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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새로운 <엠. 버터플라이>를 마주하다…부새롬 연출가 인터뷰

글 |이솔희 사진 |연극열전 2024-04-22 1,895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1986년 중국 배우이자 스파이였던 여장 남자 ‘쉬 페이푸’(송 릴링)가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 브루시코’(르네 갈리마르)를 속이고 국가 기밀을 유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으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1988년 워싱턴에서 초연됐고, 1993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국내에서는 2012년 초연되어 2017년까지 총 네 차례 공연됐다.

 

7년 만에 돌아온 <엠. 버터플라이>는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된 개작 버전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서양과 동양,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 남성과 여성 등 기존 작품이 가지고 있던 이념 대립에 대한 메시지에 젠더∙섹슈얼리티의 영역까지 논의를 확장했다. 데이비드 헨리 황은 “그간 우리 사회는 젠더 유동성을 더 유연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실화에 대한 사실도 더욱 많이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을 토대로 더 섬세한, 성별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개작의 이유를 밝혔다. 새로운 시즌은 <보이지 않는 손> <마우스피스> <썬샤인의 전사들> 등의 작품을 선보인 부새롬 연출가가 이끈다. 그가 풀어내는 <엠. 버터플라이>는 어떤 모습일까.

 

이번 시즌 처음으로 <엠. 버터플라이>의 연출로 참여했어요. 처음 작품을 접하고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2017년 개작 버전의 대본을 받기 전, 이전 시즌의 대본을 먼저 읽었어요. 쓰인 지 오래된 작품이다 보니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이 많이 보여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잘 풀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그 후 개작 버전을 확인하니 다행히도 제가 걱정한 부분들이 많이 덜어졌더라고요. 원작 작가인 데이비드 헨리 황이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 깨달음이 대본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해요.  

 

2017년 브로드웨이 개작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점이 이번 시즌의 특징이에요. 이전 시즌과 비교했을 때 개작 버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송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전 버전에서 송은 자신이 계속해서 여자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버전에서는 ‘남자로 길러진 여자’라고 말해요. 여자로 태어났지만 아들을 원하는 아버지 때문에 남자로 길러졌다는 거죠. 그 지점에서 송의 ‘모호성’이 더 커졌다고 생각해요. 이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이 많이 사라졌고, 외도를 하는 르네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여자 르네’의 대사가 줄어들었어요. 한 마디로 이전 시즌이 오리엔탈리즘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연결해서 그 부분을 비판했다면, 이번 시즌에는 젠더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로 중심축이 옮겨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럼 연출가님의 손을 거치며 이번 시즌 공연에 변화가 생긴 부분도 있을까요?

재판대에 선 송이 르네와의 관계에 대해 파고드는 질문에 ‘제가 어떻게 섹스했는지가 중요하냐’고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 장면이 있어요. 개작 버전 대본에서는 두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가졌는지에 대해 송이 구체적으로 설명하더라고요. 대본을 보고 그 장면이 마음에 걸려서 제가 소소하게 각색을 했어요. 그 장면을 각색한 후, 개작 대본을 한 번 더 수정한 2018년 버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2018년 버전 대본에서도 제가 각색한 것처럼 구체적인 설명을 다 제외했더라고요.

 

 

<엠. 버터플라이>라는 작품을 풀어내는 데에 있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작품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르네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였어요.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환상을 고집할까. 자신도 송을 사랑하고, 송도 자신을 사랑하는데 왜 끝까지 자기 환상을 고집하는 걸까.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결국 이 작품의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내린 답은 무엇이었나요.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내린 결론인데,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환상에 집착하게 된 건 그의 내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현실과 내가 원하는 삶 사이의 간극이 큰 거죠. 쉽게 말해서 르네는 동양을 무시하고, 여성을 폄하하는 등 잘못된 시선이 일반적이었던 세계, ‘백인 남성’의 세계에 속하고 싶었던 인물인데, 현실에서는 그 세계에 완전히 동화되는 게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송이 르네의 내면을 파고들어서 그 환상을 채워준 거고요.

 

새로운 버전으로 공연되는 첫 시즌인 만큼 연출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듯한데요. 이번 시즌 연출 측면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되었나요.

저는 이전 시즌의 공연을 본 적 없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지난 시즌 공연 영상을 참고 자료로 제공받긴 했지만, 그걸 보면 내심 신경이 쓰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엠. 버터플라이> 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신작과 다를 바 없었어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마음으로, 배우들과 함께 천천히 만들어 나갔죠. 결국 <엠. 버터플라이>의 무대는 악몽의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르네가 매일 머릿속으로 연극을 만들어 낸다고 하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매일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계속 처음으로 돌아가고, 원치 않는 장면도 보게 되는, 악몽의 이미지가 많이 떠올랐어요.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데, 글자로만 이루어진 대본이 무대 위에서 온전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이 참 경이롭다고 생각해요. 보통 한 작품의 물꼬를 틀 때 어떻게 시작하는 편인가요?

작품마다 조금씩 달라요. 대본을 읽다가 어떤 장면의 연출이 딱 떠오르는 작품이 있고, 전반적인 흐름만 떠오르는 작품이 있죠. ‘무대는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음악은 이런 분위기면 좋겠다’ 원하는 바를 생각하게 되는 작품도 있고요. 사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명확해요. 대본을 반복해서 읽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해결해 나가고, 조금씩 방향성을 잡아가다가 배우, 창작진을 만나면서 점점 구체화돼요.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순백의 무대와 거대한 커튼이 시선을 끌더라고요. 시각적인 요소에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나요.

무대 디자이너님이 제안한 아이디어였어요. 흰 무대와 흰 커튼. 그런데 완전히 깨끗한 흰색이 아닌 어딘가 어둑한, 흐린 느낌이 있는 흰색이죠. 그게 선명하지 않고 무언가 숨겨 놓은 르네의 머릿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기억이 뿌연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렁이는 커튼도 그런 몽환적인 느낌에 한몫했죠.

 

특히 르네가 공연의 시작과 끝에 커튼을 여닫는 행위는 그가 시작한 이야기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마무리한다는 느낌을 주어서 인상적이더라고요. 이뿐만 아니라, 무대 곳곳에 설치된 거울도 눈에 띄었어요.

거울이라는 소품을 보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나 자신을 직시한다’는 의미잖아요. 그런데 사실 거울 속의 나는 실제의 나와는 반대의 모습이기도 하죠. 나를 직시하려고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건 절대 화해할 수 없는 나의 반대 모습이라는 것. 그게 이 작품의 결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새하얀 무대 위, 유일한 검은색 소품은 르네의 책상과 의자예요.

책상과 의자는 정확히 르네의 공간이에요. 감옥의 느낌을 주려고 어두운 컬러로 표현했어요. 르네가 속한 실제의 공간에서 환상 속의 이야기가 퍼져 나간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엠. 버터플라이>는 여러 시즌 공연되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지닌 작품이잖아요. 새로운 <엠. 버터플라이>로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겠죠?

물론이죠. 사실 어떤 작품이든 마찬가지예요. 이 작품으로 관객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달해야 할까, 어떤 표현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항상 고민해요. 제가 해석한 이 이야기가 부디 관객분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2018년 더뮤지컬과의 인터뷰에서 김은성 작가가 부새롬 연출가에 대해 “유연하면서도 꼼수를 부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작품을 잘 컨트롤하는 연출가”라고 설명했더라고요. 6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이 칭찬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사실 다른 연출가들과 작업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다른 연출가들은 어떤지, 그럼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어떤 특성을 지닌 연출가인지 잘 모르겠어요. (웃음) 다만 저는 작업 과정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여담이지만 <엠. 버터플라이> 연습 과정에서도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가 송 역의 배우들에게 ‘송을 연기할 때 여성을 흉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어요. 자신의 목소리로 송을 연기했으면 좋겠다고요. 그 후에 한 배우가 송이라는 인물이 지닌 ‘우아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이 참 좋았어요. ‘여자처럼’ 연기하지 말라는 말 자체가 불편한 표현인데, 서로 의견을 나누며 좋은 결과물을 찾아낸 거니까요. 배우들이 자신만의 정확한 생각을 가지고 인물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고요.

 

조금은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좋은 연출가’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공연을 보다 보면 문득 연출가의 연출은 배우의 연기, 작가의 텍스트에 가려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이 ‘이 공연 좋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파트의 의견을 잘 조율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연출가의 몫이에요. 무엇보다 작업자로서의 좋은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지휘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자세보다는 모두와 어우러지면서 중심을 잡는 자세가 중요하죠. 그래서 연습실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연습실 분위기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연습실에 오고 싶고, 연습실에서 웃고 장난치다 보면 저절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요. 그게 결국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고요. 저는 제 작품에 참여하는 모두가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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