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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S] 매력적인 콘텐츠의 보고, 프랑스 궁중사 [No.127]

글 |송준호 2014-05-09 4,968
루이 14세의 일대기를 다룬 <태양왕>이 국내에 입성하면서
관객들은 또 한번 프랑스 역사와 만나게 됐다.
지난해 <두 도시 이야기>, <스칼렛 핌퍼넬>, <몬테크리스토>,
<레 미제라블>이 18~19세기의 프랑스 민중사를 망라했다면,
올해는 <삼총사>와 <태양왕>, <마리 앙투아네트> 등에서
16~18세기의 프랑스 궁중사가 차례로 다루어진다.
종교와 사랑, 예술 등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사건들이 많은 시기였던 근세 프랑스 역사를 거슬러가 본다.



16세기 프랑스를 주무른 악녀



다양한 창작물에서 루이 14세(1638~1715)의 상징적인 모습은 막강한 권력자보다 ‘춤추는 왕’이다. 루이 14세는 열다섯 살이 되는 해에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라는 작품에서 태양신으로 등장하면서 ‘태양왕’의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제군주의 치세에서 권력의 정점인 왕이 이처럼 춤을 즐겨 추었다는 사실에서 당시 발레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궁정발레를 후원하는 세력이 권력층이었던 만큼 정치와 예술은 밀접했다. 그런데 예술의 정치적 활용이 루이 14세 시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정치는 그의 증조부뻘인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1519~1589)의 유용한 무기였다. 피렌체의 명문인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프랑스 왕실로 출가하면서 혼수로 이탈리아의 발레와 요리, 패션, 예법 등을 가져갔다. 그가 궁중에서 선보인 역사상 최초의 발레극 <왕비의 희극 발레>는 전쟁과 내전에 시달리는 프랑스가 여전히 부유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쇼였다.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를 가리키는 ‘피투성이 검은 왕비’라는 표현은 정치적 혼란기에서 보인 행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제4회 DIMF 개막작으로 소개됐던 멕시코 뮤지컬 <앙주(Anjou)>는 바로 카트린 드 메디치의 그런 악녀 이미지를 활용해 풀어낸 작품이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둘째 아들 카를로스(훗날의 샤를 9세)에게 독약을 먹이고, 셋째 아들 엔리케(훗날의 앙리 3세)를 옹립하려 한다.
카트린의 악녀 이미지의 정점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1572)’의 배후라는 데 있다. 1517년 종교 개혁에서 촉발된 신·구교 간의 갈등으로 프랑스에서는 종교 전쟁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칼뱅 사상이 프랑스에 전파된 이후 프로테스탄트 운동은 부유한 시민 계층과 부농들 사이에서 확산됐고 귀족 계층에서도 세력을 얻었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인 위그노(Huguenot)들은 종교적 자유와 가톨릭 신자들에 상응하는 권리를 주장했다. 이때 문제의 참혹한 사건이 일어난다. 아들인 샤를 9세(1560~1574)의 재위 중 카트린 대비는 신·구교 간의 평화적인 공존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구교도인 딸 마그리트(마고)와 신교도인 나바르의 앙리(훗날의 앙리 4세)를 정략 결혼시킨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비극을 위한 계략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을 계기로 파리에 모인 위그노들이 구교도 무리에 의해 대량 살상된 것이다. 이때 하룻밤 사이에 약 3000명의 신교도가 죽었다. 이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영화 <여왕 마고>다. 평화는 다시 깨졌고 이후 8년에 걸쳐 신·구교 간의 종교 전쟁이 재개됐다. 이 와중에 왕위를 이어받은 앙리 4세(1553~1610)가 낭트 칙령을 공표하면서 신·구교 간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시 메디치 가문의 마리 드 메디치(1573~1642)가 왕비가 되고, 루이 13세(1601~1643)를 낳으면서 <삼총사>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리고 그후 9년 만에 앙리 4세가 죽으면서 여왕의 섭정 시대가 반복된다.





‘삼총사’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3세를 대신해 섭정을 시작한 마리 드 메디치는 자신이 총애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콘치니를 중용하며 앙리 4세의 신하들을 모조리 실각시켰다. <삼총사>에 등장하는 리슐리외가 고문관으로 발탁된 것도 이때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마리는 구교 국가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와 손을 잡고 합스부르크가의 안 도트리시와 아들을 혼인시켰다. 그러나 이후 아들에게 정권을 빼앗기며 두 사람은 끊임없는 대립 관계를 지속한다. 루이 13세는 수년 동안의 내전으로 어머니 마리와 화해한 후, 그가 중용했던 리슐리외를 고문으로 발탁한다. 이후 재상에 오른 리슐리외는 루이 13세를 보필하며 절대주의의 기틀을 확립했고, 이는 훗날 마자랭과 루이 14세가 프랑스를 유럽 제1의 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토대가 됐다. 달타냥과 삼총사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에서 두 사람이 각각 유약한 왕과 야심가로만 묘사된 것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후대의 창작물에서 루이 13세와 루이 14세의 연결고리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철가면’이다. 철가면은 원래 프랑스 역사에서 등장하는 수수께기의 정치범을 일컫지만, 뒤마의 소설을 통해 팩션의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뒤마의 『달타냥 이야기』의 3부인 「브라쥐롱 자작」에서는 철가면이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로 그려졌는데, 영화 <아이언 마스크>에서 이 설정을 빌려온다. 영화는 철가면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힌 쌍둥이 동생 필립이 삼총사의 도움으로 못된 형을 옥에 가두고 프랑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각색됐다. 뮤지컬 <삼총사>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리슐리외 경이 숨겨진 쌍둥이로 루이 13세에게 철가면을 씌워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는 해석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번에 공연되는 <태양왕>에서도 철가면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왕의 쌍둥이가 아닌 원래의 의미대로 정치범으로 활용될 예정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어린 시절 프랑스 최초의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롱드의 난’을 경험한 루이 14세는 강한 재상이 국민의 저항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과 국민의 저항에 약한 왕은 한없이 비참해진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래서 성인이 된 루이 14세는 재상을 두지 않고 직접 강력한 정치를 실시했다. 그 결과가 바로 역대 어느 왕보다 강한 절대군주였다. 모든 것은 왕이 우선이고 국가는 그 다음이 되었다. 이런 절대왕정의 논리를 종교적인 도그마로 격상시켜 ‘국왕은 지상에서 하느님의 대리인이자 화신’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태양왕’으로서의 확신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한 절대왕정의 이면에는 왕과 피지배 계층 사이의 관계가 상호보완적으로 구현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전쟁과 재정적인 측면에서 이어지는 문제점들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루이 14세는 프롱드의 난으로 인한 비참한 기억을 잊기 위해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에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을 지었다. 그는 베르사유에 귀족들을 집결시켜서 ‘에티켓’이라고 불린 규칙을 부과함으로써 이들을 왕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켰다. 음모가 판을 치는 궁정에서는 왕의 정부들을 위한 호사스러운 축제가 연일 계속됐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국민들의 굶주림과 반발심은 커져갔고,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과 경제적인 궁핍이 누적돼 훗날 프랑스 혁명의 씨앗이 됐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7호 2014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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