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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한국 뮤지컬 마니아 2 [No.107]

글 |김영주 2012-08-14 4,603

공연이 끝난 후 뮤지컬로 할 수 있는 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 평범한 관객이라면 가슴이 촉촉해지면서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으로 지나갔을 장면의 숨은 의미를 파고들어 해석을 하고 그에 대한 찬반 의견으로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을 보통 마니아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작품을 분석하고 감상을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면서 즐기는 팬들이 늘고 있다.

 

 

 

 

 

 

    유혜상          

 

 

 

늘어나는 2차 창작                                          

독자적인 창작물인 뮤지컬 작품을 보고 나서 그에 대한 감상으로 자기 나름의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경우에 이를 가리켜 2차 창작이라고 한다. 팬아트를 그리거나 팬픽을 쓰고, 직접 디자인한 관련 물품을 제작하면서 작품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연 제작사들도 생기고 있다.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 충성도 있는 관객들이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EMK는 뮤지컬 제작사로서는 최초로 팬아트 공모전을 열었다. 이전에도 뮤지컬 해븐처럼 작품 홍보 목적의 웹진에 팬이 그린 작품을 싣는 경우는 있었지만, 팬아트 그 자체를 주제로 한 행사를 대규모로 연 것은 EMK가 최초이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작품의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팬아트에 대해 제작사들은 대부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의 2차 창작이 활발할까. 물론 보편적으로 인기있는 뮤지컬에 관한 팬아트가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스토리나 이미지가 빈 틈 없이 꽉 짜여 있는 대형 뮤지컬보다는 관객들이 상상할 여지가 있는 작품들이 조금 더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비유하자면 <위키드>보다는 <쓰릴 미>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모비딕>처럼 마니아들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은 규모의 작품에 대한 팬아트가 더 활발한 편이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팬아트 스타일은 인체를 2등신이나 3등신으로 표현하면서 사랑스러움을 강조하는 SD(Super Deformation) 캐릭터이다. 상대적으로 특징을 살리기가 쉽고 작업 시간이 짧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기 때문에 리뷰를 대신하는 카툰부터 캐릭터 일러스트, 물품 디자인에까지 폭넓게 쓰인다.


물론 2차 창작 활동이 뮤지컬 팬덤만의 독자적인 문화는 아니다. 드라마, 영화, 스포츠, 아이돌 스타 등 팬덤이 있는 곳이라면 팬아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2차 창작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8년 개봉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드롬이었다. 이 영화에 매료된 팬들이 만든 패러디 영상을 비롯한 2차 창작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자신의 팬아트나 팬픽을 책으로 엮은 팬들이 모여서 진행한 독자적인 판매 행사도 성황리에 마쳤다. 작품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차용하지만 이런 행사의 경우 저작권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묵인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특이한 예로는 드라마 <추노>의 경우가 있는데, 프로 작가들이 참여하여 본 드라마의 외전 격인 이야기들을 그린 2차 창작 앤솔로지 북 『낙인」이 KBS의 감수를 받아서 발간된 사례가 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를 만화로 공식 발간한 경우 작품의 스토리를 충실하게 옮기지만, 『낙인』은 원작 드라마의 뒷이야기, 캐릭터와 인물관계를 재해석하여 여성적인 감성에 어필하는 단편 만화로 엮었다.


뮤지컬 팬덤 내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처럼 독자적인 판매 행사가 열릴 정도로 활성화되거나 <추노>처럼 제작사가 직접 감수를 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주는 2차 창작물이 나온 적은 없다. 일단 시장 규모와 대중성에 절대적으로 차이가 나기가 때문이다. 하지만 마니아들의 열정과 충성도가 어떤 장르에도 뒤지지 않는 만큼 뮤지컬계의 2차 창작 활동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최은선       

 

 


뮤지컬 해븐의 서포터로 활동하면서 웹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보민 씨는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팬아터 중 한 명이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보고 나서 그 아름다운 느낌을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밤늦도록 그림을 그려서 트위터에 올렸는데 그 그림을 계기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후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풍월주>의 공식 트위터 계정이 생겼을 때 기본 배경인 것이 아쉬워서 이미지를 하나 만들어드렸는데, 공식 이미지가 생기기 전까지 그 그림이 쓰여서 기뻤다. <투란도트>의 칼리프를 그려서 이건명 배우에게 선물했는데 초연 공연 기간은 물론이고 1년 후의 재공연 때도 트위터의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하셔서 무척 반갑고 감사했다.” 팬아트는 원작에 대한 다른 팬들의 감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심플하게 표현되는 것이 좋고, 상업적으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저 관객의 한 사람이지만 팬아트를 통해 작은 부분이라도 작품에 참여했다는 기분이 들 때, 그리고 작품을 사랑하는 다른 팬들이 팬아트를 보면서 기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강물결 씨는 뮤지컬 <서편제>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소형 피규어를 전 출연진 버전으로 제작하는 데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원래 공연 전에 만들어서 공연 첫날 배우들께 전해드리려고 했는데 <서편제> 측에서 앙코르 공연의 의상 사진을 일찍 공개하지 않아서 프리뷰 공연 커튼콜 때 찍은 배우들의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사진으로 확인을 해가면서 만들었다. 원래는 두 개씩 제작해서 하나는 개인 소장을 하려고 했지만 만들다보니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다. 트위터를 하는 배우들은 멘션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어지간한 정성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고 돈을 받고 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가능했고, 배우들에게도 잊지 못할 좋은 선물이 되었다.


또 다른 팬아터 김소라 씨의 경우 “처음에는 장문의 리뷰를 쓰는 것이 힘들어서 ‘보았던 공연을 짤막하게나마 한 컷 리뷰로 그려 기억에 남겨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직업이 그림과 관련된 일이라 글보다는 가볍게 그리는 만화로 감상을 표현하는 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배우 팬클럽의 물품용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공연장에서 만나는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물품을 자체 제작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분야다보니 일로 그리는 그림보다 훨씬 재밌다” 고 말했다.


팬아트 활동을 하는 마니아들 중에는 김소라 씨처럼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도 있고, 취미를 살린 순수 아마추어도 있다. 하지만 관련 분야의 프로페셔널이어도 팬아트를 이용해서 수익을 얻을 수는 없다. 일단 작품과 배우에 대한 애정으로 하는 일이라고 해도 저작권 개념과 충돌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팬들 스스로가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편이다.

 

 

 

 

 

김보민           

 

 

 

팬아트의 즐거움                                                  

저작권 문제를 주의해야 하는 것은 온라인상에서 공유하는 이미지 작업보다는 물품 제작의 경우이다. 상업적인 뮤지컬 작품의 경우 제작사에서 수익을 목적으로 상품화한 머천다이즈가 있기 마련인데 팬들이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별도의 상품이 생긴다는 자체가 달갑지 않을 수 있고, 라이선스 작품의 경우에는 저작권 개념이 더욱 까다롭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물품을 제작하는 것은 원래 개인 소장용이나 선물용, 주위의 소수 몇몇이 공유하기 위한 DIY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좋아하는 작품을 소재로 꾸준히 물품을 만들어온 이민정 씨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지금까지 텀블러, 머그컵, 캘린더 등을 만들어왔지만 워낙 소량으로 제작해서 현재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제품은 없고 최근 <모차르트 오페라 락>으로 만든 수첩과 전자파 차단 스티커만 남아있다.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작업한 후에 소량 제작을 해주는 곳에 넘긴다. 전자파 차단 스티커의 경우에는 옵션이 다양해서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정을 하다가 시간에 쫓겨서 제작 업체가 있는 방산시장까지 뛰어가서 받아 왔다. 소량 제작이다 보니 설명서도 직접 만들어 페덱스에서 인쇄를 했고, 전자파 차단 스티커에 다이소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서 완성했다.”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는 데 능숙한 인구가 많고, 큰 부담 없이 소량 제작이 가능한 업체가 있는 한국의 특성이 팬들의 적극적인 마인드와 만나서 국내 뮤지컬 팬덤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 것이다.

 

 

 

 

 

 

 

팬 공구와 MD의 경계                                          

최근에는 물품 제작이 소규모 자급자족형에서 100명 이상의 단위로 넘어가는 공구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저작권 개념의 도입을 놓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김꽁치라는 닉네임으로 스포츠 카툰을 연재하고 있는 뮤지컬 마니아는 꾸준히 팬아트를 그려왔던 <모비딕>이 종연한 후 이 작품을 기념할 수 있는 MD가 없으니 자체적으로 제작을 해보자는 취지로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통해 파우치와 스티커 공구를 홍보했다. 마니아 관객이 많은 작품이고 인기 있는 팬아트라 순식간에 신청 수량이 300개를 넘겼다. 그런데 <모비딕>의 경우 공연장에서 팬이 작품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제작한 시계를 판매하면서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으로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명백하게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는 머천다이즈와 자체 제작 물품 공구를 구분하는 기준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고, 결국 <모비딕>측에서 팬아트 물품에 대해 로열티를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7월 말에 다시 신청을 받아서 공구를 할 생각이다. 규모가 너무 커져서 부담스러웠던 면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블로그에서만 진행을 하려 한다. 이런 공구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도 이익을 남기는 게 아니다. 가격은 신청자 수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파우치는 5천 원 안쪽, 스티커는 8백 원 정도가 될 것 같다.” 극장에서 자신이 그린 <모비딕>의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사용하는 팬들을 볼 때 가장 기쁘다는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취미로 그림을 그렸지만 전공자는 아니었다. 뮤지컬 팬아트를 시작하면서 관련된 직업까지 갖게 된 특이한 경우다.


대형 자본 없이 꾸려진 <모비딕>의 제작사가 팬아트, 팬 제작 물품을 저작권 문제와 별개로 정리한 상황이지만 주류 제작사의 경우는 어떨까. CJ E&M의 민지혜 홍보 팀장은 <풍월주> 때 처음으로 관련된 문의를 받았다. “팬들이 기념으로 가지려는 목적이고 제작비만 모아서 진행을 할 거다, 해도 되냐는 문의였는데 사실 명확한 가이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 팬들이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상업성 없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을 막기는 어렵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였다. 배우들에게 제공할 증정용과 자료 보관용으로 필요한 수량을 몇 개 받는 정도로 정리가 됐다. 작품의 로고를 사용하거나 상업성이 있다면 곤란했을 거다. 사실 2차 창작물과 관련한 저작권 문제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정리된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이분들이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물품을 만들려는 행위를 순수하게 보았고, 전화상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그분들의 마음을 믿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만약 팬클럽이라고 해도 돈벌이 수단으로 이런 일이 진행된다면 제작사 입장에서도 묵인하기 곤란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현재 뮤지컬 팬아트와 관련 물품은 작품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는 명분으로 엄격한 카피라이트의 룰 밖에서 카피레프트의 틈새 공간을 확보했다. 이 작은 자유가 오래 유지되고 그 결과물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들 스스로 순수한 애정으로 하는 일의 기쁨과 가치를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7호 2012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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