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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정미소’, 윤석화 “공연장을 마지막으로 잘 보내주고 싶다” (제작발표회)

글 | 안시은 기자 2019-05-17 3,102
대학로에서 2002년부터 17년 간 한 자리를 지켜온 설치극장 정미소가 문을 닫는다. 폐관을 앞두고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폐관작으로 선보인다. '아듀! 정미소'를 기획하고 2020년 영국 공연 전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오픈 리허설 형태로 공연한 후 설치극장 정미소는 관객과 영원히 작별을 고한다. 

지난 16일 오후 설치극장 정미소에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사회는 극장 개관 초반 <19 그리고 80>으로 극장과 인연을 맺은 배우 이종혁이 맡았다. 




간담회 전 윤석화는 극 중 새롭게 삽입된 노래 ‘It was our time’을 혼신을 다해 불렀다. 노래가 고조되면서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한 표정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설치극장 정미소의 마지막
작품 제작발표회였지만 폐관을 앞둔 만큼 극장 폐관을 앞둔 심경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윤석화는 극장을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한 개인이 극장을 운영하면 어떻게 해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고 했다. 

“1년에 4개월 정도는 늘 이 무대에서 공연하며 발생한 수익으로 운영했지만 관리가 가능한 정도였다. 다른 일로 열심히 살면서 보완할 수 있는 적자였지만, 건물 자체가 매각되어야 하는 상황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든다”며 앞으론 배우로서 더 살고 싶다는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시골에 진짜 정미소를 다시 만들어서 그 곳에서 연극을 꿈꿀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희망했다. 

정미소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보람있었던 순간에 대한 질문에서 그랬다. 윤석화는 극장을 운영하면서 “아직 힘은 없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이 있는 젊은 후배들을 조금씩 후원했던 정미소 프로젝트”를 제일 보람있었던 일로 꼽았다. 

그는 특히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연출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연출을 참 예쁘게 하는 것 같아서 극장에 와서 공연하라고 했다. 런던에 초청을 받아서 왔는데 정말 잘했다. 젊은 친구들이 연극 정신을 지키고 잘해주는 것이 감사하고 뿌듯하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길이 되어준 뒤 다른 곳에서 결과가 나타날 때 해준 게 조금밖에 없는데도 괜히 제가 해준 것 같다. 그런 게 보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좋은 공연장은 좋은 작품이 올라가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저 극장은 항상 작품이 괜찮다”라고 하는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극장의 정체성이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폐관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
설치극장 정미소의 마지막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장식한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모노드라마로, 영국 대표 현대 극작가 아놀드 웨스커가 썼다.

국내에선 1992년 임영웅 연출가가 연출했고, 윤석화가 출연해 극단 산울림에서 세계 초연했다. 당시 뜨거운 인기에 10개월 간 공연을 이어갔고, 공연 직전까지 산소 호흡기를 달고 공연을 강행할 만큼 배우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김태훈 연출은 “초연을 임영웅 선생님께서 연출했기 때문에 부담도 됐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같이 하겠다고 했다”며 참여하게 된 배경을 말했다. “마흔 다섯 살 서툰 엄마가 딸이 어른이 되어가는 걸 느끼고 처음 편지를 쓰는 구성이다. 딸에게 자신의 인생을 얘기해주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치유되고 성장한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 작품은 당초 2013년 영국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공연을 위해 새롭게 다섯 곡을 추가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던 중 취소됐고, 7년 만인 2020년 런던에서 다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윤석화는 “자신은 조금 없지만 안 하면 후회될 것 같았다”고 영국 공연을 다시 추진하게된 배경에 대해 말했다. 그렇게 영국 공연을 준비하던 중 정미소를 폐관하게 되었고, 폐관작으로 택한 작품이 <딸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극장을 꾸리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아픈 일도, 힘든 일도 많았다. 막상 (폐관) 공연을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만 같고, 그런 마음을 누군가가 눈치채는 것도 싫어서 (아무 것도) 안 하려다가 하게 됐다. ”고 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했던 작품 중 가장 열광을 받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며, “영국 공연이 예정에 없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관객들에게 제가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이렇게 또 영국에서 공연도 하게 됐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가는 것이 아름다운 도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기로 한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공연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선보인다. 영국 공연을 위해 준비하던 버전이 영어였기 때문. 윤석화는 “아놀드 웨스커가 2012년에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노래도 당연히 영어로 되어 있는데 갑자기 한국말로 바꿔 부르기엔 무리가 많이 따른다. 극 흐름상 관객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시적인 가사를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노래 가사는 번역 대신 자막을 택했다.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하기 때문에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나머지 부분은 김태훈 연출이 잘해줄 거라 생각한다”고 연출에 대한 믿음도 보였다.

처음엔 관객 참여형 공연인 이머시브 형태를 떠올렸다고 했다. “이머시브 공연처럼 조금 더 완전히 오픈 리허설로 하려 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낯설 수 있다”는 이유로 오픈 리허설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윤석화는 지난 공연과의 차이에 대해 “아빠의 존재가 등장하고, 삶의 부피가 조금 더 두터워졌다. 삶의 일렁거림이 더 보여진다”는 점을 소개했다. 또 다른 점은 추가된 음악이다. 최재광 작곡가가 2013년에 새롭게 썼다. 그는 “2013년도 런던에서 공연할 예정이다가 취소돼서 마음이 아팠는데 다시 하게 돼서 기쁘다”고 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심도 깊은 작품은 작곡할 때 극 중 배역처럼 상상하고 느끼면서 곡을 쓴다고 했다. 

2016년 4월 파킨슨병으로 공연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놀드 웨스커는 생전에 최재광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작품이 망하더라도 노래는 히트하겠다”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고 윤석화는 전했다. 




2020년 영국 공연 
영국 공연은 웨스트엔드에서 잔뼈 굵은 프로듀서 리 맨지스가 맡는다. 윤석화는 “영국 내에서 대표 프로듀서 다섯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 중 한 명에 속하는 분”이라며 그와 <저니스 엔드>, 팀 브라이스의 <지상에서 영원으로>도 함께 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에게도, 아놀드 웨스커에게도, 리 맨지스에게도 한이 많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래선지 영국에서 반드시 공연하길 바랐다. 2013년 공연 취소 후에도 리 맨지스는 계속 작품을 하자고 제안했고, 지난 11월 윤석화도 동의해 다시 추진하게 되었다고 했다. 

영국 공연을 수락한 배경에는 최재광 작곡가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2013년 공연을 위해 새로운 곡을 썼지만 공연이 취소되면서 세상에 빛을 볼 기회도 잃었다. “웨스트엔드는 뮤지컬의 메카지 않나. 영국의 많은 프로듀서에게 우리나라의 훌륭한 작곡가를. (소개하고 싶었다.) 제가 갚을 길은 그것 뿐인 것 같다. 최재광 작곡가는 어떤 작품이든 항상 열심히 해준다”

영국 공연은 2020년 가을께 예정이다. 아놀드 웨스커 서거 5주기(2021년)에 특별 공연으로 선보일 수도 있어 공연 시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윤석화는 여러 소회를 밝히며 ‘페이드 아웃(점점 흐려지다)’이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했다. “많은 걸 내려놓아야 하는 나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페이드 아웃이라고 했다. 정미소가 매각으로 없어지게 돼서 한편으론 섭섭하면서도 감사하기도 하다. 마음이 약해서 스스로 잘 내려놓지 못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한때 정말 이걸 위해서 치열하게 일했었지. 그럼 이제 내려놓을 수 있는 거야’ 싶었다. 이제는 후배들의 좋은 배경이 되어 주고 싶다”고 폐관 이후 배우로서 바람을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했던 공연 중 가장 적은 회차인 12회를 공연한다. 엄청난 시험의 장이기도 하다. 공연을 이런 형식으로 인사드리는 건 새로운 시도인데, 런던 공연 전 관객들에게 겸손하게 인사드리면서도 이 공연장을 마지막으로 잘 보내는 게 뭘까. 이것만 생각했다.”

한편, 윤석화의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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