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라이징 스타 특집_<봄을 닮은 얼굴들>
이토록 반짝이는 봄, 무대 위에도 다채로운 반짝임이 가득합니다. 꽃봉오리 터지듯 눈부신 가능성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지금 무대 위에서 가장 반짝이는 여덟 명의 배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제 막 데뷔 7개월 차에 접어든, 두 편의 뮤지컬을 거쳐 왔고, 세 번째 작품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그야말로 ‘신인 배우’인 강병훈은 자신이 무대 위에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뮤지컬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곧장 설렘으로 뒤덮이는 눈동자가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무대임을 입증한다.
처음 배우라는 꿈을 품게 된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저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그냥 친구들이랑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거 좋아하는(웃음) 평범한 중학생이었어요. 1, 2학년을 그저 재미있게 보내다가 3학년이 된 후, 주변 친구들이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학년이 된 후로 계속 고민하다가, 우연히 뮤지컬을 한 편 봤어요. <도로시밴드>라는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공연을 보는데, 옆에서 애들이 막 떠드는데도 저는 왠지 모르게 무대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무대 위의 배우들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요.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무의식적으로 넘버를 흥얼거렸어요. 그 후 얼마 뒤에 문득 ’그럼 나도 뮤지컬 배우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꿈을 품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직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왜 뮤지컬에 매력을 느끼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어요.
뮤지컬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요?
중학교 3학년밖에 안 됐는데, 그때의 저에게는 ’앞으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얼른 진로를 정해야 한다‘는 현실이 되게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나 봐요. 그런데 뮤지컬을 보는 순간만큼은 그 압박감을 다 잊을 만큼 너무 행복했어요.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도 행복해 보였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요.
보통의 사람들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인데, 병훈 씨는 고민이 빨랐네요.
그게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제 삶에 있어서 계획적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성격이요. 물론 모든 면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단계, 예를 들어 입시나 군대처럼 꼭 거쳐 가야하는 단계에 대해서는 앞서서 고민하고, 빠르게 선택해서, 그 길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커요. 그렇다고 하루하루의 계획을 철저하게 짜는 J(계획형)는 아니에요. (웃음) 제 삶의 큰 그림을 미리 그리는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난해 11월 개막한 뮤지컬 <테일러>로 데뷔했으니,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지 반년밖에 안 된 거잖아요. 여전히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겠죠?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긴 하지만, 아직 꿈을 이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제가 무대 위에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그저 더 잘하고 싶고,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고, 더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저는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꿈꾸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무대에 서 있고 저를 바라봐 주시는 관객분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정말 벅차요. 그 감정을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예요.
<테일러> 첫 공연을 마치고 무슨 생각을 했어요?
2024년 11월 20일이 제가 첫 공연을 한 날이거든요? 근데 제 기억 속에서 그날은 지워졌어요. (웃음) 너무 떨리고 긴장되고 정신이 없는 하루였거든요. 그 전날에는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잤고요. 첫 공연 당일에는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공연장을 간 건지 기억도 안 나요. 정신 차리니까 공연을 마치고 집에 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제 공연을 녹음하고, 집 가는 길에 들으면서 복기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때도 녹음해 놓은 걸 들으면서 그제야 ‘내가 오늘 첫 공연을 했구나‘ 체감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오늘은 정말 정신 없었지만, 앞으로는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공연해야겠다’는 다짐도 했어요.
<테일러> 다음으로 만난 작품이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무명, 준희>였죠. <무명, 준희>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나요.
감히 말하자면,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높았고, 매 회차가 새로웠고, 준희로부터 너무 많은 감정들을 배웠어요. 더군다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잖아요. 우리나라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를 내주시는 분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진 채로 무대에 올랐어요. 특히 <무명, 준희>는 리딩 공연부터 참여했던 작품이기도 해서 더더욱 애정이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정말 잊지 못할 작품이에요.
데뷔와 동시에 만난 두 작품이 초연 창작 뮤지컬이었네요. ‘작품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무엇인지 크게 느꼈을 듯합니다.
처음이기에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점도 많았어요. 배우, 창작진이 작품과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 가고, 의견을 나누면서 더 좋은 결과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창작 뮤지컬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매력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해본 후에 새롭게 떠오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는 점이 재미있더라고요. 창작 뮤지컬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덕분에, 앞으로도 걱정 대신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 캐릭터를 마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오는 6월에는 <베어 더 뮤지컬>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1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온 작품의 뉴캐스트로 합류하는 건, 초연 창작 뮤지컬에 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설렘과 긴장감을 안겨주겠죠?
<베어 더 뮤지컬>은 2020년에 한 번, 2024년에 한 번, 총 두 번의 공연을 봤는데요, 볼 때마다 피터라는 인물을 꼭 한 번 연기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다른 작품의 오디션을 볼 때도 자유곡을 부를 기회가 생기면 꼭 <베어 더 뮤지컬>의 넘버를 부를 정도로 이 작품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피터 역으로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요즘 연습실에서도 매 순간 설레는데, 그래도 연습하는데 제가 너무 방방 떠 있으면 안 되잖아요!(웃음) 제 마음을 어떻게든 숨기려고 노력하는데 계속 웃음이 새어 나와요. 정말 행복하게 연습하고 있습니다.
관객에서 작품의 일원이 되어보니 어떤가요.
관객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베어 더 뮤지컬>은 파고들수록 많은 부분이 보이는 작품이잖아요. 관객일 때도 그렇게 느꼈는데, 극 중 인물이 되어 작품을 들여다보니 훨씬 더 많은 부분이 보여요. 그래서 요즘은 머릿속에 정말 <베어 더 뮤지컬>과 피터 생각밖에 없어요. (웃음)
워낙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인 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겠죠. 강병훈의 피터를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사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담감도 엄청나게 컸어요.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는 설렘보다 부담감이 컸는데, 오히려 연습이 시작된 후에는 피터를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고민하는 데 신경을 쓰느라 부담감은 조금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베어 더 뮤지컬>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방황의 시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인물의 감정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피터로서 보여줘야 하는 감정과 숨겨야 하는 감정을 명확하게 나눠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피터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고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관객분들에게 이 감정을 어디까지, 어떻게 전달하는 게 좋을까’ 여러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체감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관객분들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을 때요. 저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데, 그 시간에 늘 편지를 읽어요. 그 편지 안에는 정말 예쁜 마음들이 담겨 있어요. 한 글자 한 글자를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제 공연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는 사실을 관객분들이 편지를 통해 전해주시는데, 저는 그 덕분에 두 배, 세 배로 최선을 다하게 돼요.
중학생 때 뮤지컬을 본 후 뮤지컬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했잖아요. 배우가 된 후에 새롭게 발견한 무대만의 매력이 있다면요.
작품이,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그 순간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공연 시작 전 암전이 되고, 배우가 무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무대를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그 시간 동안 오롯이 다른 인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정말 소중하고 뜻깊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관객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제가 어린 시절에 뮤지컬을 통해 위로를 받았듯이, 저 역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었던, 위로를 줄 수 있는 배우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지치고 힘든 날에도 뮤지컬을 보는 순간만큼은 그런 힘듦을 잠시나마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분들이 뮤지컬을 통해 힘듦을 잊고, 위로를 받는 그 자리에, 그 무대 위에 제가 있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