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었나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요. 전 아버지로부터 그다지 큰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그런 사람일수록, 더 내 아들에겐 잘해주겠다고 마음먹곤 하죠. 허허.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4호 2012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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