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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펀 홈> FUN HOME [No.142]

글 | 여지현 뉴욕통신원 사진 | Joan Marcus 2015-07-25 5,508

지극히 보편적이면서 특수한 가족의 이야기 

지난 6월 7일에 열린 토니상 시상식의 최우수뮤지컬상은 <펀 홈>에게 돌아갔다. <펀 홈>은 이번 시즌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호평받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가장 보수적인 시상식인 토니상에서 여성 창작자들이 쓴 레즈비언의 이야기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기에 <펀 홈>의 수상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래픽 소설이 뮤지컬이 되기까지 

뮤지컬 <펀 홈>은 2006년 그래픽 소설(만화의 형태를 띠는 수필과 소설) 작가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성장 과정을 다룬 동명의 자전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클로짓 게이(Closeted Gay: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동성애자)로 살아가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앨리슨의 아빠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앨리슨의 이야기를 다룬다. ‘Fun Home(펀 홈)’은 엘리슨 벡델의 가족이 미국식 가정 장례식장을 의미하는 ‘Funeral Home(퓨너럴 홈)’을 줄여서 부른 말로, 소설 속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즐겁고 재밌지 않다. 『펀 홈』은 출판된 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꽤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당시에 떠오르던 극작가 리사 크론도 이 소설에 관심을 보였다. 뮤지컬 극작 이력이 없었던 리사 크론은 『펀 홈』이 뮤지컬로 만들어지기 좋은 재료라고 생각했다. 즉시 스타 작곡가 제닌 테소리에게 작업을 제안했고 그녀는 흥쾌히 동참했다.

리사 크론과 제닌 테소리는 작업 초기에 만화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프로젝션으로 이미지를 투영하는 등 실험적인 기법을 써보지만, 무대에서 만화책의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시도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직접적으로 만화를 차용하는 대신 원작의 내용을 극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집중한다. 또한 원작 내용이 작가의 기억에 의존해서 얘기를 이어 나간다는 점을 고려해 기억을 무대화하기 위해 어린 앨리슨, 대학생 앨리슨, 그리고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성인 앨리슨 이렇게 세 명을 무대에 세우는 방법을 찾아낸다.
2013년 10월에 오프브로드웨이 퍼블릭시어터에서 막을 올린 <펀 홈>은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루실로텔어워드, 외부비평가상, 오비상을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공연 폐막 전 이미 브로드웨이행이 점쳐졌다. 그리고 지난 4월, 한 달의 프리뷰 기간을 거쳐서 브로드웨이의 유일한 원형 극장인 서클 인 더 스퀘어에서 막을 올렸다.
오프브로드웨이 공연과 브로드웨이 공연은 내용상 큰 차이가 없지만, 가장 달라진 것은 무대가 원형 극장으로 바뀌면서 배우들이 관객에게 더욱 집중해서 연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지면서 인물의 보편적인 감정이 부각돼 결과적으로는 브로드웨이의 보수적인 관객들이 좀 더 부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비슷하면서 다른 부녀의 이야기

앞서 언급한 대로 <펀 홈>은 앨리슨 벡델이 작품을 집필하면서 풀어놓는 기억의 조각을 통해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진행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중앙에 놓인 앨리슨의 작업 책상으로 성인 앨리슨(베스 말론)이 걸어 나오고, 마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주문 같은 오름차순의 음계가 들리면 어린 앨리슨(시드니 루카스)이 무대로 나와 아빠를 찾는다. 뒤이어 등장하는 앨리슨의 아빠 브루스(브루스 역의 마이클 세베리스는 올해 토니상에서 이 역할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낡은 침대보와 주물 그릇 등이 담긴 박스를 들고 나와 중고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자 가업인 장의 업체를 물려받은 브루스는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모으던 빅토리아풍의 낡은 소품에 대한 찬가를 부르면서 등장하는데, 이는 아빠의 관심을 원하는 어린 앨리슨의 첫 대사와 기억을 더듬어 돌아가기 시작하는 성인 앨리슨의 노래와 대조돼 어긋난 부녀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성인 앨리슨이 어린 앨리슨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공연은 전체적으로 비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어린 앨리슨과 아빠가 함께 등장하는 첫 장면에 이어 누군가 앨리슨의 집을 취재하러 오면 온가족이 동원돼 아빠가 원하는 빅토리아풍으로 집 안을 꾸며야 했던 앨리슨의 어린 시절의 회상 장면으로 이동한다. 이어서 대학생이 된 앨리슨이 학교생활에 대해 아빠와 통화하는 얘기가 나온 후, 다시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식이다. 그렇게 비순차적으로 어린 앨리슨과 대학생 앨리슨이 기억하는 아빠와 그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여러 겹의 거짓 속에 살았던 클로짓 게이 브루스 벡델이라는 퍼즐의 조각이 하나씩 맞춰져 간다.
앨리슨의 아빠인 브루스 벡델이 이야기의 한 중심축이라면, 때로는 관찰자로서, 때로는 중심인물로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앨리슨 벡델은 또 다른 중심축이 되어준다. 대학생인 앨리슨이 자신의 첫 여자 친구이자 첫 경험 상대자인 죠앤의 모든 것을 알아갈 수 있도록 전공을 죠앤으로 바꾸겠다고 부르는 ‘전공을 바꿀 거야(Changing My Major)’라든지, 어린 앨리슨이 아빠와 식당에 갔다 남성적인 매력을 품은 여자 우편배달부를 본 후 어렴풋이나마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키꾸러미(Ring of Keys)’ 등 어린 앨리슨, 대학생 앨리슨, 그리고 성인 앨리슨은 각각의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1인칭 시점으로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펀 홈>은 앨리슨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통해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달랐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부르는 노래랄까. 앨리슨이 어렸을 때에 아빠가 비행기를 태워줬던 것을 기억하며 캡션으로 적는 앨리슨의 마지막 대사인 “아주 가끔, 완벽히 균형을 잡고 내가 그의 위로 날아올랐던 순간이 있었다(Every so often, there was a rare moment of perfect balance, when I soared above him)”는 앨리슨이 아빠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관객에게 명확하게 보여준다. 



작품에 힘을 보탠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

<펀 홈>의 중심축인 브루스 벡델을 연기한 마이클 세베리스는 여러 욕망에 휩싸인 복잡한 인물을 손색없이 연기했다는 평을 들으며 토니상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자신의 깊은 욕망을 숨긴 채, 모순과 거짓 속에 살아온 브루스라는 인물은 작가와 연출, 그리고 배우가 역량을 모아 좀 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 작품 전체 톤의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앨리슨 벡델을 연기한 세 여배우 모두 호평을 받았지만, 어린 앨리슨을 연기한 시드니 루카스가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다. 아직 열한 살에 불과한 어린 나이로 앨리슨이 처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어렴풋이 깨닫는 핵심 뮤지컬 넘버인 ‘Ring of Keys’에서 보여준 집중력은 성인 배우를 능가할 정도로 훌륭했고, 아빠와의 어릴 시절 관계를 가감 없이 진실되게 연기한 것도 호평을 받았다.
기억을 소재로 하는 뮤지컬이기에 대본의 유기적인 구성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음악의 사용법 역시 막중하다. 그런 점에서 제닌 테소리의 음악은 합격점을 줄 만했다. 제닌 테소리의 음악은 어딘지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멜로디를 바탕으로 어른 앨리슨 벡델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남아있던 아빠라는 존재와 그 기억을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실타래처럼 엉킨 기억의 조각을 풀어내는 역할을 충분히 했다. 특히 “메이플 애비뉴의 우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Welcome to Our House on Maple Avenue)”의 중심 멜로디가 각각 다른 장면에서 달리 불리면서, 이 작품의 중심인 ‘집’이라는 공간이 각각의 인물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소리로 극명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수한 가족을 통해 바라본 보편적인 가족의 의미

토니상 결과가 전해지자 뉴욕 공연계의 미디어 매체는 <펀 홈>의 수상이 뜻하는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인 의미를 앞다투어 전했다. 여류 작가와 작곡가 팀이 부치(Butch: 남성적인 취향) 레즈비언 여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반향을 일으키고 인정받았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펀 홈>의 가장 큰 힘은 이야기에 있다. 극 중의 중심이 되는 내용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앨리슨이지만, 앨리슨의 시선은 브루스와 클로짓 게이인 브루스를 아빠, 또는 남편으로 두고 살아가는 그의 가정에 놓여 있다. 브루스의 단편적인 삶을 통해 자살을 선택했던 아빠에 대한 앨리슨의 궁금점이 해결되어 가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도 선명해진다. 레즈비언인 딸과 게이 아빠라는 특수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가족이라는 틀과 부모와 자식 간에 존재할 수 있는 질문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가 부모의 나이가 되면서 부모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에는 충분히 보편성이 담겨 있다. 바로 그 보편성이 보수적인 브로드웨이의 관객까지 아우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내재적인 탄탄함과 사회정치적인 타이밍이 적절히 균형을 잡은 <펀 홈>의 앞으로 여정이 기대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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