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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②]<파과> 구원영, 삶의 기쁨과 슬픔

글 |이솔희 사진 |이민옥 2024-04-17 1,228

[한국 문학X뮤지컬]

 

독자들이 사랑하는 한국문학이 뮤지컬 무대 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됩니다. 문학성과 재미를 겸비한 뮤지컬의 세계에서 독자와 관객이 교감하며 한층 더 풍부해질 이야기. 채널예스와 더뮤지컬이 함께 들여다 보았습니다.


 

 

뮤지컬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그간 마주하지 못했던 여러 감정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구원영은 주인공 조각 역을 맡아 2020년 막을 내린 뮤지컬 <빅 피쉬> 이후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서고 있다. 조각을 만나 배우로서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다시금 만끽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번 촬영의 마지막 콘셉트는 거친 삶을 살아온 조각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밝은 햇살 아래서 진행했어요. 마지막 콘셉트를 촬영할 때, 환하게 웃다가 금세 눈물을 짓는 원영 씨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떤 감정이 담긴 눈물이었나요?

아직까지는 제가 온전히 조각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구원영으로서 조각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많나 봐요. 사실 제가 어떻게 40년간 킬러로 살면서, 평범한 삶과는 동떨어진 채 살아온 조각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조각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공연의 마지막 장면 이후,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되찾아 가던 그가 바닷가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 순간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인터뷰 시작 전, 요즘 들어 배우로서 한층 편해진 기분이 든다고 말했잖아요. <파과>를 만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배우가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어떤 캐릭터든 전부 뛰어나게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그 인물과 잘 맞아떨어져야 하죠. 그런데 저는 30대까지만 해도 ‘나는 뭐든 잘 해낼 거야!’라는 꿈에 빠져 있었어요. 40대가 되어서야 조금 현실적으로 변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니까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딱 그 생각을 하던 시기에 <파과>를 만났어요. 적당한 시기에, 나에게 잘 맞는 조각이라는 인물을 만난 건 제 인생에 몇 번 안 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약 4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거잖아요. 무대에 다시 서는 기분이 어떤가요.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엄마로서의 삶에 집중하다가 4년 만에 돌아온 건데, 무대 위에 있는 제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무대가 편해졌어요. 새삼스럽게, 무대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배우라는 직업이 나한테 참 잘 맞는구나 싶더라고요.

 

 

<파과>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이지나 연출님이 제안해 주셨어요. 연출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퍼석퍼석하고 건조한 분위기’가 조각과 잘 어울린다고요. (웃음) 제안을 받은 후 대본을 읽어봤는데, 저 스스로도 제가 조각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선 ‘건조한 분위기’를 포함해서 차분한 음성이나 생김새 같은 외적인 면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주인공이잖아요? (웃음) 역할의 크고 작음, 분량의 적고 많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주인공 역할을 맡는 게 재미있을 수밖에 없어요. 인물이 가진 드라마가 풍성하고, 감정의 굴곡이 담겨 있으니 그 인물을 표현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죠. 특히나 저는 평소에 주인공 역할을 자주 맡는 배우가 아니다 보니 이번 기회가 더욱 소중했고요.

 

심지어 그 역할이 ‘60대 여성 킬러’라니.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었겠어요. 20년 넘게 무대에 서고 있는 입장에서, 노년 여성이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는 점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있어요. 제가 20대 때는 여성 배우는 30대 중반만 돼도 활동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40대 중반인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저보다 더 멋지게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도 많죠. 여성 배우를 둘러싸고 있던 나이의 한계가 점차 흐려지는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해요.

 

조각이라는 인물을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 어떤 고민을 거쳤나요.

처음 대본과 소설을 읽었을 때 내가 상상한 조각의 모습을 무대에서 그대로 구현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킬러로서 살아온 40년 동안 조각이 어느 누구와 소통하며 살았을까요? 지나가는 사람과 눈도 안 마주쳤을 거예요. 주변 사람과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아서 말수도 적을 거고요. 그런데 뮤지컬은 장르 특성상 노래로, 대사로 인물을 표현해야 하잖아요. 내가 생각한 조각은 말도, 표현도 안 하는 사람인데,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표현해야 하니까 그런 점이 스스로 부대끼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생각을 바꾸면서 제 머릿속의 조각과 뮤지컬 속 조각 사이의 괴리가 줄어들었어요. 조각이 류의 죽음 이후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최소화한 채 살았기 때문에, 류가 죽은 그 시점에 삶의 시간이 멈춰 머릿속으로 끝없이 혼잣말만 하며 살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점이 크게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조각이라는 인물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동명 소설이 원작이잖아요. 소설에서 특히 참고한 부분이 있다면요.

처음부터 끝까지요. (웃음) 아무래도 뮤지컬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다 보니 감정을 세세하게 그려내기는 힘든데, 소설은 조각이 느끼는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보니 작품을 준비할 때 소설을 많이 참고했어요. 제가 소설에서 받아온 감정들을 공연 중에 잘 녹여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뮤지컬 <파과>만의 재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 인물을 지금 이 순간에, 내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죠. 소설 속 캐릭터가 살아있는 순간을 같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재미 아닐까요? 그 경험이 만족스러운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배우의 몫이고요. 소설 속 조각을 사랑한 분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조각을 보고 새로운 감동을 받아 가셨으면 좋겠어요.

 

<파과> 뿐만 아니라, 소설이 무대화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소설이 무대 위 이야기로 구현됐을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관객분들이 느끼는 것은 제각각 다를 테니 저는 배우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보자면, 인물에 대해 아는 게 많을수록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소설 속에는 캐릭터가 마주한 상황이나, 그때 그가 겪은 감정들이 세세하게 적혀있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도 캐릭터를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어요. 캐릭터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지고, 캐릭터로서 온전히 살아있을 수 있게 되죠. 물론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대본이지만, 소설은 대본을 한층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에요.

 

 

상실, 노화, 삶, 죽음 등 <파과>가 지닌 여러 키워드 중 가장 마음 깊이 다가오는 키워드가 있다면요.

생명. 조각은 죽음이 다가오고 삶이 끝나가는 걸 느낄 때가 되어서야 생명의 단맛을 깨닫게 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조각이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 예를 들어 주변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주고받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게 저에게는 크게 다가왔어요. 누군가와 따뜻하게 주고받는 눈인사 하나에 인생의 만족을 느끼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는 게 인간이니까요.

 

그럼 조각이 아닌 원영 씨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20대 때는 연기가 제 전부였어요. 30대가 들어서는 가족이 제 전부가 되었고요. 40대가 된 후에는 제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의 균형을 잘 잡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기도, 가족도 제게는 정말 소중한 것이니까요.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을 삶에 대해 늘 생각해요. 매 순간 사랑하고, 공경하며 살고 싶어요.

 

4년 만에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달릴 시간이죠. 이제 배우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나요?

갑자기 자랑이 하나 하고 싶은데(웃음) 배우는 정말 멋진 직업이에요. 좋은 배우가 되는 방법과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정확히 일치하거든요. 한 인물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감수성이 부드러워야 하는데, 타인을 미워하거나, 분노하면 감수성이 굳어져요.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해야 부드러워지죠. 좋은 배우를 향해 가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직업이에요. 앞으로도 좋은 배우,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노력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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