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서구 뮤지컬 무대디자이너 4인방 [No.106]

글 |조용신(뮤지컬 칼럼니스트) 2012-07-17 5,963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활동했고,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무대디자이너들을 만난다.
아름다운 음악과 감동적인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했던 네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 편집자

 

 

 

 

컨셉 뮤지컬의 비주얼 아이콘 보리스 아론슨 Boris Aronson (1900~1980)

 

 

 

보리스 아론슨은 러시아 키예프 태생의 유태인 랍비의 아들로 러시아 혁명 발발 후 고국을 떠나 독일, 프랑스, 러시아에서 무대디자이너로 일했고 미국으로 이민해 1932년부터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했다. 그의 브로드웨이 첫 작품이기도 한 <지붕 위의 바이올린>(1964)이 당시 제작자 해롤드 프린스와 첫 작업이었는데 그 후 해롤드 프린스는 연출가로서 <카바레>(1966)를 시작으로 그와는 단단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사실 뮤지컬 <카바레>의 원작 연극 <나는 카메라다(I Am a Camera)>(1951)의 세트와 조명을 디자인했던 사람이 바로 보리스 아론슨이었다. 프린스는 자신의 아버지뻘인 아론슨의 경험과 능력을 존경했고 스승 연출가 조지 아보트의 고전적인 연출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데 가장 적합한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1965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타간타 극단을 견학하고 의기투합해 <카바레>에서 카바레 댄스홀과 여관을 간단하게 넘나드는 단일 세트의 구성과 연출을 도출해냈다. 이는 타간타 극단의 <햄릿>에서 가벼운 섬유 재질로 만든 줄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세트를 이동하고 스크린과 조명의 변화만으로 원근감을 주고 문을 만들고 공간을 구분하는 기법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 후 해롤드 프린스와 스티븐 손드하임이 연 컨셉 뮤지컬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컴퍼니>, <폴리스>, <리틀 나잇 뮤직>, <태평양 서곡>의 무대를 맡았다. 특히 <컴퍼니>의 무대 디자인 컨셉은 도시 군중들의 이동 경로인 수평과 수직의 결합이다. 만났다가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름 모를 이들의 만남의 정점은 이 작품이 추구하는 시니컬한 주제인 ‘결혼 : 낯선 짝짓기’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노출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과 2층을 수직 이동하고 기본 철골 구조로 이뤄진 공간에 변화를 주기 위해 테이블, 의자, 벤치, 침대 등의 배열을 간단하게 바꿈으로써 침실, 부엌, 거실로 변한다. 그곳이 바로 ‘은밀한 메타포’로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큐비즘 작품으로서의 뉴욕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평생 토니상을 여덟 차례나 받으며 그 자체가 컨셉 뮤지컬 시대의 비주얼 선구자이자 미래지향적인 아이콘이 된다.

 

 

 

 

동화적인 스펙터클의 구현 유진 리 Eugene Lee (1939~)

보리스 아론슨이 프린스·손드하임과 일했던 1970년대에 그는 이미 칠순의 고령이었다. 그는 1976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호두까기 인형>을 끝으로 은퇴했다. 프린스·손드하임 콤비의 최고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니 토드>(1979)의 무대 디자인은 1973년 오페라 <캉디드>에서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던 유진 리에게 돌아갔다. 그의 무대는 그때까지의 브로드웨이 사상 가장 커다란 단일 무대를 보여주었다. 무대 자체가 황량한 골조를 그대로 드러내었고 흉물스럽기까지 한 네모난 건물이 가운데 놓여 있다. 이 회전무대에 의해 360도로 무대가 돌면서 한 장면도 암전 없이 오로지 단 한 번 1막이 끝날 때만 어두워질 뿐 쉴새 없이 이야기를 몰아간다. 빠른 장면의 전환을 위해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를 한순간도 멈추게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브레히트의 코러스의 역할처럼 하나의 커다란 상자 무대가 직접 회전하며 모든 이야기를 펼치고 그 단순한 전환 속에서도 박진감을 잃지 않게 한 이 무대는 무대 디자인의 전설이 되었다. <스위니 토드>는 1979년 토니상을 완전히 휩쓸며 화젯거리가 되었고 1989년부터는 뉴욕 시티 오페라단의 정기 상연작에 포함되었다.

 


유진 리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1939년에 태어났다. 그는 무대 디자인으로 명문 학교 세 군데(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카네기 멜론, 예일 드라마 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출신이기도 하며 토니상도 <캉디드>(1973), <스위니 토드>(1979), <위키드>(2003)로 세 번이나 받았다. 또한 1975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 쇼인 ‘Saturday Night Live’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그의 스타일은 스펙터클한 장치에서 배어 나오는 의외로 동화적이면서도 코믹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캉디드>에서는 풍자극이라는 원형을 표현하기 위해 의자와 테이블을 실제보다 더 크게 고안했다. 배우들이 평소 같으면 쉽게 다루었을 물건들을 그 크기로 인해 훨씬 다루기 어려운 모습을 염두에 두고 만듦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닥터 수스의 동화를 뮤지컬로 옮긴 <수시컬>(2000)의 세트는 카툰을 그대로 옮긴 디자인으로 마치 배우들이 만화책 안의 세상에 머물러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2003년 워싱턴 D.C에서 초연한 프린스·손드하임의 <바운스>에서는 무대 장치가 바닥에 내려올 때 매번 바닥에 부딪히며 비꺽대는 주인공들의 관계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전 세계의 젊은 관객들에게까지 알린 작품은 아마도 <위키드>일 것이다.


<위키드>의 무대 이미지를 압도하는 것은 원작 소설에도 나오는 드래곤의 시계(Clock of the Time Dragon)에서 힌트를 얻은 거대한 시계 부속품 이미지다. 이 작품이 ‘오즈의 마법사’의 전사(前史)라는 일종의 ‘시간 여행’이기에 시계는 무대에서 단순히 시간을 나타내는 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에 일어날 사건과 상황들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은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글린다가 타는 버블 머신 역시 시계추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는 자연의 컬러인 녹색 엘파바와 대비되는 기계 문명을  보여준다. 그가 평생 추구해 온 미국인의 피에 흐르는 풍자 정서와 가족 친화적이면서도 기능에 충실한 동화적 스펙터클 디자인은 <위키드>에 집대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통에 기반한 장중한 화려함 존 내피어 John Napier (1944~)

보리스 아론슨이 ‘해롤드 프린스의 디자이너’였다면 런던 출신 존 내피어는 ‘캐머런 매킨토시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매킨토시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제안한 T.S. 엘리엇의 시를 기초로 한 뮤지컬 <캣츠>를 제작할 당시인 1980년대 초반, 드라마보다는 레뷔에 가까운 전통적인 엑스트라버겐자 형식을 가장 잘 표현할 것이라고 믿었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SC) 예술감독 트레버 넌을 연출가로, 존 내피어를 무대디자이너로 끌어들였다. 당시 존 내피어는 RSC 디자이너 중의 한 명이었고 이미 대서양을 오가며 주로 연극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서른 살의 나이에 맡은 브로드웨이 연극 <에쿠우스>(1974)는 피터 쉐퍼 연출로 RSC가 추구하는 장중함이 배가되어 선이 굵고 세련된 무대를 실현해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예술적인 성취를 이루는 우수한 비영리 극단에서 다져진 실험적이면서도 상상력이 가득한 시도를 통해 역사의 무게감에 짓눌린 영국 전통극에서 젊은이들도 눈길을 돌릴 수 있도록 첨단 기술을 동원한 화려한 장치를 등장시키곤 했다. 따라서 RSC 연출가 트레버 넌과 함께 상업 프로덕션에 참여해 만든 <캣츠>는 그의 상상력에 자본까지 더해져 당시 커리어의 집약체였다.

 


무대와 의상이 일치된 컨셉과 의인화된 고양이들의 집단 군무를 통해 극 전반에는 환상성이 흘렀고 하늘로 비상하는 타이어는 간결한 하이테크 기술 효과를 뿜어내며 오늘날 <캣츠>를 명작의 반열에 올리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고양이가 아니라 기차 역으로 의인화된 배우들이 두 개의 트랙으로 무대에서 상층 객석에 이르기까지 전체 극장 하우스를 일주하며 롤러스케이트 경주를 벌이면서 작지만 무대와 객석의 아슬아슬한 호흡을 느끼게 해준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1983)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실시간 경주를 중계하는 모니터까지 설치해 배우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객석에 전달하는 영상 시대의 기법을 가족 뮤지컬에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어 다시 한번 캐머런 매킨토시와 트레버 넌과 만나 <레 미제라블>(1985)의 무대를 맡게 되는데 방대한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를 압축하는 서사 기법을 표현하기 위해 회전무대를 도입했고 특히 두 부분으로 쪼개져있다가 합체되었을 때 거대한 혁명군의 바리케이드가 되는 2막의 거대한 세트는 <레 미제라블>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또 다른 전쟁을 다룬 <미스 사이공>에서 그의 무대는 빠른 전환과 전장의 리얼리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무대 위에는 현대 전쟁의 다양한 이미지들인 나이트클럽,  여주인공 킴의 초라한 집, 베트콩 시위대의 행렬, 엔지니어의 환상의 공간이 다양하게 등장하는가 하면 사이공 함락 장면에서 정교하게 제작된 실물 크기의 헬리콥터는 관객들로 하여금 뮤지컬 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비극적 스펙터클’의 진수를 맛보게 했다. 또한 그의 정교함과 화려함이 결합된 무대 디자인의 극치는 <선셋 블러버드>에 잘 나타났다. LA 고급 대저택의 2층 응접실을 무대에 옮긴 것 같은 무대는 리얼한 데코레이션으로 무장했지만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는 반투명 막 뒤에서 마치 흑백영화 같은 단순하면서도, 영상을 적극 활용한 진보적인 방식을 취했다.


그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디자이너로 꼽히고 있으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디자이너의 로망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는 1980~1990년대 영국 뮤지컬의 부흥기에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로서 무임승차한 것이 아니라 당당히 그 흐름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토니상에서 받은 다섯 개의 트로피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강렬한 색채와 깜짝쇼의 귀재 밥 크로울리 Bob Crowley (1955~)

 

 

 

브로드웨이 베테랑 무대디자이너들의 실제 세트를 우리나라에서 직접 보기란 쉽지 않다. 최근의 라이선스 공연들은 대부분 로컬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디자인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05년에 초연된 <아이다>는 무대 디자인만으로 우리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아이다>의 무대 디자인은 의상 디자인을 겸하는 ‘토니상 단골 후보’이자 이 작품을 포함해 토니상을 다섯 번이나 받은 아일랜드 출신의 밥 크로울리의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무대 위에 고대 나일강 유역 이집트의 실루엣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현대 패션의 길목에 서 있는 무대라는 가상 공간에 존재하는 특별한 이집트를 창조해냈다. 디즈니가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과 같은 우화적인 분위기보다는 선과 면이 강조되며 강렬하고 모던한 색채가 어우러진 현대적인 디자인에서 관객들은 쉽게 눈을 뗄 수 없다. <아이다>의 디자인 속에는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아시아, 인도의 혼합된 영향도 내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조리개 형태로 장면을 열고 닫으며 극 중 처음과 끝을 상징하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집트관의 느낌처럼 ‘현대인의 관점에서 진열해 놓은 역사와 전설’의 주관적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밥 크로울리의 현대와 과거를 잇는 방식은 박물관에 비치는 하얀빛, 붉게 이글거리는 고대 아프리카의 태양과 누비아의 대지, 푸른 물결이 평온하게 넘실거리는 나일강과 그 위에 비치는 야자수의 실루엣, 화려한 암네리스의 방과 거대한 목욕탕이 매 장면마다 총천연색의 모습으로 다가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고대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이끌어준다.


<아이다>를 시작으로 그는 디즈니에서 가장 선호하는 무대디자이너가 되었다. <메리 포핀스>, <타잔>, <인어공주> 모두 그의 작품이며, 매 작품마다 주특기인 장면 전환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깜짝쇼의 요소를 담고 있다. <메리 포핀스>에서는 주연 배우가 프로시니엄 아치를 360도로 돌며 벌이는 탭댄스를 위해 특수한 와이어링을 설치했으며 <타잔>에서도 배우를 와이어에 매단 채 무대와 3층 객석 사이의 먼 거리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연출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에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러브 네버 다이즈>도 맡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밥 크로울리가 화려함을 추구했던 젊은 시절에 비해 원숙미를 바탕으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올해 토니상을 거머쥔 <원스>도 그의 작품이다.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과 메시지가 배어 나오는 그의 차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6호 2012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