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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using on Music] 뮤지컬 넘버의 종류와 구실 [No.105]

글 |이나오 (뮤지컬 작곡가) 2012-07-03 8,670

뮤지컬 넘버와 일반 노래의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뮤지컬 작사가, 작곡가들은 드라마와 인물을 가사와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작가의 역할을 한다. 성공적인 뮤지컬 넘버는 인물에서 우러나오며, 극과 매끄럽게 통합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극 안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는 대다수의 뮤지컬 넘버들은 극과 분리하여 보기가 어렵다.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오클라호마!>(1943)는 통합된 극과 넘버의 확실한 본보기가 되어 북 뮤지컬의 출발을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그 이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콤비가 창출해낸 수많은 북 뮤지컬의 혁신은 오늘날까지 뮤지컬 창작의 뼈대와도 같은 지침서가 된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내용과 형식보다는 볼거리와 재미 위주로 집중된 보더빌 쇼와 레뷔 뮤지컬들이 대세를 이루며 제롬 컨, 어빙 벌린, 조지 거슈윈 등 스타 작곡가들의 활약이 부각되었다. 당시에는 극과 분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중에게 어필되었던 넘버들이 많았던 반면,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등장 이래 극과 음악 사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그 연결고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캐릭터 송이다.


좋은 드라마일수록 구체적이고 뚜렷한 캐릭터가 있듯이, 뮤지컬 넘버 또한 그러하다. 캐릭터 송이란 드라마 속의 인물을 음악과 가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노래이다. 그러므로 캐릭터 송의 가사는 인물에게 적합한 언어로 이루어져야 하며, 음악은 인물 내면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 뮤지컬의 일반적인 구조상 극 중 모든, 또는 대다수의 넘버가 캐릭터 송이 되므로, 캐릭터 송은 작품의 큰 그림을 제시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I Am/I Want 송(인물(들)의 정체성과 갈망을 노래하는 것), 리프라이즈(같은 노래가 되풀이되는 것), 언더스코어(대사와 함께 깔리는 음악), 세이그(전환) 등으로 구분된다. 그 외에 대본의 구조상 이야기가 고조되었을 때 한 템포 쉬어 가는 것을 돕는 코미디 송이나 참송(Charm Song)도 들 수 있다.

 

 

 

 

 

 

I AM/ I WANT 송
극 초반부의 넘버들은 대체적으로 인물이나 상황, 또는 극 안의 세계를 소개한다.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넘버는 극 중 여러 인물들이 그들의 세상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으로 작품 전체의 I AM 송이 된다. 일반적으로 오프닝은 여러 명이 함께 부르는 프로덕션 넘버로 관객의 흥미를 촉발시키기 위해 화려한 분위기로 막을 올린다. 예외도 있는데, 앞서 언급한 <오클라호마!>의 오프닝이 그 대표적인 예다. ‘Oh, What a Beautiful Mornin′’은 주인공 컬리의 부드러운 솔로 곡이다. 컬리의 말투와 그의 낙천적인 성향을 보여주며, 평화로운 초원의 이미지를 눈앞에 펼치듯 그려낸다. 오프닝 넘버이지만 한 인물의 성격과 배경을 나직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톰 존스와 하비 슈미트의 <판타스틱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Try to Remember’로 막을 여는데, 이 역시 부드러운 오프닝의 일례로 꼽힌다.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이 가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씁쓸한 웃음으로 노래한다. 낭만의 계절은 지나고 냉소주의만 남은 작품 속 시대적 배경을 그려낸 것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숲 속으로> 같은 경우, 컴퍼니 모두의 I AM/ WANT 송들이 각기 다른 음악 모티프나 공유되는 모티프 안에서 10분이 훌쩍 넘는 하나의 오프닝 넘버를 통해 소개된다. 수많은 인물들의 각기 다른 갈망을 ‘I Wish!’라는 하나의 공통된 언어로 통합시켜서,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모든 뮤지컬 넘버는 한 가지에 대해 집중되어야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되기 마련인데, 이 넘버는 작품의 복잡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의 서로 다른 욕망들을 바람(Wish)이라는 한 가지로 통일한 것이다. 효과적인 I AM/WANT 송을 구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바로 갈등이다. 사회적·상황적 갈등, 개인적 갈등, 내면적 갈등으로 나누어 볼 때, 내면적 갈등에서 우러나오는 넘버가 가장 구체적이며 관객의 감정이입을 주도한다. 인물의 꿈과 갈망, 또는 야심 등을 비추어주는 넘버이기 때문에, 대부분 표면적인 I AM/WANT 송이 그려진 후 (오프닝 넘버), 극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이상, 작품 속 거의 모든 넘버가 누군가의, 또는 무엇의 I AM/WANT 송으로 나타난다. 간단한 예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면, 인물들의 정체성을 알리는 I AM(WE ARE) 송인 오프닝 넘버, ‘Tradition’ 이후, 그들의 갈망을 노래하는 I WANT(WE WANT) 송인 ’Matchmaker, Matchmaker’가 이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 넘버인 주인공의 I WANT 송 ‘If I Were a Rich Man’에서는 그의 내면적 갈망을 보여주고, 2막 중반에는 주인공의 개인적 갈등과 갈망을 비춰주는 또 다른 I WANT 송 ‘Do You Love Me?’가 나온다.

 

 

 

리프라이즈, 언더스코어, 세이그
리프라이즈는 같은 넘버가 극의 다른 지점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말하는데, 대부분 변형된 형태나 다른 가사로 리프라이즈 된다. <숲 속으로>에서 두 왕자가 부르는 ‘Agony’(괴로움)를 1막에서는 신데렐라의 왕자는 신데렐라를, 라푼젤의 왕자는 라푼젤을 갈망하며 부르지만, 그들이 각자 꿈꾸던 상대를 아내로 맞은 후, 2막의 리프라이즈 넘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각기 다른 여성을 다시 갈망하는 노래가 된다. <판타스틱스> 같은 경우, 오프닝 넘버 ‘Try to Remember’가 2막 클로징 넘버로 리프라이즈 되면서 처음과 끝을 통합시키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온전한 노래의 형태로 리프라이즈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가사 없이 음악으로만 리프라이즈 되며 언더스코어의 형태로 음악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있다. 손드하임의 <컴퍼니> 오프닝 넘버인 ‘컴퍼니’의 음악 모티프는 작품 곳곳에 언더스코어로 리프라이즈 된다. 그를 에워싼 사람들이 주인공 바비 이름을 쫑알대듯 부르는 소리가 로버트(바비)를 현실 세계로 점점 몰아넣는다. 언더스코어는 장면 속 인물의 심리적 갈등을 극대화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작곡가는 장면과의 개연성을 고려해 작품 속 어떤 넘버의 음악 모티프를 선택할지, 또한 같은 모티프를 어떤 분위기로 연출할지 고민한다. 세이그 음악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는 뮤지컬의 특성상, 장면 사이의 이음새는 매우 중요하다. 관건은 이어지는 다음 장면과의 개연성과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데 있다. 노래의 끝을 확실히 알리며 넘버를 매듭짓는 음악적 도구를 ‘버튼’이라고 하는데, 작품 속 모든 넘버에 버튼이 있으면, 극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작곡가는 어떤 넘버에서 버튼을, 어떤 넘버에서 매듭 없이 이어 나가는 세이그를 사용할지 선택해야 한다.

 

 

 

코미디 송, 참송
극이 고조되면 전체적인 흐름상, 한 템포 쉬어가기 좋은 지점이 보인다. 이때 코미디 송이나 참송이 쓰여지는 것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예로 들어보면, 인물들의 I AM/WANT 송들이 제롬 로빈스의 안무와 함께 1막 내내 진행되다가, 두 조직 리더 둘의 죽음으로 1막 피날레가 장식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른 2막을 참송인 ‘I Feel Pretty’로 시작하며 긴장감을 잠시 완화시켜 준다. 바로 이어질 극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참송은 대부분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이 극 전개와는 무관한 가사를 낙천적인 분위기 속에 부르는 넘버를 의미한다. 하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예외로 작품의 여주인공인 마리아와 그의 주변 여인들이 함께 부른다. ’I Feel Pretty’ 이후 마리아는 바로 그의 오빠가 자신의 연인의 손에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드라마는 다시 한번 고조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작품의 코미디 송인 ‘Gee, Officer Krupke’이다. 코미디 송은 대체적으로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가사의 전달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앞서 들린 풍성한 음악과 대비되는 단조로운 화음과 멜로디로 진행된다.

 

 

 

뮤지컬 넘버의 종류는 이외에도 코멘터리 송, 플롯 송, 소스 송 (Source Song) 등이 있다. <컴퍼니>의 ‘The Little Things You Do Together’는 작품 속 특정한 이슈나 서브텍스트를 코멘트 하는 코멘터리 송으로, 아웅다웅하는 커플을 보며 제삼자가 관객에게 직접 결혼 생활을 풍자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플롯송의 예로는 <스위니 토드>의 2막 오프닝 넘버인 ‘God, That`s Good’은 플롯 송으로 이야기의 전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넘버이다. 그리고 <아가씨와 건달들>의 2막 오프닝 넘버인 ‘Take Back Your Mink’는 극 중 인물이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자각하는 소스 송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5호 2012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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