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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using on Music] 배고픈 작곡가들- 낭만인가 현실인가 [No.106]

글 |이나오 (뮤지컬 작곡가) 2012-08-02 4,163

배고픈 작곡가들 - 낭만인가 현실인가?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가져다 한 모금.
아뿔사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아~

 

 

 

2008년 발매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가사 일부분이다. 문화 대통령 서태지 이후 ‘홍대의 서태지’, ‘장교주’, ‘인디 대통령’ 등 다양한 수식어가 그의 이름을 도배할 정도로 장안이 떠들썩했다. 그의 노래가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 하지만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장기하에게 오지 않았다. 당당히 주류 시장의 아이돌들과 앨범 판매량에서 맞대응할 정도로 그는 ‘떴기’ 때문. 사실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충족을 모두 외면하고 오로지 보헤미안 정신을 쫓다가는 장교주의 말대로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현실을 맛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술은 개인의 능력만큼 성공하고 실패한다’라는 일반적 인식 탓에 개인이 일인 창업을 주도하여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르주아 계층의 물질적 자유와 보헤미안 계층의 문화적 자유를 적절히 조합시킨 ‘보보스(Bobos)’ 계층의 등장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나 싶다.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물질적인 억압에서 자유로워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No day but today’를 실천하기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지독하리만큼 길어진 탓도 있을까? 100년 동안 예술혼을 펼치려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건강해야 하고, 몸이 든든하려면 쩐이 든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현실과 이상의 폭을 조절해 나가야 하니 말이다.

 

 

 

 

 

보헤미안의 삶을 살아라!
어느 날 저녁, 맨해튼 알파벳 시티에 있는 라이프 카페(Life Cafe)로 범상치 않은 무리가 들어선다. 그들은 차세대 영화감독, MIT 퇴학생, 행위 예술가, 그리고 그녀의 여자 친구, 트랜스베스타이트(복장도착자)이자 거리의 드럼 연주자, SM(사도마조히즘) 댄서, 작곡가… 음식점 주인은 혀를 내두른다. ‘제발 부탁이니 오늘은 그냥 가줘’ 주인은 돈주머니가 꽤나 두둑해 보이는 어느 손님의 눈치를 살피며 복화술을 펼쳐댄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은 ‘보헤미안의 삶(La Vie Boheme)’을 외치며 술잔을 든다.

 

 

영감의 나날들을 위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표현하고 소통하는,
일상을 거스르며 미쳐보는 삶을 위하여…!

 


이것은 뮤지컬 <렌트>의 한 장면이다. ‘보헤미안의 삶’이란 말에서 풍기는 낭만주의적 성향은 사실 오늘날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다. ‘일상의 굴레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를 부르짖으며, 사회에서 금기된 모든 것들을 찬양하자!’라는 그들의 유쾌한 구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달리는 예술인들에게 어찌 보면 잔인한 이데올로기일지도.


한 가난한 작곡가가 아침을 맞이하며 불현듯 오늘이 월세를 내는 날임을 깨닫는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아노 앞에 앉아 악상이 떠오르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 모습은 뮤지컬 <렌트>,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 또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원작인  『La Vie de Boheme』(1851, Henry Murger)의 한 장면이다. 1840년대의 파리의 보헤미안들은 물질적 풍요를 중시하는 부르주아 사회를 멸시하며 소유욕을 비난하고, 집 대신 카페나 거리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상을 떠올리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고정관념과 법으로부터 탈선하는 삶을 자초했던 그들은 오로지 정신적 풍요만을 고집했다. ‘No day but today’라는 <렌트>의 가사가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렌트>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
그로부터 150년쯤 후, 뉴욕의 소호에 있는 어느 로프트. 한 가난한 작곡가가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주중에는 창작을, 주말에는 웨이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러 룸메이트들과 두 마리 고양이들과의 동거 생활을 한다. 10년 후 그는 일하던 식당에서 마지막 주문을 받으며 미소를 띄운다. 가난한 작곡가의 삶에서 드디어 해방이 된 터.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이 공연되기 전날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바로 <렌트>의 창작자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남들처럼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을 해서 안정된 삶을 꾸리지 않은 것에 대한 일말의 후회도 하지 않던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꿈을 좇는 여러 예술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보헤미아는 죽었어.” <렌트>의 베니가 말한다.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순진한 발상으로 꿈 타령만 하고 있는 이들을 철부지라 여긴 것.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그 철부지들은 요즘도 즐비하다. 뉴욕 NYU 대학원의 과정을 마치고, 어마어마한 학비 대출금을 갚느라, 매달 월세를 내느라, 안 보면 죽을 것 같은 공연들을 보느라 투잡, 쓰리잡을 서슴지 않는 수많은 작가, 작곡가들이 오늘도 뉴욕 어디에선가 브런치 주문을 받고, 극장 매표소에서 표를 나눠주며, 매일 구인 광고를 뒤적이고 있다. 또한 ‘88만 원 세대’의 요즘 한국에도 비정규 청소년 노동자 세대와 더불어 사회의 불충분한 지원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홍대의 인디 뮤지션들, 대학로의 연극인들, 그리고 각자의 골방에서 무언가를 끄적대고 있을 작가, 작곡가들이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배고프게, 늘 무모하게…’ 얼마 전 작고한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바로 창의성은 육체적, 물질적인 배고픔이 아닌, 정신적인 배고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런 갈망을 안은 채, 남들이 규정한 현실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믿고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유기적 사고방식을 잃지 않으며 철부지 인생을 고집하되, 자기 관리와 절제가 철저하여, 이러한 자유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긴 장기전을 펼칠 수 있는 예술인들이 증가할수록 아마도 문화적 콘텐츠 역시 한층 더 풍요로운 놀이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집단의 호칭이 보보스족이든 뭐든지 간에 이처럼 건강한 창의력이 넘쳐나는 울타리를 꿈꿔 본다.

 

 

 

배고픈 식구, 창작자 집단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티븐 손드하임은 업계의 공동체에서 느끼는 가족애에 힘입어 창작 생활을 지속해 왔다고 말한 바 있다. 조나단 라슨 역시 정신적 풍요를 함께 지향했던 측근들과 식구를 이루며 고독한 창작 생활을 낙천적으로 지탱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여러 극단 식구들도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비영리 형태의 창작물을 끊임없이 배출해 내고 있고, 홍대의 여러 인디밴드들도 서로를 의지하며 돈이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공연 자체를 위해 신나게 연주하고 있다. 또한 여러 창작자들 역시 창작 지원을 공급하는 몇 공모전들을 전전하며 자신들의 대본 속 인물들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누구나 발 디딜 곳은 필요한 것. 여러 예술인들의 배경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된 목표 의식이 소통된다면 함께 갈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을까. 글을 마무리하며 <렌트>의 마크가 노래하는 가사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한번쯤 그들이 아닌 우리가 되어, (…)
벽을 허물자, 우리 모두.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닌 창조이니
Viva La Vie Boheme!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6호 2012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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